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엠디솔루션 김현정 대표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김현정(55) 서울대 치대 교수는 스타트업 에스엠디솔루션 창업자이기도 하다. 누구보다 바쁜 의사이면서, 치주 질환으로 고통받는 장애인 환자 문제로 고민하다 구강 관리기 ‘코모랄’을 개발해, 내친김에 창업까지 했다.
코모랄은 직육면체 형태의 본체에 ‘워터렛’이라고 부르는 마우스피스를 연결해서 사용하는 구강 세정기다. 워터렛을 입에 문 뒤 기기를 작동하면, 워터렛의 사방에서 60개의 물줄기가 뿜어져 나와 구강 내 이물질과 플라그를 제거한다. 입속에 있던 물은 기기가 자동으로 흡입해 배수통으로 보낸다. 워터렛을 물고 있는 것만으로 구강 세정이 끝나는 것이다.
덕분에 거동이 불편한 침상 환자도 깨끗한 구강 세정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 2022년 6월 세상에 첫선을 보였다. 효율적인 잇몸 마사지와 프라그 제거 효과 때문에 구강 건강관리에 관심이 높은 사람에게도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이미 출시 전부터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아직 개발 단계에 있던 2020년 1월 대기업과 쟁쟁한 스타트업이 모인다는 CES(세계가전전시회)에서 혁신상을 받았다. 2021년 11월엔 산업기술진흥유공 포상에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상을 받았다. 학계에선 일상에서의 구강관리 틀을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김 대표를 만나 의사의 헬스케어 스타트업 창업기를 들었다.
◇장애인 치과에서 진료하며 깨달은 것
김현정 대표는 1992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1997년 마취과 전공의 과정을 마쳤다. 1999년 서울대학교치과병원 치과마취과 교수로 발령받아 지금까지 환자를 돌보고 있다. 입·턱·얼굴뼈 수술을 받은 구강악안면외과 환자나 장애인 치과 진료를 위한 진정법과 전신마취를 담당하고 연구했다. 현재 대한치과마취과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김현정 대표가 코모랄을 처음 구상한 건 20 여년 전이다. 2001년 서울대학교치과병원 부설 장애인 치과(현 중앙장애인구강진료센터)에서 진료를 보면서 환자를 위한 구강 관리 기기의 필요성을 느꼈다. “모든 사람이 양치질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서서 칫솔질을 하고 스스로 입을 행궈 물까지 뱉는 건 어떤 분들에겐 무척 어려운 일이거든요. 그렇다고 누가 대신 해주기도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장애인이나 노약자를 보살피는 보호자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게 치아 관리죠.”
결국 장애인이나 노약자는 제대로 치아 관리를 하지 못하다가, 방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환자가 스스로 칫솔질을 못 하는 것은 물론이고 보호자가 해준다고 해도 저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사실상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쩔 수 없이 많은 장애인과 중환자들이 치주염을 달고 산다. “관리에 소홀하다 보니 치주염이 악화될 대로 악화된 채로 병원에 방문하는 환자가 부지기수입니다. 특히 간단한 처치로 끝날 일도 장애인은 전신 마취 후 치료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드릴과 같은 의료 기기가 입 속에 있을 때 몸부림치면 큰일이니까요. 간단한 치료가 사실상 수술로 바뀌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때부터 장애인의 구강 관리를 도울 수 있는 기기를 개발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입에 물고 있는 것만으로 구강세정
사업을 구체화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다. “아이디어는 있었지만 사업화할 시간적,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2016년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주도하는 서울대 의료산업 기술사업단의 단장으로 활동하게 됐어요. 병원에서 쓰이는 의료기기 개발 세미나를 열고, 공모전 운영 등을 맡았는데요. 여기서 활동해보니 기회다 싶었어요. 헬스케어 스타트업 에스엠디솔루션을 창업했죠.”
신체 취약자 전용 구강 관리기기 설계부터 착수했다. “구강 관리를 제대로 못 해서 생긴 치주 질환 속 세균은 혈류를 타고 온몸으로 퍼집니다. 이 세균들은 심혈관질환, 당뇨, 치매 등 전신 질환으로도 이어집니다. 장애인이나 중환자의 합병증 원인을 뜯어 보면 치주질환인 경우가 많죠. 기회가 왔을 때 하루라도 빨리 칫솔질조차 어려운 분들을 위한 구강 관리기기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어떤 조작도 없이 자동으로 잇몸을 관리할 수 있는 기술이 관건이었다. “물줄기를 쏴서 잇몸을 관리하는 시중의 구강 세정기와 기본 원리는 같으면서도, 모든 과정이 번거로운 조작 없이 진행돼야 했어요. 구강에 고인 물이 자동으로 배출되는 게 핵심이었죠.”
치과 진료를 보다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석션(의료용 흡입기)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입속에 있는 물을 저렇게 빨아들이면 되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치과에서 쓰는 투명한 의료용 마우스피스를 보고선, 그 모양대로 만들어 물줄기를 쏘면 되겠다 싶었고요.”
이후 본격적인 제품 개발에 들어갔다. “환자들이 치료를 위해 본뜬 치아 모형을 이용해 입에 무는 마우스피스부터 개발했어요. 2000개 정도의 모형을 분석하고 평균값으로 제작했죠. 소재는 의료용 TPU(열가소성 폴리우레탄)를 썼습니다. 세척이 쉬워 재사용도 문제없게 했어요.”
물 흡입은 음압 방식을 썼다. “압력의 차이로 물을 빨아들이는 원리입니다. 수백번의 시험을 거쳐 수압과 흡입력을 균일하게 유지하면서 플라그 제거 효과도 내는 물줄기의 개수도 찾았습니다. 60개의 물구멍에서 사방으로 물이 나오죠.”
◇현장 조사 후 일반인도 쓸 수 있는 가정용 제품으로 전환
시제품 개발을 마치고 직접 현장 조사를 했다. “요양원이나 장애인 보호 기관, 공공 기관 등을 찾아가 가능한 많은 환자에게 테스트를 했습니다. 여러 테스트 결과를 얻는 게 용이했습니다. 물을 분사하고 빨아들이는 본체는 공유하고, 칫솔처럼 개인 마우스피스만 있으면 여러 명이 사용할 수 있으니까요.”
의료진과 보호자들 사이에서 좋은 반응이 나왔다. “환자들의 치아를 관리해주는 게 한결 편해졌다는 말씀이 쏟아졌습니다.”
이때까지 제품은 병원에 비치하는 설비식이었는데, 현장 조사를 하면서 코모랄이 필요한 사람은 장애인뿐만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의료진과 보호자, 본인들도 쓰고 싶어 하는 것이다. “가정용 소형 제품은 없냐는 문의가 많더라고요. 집에 계신 어르신을 돌볼 때 사용하거나 또는 개인용으로 양치 이후 추가적인 구강 관리를 하고 싶다면서요.”
알고 보면 비장애인 중에도 양치질을 제대로 하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 “성인 중에서 정확한 방법으로 이를 닦는 사람이 15% 내외라는 학회 보고가 있어요. 그만큼 구강 관리가 까다롭고 힘든 거죠. 치주 질환은 한국인이 가장 많이 겪는 질병이기도 하고요. 제품을 소형화하기로 했습니다.”
제품 소형화에 다시 2년이 걸렸다. 총 개발 비용만 50억원이 들었다. “본체 크기를 줄여야 했어요. 시제품에서 큰 부피를 차지했던 급수통과 배수통을 줄였습니다. 1분 동안 입 안으로 뿜어져 나오는 물의 양인 700ml로 급수통을 제작했죠. 디자인에도 신경 썼습니다. 직관적인 조작을 위해 전원 버튼과 수압 조절 버튼 2개만 제품 상단에 배치하고, 점자도 표기해 시각장애인들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등 사용성을 높였습니다.”
◇편의성과 사용성으로 업계와 학계 주목
그렇게 워터렛(마우스피스)를 입에 물고 본체의 버튼을 눌러 작동시키면, 자동으로 치아 사이를 구석구석 닦아내는 코모랄이 완성됐다.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60개의 물줄기가 치주낭 등 치주 질환이 발생하기 쉬운 부분은 물론 잇몸 전체를 세정하고 마사지한다. 수압은 5단계 조절이 가능하다. 분사된 물은 배수로를 통해 자동으로 흡입돼 배수통에 모인다. 배수통 물을 버리는 것으로 후처리가 끝난다.
양치 후 사용해도 효과를 체험할 수 있다. 양치로 제거하지 못한 이물질과 잔류 치약이 배수통으로 뽑혀 나오는 걸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서울대학교 치과대학 임상시험을 통해 코모랄 사용 후 치태 24% 감소 효과를 입증했다.
이제 남은 건 마케팅. “2021년 말부터 지난 2월까지 한국과 미국 내 20곳 이상의 요양원과 복지센터에 직접 방문해 완제품 현장 조사를 마쳤어요. 이제 제품을 일반 소비자에게도 널리 알리는 단계입니다.”
6월부터 일반 소비자에게도 판매하기 시작했다. 가장 주목받는 건 편의성이다. 워터렛을 입에 물고 사용하는 방식이라 주변으로 물이 튀지 않는다. 질질 흐르는 물 때문에, 세면대 앞에서 사용해야 하는 기존의 구강 세정기와 다르게 장소 제약도 없다. 거실, 침실 등 내가 원하는 아무 곳에서나 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 “2019년 이후 우리나라 사람들이 병원에 방문하는 사유 1위가 치주질환입니다. 잇몸 신경은 한번 손상되면 걷잡을 수 없어요. 치아는 치료보다 예방이 필수죠. 많은 분들이 칫솔 이외에 다양한 구강 관리 기기, 제품을 쓰는 이유입니다.”
◇“제품 개발은 환자를 진료하는 또다른 방식”
에스엠디솔루션은 서울대기술지주회사의 자회사다. 직원 30명이 함께 한다. “저는 회사의 행정적인 업무보다, 임상시험·연구 등 학술적인 부분을 다루고 있어요. 부득이하게 병원 당직을 조정해야 하면 병원에서 편의를 봐주기도 하고요. 모두의 협력, 도움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습니다.”
회사를 구강 관리 분야 대표 기업으로 키우는 게 목표다. “구강 세정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싶어요. 구강 관리하면 저희 회사가 떠오르도록 하고 싶죠. 더불어 중환자나 장애인들도 구강을 항상 청결하게 관리하시도록 기여해 나가겠습니다.”
역설적으로 누구보다 바쁜 직업이기 때문에 창업을 했다. “바쁘다는 핑계를 대면 결국 아무도 이 제품을 만들지 않을 것 같았어요. 여전히 사회 곳곳에 해결해야 할 ‘불편함’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제게는 이제 환자가 느끼는 어려움을 해결할 다양한 의료기기를 개발하는 것, 그 자체가 진료의 일종이지 않나 싶습니다.”
/김영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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