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육식물 키우는 농부의 하루
오동통통 귀여운 다육식물의 외관의 비밀은 강인함이다. 다육식물은 건조한 기후에 적응하기 위해 잎이나 줄기 혹은 뿌리에 물을 저장한다. 고산지대처럼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눈부신 생명력을 보여주는 비결이다.
다육식물 농장을 운영하는 이길재 홍해농장 대표(53)는 다육식물에게 인생을 배웠다. 스무 살 어린 나이에 꿈을 접고 가업을 택한 그를 만나 다육식물 농사 30년 인생에 관해 들었다.
◇ 선인장과 다육식물의 차이
경기도 고양시는 우리나라 최대 다육식물 재배지역이다. 이 대표는 고양시 덕양구에서 다육식물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재작년부터는 영농조합법인 선인장연구회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가입농가를 대표해 모임이나 박람회를 주최하고, 농가가 필요로 하는 것을 관공서에 요청하는 역할을 한다.
홍해농장은 총 4000평(온실 면적 2000평), 21동 규모로 10cm 다육식물 화분 50만개를 수용할 수 있는 크기다. 홍해농장에서 기르는 식물의 종류는 총 1000여종이다. 이국적인 모양으로 사랑받는 선인장 역시 다육식물의 일종이다. 다만 선인장과 다육식물은 별도의 카테고리로 판매되고 있다.
“다육식물이라는 큰 범주 내에 선인장이 포함된 겁니다. 잎이 있는 것이 다육식물이고 잎이 없는 걸 선인장으로 분류합니다. 구분 기준을 ‘가시’로 아는 분들이 많은데요. 가시가 있다고 모두 선인장인 건 아니에요. 가시가 있고 잎이 없으면 선인장이고 잎이 있으면 다육식물로 분류하는 게 맞습니다.”
◇ 숨은 수출공신 접목 선인장의 비극
이 대표는 우리나라 다육식물 시장을 키운 일등공신이다. “우리나라에 없는 품종을 찾아다녔어요. 일본에서 시작해 호주, 미국, 유럽, 중남미까지. 안 다닌데가 없죠. 정말 갖고 싶은 품종이 있었는데 농장주가 팔지 않으려 해서 몰래 훔친 적도 있어요. 그렇게 다양한 품종을 도입하니 마니아분들이 환호했어요. 제가 농사를 시작한 30년 전에는 선인장 시장 규모가 100억원이었는데요. 지금은 한 1000억원 정도 됩니다.”
다육식물 수입 붐은 수출 붐으로 이어졌다. 전 세계 다육식물 마니아들이 한국인의 섬세한 손길을 거친 다육식물에 열광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선인장 강국입니다. 우리나라 화훼 수출 1위 품목은 선인장, 2위는 다육식물입니다. 제가 수입을 했던 미국, 일본, 호주. 유럽에 오히려 수출하고 있는 상황이죠.”
선인장 수출액의 대부분은 접목 선인장인 ‘비모란’이 차지한다. “비모란이란 엽록소가 없어 빨간색, 노란색, 주황색 등을 띠는 선인장으로 접목 선인장의 상단부에 배치하는 용도로 활용되죠. 저도 과거에는 접목 선인장 농사를 했는데요. 요즘은 안 하고 있습니다. 돈이 안 돼요. 30년 전 300원이었는데 아직까지 500원 밖에 안하거든요.”
◇ 18억원 잃고 얻은 것
열과 성을 다해 재배한 다육식물은 도매상에 판매한다. “소매를 하지는 않아요. 상도라는 게 있잖아요. 이 시장의 질서를 지켜야 서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2022년 매출은 약 5억원. 2023년의 경우 경기가 너무 안 좋아서 매출이 2억5000만원으로 반토막 났다. “인건비나 자재비, 종자 구입비 등의 비용이 2억5000만원 정도 듭니다. 작년엔 남긴 게 없었죠.”
그래도 이정도면 본전이다. 가장 잘 나갈 때 크게 실패한 경험이 있어 웬만한 변수에는 흔들리지 않는다. “중국에 투자를 한 적이 있어요. 18억원을 대출한 뒤 총 5개 도시에 온실을 지었습니다. 장밋빛 미래만 보고 사업을 너무 크게 벌인 게 화근이었어요. 현실은 기대치를 따라주지 않더라고요. 대출 이자만 800만원씩 갚아 나가고 있습니다.”
그는 삶을 선인장에게 배웠다고 말했다. “식물을 기르다 보면 기다릴 줄 알게 돼요. 살다보면 힘든 일이 계속 발생해요. 힘든 시절이 끊임없이 찾아오죠. 그런데 그걸 넘어야 해요. 넘지 않으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없어요. 30년은 키워야 꽃을 피우는 선인장도 있어요.”
/진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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