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렇게 하면 중소기업 직원도 사내 대출이 됩니다"

더 비비드 2024. 6. 24. 10:55
사내 대출 운영·관리 솔루션 ‘워크드’ 박지운 대표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사내 대출 운영·관리 솔루션 ‘워크드’ 개발한 샐러리파이 박지운 대표 /더비비드

일자리를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이에게 ‘눈을 낮춰보라’ 조언을 하는 경우가 있다. 대기업이나 공공기관만 쫓지 말고 규모가 작은 기업이라도 자리를 찾아보라는 현실적인 조언이다.


그러나 청년들이 대기업을 고집하는 덴 나름의 이유가 있다. 높은 연봉과 압도적인 복지 혜택이 대표적이다. ‘사내 대출’같은 제도를 통해 기업이 가진 현금을 낮은 이자로 빌릴 수도 있다. 돈이 얽힌 일에는 복잡한 절차가 따르게 마련인데, 대기업은 그 절차를 해낼 ‘여력’을 갖추고 있다.


규모가 크지 않은 기업에게 사내 대출을 운영할 ‘여력’을 만들어 주는 스타트업이 있다. 샐러리파이는 사내 대출 운영·관리 솔루션을 개발한 스타트업이다. 샐러리파이의 박지운 대표(37)는 ‘사내 대출은 기업과 근로자가 모두 윈윈(win-win)하는 제도’라 말한다. 박 대표를 만나 패자 없는 싸움을 구경해 봤다.

◇예술이 좋은 사업가, 사업이 좋은 예술가

현대엔지니어링 신입사원 연수를 마치고 동료들과 함께 찍은 기념 사진. /박지운 대표 제공

2012년 연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현대 엔지니어링에 입사했다. 화공 플랜트 엔지니어로 2년간 근무하다 사표를 썼다. “어릴 때부터 자동차 디자이너가 꿈이었어요. 하지만 그림에 소질이 없어 미대 진학을 포기했었죠. 더 나이 들기 전에 해보고 싶었던 일에 도전하고 싶었습니다.”

홍익대 디자인대학원에 입학 원서를 넣었다. 2014년 대학원생이 됐다. “다시 돌아간 학교는 집에 온 듯 편안했어요. 몇 시간이고 작업실에 틀어박혀 깎고 두들기고 조립했죠. 그렇게 만든 작품을 2015 도쿄 디자인 위크, 2016 서울재활용전 등에 출품했어요."

접근 방법에 차이가 있었다. "전시를 준비하면서 이걸 어떻게 대량 생산해 상품화할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순수예술을 지향하는 친구들과 달랐죠.”

하루종일 작업실에서 살았던 대학원 시절. /박지운 대표 제공

대학원 조교를 하며 등록금을 아꼈고, 수학 과외를 다니며 용돈벌이했다. "돈을 모아 수백만원짜리 3D프린터를 사서 인테리어 소품 등 물건을 만들어 팔기도 했어요. 물론 떼돈을 벌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가난했지만 재미있었어요. 그때부터 막연하게나마 '창업'에 대한 꿈을 키웠습니다.”

◇엔지니어와 개발자의 차이

에이팀벤처스에서 PM으로 일하면서 작가와 함께하는 프로젝트를 기획하기도 했다. /박지운 대표 제공

우연히 한 스타트업의 채용 공고를 발견했다. 3D 프린팅 제조업체 에이팀벤처스에서 3D프린팅 제조·용접 등이 가능한 경력직원을 뽑고 있었다. "업무 내용을 보니 '이거 내 이야기인데?' 싶었어요. 이미 제가 밥먹듯이 하는 일들이었죠. 마침 창업에 뜻이 있었기에 스타트업에 입사해 경험을 쌓기로 결심했습니다."

2019년 2월 에이팀벤처스에 팀장으로 합류했다. 입사 1년 만에 회사는 제조 매칭 플랫폼으로 피봇(사업모델 전환)했다. “엔지니어 주도로 눈에 보이는 재화를 만들어 내다가, 이젠 개발자 주도로 만질 수 없는 앱·웹을 만들어 내야 했습니다. 대부분의 엔지니어가 퇴사하고 전 PM(프로젝트 매니저) 팀장으로 남았습니다.”

창업을 하기로 마음 먹고, 시장이 큰 분야를 찾다 보니 핀테크가 떠올랐다. /더비비드

달라도 너무 달랐다. “엔지니어 입장에서는 제품 출시 전 조금의 오류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몇천만원을 들여 만든 제품을 전량 폐기해야 할 수도 있으니까요. 반대로 개발자들은 한시라도 빨리 앱을 출시해야 한다더군요. 시장의 반응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급선무라는 이유였습니다. 오류는 포착되는 족족 고치면 되니까요. 완벽주의에 대한 엔지니어의 고집을 내려놓고 새로운 방식을 받아들이자 세상이 달리보였어요. 시행착오가 허용된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느껴졌죠.”

회사 생활은 만족스러웠지만 창업에 대한 열망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창업을 결심했다. “목표는 높게 잡아야죠. 시작부터 유니콘을 만들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자면 시장 규모가 큰 분야여야만 했어요. 결론은 핀테크(금융·IT 융합 산업)였어요. 영국, 싱가포르 등 외신 뉴스를 통해서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찾아보다가 일한 만큼의 임금을 미리 받는 ‘급여 선지급 서비스’를 발견했습니다. 월급제가 보편화된 우리나라에선 충분히 도입해 봄직 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실험이 가져다준 확신

샐러리파이 창업 초기 팀원들과 이두희 멋쟁이 사자처럼 대표(왼쪽에서 두 번째). /박지운 대표 제공

돈이 오고 가는 일이라 무작정 덤빌 수 없었다. “변호사를 만나 조언을 구했어요. 영업성을 띠는 순간 대부업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했죠. 지인끼리 돈을 빌려주고 갚을 땐 이자율을 따로 설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착안해 ‘자율 금리제’를 떠올렸습니다. 근로자에게 급여를 미리 준 다음 해당 근로자가 지불하고 싶은 만큼 이자를 달라고 하는 거죠. 이 아이디어를 들은 친구들은 모두 ‘개똥 같은 소리’라며 웃었는데요. 전 실험으로 증명해 낼 자신이 있었습니다.”

2021년 11월 아이디어를 검증하기 위한 실험을 시작했다. 서비스명은 ‘워크드(Worked ·일했다)’. 회원가입을 하고 회사명·재직기간·급여 수준·급여일 등을 기재한 후급여 선지급을 신청하면 워크드에서 돈을 입금해주는 플랫폼이다. 대신 한도를 정했다. 처음엔 최대 15만원까지 돈을 미리 받을 수 있고, 정해진 날짜에 갚으면 레벨이 올라가면서 한도가 커지는 방식이다.

3개월 만에 월 거래액이 1억원을 넘어섰다. 부실률(부실채권 비율)은 5~6% 정도였다. “시중 은행은 부실률이 4%만 넘어도 비상입니다. 금융 전문가가 보면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죠. 워크드는 추심 조차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돈을 빌려 간 사람의 75%가 자발적으로 이자를 냈어요.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봤죠.”

토스파운드 최종 결승. /박지운 대표 제공

실험 결과를 들고 2022년 2월 토스(toss)가 주최하는 스타트업 서바이벌 ‘토스파운드’에 나갔다. 400팀에 가까운 스타트업 사이에서 최종 결승 5팀 중 하나로 선정됐다. 그해 5월 급여(salary)와 금융(finance)을 결합해 ‘샐러리파이(Salarify)’ 법인을 설립했다. “결승에 올랐다는 것만으로도 큰 용기를 얻었습니다. 다만 한계가 명확했기 때문에 우승까지는 하지 못했어요. 금융 규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탓이었죠.”

고민이 깊어지던 차에 고객사 담당자의 한마디가 새로운 불씨를 지폈다. “직원이 대출해달라고 할 때마다 난감하다고 하더군요. 사내대출 관련 규정을 찾아봤더니 대부업 예외 범위에 있었습니다. 이거다 싶었죠. 기업들이 사내 대출을 선뜻 도입하지 않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어요. 인사·회계·재무·경영지원팀 등 얽힌 이해관계자가 많았고, 사내 대출을 도입시 이들이 해야 할 일이 늘어나는 구조였어요.그 일을 대신 해주는 것만으로도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사내 대출을 장려하는 스타트업

워크드 플랫폼 안에서 사내 대출 도입부터 운영까지 가능하다. /워크드

2022년 11월 워크드의 방향을 틀었다. ‘사내 대출 운영·관리 솔루션’으로 정체성을 다시 세웠다. 워크드의 이용자는 사내 대출을 도입한 기업의 근로자다. 기존의 워크드 플랫폼을 통해 규정 수립, 대출 서류 날인, 원리금 계산, 급여 공제, 법인세 반영, 연말정산, 퇴사자 처리, 상환 관리 등 사내 대출에 수반되는 전 과정을 처리할 수 있다.

기업 규모에 따라 50만원에서 300만원의 솔루션 도입 비용을 받고 있다. 도입 준비기간은 2주면 충분하다. 사내 대출 운영·관리를 맡아줄 인력이 부족하다면 워크드에 위탁해 운영할 수 있다. 위탁 운영료는 인건비에 준한다.

워크드를 이용한 사내 대출 시스템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박 대표. /더비비드

“먼저 기업 담당자와 만나 최대 대출 가능 금액과 연이자 등을 정합니다. 직원들에게 대출 제도에 대해 공지하고 신청 기간에 맞춰 신청하도록 안내하죠. 그때부터 문의 전화가 쏟아집니다. 근속연수에 따라 달라지는 대출 금액이나 상환 방법 등을 안내하는 것도 워크드의 역할 중 하나죠. 대출금이 지급되면 기업 담당자는 관리자 페이지에서 관련 사항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자 납입 여부, 월 공제 내역 등을 일일이 찾아볼 필요가 없죠.”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한 장치도 마련했다. 사내 대출을 희망하는 직원은 SGI서울보증보험 생활안정자금 보증보험상품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보증보험료는 해당 직원이 지급한다. “이런 비용을 부담스럽다고 여기는 근로자가 많을 것 같지만, 보험료를 내고서라도 급히 대출받고 싶어 하는 근로자도 많습니다. 급여 선지급 서비스를 하면서 소액이라도 유용하게 빌려 쓰는 사례를 많이 봐왔기에, 근로자의 만족도가 높을 것이란 믿음이 있었어요.”

◇근로자를 위한 은행

샐러리파이는 지난 6월 디캠프 디데이 본선 무대에 올랐다. /박지운 대표 제공

새로운 복지 제도를 고민하던 연 매출 1400억원의 바이오테크 기업이 워크드를 도입했다. 연 4.6%의 이자를 내면 5000만원 한도로 대출받을 수 있도록 했다.

“금리·이자는 기업이 정하기 나름입니다. 한도를 낮추고 무이자로 대출해주는 기업도 있어요. 워크드를 도입하면서 실무진에게 부가적인 업무가 생기지 않고도 임직원에게 현실적인 도움이 되는 복지제도를 마련했다며 만족스러워하더군요. 경영진 입장에서는 핵심 인재 유출을 막을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을 겁니다.”

근로자를 위한 은행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힌 박 대표. /더비비드

박 대표의 이력은 종잡을 수 없다. 대기업을 다니다가, 작품을 만들어 전시회를 전전하다가, 3D프린팅 전문가로 일하다 이젠 핀테크 스타트업을 이끄는 CEO가 됐다. “이런 이력을 가진 제가 금융에 손을 댄다고 하니 다들 저를 미덥지 않은 시선으로 봤어요. 하지만 전 계속 실험했고 결과로 증명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허공에 손을 뻗은 게 아니라는 사실을요.”

샐러리파이는 지난 6월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이 주관하는 창업경진대회(디데이) 본선 무대에 올랐다. 하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근로자가 돈을 빌리면 당연히 근로자의 신용 점수를 살펴볼 것 같지만 기업이 얼마나 건실한지부터 따집니다. 근로자 수가 너무 적어도 법적인 문제 때문에 사내 대출이 어려워요. 장기적으로는 이런 문제를 모두 해결하는 은행을 만들고 싶습니다. 기업을 위한 은행이 있으니 근로자를 위한 은행도 나올 때가 됐죠.”

/이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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