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케어 스타트업 '브레싱스'의 '불로' 개발기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음식 없이 몇 주, 물 없이도 며칠은 버틴다. 하지만 공기 없이는 단 몇 분도 버틸 수 없다. 신체활동 중 가장 중요한 건 호흡이다. 생존 뿐 아니라 건강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브레싱스’는 폐 건강관리 솔루션 ‘불로(BULO)’를 만들었다. 폐의 나이를 측정할 수 있는 기기다. 측정에 그치지 않고 개인 맞춤형 호흡운동까지 제공한다. 호흡 관리 콘텐츠는 기업부설 연구소 ‘비랩’에서 나온다. 브레싱스의 홍정기(51) 연구소장을 만나 호흡에 주목한 이유를 들었다.
◇호흡 관리 전도사 된 스포츠의학 교수
브레싱스가 개발한 불로는 작은 원기둥 모양의 폐 건강관리 기기다. 기기에 입을 대고 호흡한 후, 연동된 앱에서 결과를 확인하면 된다. 폐활량, 폐 근력, 폐 지구력, 폐 나이 등 폐 건강 상태와 관련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측정 결과를 기반으로 맞춤형 호흡 운동도 추천한다. 앱의 지시에 따라 하루 3번 사용하면 호흡근을 단련할 수 있다. 66g의 가벼운 무게로, 들고 다니며 건강을 관리할 수 있다. CES 2021(국제전자제품박람회)에서 혁신상을 받았다.
청소년 국가대표 역도 선수 출신이다.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 후에도 체육인의 삶을 살았다. 한국체대 체육학과에 진학했고 2008년에는 미국 오리건주립대에서 운동과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윌라멧대학교에서 운동과학과 교수 생활을 하다 2013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타지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하다가 귀국을 결정한 건 아버지의 ‘폐’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만성 폐 질환을 앓고 계셨어요. 기관지 확장증이라는 질병이었죠. 병세가 깊어지면서 괴로워하시는 아버지를 보며 폐 건강의 중요성을 체감했어요. 건강할 때부터 관리해야지, 이상을 느껴 병원을 방문했을 때는 이미 늦더군요.”
주변을 둘러보니 제대로 호흡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한국인 중에서 올바른 호흡을 하는 사람이 20%가 안 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요. 보통 1분에 14회 정도 호흡해야 적정하다고 하는데, 20회를 넘어가는 사람이 대다수죠. 숨을 얕게 자주 쉬는 거죠. 이걸 ‘단기 호흡’이라고 하는데요. 그러면 체세포에 산소 공급이 원활하게 될 수 없어요. 폐 건강에 가장 좋은 호흡법은 배의 근육을 이용해 횡격막을 움직이는 복식 호흡입니다. 산소 공급량을 늘리며 흉곽 주변의 근육도 키울 수 있죠. 의식적으로라도 복식 호흡을 자주 해야 해요.”
2013년부터 국민대 스포츠건강재활학과 교수직을 역임했다. 현재는 차의과학대학 스포츠의학대학원장으로 근무 중이다. 각종 연구와 세미나, 기업 자문을 통해 폐 건강과 호흡의 중요성을 알렸다. “폐는 아픔을 느끼는 통각 세포가 없어 이상을 알아채기 어려워요. 심각한 질환이 된 이후에만 CT 촬영 등 영상물로 확인할 수 있어서 미리 관리해야 하죠. 하지만 말처럼 관리가 쉽지 않아 폐암 사망률이 세계 1위에 이릅니다. 강의할 때 호흡의 중요성과 올바른 호흡법을 알리고 다녔어요. 호텔신라의 생활레저사업부와 협업해 임직원 호흡 운동 콘텐츠를 개발하기도 했고요.”
7년 넘게 올바른 호흡 전도사로 활동하다 보니, 헬스케어 업계에서 소문이 났다. 브레싱스와도 그렇게 연이 닿았다. “2020년 초, 헬스케어 스타트업을 자문하다가 브레싱스의 이인표 대표와 처음 만났어요. 평소 간편하게 폐 건강을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는데, 이때 처음 불로를 알게 된 거죠. 처음에는 외부 자문가로서 연구개발 자문과 홍보영상 제작을 도왔어요. 그 과정에서 서로의 비전이 동일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지난 1월부터 브레싱스 연구소 소장으로 합류하게 됐습니다.”
◇폐 나이 알려주고, 맞춤형 운동도 처방
브레싱스의 연구소 ‘비랩’은 제품을 개발하고 분석한다.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통해 신제품을 만들고, 기존 제품은 보완한다. 홍정기 소장은 불로의 폐 데이터를 분석하고 호흡 운동의 효과를 평가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가까이서 본 불로는 무척 매력적이었다. “불로를 사용하면 폐 건강 상태 측정과 관리가 모두 가능해요. 기기에 숨을 불어 넣으면 자동으로 폐 기능을 측정해주고, 연동된 앱(불로 웰니스)으로 사용한 기간의 추이를 확인할 수 있죠. 평소 느낀 문제의식을 해결할 대안이 작은 기기에 모두 담겨 있었어요. 병원 문턱을 밟을 필요 없이 정밀한 측정이 가능하고, 올바른 호흡 습관을 키울 수 있으니까요.”
폐 기능 평가 시스템 개선으로 제품력을 더욱 높이고 있다. “폐활량, 폐 근력, 폐 지구력, 폐의 나이 등을 측정하는 시스템을 보다 고도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제품 출시 초기에는 임상실험이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측정 결과를 제시했는데요. 이제는 그동안 쌓은 사용자 데이터를 활용할 차례입니다. 지금까지 약 57000건의 폐 건강 데이터를 확보했고, 이를 바탕으로 평가 기준을 세분화하고 있습니다.”
호흡 운동 콘텐츠도 손봤다. “개선 작업 전에도 불로 앱에서 호흡 운동법을 알려주긴 했는데요. 기존에는 운동을 안내만 하는 형식이라 사용자가 운동을 잘 따라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어요. 사용자별 적정 운동 횟수와 강도 등을 제공할 수 없었죠. 데이터를 분석해 호흡 운동을 체계적으로 알려준다면 경쟁력을 높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올 2월, 앱의 2.0 버전을 출시했다. “호흡운동은 총 4가지로 제공합니다. 불로의 폐 평가 기준(폐활량, 폐 근력, 폐 지구력, 폐 나이)별로 특화된 운동을 제공하죠. 1.0 버전에서는 운동법만 알려줬다면, 2.0에서는 이용자의 운동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어요. 사용자의 호기량(날숨)과 흡기량(들숨)을 분석하는 원리죠. 예를 들어 목표 폐활량 수치보다 부족하면 숨을 더 불어 넣으라고 지도하는 방식입니다. 사용자별로 적절한 운동 횟수도 알려주죠.”
개선된 호흡운동 콘텐츠의 효과도 확인했다. “2.0 출시 이후 사용자 데이터를 분석해보니 호흡 운동을 실시한 사용자의 데이터가 3주 만에 9%에서 최대 12%까지 좋아진 걸 확인했습니다. 불로가 폐 질환을 치료해주는 제품은 아니에요. 하지만, 폐의 퇴화를 늦추고 질환을 예방하는 효과는 갖춘 거죠.”
◇'건강할 때 관리해야' 가파르게 성장
작년 4월 국내 첫 출시 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올해는 5월까지 2억4000만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이미 작년 매출의 200%를 넘어섰다.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에 고루 사랑받고 있다. 폐 질환 환자는 물론이고 보컬 트레이닝, 필라테스, 헬스 등을 하면서 호흡 기능 향상을 확인하기 위해 불로를 쓰는 이용자도 많다. “기흉으로 폐 절제 시술을 받은 30대 지인이 불로를 두 달 사용하고 폐활량이 3.5L에서 5.1L로 늘었다는 후기를 들었어요. 일반 성인 남성의 평균 폐활량이 4.5L 정도인데, 큰 수술을 거치고도 평균 이상의 폐활량을 갖게 된 거죠. 소비자가 불로를 통해 건강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껴요.”
최근에는 B2B 거래를 통해 불로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마우스피스는 탈부착이 가능합니다. 마우스피스만 별도로 구매하면 한 대의 기기로 여러 사람이 폐 기능을 측정할 수 있죠. 여기 착안해 헬스장이나 재활 센터에 불로를 도입하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 운동 전후의 폐 상태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 좋다는 반응이 많아요. 폐 건강의 인바디 같은 역할을 하고 있죠. 현재 50여 곳의 피트니스 센터와 협업하고 있는데요. 협력처를 200곳까지 늘리는 것이 목표입니다.”
폐는 건강할 때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폐는 예방 차원으로 관리할 수 있는 기관이에요. 불로로 친구들과 폐 나이를 측정해본 적이 있는데요. 60대, 70대로 나오는 친구들이 많던데 저는 45세로 나오더군요. 곡식을 곳간에 쌓아두는 것처럼, 폐 기능과 폐 주변 흉곽 근육을 단련해두면 노화도 늦게 찾아올 수 있어요. 우리나라에도 예방 차원의 폐 관리법이 많이 전파되길 바랍니다. 하도 강조하고 다녀서 지인들이 저를 ‘브리딩 맨(Breathing man)’이라고 불러요.”
헬스케어 아이템으로 창업한 이들에게 보편적인 문제에 주목하라고 조언했다. “많은 기업을 자문해봤지만 결국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기업이 성공하더군요. 그동안 우리나라는 폐 질환의 치명률에 비해 폐 건강 관리에 대한 문제의식이 부족했어요. 브레싱스가 이 문제에 파고들어 기존에 없던 기기를 만든 것처럼, 사회에 큰 변화를 야기할 수 있는 기술을 만들어보세요.”
/김영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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