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케어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기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2021년 3월 쿠팡이 미국 뉴욕 증시에 성공적으로 데뷔하면서 국내 스타트업들의 해외 진출 꿈도 커졌다. 주요 스타트업들은 저마다 다양한 진출 전략을 두고 고심하고 있다.
바이오 헬스케어 스타트업 ‘프록시헬스케어’는 지난 3월 미국 법인을 설립하며 해외시장 공략에 나섰다. 이 회사는 미국 시장만을 위한 새 제품을 개발해 진출하는 전략을 짰다. 이영선(58) 미국 법인 지사장을 만나 헬스케어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기를 들었다.
◇스타트업 기술에 놀라 미국에서 귀국
프록시헬스케어는 바이오필름(미생물막)을 제거하는 기술을 개발한 회사다. 전자기파에서 발생하는 미세전류를 이용해 물체 표면의 바이오필름을 자극 없이 떼어내는 원리다. 바이오필름은 물체에 증식하는 박테리아가 모여 만든 보호막을 말한다. 어려운 용어 같지만, 사실 치아의 치태(플라그)가 바로 바이오필름의 일종이다.
프록시헬스케어의 첫 기술 상용화 제푸이 트로마츠 칫솔이다. 칫솔질하는 동안 아무런 느낌이 나지 않는데도, 치아에 붙어있는 치태와 치석이 제거된다. 임상 시험을 통해 트로마츠 칫솔을 이용한 양치 한 번이 일반 칫솔을 이용한 양치 6번의 효과와 같다는 것을 입증했다. 2020년 10월 첫 출시 이후 국내에서 4만5000개 넘게 팔렸다.
한양대 유기재료공학과 82학번이다. 1989년 졸업과 동시에 주식회사 선경(현 SK네트웍스)의 기술 영업팀에 입사했다. 사람 만나는 것이 좋아 선택한 직군이었다. “친구들이 연구소로 취직할 때 저 혼자 상사에 들어갔어요. 기술 지식을 살려 기술 수출 영업을 도맡았죠. 당시 제가 배정받은 팀이 북미주팀이었습니다. 그때부터 계속 미국 시장을 상대했어요.”
미국에 살게 된 건 1998년부터다. “뉴욕 지사의 주재원으로 발령받았어요. 그때부터 뉴욕에 터를 잡고 살게 됐죠. 주재원 생활을 6년 정도 하다가, SK네트웍스가 인수한 의류 상사 ‘세계물산’의 미국 법인장 역할을 2004년부터 10년 넘게 했습니다. 타깃, 월마트 등 미국 유통 기업에 의류를 납품하는 일을 했죠.”
코로나19 이후 일선에서 물러나 있었다. 미국 시장에 진출하려는 기업들이 그에게 다양한 제안을 해왔다. 스타트업인 프록시헬스케어도 그중 하나였다. 처음엔 수많은 합류 제안 중 하나로 여겼을 뿐이었다. “2021년 9월쯤, 지인이 국내 스타트업 제품이라며 트로마츠 칫솔을 소개해주더군요. 미국 시장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기업인데 조언해 줄 수 있냐면서요. 워낙 그런 제안이 많아서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죠.”
그런데 몇 주 뒤, 그의 아내가 트로마츠 칫솔을 구매할 수 있냐고 물었다. “아내가 구강건조증을 앓고 있어서 약 처방을 받고 있었거든요. 좋다는 칫솔, 치약은 일단 다 사서 쏘보는 중이었죠. 그런데 이 칫솔을 쓰고부터는 약을 덜 먹게 되고, 잇몸이 헐지 않는다는 겁니다. 관리를 아무리 잘해도 낫지 않던 게 칫솔로 개선됐다니 좀처럼 믿을 수 없었어요. 큰 관심이 가기 시작했죠.”
미국에 트로마츠 칫솔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더 많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은 국민건강보험이 없어서 병원에 가면 돈이 많이 듭니다. 치아 보험을 포함해 민간 보험은 너무 비싸 의료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이 많죠 그래서 건강관리제품이나 건강식품 산업이 발달해 있습니다. 건강을 미리 챙겨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거든요. 주변 이웃들에게도 칫솔을 나눠줬는데 반응이 너무 좋았습니다. 제품을 잘 알리면 미국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겠다 싶었어요.”
프록시헬스케어를 창업한 김영욱 대표를 처음 만난 건을 올해 1월이었다. “화상 미팅으로 대표님과 처음 만났는데요. 미국 나스닥 시장에 상장하겠다는 확고한 목표가 있더군요. 제품과 회사, 창업자에 대한 확신이 생기니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됐어요. 2월 초 빠르게 법인 설립 준비를 하고, 3월에 정식으로 프록시헬스케어 미국 법인을 설립했습니다.”
◇현지 시장 맞춤형 제품 개발
이 지사장이 합류하고 한 달 남짓 지난 3월. 프록시헬스케어의 미국 법인이 정식 출범했다. 법인 설립은 빠르게 이뤄졌지만, 마케팅 전략을 세우는 데는 난항을 겪었다. “어디에도 없는 신기술이기 때문에 자신은 있었어요. 칫솔뿐 아니라 미생물막을 제거해야 하는 모든 분야에 필요한 기술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마케팅 측면에서 트로마츠 기술의 장점은 단점이었죠. 아이러니였습니다.”
김영욱 대표가 개발, 특허받은 ‘트로마츠 기술’은 진동⋅자극⋅소음없이 미세전류만으로 미생물막을 떨어뜨린다는 게 강점이다. 무리하게 힘을 들이거나 화학적으로 제거하지 않아도 된다. 선박에 붙어 문제를 일으키는 ‘따개비’를 트로마츠 기술로 예방하거나 떨어트리는 방법이 국책과제로 선정돼 상용화를 위한 연구 중이기도 하다.
“미세전류는 눈에 보이는 게 아니라서 마케팅적으로 표현하기가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물을 이용한 구강 세척기는 강한 수압을 보여주면 되고, 전동칫솔은 칫솔모가 얼마나 강하고 빠르게 움직이는지 보여주면 됩니다. 그런데 트로마츠 칫솔은 조용해요. 효과를 체감할 수 있을 뿐 전자기파를 눈으로 보여줄 수가 없죠. 결국 이 칫솔의 진가를 알려면 시간을 두고 제품을 써봐야 합니다. 하지만 제품을 무작정 무료로 배포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고민 끝에 이 법인장이 입사 후 처음 내놓은 솔루션은 ‘제품 개발’이었다. “거대한 소비 시장인 미국에서 레드오션인 일반 칫솔 시장에 도전하는 건 무리라고 판단했습니다. 이제 막 성장하고 있으면서 트로마츠 기술을 활용할 만한 곳을 물색했어요. 동물 헬스케어 시장이 보이더라고요. 미국에선 정말 마당에 앉아있으면 반려동물들이 계속 지나가거든요. 트로마츠 기술을 활용한 ‘펫 칫솔’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진동이 없고, 힘을 덜 들여도 되는데 치태 제거가 더 잘되잖아요. 반려동물 구강 관리가 안 그래도 힘든데, 이거면 상품성이 있겠다 싶더군요.”
조사해 보니 치주염을 겪는 반려견이 생각보다 많았다. “3살 이상 반려견의 3분의 2 이상이 치주염을 앓는다더군요. 강아지의 치아 개수는 42개라 관리도 어렵고요. 미국에서는 강아지도 주기적으로 스케일링을 받는데요. 한 번 받을 때 1000달러(한화 126만원) 정도 들더라고요. 합리적인 가격으로 펫 칫솔을 만들면 잘 팔리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더군다나 미국 반려동물용품 시장 규모는 21조원으로, 한국의 7배 수준이죠. 반려동물용품을 판매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장이죠.”
이 법인장의 제안으로 본사에서 즉시 펫 칫솔 개발에 돌입했다. 반려동물에 맞춰 칫솔모와 손잡이 디자인을 바꾸고 전자기파의 세기를 조절한 형태다. 7월 출시를 목표로 개발을 하고 있다. 이 법인장은 미국 현지에서 여러 유통 기업에 출시될 제품을 알리고 있다. “확실히 펫 칫솔로 유통처에 협업 제안을 하기 시작하니까 일반 칫솔로 문을 두드렸을 때보다 반응이 좋아요.”
◇국가별 맞춤 제품으로 매출 성장
국내 사업의 빠른 성장이 해외로 비즈니스를 확장하는 원동력이 됐다. 2020년 2억원에 그쳤던 매출이 1년 만에 11억5000만원으로 성장했다. 국내 시장에서는 인기 제품을 개선해 대중화에 나섰다. 사용감을 보완한 ‘트로마츠 심플 프로’를 온라인몰에 5월 출시했다. “기존 ‘트로마츠 심플’ 제품은 칫솔모와 배터리 교체가 안 되는 일회용이었는데요. 심플 프로는 칫솔모를 교체할 수 있고 배터리 교체식, 충전식 중에서 취향에 맞게 고를 수 있어요.”
마케팅 전문가로서 현지 시장 파악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가마다 현지 사정이 모두 달라요. 같은 마케팅 전략으로 접근할 수는 없죠. 진출할 시장을 면밀히 조사하다 보면 진출할 시장만의 특색이 보입니다. 그 지점을 노려야 합니다. 한국에서는 펫 칫솔이 판매하기 더 어려운 상품이더라도, 해외에서는 일반 칫솔보다 훨씬 쉽게 판로를 찾을 수 있는 것처럼요.”
/김영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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