충남 아산에서 33년째 배 키워낸 정순정 농부의 하루
‘배’하면 전남 나주를 떠올리기 쉬운데요. 나주에서 북쪽으로 200㎞ 떨어진 충남 아산의 특산물 역시 ‘배’입니다. 기후 온난화의 영향으로 배 재배 최적지가 조금씩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죠.
충남 아산에서 33년째 배를 재배하고 있는 정순정(64) 농부를 만났습니다. 품질 좋은 배를 만들기 위해 유명 배 주산지를 다니며 어떻게 농사를 짓고 있는지 보고 배웠는데요. 그 노하우로 2018년 대한민국 과일산업대전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수확이 한창인 가을의 어느 날 정순정 농부의 과수원을 찾아갔습니다.
◇대상 받은 배, 이렇게 재배합니다
정순정 농부의 집 1층은 창고로 쓰고 있었는데요. 한쪽 구석에서 과일산업대전 상장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아래엔 2018년 대상을 받을 때 찍었던 기념 사진도 자리하고 있었죠. 정 농부는 “한국과수농협연합회에서 경매사를 초청해 색태, 당도 등을 기준으로 수상자를 결정한다”며 자랑스럽게 웃었습니다.
그의 집에서 배 과수원으로 출근하기까지 단 10초면 충분했습니다. 차 한 대가 지나갈 정도의 도로를 사이에 두고 집과 과수원이 붙어 있기 때문이죠. 과수원에 들어서자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배나무가 가득 들어차 있었습니다. 정 농부가 운영하는 과수원은 총 8000평(약 2만6446㎡)으로, 축구장 4개를 이어 붙인 정도의 규모입니다.
가을이 제철이라는 것을 알리듯 배나무에는 튼실한 과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는데요. 기대했던 황금빛 물결을 볼 순 없었습니다. 모두 봉지에 싸여있었기 때문이죠. 정 농부는 “봉지가 병충해를 막고 농약 방제 시 과피에 농약이 묻는 것도 방지해 준다”며 그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봉지가 팽팽하게 당겨지고 그 사이로 노란 배가 언뜻 보이는 것을 보니 충분히 여물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정순정 농부는 한때 서울 관광호텔의 요리사였습니다. 1990년의 어느 날 아내의 제안이 인생을 바꿔놓았죠. 정 농부는 “6000평 부지의 과수원에서 수십 년간 배를 재배하던 장인·장모님이 나이가 들면서 농사일이 버거워지셨고, 대신 제게 농사를 지어보라고 권하셨다”며 농부가 된 계기를 털어놓았습니다.
그는 농부가 되기로 결심한 직후 그 좋아했던 담배부터 끊었습니다. 그리고 한 달 뒤 살림살이를 싸 들고 아산에 터를 잡았죠. 장인 장모를 비롯한 아내의 친척 어르신들에게 농사법을 배우는 것으로도 모자라 전남 나주, 충북 음성·제천 등 유명 배 주산지를 다니며 어떻게 농사를 짓고 있는지 보고 배웠습니다.
그렇게 터득한 노하우 중 하나만 알려달라고 청해 봤습니다. 정 농부는 “매년 4~5월에 배나무 아래에 볏짚을 깔아준다”고 귀띔했는데요. 볏짚의 유기물을 먹이로 삼는 지렁이가 모여들면서 땅속 구멍이 많아져 통기성이 좋아진다는 이유였죠.
요즘 정 농부의 고민은 ‘새’였습니다. 아무리 예쁘게 잘 익은 배라도 비둘기나 꿩이 콕 찍어먹으면 모조리 불량품이 되죠. 과수원 안에선 수초 주기로 ‘삑’ 소리가 났는데요. 새를 쫓기 위한 장치였습니다. 정 농부는 “직접 소리를 질러보기도 하고 화약이나 폭죽을 터트린 적도 있다”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차례상에 올라갈 튼실한 배
추석을 앞둔 9월 중순은 수확한 배를 선별·포장하는 작업이 한창이었습니다. 아산 내 200여 개 배 농가에서 재배된 배는 아산원예농협거점산지유통센터로 모이는데요. 가장 먼저 할 일은 봉지를 벗긴 배의 꼭지를 자르는 작업입니다. 삐죽 솟은 꼭지가 옆에 있는 배에 상처를 낼 수 있기 때문이죠.
이후에 비파괴 당도 검사를 실시합니다. 12브릭스를 넘는 배만 모아 크기·무게에 따라 분류하는데요. 7.5㎏짜리 박스에 몇 개가 들어가느냐에 다라 10내·12내로 나뉩니다. 10내는 8~10개, 12내는 11~12개가 들어갑니다. 10과는 한 알에 750g, 12과는 한 알에 625g 정도죠.
포장 상자마다 초록색 ‘GAP 인증’ 마크가 붙어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GAP 인증은 농산물의 생산·수확·포장·판매 등 전 단계에서 농약·중금속·미생물 등 위해요소가 검출되지 않도록 우수하게 관리했다는 뜻인데요. 아산 배는 2012년 최초로 GAP 인증을 취득한 이후 2년을 주기로 재검사를 받고 있다는군요.
/이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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