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 패각 불소 처리제 개발한 오이스텍 소원기 대표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한 해 우리나라에서 버려지는 굴 껍데기는 약 30만톤. 이중 약 52%는 단순 매립 방식으로 폐기한다. 굴 패각으로 인한 환경 비용은 연간 3500억원에 달한다. 지자체에서는 굴 패각 처리 업체에 지원금 형식으로 톤당 4만원의 처리비를 지불하는 실정이다. 상황이 이렇다고 굴을 안 먹을 수는 없다.
버려지는 굴 껍데기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이가 있다. 굴 껍데기로 불소처리제(공업폐수에서 불소이온을 제거하는 약품)를 개발한 오이스텍 소원기 대표(38)다. 기존에 불소처리제 원료로 주로 쓰이던 소석회를 굴 껍데기로 대체하면 불산 폐수 처리비용의 60%를 절감할 수 있다. 소석회 가공으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까지 잡았다. 소 대표를 만나 굴을 계속, 아니 더 많이 먹어도 되는 이유를 들었다.
◇아버지의 것이 아닌 아버지의 회사
어릴 적 꿈은 과학자였다. 포스코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던 아버지 영향을 받았다. 중학생이 될 무렵 아버지는 사업에 뛰어들었다. “슈가버블이란 회사를 운영하며 탈지제(유지분 제거에 쓰는 용매), 불소처리제, 가정용 세제 등을 만드는 일을 하셨어요. 그땐 그게 뭔지도 잘 몰랐지만 좋은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집이 넓어졌고, 새로운 가구를 들이기도 했죠.”
2011년 인하대 해양학과를 졸업했다. 동시에 아버지의 사업이 크게 휘청거렸다. “거래하던 회사의 70억~80억원 규모의 채권에 대한 채무 이행 의무가 생겼습니다. 아버지 회사가 2차 행위자였거든요. 매출이 300억원이던 시절이었지만 당장 현금 수십억원을 마련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죠. 결국 법정관리에 들어갔습니다. 사실상 부도라고 볼 수 있죠. 다른 회사에 입사하는 것보다 일단 아버지 일을 도와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 주어진 일은 거래처를 돌아다니며 사정하는 일이었다. “제품을 만들어 팔기만 하면 돈을 어느 정도 마련할 수 있었어요. 원료 공급사에게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협조를 구하고 원료를 받아 부지런히 제품을 만들었습니다. 거래처에선 화를 내거나 퇴짜를 놓을 법도 한데 ‘사업하다 보면 그럴 때도 있지’ 하며 이해해 주시더군요. 아버지께서 20년간 정직하게 회사를 운영하셨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1년 만에 슈가버블은 안정을 되찾았다. "아버지가 회사의 주인이 아니란 사실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채권단과 법원의 소유가 됐죠. 다만, 기술 기반의 회사라는 점에서 아버지를 관리인으로 둘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아버지와 전 연구 개발에 매진했어요. 제철소에서 쓰는 강판 표면의 기름을 세정하는 화학약품이나 세탁·주방용 세제를 만들었습니다. 포스코·현대제철 등 제철소와의 B2B(기업 간 거래) 거래도 이어졌죠.”
2017년 슈가버블이 매각됐다. 빚 청산이 끝났다는 뜻이다. “한바탕 폭풍이 지나고 나니 생계가 막막했습니다. 취업을 하자니 월급만으로는 가족들을 모두 부양하는 게 쉽지 않아 보였죠. 아버지께서 직장생활을 하시다가 사업을 결심한 이유를 알 것 같았어요. 그렇게 창업을 결심했습니다. 동생도 힘을 보태기로 하면서 ‘소씨 형제들’이라는 뜻으로 ‘S브라더스’란 사명을 지었어요.”
◇굴 패각으로 만드는 불소처리제
첫 아이템은 세제류로 낙점했다. 쉽고 빠르게 제품화할 수 있는 아이템으로 적합했기 때문이다. “설거지하는 섹시한 남자라는 콘셉트로 주방세제를 만들었어요. 백화점·보험 사은품 같은 특판 시장을 노렸습니다. 2019년 한 해 매출이 17억원까지 올랐는데요. 곧이어 불어닥친 코로나 여파로 2020년 2억원으로 뚝 떨어졌습니다. 직원 월급을 주지 못해 개인 대출을 받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죠.”
안정적인 먹거리를 찾아야 했다. B2B 비즈니스 만한게 없었다. “사세가 기울기 전부터 해오던 생각이었어요. 대학 시절 현장실습을 갔던 통영 앞바다에서 새 아이디어에 대한 힌트를 얻었습니다. 환경오염의 원인이라는 이유로 천덕꾸러기 신세인 굴 패각을 활용할 비책이 있었어요. 굴 패각은 96%가 탄산칼슘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불소처리제의 주원료인 소석회 역시 마찬가지죠. 다시 말해 굴 패각으로 불소처리제를 만들 수 있다는 뜻입니다.”
불소처리제는 익숙한 아이템이다. “슈가버블에서 2000년대에 희토류를 주원료로 하는 불소처리제를 포스코에 납품했었어요. 2007년부터 중국이 희토류 수출 규제를 강화하면서 지속하기 어려워졌죠. 하지만 산업계는 불소처리제를 계속 필요로 했습니다. 반도체·디스플레이를 만들 때 불산을 사용하는데요. 일반 폐수 공정으로는 불소이온이 제거되지 않아 특수 공정해야 합니다. 연간 발생하는 7억톤의 폐수를 처리하기 위해 300만톤의 불소처리제가 쓰이죠.”
알아볼수록 기존 원료인 소석회의 단점이 두드러져 보였다. “소석회는 석회석을 태워서 만듭니다. 소석회 1톤 생산하는 데 600㎏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합니다. 그렇게 만든 소석회로 불소처리를 한다고 해도 폐수 공정이 끝나는 게 아니에요. 방류허용수치(불소이온 15ppm 미만, pH 5.8~8.6 이내)를 충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2~3차의 공정이 추가로 필요합니다.”
2018년 말부터 굴 패각과 씨름을 벌였다. “굴 패각의 탄산칼슘에 불소이온이 달라붙는 것까지는 의도한 대로 흘러갔습니다. 하지만 슬러지(하수처리·정수과정에서 생긴 침전물)의 양은 기존과 비교할 때 큰 변화가 없더군요. 슬러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기업들은 비용 절감을 목적으로 처리제를 쓰는데 슬러지 처리 비용이 만만찮기 때문이죠.”
별도의 첨가제를 연구했다. 온갖 성분을 섞어보고 압력을 줘보고 온도도 바꿔가면서 실험했다. “2021년 말쯤 꼭 넣으려고 했던 원료가 실수로 빠진 적이 있었어요. 이게 웬걸, 오히려 결과가 좋았습니다. 그때부터 그 레시피를 바탕으로 연구를 이어갔고 3개월 만에 목표치에 도달했습니다. 불소 제거 성능이 10% 향상됐고 슬러지의 양은 50% 줄었죠.”
그 무렵 사명을 ‘S브라더스’에서 ‘오이스텍(OYSTEC)’이라 바꿨다. “이름 따라간다는 말처럼 사명을 바꾸자마자 ‘굴(oyster) 패각 불소처리제’ 영업이 잘됐어요. 기술력을 인정 받아 현실에 적용할 기회도 빨리 거머쥐었어요. 2022년부터 LG디스플레이로부터 폐수를 받아 실제로 적용해 보는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테스트 마무리 단계로 협력 업체 등록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한국 굴 다음은 중국 굴
2022년 10월 처음으로 고객사와 계약을 맺었다. 세계 1위 제철소인 중국의 바오스틸(보산강철)이다. 지난 1월엔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이 주관하는 창업경진대회(디데이) 본선 무대에 올랐다. “오이스텍의 불소처리제를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연간 17만8000톤 줄일 수 있고, 기업에서 별도의 추가 설비를 구축할 필요가 없다는 점 등에서 강한 인상을 남긴 것 같습니다.”
통영의 굴 껍데기가 다 소진되면 어떡하냐고 묻는 이들이 많다. “통영에서 1년에 약 30만톤의 굴 껍데기가 나오는데요. 대기업에 한 번 납품하면 끝나는 양입니다. 새로운 공급처로 중국을 눈여겨보고 있어요. 중국의 한 해 굴 생산량은 500만톤으로 전 세계의 80%를 차지합니다. 그 많은 굴 패각이 심각한 환경 문제를 초래한다고 하지만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것마저 다 써버리면 석회석을 써도 돼요. 소석회 대신 석회석을 쓰는 것만으로도 이산화탄소 발생을 줄여 환경에 도움이 됩니다. 불소처리제 분야에 있어서 오이스텍보다 좋은 대안은 없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이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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