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네이처스 류호림 대표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나 어렸을 때는 말야, 저 냇가에서 장어도 잡았어.”
냇가에 물고기가 헤엄쳐 다녔다던 부모 기억은 어린 소년의 눈앞 풍경과 달랐다. 눈에 보이는 거라곤 공장 폐수로 탁해진 구정물뿐이었다.
포네이처스의 류호림(31) 대표는 어린 시절 부모님이 하시던 말을 듣고 환경을 보호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2022년 류 대표는 창업을 통해 환경 보호의 첫발을 디뎠다. 그는 미세조류를 이용한 탄소 저감 기술을 이용해 산소발생기 ‘에어밸런서(가칭)’을 개발했다. 그가 미세조류에 주목한 이유에 대해 들었다.
◇클로렐라·스피룰리나로 만든 천연 공기 청정기
미세조류는 광합성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포집하고 산소를 발생시키는 작은 단세포 조류를 의미한다. 건강보조제로 사용되는 ‘스피룰리나’나 ‘클로렐라’가 대표적인 미세조류다.
스타트업 포네이처스는 식용 미세조류 활용해 탄소를 줄일 방법을 연구한다. 포네이처스가 개발하고 있는 제품은 에어밸런서로, 미세조류를 배양해 실내 공기를 정화하는 장치다. 겉보기에는 일반 공기청정기와 다름이 없다. 본체 하부의 흡기 구멍으로 오염된 공기가 들어오면, 먼저 미세먼지 필터를 통해 크기 10μm(마이크로미터) 이상의 먼지를 걸러낸다.
1차로 먼지를 거른 공기는 미세조류 배양 수조를 통과한다. 미세조류를 이용해 공기 중에 남아 있는 유기화학물질, 초미세먼지, 이산화탄소를 분해하고 에어밸런서 외부로 산소를 배출한다. 이산화탄소를 미세조류의 먹이로 활용하는 셈이다. 시제품으로 8평 남짓의 공간에서 공기 정화 실험을 한 결과 30분 만에 실내 이산화탄소 농도를 40% 줄였다. 에어밸런서 1대가 3L(리터) 식물 화분의 10배에 달하는 탄소를 저감한 갓이다.
지난 3월, 미세조류를 탄소 감축에 활용했다는 아이디어의 참신성을 인정받아 은행권청년창업재단 ‘디캠프’의 창업경진대회 ‘디데이’의 발표사로 선정됐다. 포네이처스는 미세조류 활용 기술을 통해 벽면녹화사업 등 탄소 감축 시장을 공략할 구상이다.
◇충북 진천 시골 청년, 환경공학 전공 살려 창업 결심
류 대표는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시골에서 자랐다. 4살이 되던 해에 그의 부모가 충북 진천으로 귀농했기 때문이다. “부모님께선 복잡한 도시 생활을 뒤로 하고 소 키우는 일을 택하셨어요. 서울처럼 친구들은 많지 않아도 자연을 놀이터 삼아 즐겁게 지냈어요. ‘생거진천(‘살아서는 진천에서 사는 게 좋다’는 의미의 옛말)’이라는 말이 있듯, 진천은 공기 좋고 물 맑은 도시인데요. 수도권과 가까운 지역이다 보니 공장이 하나둘씩 들어서더군요. 뛰놀던 자연이 조금씩 오염되는 모습을 보고 막연히 ‘나중에 사업을 하게 된다면 환경을 오염시키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품게 됐죠.”
중원대에서 환경공학과 신소재공학을 복수 전공했다. 졸업 후 고려대 신소재공학과에서 석사 과정을 밟았다. “어린 시절 품었던 사업가의 꿈은 잠시 접어 두고 현실적인 진로를 모색했습니다. 한국세라믹기술원에서 탄소 코팅 관련 연구를 하다가, 부품 개발 기업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반도체에 사용되는 세라믹 소재의 부품을 3년간 개발했죠.”
직장 생활을 계속하다간 창업의 꿈을 영원히 이룰 수 없을 것 같았다. 전공인 환경공학에서 배운 지식을 살려 사업 아이템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환경공학에선 산업을 ‘자원 순환’의 시각으로 바라봅니다. 반도체 산업을 예로 들자면, 환경공학자들은 반도체 폐기물에서 실리콘을 추출해 이를 이차전지의 재료로 사용하는 방법을 연구합니다. 이 사고방식이 제게도 남아있었나 봐요. 사업 아이템을 조사하다 미세조류를 발견했거든요.”
미세조류는 이산화탄소를 먹어 산소를 생성한다는 독특한 속성을 지니고 있다. “공기 정화 차원에서 미세조류를 기르는 경우가 많은데요. 수조에서 증식한 미세조류를 식재료나 화장품 원료로도 활용할 수 있어요. 자원 활용과 소비를 전 주기적으로 평가했을 때, 제가 어릴 적 떠올린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는 사업’에 가장 부합한 아이템이었습니다.”
◇미세조류 이용해 처음 개발한 것
2022년 4월부터 본격적인 사업 준비에 돌입했다. 먼저 지자체의 창업지원 사업을 통해 충북대에 사무실을 구했다. “사무 공간을 마련한 후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서 미세조류 중 ‘스피룰리나 플랜테시스’, ‘스피룰리나 맥시마’의 종균(배양용 미생물)을 구입해 기르기 시작했습니다. 미세조류는 광합성을 하면서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기 때문에 채광이 좋은 곳에서 길러야 합니다. 식물 생육용 led 조명도 괜찮고요. 광합성할 수 있는 환경과 배양액만 있다면 여느 식물을 기르는 것보다 손쉽더라고요. 미세조류를 활용해서 제품을 만들어도 되겠다 확신했습니다.”
미세조류를 직접 키우는 방식의 가정용 공기정화장치 개발에 착수했다. “처음으로 구상한 제품이 에어밸런서입니다. 직육면체 형태의 일반적인 공기청정기와 생김새는 같습니다. 본체 하부로 오염된 공기를 빨아들이고, 제품 상단에서 정화된 공기를 내뿜죠. 본체 중앙부에 스피룰리나 배양 수조를 둬 오염된 공기가 지나가게끔 설계했습니다. 광합성을 통해 포집한 이산화탄소를 산소로 바꾸는 원리죠. 에어밸런서의 경우 8평 남짓의 공간을 정화하기에 적합한 규격입니다. 연간 7kg의 이산화탄소를 포집할 수 있습니다. 내년 상반기 출시를 목표로 개발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시제품까지 나온 상황입니다.”
에어밸런서에서 수확한 미세조류는 식재료로 활용할 수 있다. “청주에 있는 카페와 협업해 스피룰리나를 이용한 샐러드와 디저트를 개발했습니다. 이미 유럽에선 미세조류를 건강식으로 섭취하는 이가 많아요. 자극적인 맛은 아닙니다. 해조류의 은은한 감칠맛이 나는 정도죠. 에어밸런서 이용자도 미세조류를 버리지 않고 활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레시피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기업 대상의 비즈니스도 준비했다. 벽면녹화공간(벽면에 식물을 식재하는 조경 인테리어의 일종)에 식물 대신 미세조류을 담은 유리관인 ‘미세조류 플랜트’를 설치하는 공간 사업이다. “실내 공간의 공기를 정화하고 심미적으로 인테리어 효과를 낸다는 점에서 벽면녹화공간 조성 사업과 같지만, 식물 식재 방식보다 설치와 관리가 간편합니다. 배수시설을 확보할 필요가 없고, 물도 주지 않아도 되거든요. 청주시 오창읍의 한 카페에 첫 시공을 했습니다. 카페 내부 벽면에 미세조류관을 설치했죠.”
미세조류 플랜트도 에어밸런서와 탄소를 포집하는 원리는 동일하다. 관건은 미세조류를 안정적으로 배양할 수 있는 강화 유리관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어떤 제품을 써야 할지 몰라 다양한 종류의 유리관을 구입했습니다. 실험 도중 깨지거나 배송 중 파손되기 일쑤였죠. 독일산 강화 유리관으로 확정하기 전까지 손해 본 비용만 1000만원이 넘습니다.”
벽면녹화공간에서 증식한 미세조류는 화장품 제조사에 납품할 구상이다. “미세조류가 탄소를 먹으면서 점점 증식합니다. 유리관 속 미세조류의 부피가 커지죠. 유리관 수조가 넘치지 않으려면 매주 1회씩 증식한 미세조류를 수확해야 하는데요. 500L 수준의 대형 플랜트 기준으로 일주일에 최소 1kg의 미세조류를 수확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수확한 미세조류를 한데 모아 화장품 원료로 공급할 계획입니다. 미세조류에는 피부 재생에 도움 되는 성분이 다량 함유돼 있습니다. 이미 의약품이나 화장품의 원료로 많이 사용되고 있어 원료에 대한 수요는 많은 편입니다.”
◇내가 모은 탄소가 돈이 되는 세상
현재 에어밸런서 개발과 미세조류 플랜트 홍보에 집중하고 있다. 2024년 상반기엔 에어밸런서를 출시할 계획이다. “에어밸런서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앱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주요 기능은 탄소저감량 모니터링입니다. 궁극적으로는 탄소거래 시장에 진출하는 게 목표입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인증받은 700곳의 기업만 탄소 거래를 할 수 있는데요. 탄소배출권 거래 대상이 확대되면, 포네이처스도 에어밸런서와 미세조류 플랜트로 모은 탄소 감축량을 판매할 예정입니다. 여기서 얻은 수익은 에어밸런서 이용자에게 되돌려줄 계획입니다. 탄소를 저감한 양만큼 재화를 구매할 수 있는 포인트로 환산하는 방식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예비 창업자에게 사업을 시작할 때 ‘미션’을 꼭 설정하라고 당부했다. “미션은 ‘사업의 목적’과도 같은데요. 이 미션이 확실해야 의사결정을 빠르게 내릴 수 있습니다. 포네이처스의 미션은 ‘기술을 활용해 자연을 지키는 것’입니다. 저의 성장 배경에서 비롯된 목표죠. 이 미션만 생각하면 오히려 사업이 단순해져요. 복잡할 것 없이 미션에 반하는 의사결정은 하지 않으면 되니까요.”
/김영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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