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터를 위한 패션 구독 플랫폼 개발기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크리에이터’들이 디지털 생태계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뷰티, 음식, 패션 등 전 산업에 걸쳐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스타트업 인에디트는 크리에이터를 위한 패션 구독 플랫폼 ‘브랜더진’을 개발했다. 브랜더진은 패션 브랜드의 의류를 크리에이터에게 무료로 대여해주는 플랫폼이다. 인에디트의 이건준(28) 공동대표에게 크리에이터의 옷에 주목한 이유를 물었다.
◇압구정 로데오에서 우연히 본 것
‘브랜더진’은 디자이너 의류 브랜드와 크리에이터를 중개하는 모바일 앱이다. 인에디트가 의류 브랜드에서 제품을 위탁받으면, 크리에이터들은 브랜더진 앱에서 의류를 대여할 수 있다. 브랜드는 크리에이터를 통해 제품 홍보 효과를 누리고, 크리에이터는 옷 걱정을 덜 수 있다.
학창 시절부터 패션에 관심이 많아 프랑스에서 유학했다. 파리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중 프랑스에 진출한 우리나라 브랜드 ‘우영미’에서 2012년 인턴을 했다. “패션쇼 보조로 활동했어요. 10분 남짓한 쇼를 위해 수십명이 반년 동안 치열하게 준비하는 현장을 경험했죠. 화려함의 이면에 숨겨진 수고로운 과정의 가치를 실감하며 패션산업에 매료됐습니다.”
2015년 연세대 언더우드국제대학 경제학과에 진학했다. 대학 입학 후에도 패션 산업에 꾸준히 관심을 가졌다. “잘 알려지지 않던 중소 브랜드가 ‘무신사’ 같은 패션 플랫폼에 입점하면서 인기를 얻는 경우가 조금씩 나올 때였어요. 대형 패션 플랫폼이 작은 브랜드의 디딤돌 역할을 해주기 시작한 거죠. 이런 변화를 보면서 대중이 잘 모르는 디자이너 브랜드를 소개하는 일을 하면 가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울 압구정동 로데오거리 같은 디자이너 브랜드와 편집숍이 밀집한 거리를 자주 다녔다. 흥미로운 광경이 목격됐다. “연예인 스타일리스트들이 무거운 가방을 끌고 다니며 의류를 옮기고 협찬 내역서를 수기로 작성하는 모습을 봤어요. 연예인의 스타일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바쁠 텐데 의류를 공급받는 과정에 많은 시간을 쏟고 있었던 거죠. 의류 협찬사와 연예인을 중개해 주는 서비스가 있다면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호기로운 첫 창업, 처참한 실패
학교 동기인 고종원(28) 공동대표에게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흥미로운 주제였지만 당장 연예인 협찬 시장에 뛰어드는 데는 현실 제약이 많았다.
“그때 유튜브 등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크리에이터가 눈에 들어왔어요. 일반인도 연예인 못지않은 영향력을 갖는 크리에이터 시장은 도전할 만하다고 생각했죠. 크리에이터가 입은 옷이 SNS에서 화제가 되는 걸 보며, 이들도 훌륭한 홍보 창구가 될 수 있겠다고 판단했어요.”
브랜드와 크리에이터를 중개해주는 서비스를 구상했다. 브랜드로부터 의류를 저렴하게 사들인 뒤, 크리에이터에게 홍보용 샘플을 증정해 의류가 알려지면, 사들인 의류를 팔아 수익을 내는 구조였다. 약 두 달 동안 사업계획서를 들고 패션 브랜드의 문을 두드렸다.
“브랜드들의 반응이 좋았습니다. 홍보를 위한 크리에이터를 직접 찾는 건 브랜드 스타일과 맞는 사람을 찾는 작업부터 까다롭고요. 제품 검수 및 포장 등에도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거든요. 우리가 맞는 크리에이터를 만나게 해준다면 기꺼이 의류를 제공하겠다고까지 해주셨죠.”
2018년, 호기롭게 첫 창업을 했지만 실패로 돌아갔다. 수익성이 좋지 않았던 탓이다. “크리에이터가 의류를 입고 만든 콘텐츠를 전달하면 저희 인스타그램 계정에 그들을 태그한 콘텐츠를 올려서 제품과 플랫폼을 홍보했어요. 그 의류를 대행 판매하는 모바일 앱도 개발했죠.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구매 전환율이 높지 않았어요. 인스타그램 계정을 보고 저희 앱을 찾아오는 대신 포털 사이트에서 의류의 최저가를 검색해 구매하는 방법이 있으니까요. 의류 사입 비용은 계속 나가는데 매출은 발생하지 않는 악순환이 이어졌어요. 약 1년간 지속하다가 사업을 접기로 했습니다.”
첫 실패를 겪고 캠퍼스로 돌아갔다. 심기일전해서 시장 조사부터 다시 시작했다. “첫 창업 때 인연이 닿았던 크리에이터를 포함해 다양한 편집숍, 디자이너 가게 등을 찾아가 그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사했어요. 크리에이터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다양한 의류에 대한 접근권이었어요. 그들은 콘텐츠 성격에 맞는 다채로운 스타일 연출이 필요했거든요. 브랜드들이 원하는 것도 따로 있었어요. 효과적인 홍보와 편한 의류 관리였죠.”
기존의 비즈니스 모델에서 의류를 사입하던 방식을 ‘대여’로 바꾸기로 했다. 세부 기능도 고도화하기로 했다. “비용 증가의 원인이었던 사입 비용은 줄이고 크리에이터의 만족도는 올릴 수 있는 대안이었어요. 크리에이터가 원하는 건 의류와의 접점을 넓히는 것이지 그 옷을 가지는 것이 아니니까요. 하나의 플랫폼 내에서 상품 등록, 의류 입고 및 출고 등을 관리할 수 있게 구현하기로 했습니다.”
◇의류 사입 대신 ‘대여’로 협찬하는 플랫폼 구상
2020년 1월, 인에디트 법인을 설립하고 모바일 앱 형태의 브랜더진 플랫폼 개발에 착수했다. 브랜드에게 의류 재고를 위탁받아 플랫폼에 등록하면 크리에이터가 직접 옷을 고르고 대여하는 서비스다. 첫 창업 때 연이 닿은 5개 브랜드 및 20여명의 크리에이터를 토대로 2020년 3월 서비스를 시작했다. 주 수익원은 브랜드로부터 받는 서비스 이용료다.
효율적인 재고 관리를 위해 신사역에 물류창고도 구축했다. “브랜드로부터 받은 재고를 저희 창고에서 보관합니다. 브랜드가 홍보하고 싶은 제품을 앱에 등록한 후 물류창고로 의류를 보내주죠. 이후 저희가 창고에서 크리에이터에게 의류를 배송해주고 되돌려 받는 형태입니다.”
의류 브랜드들은 브랜더진을 통하면 크리에이터를 찾거나 마케팅 단가를 협의하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을 아낄 수 있다. “크리에이터 발굴부터 배송 및 반납까지 과정에 신경 쓸 필요 없어 편하다고 해요. 크리에이터가 그 브랜드의 제품을 입고 만든 콘텐츠를 브랜드의 SNS, 판매 페이지 등에 활용할 수 있어 마케팅 효과도 톡톡히 누릴 수 있죠.”
브랜더진에 등록된 크리에이터는 무상으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지만 선정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 “SNS 팔로워 수, 평소 스타일 등을 바탕으로 크리에이터를 선정합니다. 저희가 직접 참여하라고 제안하기도 하고, 크리에이터의 연락을 받기도 하고요. 발탁된 크리에이터들은 앱에서 원하는 입점 브랜드의 의류를 선택합니다. 희망하는 재고와 수량, 대여 기간을 설정할 수 있죠. 그렇게 대여한 의류를 입고 SNS 사진, 유튜브 영상 등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합니다. 브랜드와 크리에이터가 윈윈(win-win)할 수 있는 구조죠.”
◇연 매출 15억원 달성, 해외 진출 목표
국내외 100여개 브랜드, 약 1000명의 크리에이터가 브랜더진을 이용하고 있다. 파페치(Farfetch), W컨셉, 크림, 신세계인터내셔널 등 주요 유통사의 의류도 위탁받고 있다. 작년 한 해 연 매출 15억원을 기록했다.
아이디어를 인정받아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이 주최한 ‘Y.E.S 데모데이’ 본선에 진출했다. 미국 유명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 ‘Y Combinator(와이콤비네이터)’에도 참가했다. 와이콤비네이터는 에어비앤비, 드롭박스 등 해외 유명 기업들이 거쳐 간 스타트업 양성 프로젝트다.
서비스를 해외로 확대할 계획이다.“저희는 크리에이터 의류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어요. 연예인이 아닌 개인이 다양한 패션 아이템에 접근해서 넘치는 끼와 개성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돕죠. 해외 시장에도 수요가 있을 거라 확신해요. 한국에서 기반을 공고히 한 후 미국, 유럽, 일본 등에도 진출할 예정입니다.”
예비 창업자들에게 ‘일단 도전하라’고 조언했다. “처음 창업에 도전하면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느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창업 초기엔 자금 문제 등 위기에 봉착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저희의 첫 시도가 수익성 문제 때문에 완전히 실패한 것처럼요. 도전을 지속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먼 미래나 큰 성공에만 집착하지 말고, 작은 성과들에 기뻐하며 달려 나가다 보면 결국엔 성공할 거라고 생각해요.”
/박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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