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 CSR팀 이영준 책임·LG전자 사회공헌팀 최건 책임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ESG(기업의 비재무적 요소인 환경·사회·지배구조를 뜻하는 말)라는 용어조차 생소했던 시기를 지나, 이제 ESG 경영의 실효성을 따지기 시작하는 시기가 도래했다. 평가 기준이 엄격해진 것이다. 단순 보여주기식 활동으로는 ESG 경영을 잘한다고 인정받기 힘들어졌다.
LG그룹은 ESG 경영을 잘 안착시켰다고 평가받는 대기업 중 하나다. LG화학 CSR(사회적 책임)팀의 이영준(39) 책임과 LG전자 사회공헌팀의 최건(38) 책임을 만나 대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에 대해 들었다.
◇“일반인 중에서 밤섬에 가장 많이 출입한 사람은 제가 아닐까요”
LG화학 CSR팀의 이영준 책임은 성균관대에서 식품생명공학과 신문방송학을 복수 전공하고, 2011년 LG화학 홍보팀에 입사했다. “대학 시절 국회의원실에서 인턴 보좌관으로 일한 적이 있습니다. 국회의원의 연설문과 보도자료를 작성했죠. 이 경험을 바탕으로 홍보팀에 입사해 사보 기자 및 광고 담당자로 활동하다가, 대외협력 부문에서 공정거래 관련 정부 부처를 상대하는 대관(對官) 업무를 했습니다. LG화학과 관련된 법령을 파악하고, 기업 간 상생 정책 관련 업무를 담당했죠.”
2013년 CSR팀이 신설됐을 때부터 합류한 원년 멤버다. “‘사회적 책임’이라는 용어가 생소한 시기였습니다. 안전·환경·대관·총무 각 부서의 실무자가 차출돼 CSR팀이 꾸려진 상황이었죠. 각 팀원이 맡을 역할과 책임(R&R), 예산 등 모든 걸 처음부터 정립해야 했습니다. 초기에는 CSR팀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았습니다. 이전 부서에서 하던 일만 잘해도 괜찮았죠.”
2016년 9월, ESG 활동에 ‘진심’이 된 계기를 만났다. 뉴욕에서 열린 유엔지속가능발전 정상회의였다. “2016년은 전 세계적으로 지속가능발전 목표(SDGs)를 수립하고 점검하는 해였습니다. 저는 민간 이해관계자 자격으로 정상회의에 참가했는데요. 불평등 해소, 양질의 일자리 제공, 기후 변화 대응과 같이 추상적인 목표를 대주제·세부 목표·지표로 나눠 구체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접하곤 충격을 받았습니다. 한국에선 이제 막 환경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고, ESG 활동에 대한 개념만 퍼지던 시기였으니까요. 해외에선 이미 문제에 대한 행동 수칙까지 정리한 것을 보고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생각이 들었죠.”
사회공헌 사업을 다양하게 기획하기 시작했다. LG화학이 영위하고 있는 사업의 특성을 살려 친환경 분야의 사회공헌 활동에 초점을 맞췄다. 이 책임이 주도한 사회공헌 사업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2017년부터 시작한 ‘밤섬 생물다양성 활동’이다. “가까운 곳부터 돌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LG트윈타워에서 바로 보이는 밤섬은 람사르습지로 지정된 철새 도래지입니다. 본래 외부인 출입이 제한된 구역인데요. 미래한강본부와의 논의 끝에 매년 4회씩 LG화학 임직원들과 함께 들어가 생태교란 식물을 제거하고, 장마 이후 떠내려온 쓰레기를 치우는 정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사업 담당자인 저는 회차마다 방문합니다. 미래한강본부 관계자님도 제가 아마 일반인 중에서 밤섬을 가장 많이 방문한 사람일 거라고 말씀하시더군요.”
2019년부턴 LG전자와 LG화학이 함께 주관하는 LG소셜캠퍼스 사업도 담당하고 있다. “비즈니스를 통해 다양한 환경·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는 스타트업을 ‘소셜펠로우’ 기업으로 선정해 육성하는 활동입니다. 이 활동의 최종 목표는 스타트업과 LG화학이 영위하는 사업과의 연결고리를 찾는 것입니다. 어떻게 스타트업과 지속적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죠. 매년 사내 유관부서에 소셜펠로우 기업을 소개하는데요. 지난해 좋은 성과를 낸 기업이 12기 ‘넷스파’입니다. 해양폐기물에서 나일론·플라스틱과 같은 산업 원료를 추출하는 기업인데, 지난 1월 LG화학과 업무 협약을 맺었습니다. 내년부터 석문국가산업단지의 LG화학 열분해유 공장에 원료를 공급할 예정입니다.”
환경 보호 습관 관리 앱인 ‘알지?’와 환경 교육 플랫폼 ‘Like Green(라이크그린)‘ 등 여러 사회공헌 사업을 꾸준히 기획하다 보니 CSR팀에 대한 업계의 시선도 달라졌다. “추상적으로 느껴지던 업무들이 많이 체계화됐습니다. 기부금, 임직원 봉사 시간, 지역 사회 기여도, 이산화탄소 감축량, 사회적 임팩트 등 사회공헌을 수치화할 수 있는 지표가 생기면서 업무를 다루기도 편해졌죠. 사회공헌 활동이 지역사회와 SDGs에 어떻게 기여하고, 어떤 변화를 만들어 냈는지 체감하면서 업무에 대한 자긍심도 커졌습니다. 단순히 사회공헌 활동이 기업 이미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서 CSR을 하는 시점은 지난 것 같아요. 기업이 지역사회 구성원으로서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 공감대가 사회 전반적으로 형성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업에게 CSR이란 ‘인성’과 같다고 답했다. “사람을 평가할 때 ‘정량적 스펙’보다 인성을 더 중요시해야 한다는 사실은 모두 알잖아요. 법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업도 이제 단순 이윤 추구만 하면 지역 사회에서 도태될 겁니다. 기업의 CSR 활동이 핵심 경영 평가 지표로 주목받는 날이 올 거예요. 그날을 위해 LG화학을 ‘성품 좋은 명품 기업’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부모가 되어보니 ESG를 해야 하는 이유가 명확해졌죠”
LG전자 사회공헌팀의 최건 책임은 엔지니어 출신이다.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2010년 LG전자에 입사했다. “기계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3년간 전자식 옥외 광고판 등을 담당하는 디지털 사이니지 부서에서 구조 설계, 개발 업무를 담당했죠. 이후 4년간 기술지원 부서에서 B2B 고객 대상 제품 프레젠테이션과 영업 부서 기술 교육 및 지원 업무를 했습니다.”
사회공헌팀(前 CSR팀)에는 2017년에 합류했다. “임직원 내부 채용 과정을 통해 부서를 이동했습니다. 이후 지속가능경영보고서 제작과 국내외 생산 사업장의 ESG 관련 지표를 점검하고, 심사에 대응하는 업무를 수행했습니다.”
처음 직무를 변경했을 때는 업무수행 방식의 차이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기술 개발 부서에선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원인과 결과를 찾고, 개선 방향에 대해서 논의합니다. 전 조직에서 어느 정도 정해진 틀 안에서 움직이는 느낌이었다면, 사회공헌팀에선 프로젝트의 시작부터 끝까지 직접 기획하고 실행해야 했습니다. 업무의 자유도가 높은 건 좋았지만, 수년간 엔지니어 생활을 했던 제게는 적응 기간이 필요했죠.”
금전적인 지원보다는 지원 대상과 상호 교류하는 방식으로 사회공헌 활동을 펼쳐나갔다. “사회공헌 활동의 스케일이 컸습니다. ‘LG 앰버서더 챌린지’는 LG전자의 대표적인 해외 사회공헌 활동 중 하나입니다. 사회 문제를 해결할 아이디어를 발굴한 주민을 ‘LG 앰배서더’로 임명하고, 해당 활동을 지원해 주는 공모 사업이죠. 이 활동을 통해 방글라데시에선 급류로 인한 실족사가 자주 발생하는 지역에 다리를 설치해 인명사고를 줄였습니다. 에티오피아에선 6·25 참전용사 후손들을 육성해 해외 서비스 법인에 입사 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했죠. 이외에도 LG전자의 해외 사업장이 있는 방글라데시, 페루, 케냐, 필리핀, 남아공, 가나 등에서도 공헌 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현지에서도 LG전자의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이 LG브랜드 인지도와 매출 견인에 한몫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대상으로 한 사회공헌 사업으로는 LG소셜캠퍼스를 꼽을 수 있다. “저는 작년부터 소셜캠퍼스 사업을 담당했습니다. 지난해에는 12기 펠로우 기업 중 중고 의류 수거·유통 스타트업인 ‘윤회’에 LG전자의 의류관리기 ‘스타일러’를 제공했죠. 또한, LG전자의 노동조합과 연계해 제조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생산성 향상 컨설팅’도 진행합니다. 업계 노하우나 설비 운영 지식을 전수해 펠로우 기업의 빠른 성장을 도모하는 거죠. 올해 펠로우 기업도 LG전자의 제품이나 서비스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지점이 있는지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습니다.”
최 책임은 다음달 해외 출장길에 오른다. 임직원 해외 봉사 활동을 위해 몽골로 떠난다. “LG전자 임직원과 함께 몽골에 있는 오래된 초등학교, 중학교 등 교육 시설을 보수합니다. 임직원 해외 봉사는 올해 2회째 진행하고 있는데요. 시설 보수 외에도 재능 기부와 문화 교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행사 담당자라 신경 쓸 것들이 많지만, 행사를 마치고 느끼는 뿌듯함이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사회공헌 사업을 담당하다 보니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사회공헌팀에서 근무하면서 제 행동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한 번씩 더 생각하게 됐습니다. 단적인 예시지만 바닥에 쓰레기가 버려져 있으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줍게 됐달까요. 자녀가 생긴 이후에는 어떻게 하면 미래 세대에게 좋은 환경을 물려줄 수 있을까 고민합니다. 사회공헌팀에서 근무하며 제 머릿속은 더 복잡해졌지만, 크고 작은 사회 문제를 회사의 업무로 다뤄볼 수 있다는 점이 사회공헌 담당자의 특권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공헌 담당자는 ‘소통 능력’이 뛰어나야 한다고 당부했다. “사회공헌팀에서 일하다 보면 정부 부처, NGO, 임직원 등 다양한 이해 관계자를 만납니다.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치는 활동을 기획하는 만큼 설득해야 할 일들이 많죠. 내가 맡은 프로젝트에 대한 이해도는 기본이고, 설득력까지 뒷받침돼야 사회공헌 업무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어요.”
LG전자·LG화학은 2011년부터 LG소셜캠퍼스를 운영하면서, 환경문제 해결을 비즈니스 모델로 삼은 사회적경제기업의 성장을 돕고 있다. LG소셜펠로우에 선정된 기업은 최대 5000만원의 금융지원, 기업별 맞춤형 컨설팅, 기업 연계 등을 지원받는다.
/김영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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