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서울대 벤처타운에 마음 뺏겼던 청년, 끝내 연매출 250억원 창업 성공

더 비비드 2024. 6. 24. 10:48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 '휴레이포지티브'의 최두아 대표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휴레이포지티브 최두아 대표. /더비비드

“‘수중에 창업할 자본이 부족하니 돈을 모아서 다시 창업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죠. ‘직장인 최두아’의 삶에 대해선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어릴 때부터 스타트업 생태계에 관심이 많았다. 대학 동기들이 유수의 기업으로 취업할 때 무작정 서울대벤처타운에 들어가 주급 2만원을 받으며 인턴 생활을 했다. IT 벤처기업을 세워 운영하다가 네이버에 팀장으로 입사했을 때도 2년 만에 다시 나와 새로운 회사를 차렸다.

즐기면서 했더니 좋은 결과가 따라왔다. 설립한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 휴레이포지티브는 창업 13년 만에 연매출 180억원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최 대표를 만나 휴레이포지티브의 핵심 서비스와 그가 생각하는 창업의 매력에 대해 들었다.

◇보험사·대기업 인사팀·영유아 부모가 좋아하는 서비스 개발

휴레이포지티브의 임직원 건강관리 햅 '헬스투두'의 서비스 화면. /휴레이포지티브
'헬스투두'를 도입한 기업은 임직원의 건강 관리 현황을 레포트 형태로 받아볼 수 있다. /휴레이포지티브

올해 13살이 된 휴레이포지티브는 건강 관리 영역에서 10년 이상 축적한 기술로 다양한 헬스케어 서비스를 개발하고 운영하는 곳이다. 개인 건강 기록을 모바일로 관리한다는 아이디어를 보험 서비스와 임직원 건강 관리 시장에 적용했다.

대표적으로 보험사를 대상으로 개발한 건강 관리 소프트웨어 ‘헬스 스위치’가 있다. 각 보험사가 운영하는 앱 내에 혈당 측정 등의 건강 관리 기능을 추가하고, 휴레이포지티브가 이 영역을 위탁받아 보험 가입자의 건강 관리를 돕는다. 해당 보험 상품 가입자에게는 앱과 혈당측정기를 함께 지급해 건강을 관리하도록 한다. 보험사는 보험 제도 정립과 신규 상품 개발을 위한 가입자의 건강 정보를 확보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 가입자의 건강 관리에 기여하므로 보험사의 손해율을 낮추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삼성화재, 현대해상 등 국내 유명 보험사와 협력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휴레이포지티브가 개발한 앱 '열나요.' 연간 100만명이 사용하는 육아 대표 앱이다. /더비비드

대기업 임직원 건강관리 시장에도 진출했다. 앱 ‘헬스투두’를 통해 당뇨와 고혈압, 과체중과 같은 만성질환을 겪는 회사 임직원의 건강관리를 돕는다. 임직원 복지 제도 차원으로 삼성그룹 계열사, 매일유업, CJ 등이 휴레이포지티브의 서비스를 도입했다.

연간 100만명의 영유아 부모가 사용하는 체온 측정 앱 ‘열나요’도 휴레이포지티브가 개발했다. 예방 접종, 감기 등으로 발열이 잦은 아이의 체온을 입력하면 병원 방문 여부를 판단해 준다. 휴레이포지티브는 기술력과 사업 성과를 인정받아 2023년 5월 은행권청년창업재단의 창업경진대회 ‘디데이’의 본선 진출 기업으로 선정됐다.

◇‘벤처’에 꽂힌 연대 경영학도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창업에 뛰어든 최두아 대표. 위 사진은 네이버 팀장 시절 최두아 대표의 모습이다. /최두아 대표 제공

최두아 대표는 연세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4학년이던 1999년 취업 준비가 내키지 않아 가본 벤처타운에 반해 창업을 결심했다. “진로 고민을 하던 시기에 서울대 경제학과에 다니던 친구가 ‘우리 대학에 벤처타운이 생겼다’면서 구경하러 가자더군요. 조그만 사무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데 그 안에서 다들 컴퓨터를 붙잡고 일에 몰두하고 있었어요. 바쁘게 돌아가는 활기찬 분위기에 매료됐죠. 그때부터 ‘벤처 기업을 세우겠다’는 마음뿐이었습니다. 창업 전 벤처 업계 경험은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아무 사무실 문을 두드려 ‘일하고 싶다’고 했어요. 동영상 압축 기술을 개발하는 곳이었는데, 주급으로 2만원을 받으며 6개월간 허드렛일을 했죠.”

인턴 생활을 하며 창업을 할 수 있는 현실적인 경로를 모색했다. “2000년에 호서대학교에 ‘벤처전문대학원’이 생겨 바로 입학했어요. 지금은 창업을 전공으로 운영하는 교육기관이 많지만 당시에는 생소했죠. 대학원 진학 덕에 정부나 투자기관에서 주관하는 창업경진대회나 각종 지원책에 대한 정보를 놓치지 않을 수 있었어요.”

첫 창업 아이템에 대해 설명하는 최두아 대표. /더비비드

2000년에 첫 창업을 했다.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에 사용한 ‘피처폰’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회사였습니다. Xmail(HTML 언어의 일종으로 영상, 음성, 글을 배치할 수 있는 웹 언어)로 만든 문자 전송 프로그램이었어요. 3년간 회사를 운영하다 매각했고, 이후 컬러링과 벨소리를 만드는 회사도 차렸는데, 2007년 스마트폰 시대가 도래하면서 빚을 떠안고 회사를 정리했습니다.”

◇네이버 팀장 자리 두고 재창업

네이버 팀장 자리를 박차고 세번째 창업에 도전했다. 이때 헬스케어 스타트업 '휴레이포지티브'를 설립했다. /더비비드

2007년 빚을 갚기 위해 회사에 다녔다. 네이버 멀티미디어검색서비스팀의 팀장으로 입사했다. “검색 정보의 질을 개선하는 팀이었습니다. 저는 ‘헬스케어’ 분야를 맡았어요. 예컨대 ‘혈당’을 검색하면 기존에는 혈당계 판매 창부터 나왔다면, 이제는 병원과 협력해 제작한 당뇨 관련 정보를 검색 결과 상단에 배치하는 작업이었죠. ”

4000만원대로 시작한 연봉이 2년만에 2배 가까이 올랐다. 당시로선 고액 연봉이었다. 그러나 최 대표는 새로운 창업 아이템을 구상하고 있었다. “2009년 10월쯤 애플의 아이폰이 국내에 출시하면서 ‘앱 개발’이 화두였어요. 스마트폰은 매일 가지고 다니니까, 체중이나 식사 등의 생활 습관 정보까지 입력할 수 있는 건강 정보 앱을 개발하면 사람들이 많이 사용할 것 같았죠. 결국 2009년 11월 퇴사 후 세번째 회사, 휴레이포지티브를 차렸습니다.”

◇업계 터줏대감으로 불리는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의 생존법

사업 초기 시절 앱 개발 과정에 대해 설명하는 최두아 대표. /더비비드

사업 초기에는 그야말로 ‘삽질’의 연속이었다. “스마트폰으로 건강을 관리한다는 발상 자체가 생소한 시기였습니다. 지금처럼 헬스케어 시장이 성장한 시기도 아니었죠. 혈당 기록 앱, 체중 기록 앱 등을 개발했지만 아무도 사용하지 않았어요. 앱이 재미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건강 정보 기록을 성실히 하면 캐릭터가 성장하는 게임다운 요소를 넣었는데, 웬걸 타깃으로 삼은 비만, 당뇨 환자는 사용하지 않고 초등학생들이 앱을 사용하더군요. 이때 잠재고객의 특성을 면밀히 파악하고 앱을 개발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창업 후 5~6년간 생존을 위해 건강 관리 분야 외주 앱 개발사로 고군분투했다. “이 시기의 경험이 사업 경쟁력을 마련하는 토대가 됐어요. 헬스케어의 전 영역을 모두 다뤄봤어요. 제약사, 보험사, 병원 등 건강 관련 앱을 만들고자 하는 기업과 협력해 앱을 개발했죠. 업력이 쌓이면서 노하우도 생겼어요. 개발하는 앱에서 기본적인 기능의 60%는 같아요. 회사별로 일부 디자인과 기능을 차별화하는 개념이죠. 예를 들어 A회사에게는 규칙적인 운동 알림을 넣은 임직원 복지 앱을 만들어 주고, B회사는 식단 관리, C회사는 당뇨 관리에 치중된 앱을 개발해 주는 식이죠.”

(왼쪽부터) 지난 5월 디캠프의 창업경진대회 '디데이'에서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 설명하는 휴레이포지티브 성철훈 이사의 모습과 행사를 마친 휴레이포지티브팀. /더비비드

의료진과 협력해 진행한 연구, 임상 시험이 많다는 것도 휴레이포지티브의 강점이다. 수년간 헬스케어 업계에 몸담으며 최 대표가 맨땅에 헤딩한 덕이다. “창업 초기에는 제약사 영업직원처럼 살았어요. 대형 병원 교수님을 만나기 위해 진료 예약을 하고 줄을 서서 대기했죠. 실제 혈압약을 타면서 교수님들께 궁금한 점도 묻고 사업 아이템에 관한 설명도 했어요. 처음에는 퇴짜 맞는 게 일상이었지만, 3~4년 정도 고생하니 몇몇 교수님들이 좋게 봐주시면서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었어요. 이 네트워크로 의료진과 휴레이포지티브가 함께 정부 과제를 수주하고, 임상 시험을 진행했습니다. 17건의 건강 관리 분야 임상 시험 결과를 확보했죠.”

이제는 사업 개발 공식에 따라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한다. “‘문제 파악 → 잠재 고객 확인 → 가설 설정 → 앱 개발 →임상 시험 진행 → 문제 해결 여부 확인 후 보완’의 절차를 거쳐 서비스를 개발합니다. 13년간의 시행착오로 정립된 공식이죠. 예를 들어 여성 당뇨 환자의 건강 관리 서비스를 만들고 싶다고 하면, ‘식사 기록 앱을 통해 2형 당뇨 환자 중 40~50대 여성의 혈당을 110 이하로 만들 수 있다’는 가설을 세우고, 임상 시험을 반복해 보는 겁니다.”

◇2025년 IPO가 목표

휴레이포지티브가 개발한 일본 병의원 의료보험 청구 점검 소프트웨어 'RC-LS'의 서비스 화면. /휴레이포지티브

휴레이포지티브는 아시아 시장에서 매출을 낸 유일한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이다. 2022년 매출은 180억원이고, 임직원은 350명이다. 2023년은 이미 작년 기록을 넘어 250억원의 매출을 예상하고 있다. “사업 초기에는 보수적으로 경영했습니다. 투자 유치 없이 연 60억원 수준의 매출로 자생하다가,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투자를 받고 사세를 키우기 시작했죠. 현재 시리즈 C(스타트업의 규모 성장에 따른 투자 단계) 투자까지 유치했고, 누적 투자금은 320억원입니다. 시리즈 A에는 의학적 전문성, 시리즈 B 시기에는 제품 출시, 시리즈 C 단계에선 제품을 통해 매출 생성을 입증하며 투자자를 유치했어요. 2025년 상장을 목표로 열심히 달리고 있습니다.”

해외 시장 진출도 성공적이다. “일본, 베트남에 진출했습니다. 일본에선 병원 원무 대행 웹 소프트웨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병원이 건강보험공단에 청구해야 할 진료비 영수증, 진료 내역을 자동으로 처리해 주는 거죠. 베트남의 경우 의료 기반 시설이 부족한 상황이라 KT와 함께 디지털 문진 앱을 활용해 시범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최 대표는 누구나 한번씩 창업을 하는 세상이 왔다고 했다. /더비비드

최 대표는 ‘누구나 한번씩 창업을 하게 될 세상이 왔다’고 했다. “평균 수명은 점점 늘어나지만, 정년을 늘리는 데에는 분명 한계가 있을 겁니다. 사회는 생산성을 추구하니 고용 인원은 줄면 줄었지 늘진 않을 거예요. 이때 돌파구가 될 수 있는 것이 창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 창업하는 거죠. 내가 좋아하는 일, 잘할 수 있는 일을 타인이 만들어 둔 직장에서만 찾으려 하지 말고, 사업 아이템으로 구체화해 보세요.”

/김영리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