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그 와인 먹지 말고 투자하세요, 5배 될 수 있습니다

더 비비드 2024. 7. 3. 14:48
한국 최초 와인 NFT 투자·거래 플랫폼 개발기

창업 기업은 한 번 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국내 최초 와인 NFT 거래소 '뱅크오브와인'을 개발한 블링커스의 박상욱 대표. /더비비드

재테크 분야가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희귀 식물을 키워서 중고 시장에 팔아 수익을 내는 ‘식테크’, 분할된 미술품 소유권에 조각 투자를 하는 ‘아트테크’ 등이 유행이다. 심지어 갖고 있는 물건으로도 재테크가 가능하다. 한정 생산되지만 수요는 많은 고급 와인이 대표적이다. 요즘 와인 마니아들은 와인으로 투자도 한다.​

핀테크 스타트업 블링커스는 국내 최초의 와인 NFT(대체 불가능한 토큰) 거래소 ‘뱅크오브와인’을 개발했다. 희소성이 있어 판매 가치가 높은 와인을 투자 목적으로 거래할 수 있는 투자 플랫폼이다. 박상욱(29) 대표를 만나 와인 투자에 주목한 이유를 들었다.

◇10년째 창업 외길

와인 투자 거래소 ‘뱅크 오브 와인’은 와인 NFT 거래를 중개하는 플랫폼이다. 이용자들은 플랫폼 내에서 와인 교환권 형태의 NFT를 구매하고 가치가 올랐을 때 재판매해 수익을 낼 수 있다. 각 NFT는 와인 매장에서 현물로 교환할 수 있다.

'뱅크오브와인' 플랫폼 웹사이트의 모습. /박상욱 대표 제공

박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창업을 꿈꿨다. 맨땅에서 시작해 사업을 크게 일구고, 힘들게 번 돈으로 사람을 도왔던 조부모님과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 그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자신의 힘으로 무에서 유를 만드는 창업가가 되고 싶었다. 2012년 유니스트 경영학·벤처경영학과에 진학하며 꿈을 키워나갔다.​

-꿈을 일찍 정했네요.

“시도도 일찍 했어요. 학부시절, 전공 수업에서 배운 걸 토대로 마음 맞는 동기들과 창업을 했어요. 2017년 온디맨드(On-Demand·소비자 수요 맞춤형) 세차 서비스 ‘Wash Car’를 창업했죠. 세차 하고 싶은데 여건이 안 되는 분들을 위한 출장 세차 서비스였습니다. 매출은 나왔지만 만족스럽지는 못했어요. 경쟁사가 많았거든요. 결국 저와 일부 동료가 군 입대를 하면서 2019년 와해되고 말았습니다.”​

온디맨드 세차 서비스 'Wash Car' 창업 시절 박 대표와 동료들의 모습. /박상욱 대표 제공

-아쉬웠겠어요.

“창업할 때 차별화된 아이템을 선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3년간 공군 장교로서 군 생활에 집중한 후 다시 도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전역 후 2021년 카이스트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 창업융합전문석사 과정에 진학했어요. 리더십, 재무, 마케팅 등의 수업을 들으며 기업 경영에 필요한 역량을 키웠습니다. 스타트업 현장실습 같은 다양한 프로젝트도 경험했죠. 꿈을 실현시키기 위한 기반을 다져나갔어요.”​

-차기 아이템은 어떻게 찾았나요.

“남들보다 잘 알고, 좋아하는 분야에 뛰어드는 게 유리하다 생각했어요. 제가 좋아하는 건 와인이에요. 영국 국제 공인 소믈리에 자격증까지 보유할 정도죠. 2021년 3월에 AI(인공지능)가 위치를 기반으로 와인을 함께 마실 사람들을 찾아주는 커뮤니티형 플랫폼 ‘더치어스(The Cheers)’를 기획했어요. 정부 지원 사업인 예비 창업 패키지에도 선정됐죠.​

박 대표는 관심분야인 와인을 공부해 국제 공인 소믈리에 자격증까지 획득했다. /박상욱 대표 제공

와인을 즐기는 과정에서 직접 느낀 고충을 서비스에 담았어요. 최대한 다양한 와인을 맛보고 싶은데 혼자 다 마실 수 없어 곤란할 때가 많았거든요. 양과 가격 모두 문제였죠. 매번 더치페이를 해서 와인을 나눠 마실 수 있는 모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와인 마니아들이 모일 수 있는 커뮤니티 플랫폼을 만들었습니다.”​

- 재미있는 아이디어 같은데 중단한 이유는요.

“반년간 열심히 발품 팔아서 약 1100명의 이용자를 유치했는데 곧 시련이 다가왔어요. 작년 8월쯤 코로나 4차 대유행으로 사적 모임 규제가 강화되면서 이용자가 사라졌어요. 매출이 정체되고 말았죠. 이후 사업 방향을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샤테크, 롤테크 활발한 우리나라에서 와인테크가 활성화되지 못한 이유

박 대표는 대학원 데이터 사이언스 관련 수업에서 접한 NFT를 활용해 와인 현물 교환권을 기획했다. /박상욱 대표 제공

2021년 11월 피보팅(pivoting·사업 모델 전환)을 단행하기로 결심했다. 시중의 와인 서비스부터 조사하기 시작했다. 와인 관련 애플리케이션 50여개를 설치해 비교 분석했다. 와인 커뮤니티, 빈티지 와인(양질의 포도재배조건에서 발효돼 병입된 희소성 높은 와인), 와인 가격 비교 등 목적 별로 앱을 구분하고 평점과 매출을 조사했다. 큰 수익을 낸 사례가 거의 없었다. 와인 플랫폼들이 소비자가 진짜 원하는 바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와인 투자’ 열풍이 눈에 들어왔다.​

-왜 와인 투자였나요.

“와인은 다른 주류와 달리 수요에 따른 가격 변동이 큰 편이에요. 희소성 있는 제품이 많아 소장 욕구도 자극하죠. 예컨대 빈티지 와인은 한정 생산되기 때문에 오래 갖고 있을수록 그 가치가 높아져요. 2021년 8월 한 조각 투자(여러 명이 공동으로 투자해 소유권을 쪼개 갖는 방식) 플랫폼에 ‘1992 르루아 뮤지니 그랑크뤼’ 와인 1병이 올라 오자 100여명이 몰려 화제가 됐어요. 그 와인의 가격은 2017년 423만원에서 2021년 2152만원으로 올라 무려 409%의 가격 상승률을 기록했죠. 이렇게 고가 와인의 대박 사례가 나오면서 우리나라 소비자들도 와인을 소비재가 아닌 투자재로 인식하기 시작했어요.”

'뱅크오브와인'에서 거래되는 와인 NFT의 모습. /블링커스

​​-하지만 주류는 엄격한 규제 대상 아닌가요.

“맞아요. 국내 주세법상 주류 판매업 신고를 하지 않은 개인이 와인을 거래할 방법은 없어요. 또한 온라인에서의 주류 판매가 법으로 금지돼 있어 플랫폼에서 와인을 사고팔며 시세차익을 얻을 수도 없었죠. 판매 가치가 높은 와인을 갖고 있어도 재판매로 수익을 취할 수 없는 거예요. 하지만 와인 재테크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걸 보고 ‘합법적인 와인 거래 플랫폼이 있다면 이 시장에서 독보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판단했어요.”​

-어떻게 해결하기로 했나요.

“법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중 NFT를 발견했어요. 대학원 데이터 사이언스 관련 수업에서 NFT를 처음 접했는데요. NFT란 고유한 표식을 부여한 디지털 토큰으로, 블록체인 기술 기반으로 만들어져 복제와 위변조를 막을 수 있다는 특징이 있죠.

와인 NFT 투자 거래소 뱅크오브와인 오픈일을 홍보하는 포스터. /블링커스

NFT를 현물로 교환할 수 있는 형태의 교환권으로 발급받을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됐어요. 실물 와인 대신 NFT 교환권 방식으로 와인을 거래하면 법적 규제망을 피해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쉽게 말하면 ‘와인 인도 청구권’을 NFT로 제작하는 거예요. 온라인에서 주고받은 기프티콘을 오프라인에서 물건으로 교환하는 행위와 똑같은 겁니다. 교환권을 보유하고 있다가 와인의 가치가 오르면 교환권을 판매해서 수익을 내는 거죠.”​

◇한정판 와인 갖고 싶다면 줄 서세요

​2021년 12월 와인 NFT 투자 거래소로 사업 방향을 결정하고 서비스 기획에 착수했다. 학부 및 대학원 동기들을 포함해 플랫폼 기술 개발, 디자인, 산업 경영 역량 등을 갖춘 동료들을 모았다. 주류 시장을 제대로 공략하기 위해 조주 기능사 자격증을 보유하고 주류 큐레이팅 경험이 있는 구성원도 모집했다.

박 대표와 블링커스 동료들. /박상욱 대표 제공

-어떤 플랫폼을 구상하셨나요.

“개인의 주류 거래를 금지하는 규제를 어기지 않으면서 합법적으로 와인 거래를 진행하도록 돕고 싶었어요. 와인 교환권을 주류도소매업 신고를 한 저희가 발급하고, 실시간으로 NFT 거래가 가능한 플랫폼을 기획했습니다. 와인 은행이라는 뜻을 담아 이름도 ‘뱅크오브와인’이라고 지었죠.”​

-와인 NFT는 어떻게 발급받을 수 있나요.

“먼저 저희가 제휴한 와이너리(양조장) 및 와인 수입 업체를 통해서 정품 와인을 구매합니다. 구매한 와인을 교환권 NFT로 발행하죠. 이후 NFT 구매 우선권을 부여받을 ‘화이트리스트’를 모집하고, 이들에게 거래 시작 일시를 공지합니다. 소비자들은 정해진 시간에 저희 플랫폼에 접속해 원하는 와인을 선착순으로 결제해야 해요. 구매 단위는 이더리움(가상 화폐 단위)과 클레이튼입니다. 원화 결제도 가능하죠.​

NFT 소유자는 뱅크오브와인 내에서 NFT를 판매할 수 있어요. 가치가 오를 때까지 보유하고 있다가 다른 사용자에게 매도하는 게 가능한거죠. 보유한 NFT를 현물로 교환하고 싶어하는 분들에게는 디지털 교환권을 발급해줘요. 저희와 제휴한 전국 23곳의 오프라인 매장에서 실제 와인으로 바꿔올 수 있죠. 제휴 매장은 점차 확대해 나갈 예정입니다.”

블링커스는 주류 경험 인증 NFT를 발급받을 수 있는 플랫폼을 기획했다. /박상욱 대표 제공

-NFT를 발행하는 와인을 선별하는 기준은요.

“영국 와인종합지수 ‘리브엑스(Liv-ex)’가 발표하는 와인 투자 지수를 기준으로 와인을 선별합니다. 전 세계 고급 와인 거래량의 95%를 기반으로 해서 와인 가격의 표준이 되는 지수인데요. 리벡스가 매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1000개의 와인을 발표하는데 그걸 토대로 투자 가치가 높은 와인만 수입해요. 현재 프랑스 와인 유통망을 확보해 현물 와인을 최대한 많이 수입하고 있습니다.”​

-와인 수입처와 유통처는 어떻게 확보했나요.

“발품 파는 것 말곤 방법이 없었죠. 국내 양조장과 프랑스, 미국 등 해외 수입처에 콜드 메일(사업 아이템 설명을 위해 다수의 투자자에게 직접 보내는 이메일)을 보냈어요. 그중 저희 사업 아이템을 높게 평가해 준 업체들과 인연을 맺게 된 겁니다.”

-플랫폼의 차별점은요.

“플랫폼에서 ‘주류 경험 인증 NFT’를 발급받을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특정 와인을 마신 경험을 기록한 NFT예요. 앞면에는 상표가 부착돼 있고 뒷면에는 함께 마신 사람들과 찍은 사진이 홀로그램 형태로 들어가요. 구매자의 생년월일과 서명까지 반영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와인 경험 인증권이죠. 와인 거래 플랫폼이지만 결국은 와인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잖아요. 애호가들에게 재미 요소를 주고 싶었어요.”​

◇주류 확대, 오프라인 매장 개점 목표

디캠프의 창업경진대회 디데이에 참가한 박 대표의 모습. /박상욱 대표 제공

지난 1월 데모 버전을 만들기 시작해 3월 플랫폼 웹사이트를 구현했다. 2월부터 모집한 화이트리스트를 대상으로 4월 첫째 주부터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4월 30일부터는 모든 방문자가 와인 NFT를 거래할 수 있는 공개 플랫폼으로 전환할 구상이다.​

와인을 투자재로 설정한 독특함 덕분에 사업 초창기임에도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2월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의 창업경진대회 ‘디데이’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블루포인트 파트너스 등 기관에서 투자도 받았다.​

-지금까지의 성과는요.

“첫 민팅 금액만 따졌을 때의 예상 수익은 4월 첫달 1억원으로 추산됩니다. 제휴 와이너리와 수입 업체를 30군데 이상으로 늘린 후에는 연 매출 30억원도 가능할 것으로 봐요.”

우리나라에서 독보적인 주류 플랫폼의 입지를 다지는 게 블링커스의 목표다. /더비비드

-앞으로의 계획은요.

“플랫폼이 자리 잡으면 저희 오프라인 매장도 만들 생각이에요.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편하게 와인을 즐기고 떠들 수 있는 장소를 만들고 싶어요. 거래 주종도 확대할 계획입니다. 최근 국내 전통주 업체인 한산소곡주와도 제휴를 맺게 됐죠. 전통주, 위스키, 브랜디 등을 교환할 수 있는 NFT를 소비자에게 제공해 우리나라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다지고 싶습니다.”

​-예비 창업가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요.

“창업 여러 번 해보니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에요. 저도 와인에 대한 전문 지식부터 플랫폼 개발에 기여할 수 있는 개발 능력까지 갖추기 위해 노력했죠. 서비스 기획부터 출시 단계까지 정말 많은 것을 공부하고 연구해야 해요. 그 과정에서 난관에 부딪히거나 넘어질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제가 코로나19로 고생했던 것처럼 예상치 못한 변수도 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구하는 바를 놓치지 않고 도전한다면 성과가 나올 거라 생각해요. 창업 초기 다졌던 신념을 계속 새기며 끊임없이 도전하세요.”​

/박지연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