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1000만원으로 백종원 식당을 창업할 수 있는 방법"

더 비비드 2024. 7. 3. 14:30
배달 전용 공유주방 서비스 '키친밸리'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서울 역삼동 키친밸리 본사에서 만난 최성욱 대표이사. /더비비드

코로나19를 기점으로 배달 시장이 급성장했다. 배달 시장의 성장과 더불어 새롭게 파생된 산업 영역이 있다. ‘공유주방’이다. 배달 음식 전용 공유주방 서비스를 운영하는 ‘키친밸리’의 최성욱(42) 대표를 만났다.

◇스타트업 생태계에 반한 트레이더

키친밸리는 공유주방 서비스를 운영한다. /키친밸리

공유주방은 4~6평 규모의 소형 주방을 한 데 모은 공간을 뜻한다. 배달 전용 음식점을 타깃으로 하기 때문에 접객용 식탁이나 의자가 없다. 사업자별로 주방은 따로 사용하되 분리수거실, 휴게공간, 여분의 창고는 모두가 공유한다. 공유주방을 활용하면 몇 주 내 창업이 가능하고 초기비용이 저렴해 요식업자에게 인기다.

키친밸리는 미국의 공유주방 벤처 기업 ‘클라우드키친(CloudKitchens)’의 한국 지사다. 현재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공유주방 업체로,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21개의 지점을 두고 있다. 지점마다 20호실 이상의 주방 시설을 갖추고 있어서, 총 500곳의 주방이 배달 전용 식당으로 활용되고 있다. 사업자가 조리에만 신경 쓸 수 있도록 배달, 주문, 마케팅 등도 지원한다. 사용자는 공간 보증금과 월 이용료만 내면 된다. 매장이 외부에 드러나지 않고 배달 주문만 받기 때문에 ‘숍인숍(한 매장에서 두 가지 이상의 품목을 판매하는 방식)’ 형태의 운영도 가능하다.

미국에서 30년 가까이 지냈던 최 대표. 금융상품 트레이더로 근무했었다. /최성욱 대표 제공

최성욱 대표는 태어나자 마자 한 살때 가족과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으로 이민을 떠났다. 2001년 일리노이대 컴퓨터 공학과를 졸업하고 시카고상품거래소(CME)에서 금융상품 트레이더로 사회생활의 첫발을 뗐다. “숫자가 좋아 선택한 직업이었습니다. 금융 분야에서 경력을 쌓은 뒤 나중에 창업하겠다는 막연한 꿈이 있었죠. 어느 정도 일에 노하우를 쌓은 뒤, 2008년 켈로그 경영 대학원에 입학해 마케팅과 국제 경영을 공부했습니다.”

MBA 학위를 받은 뒤 한국에 돌아왔다. “창업을 하게 된다면, 변화가 빠른 한국 시장에서 일해 보고 싶었어요. 마침 우리투자증권에서 주식 트레이더로 일할 기회가 주어져 일자리 걱정을 덜고 한국 땅을 밟을 수 있었죠.”

2013년 에듀테크 스타트업 ‘노리(KnowRe)’에 이직하면서 스타트업 분야에 입문했다. “창업하기 전 스타트업 생태계부터 경험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맞춤형 수학교육을 제공하는 앱 서비스였는데요. 신사업 개발을 담당해 미국의 교육 브랜드 ‘실번(Sylvan)’과의 협업을 이끌었습니다.”

마이박스를 운영했을 당시의 최 대표. /최성욱 대표 제공

성과를 내보니 자신감이 붙었다. 2015년 공유 창고 스타트업 ‘마이박스(myBOX)’를 창업했다. “한국 특성에 기반한 아이템이어야 빨리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한국은 인구 밀집도는 높은데 토지 면적은 좁아 공간의 제약이 커요. 큰 공간을 대여해 여러 기업이 물류 보관 사업을 하도록 하면 가능성이 있겠다고 판단했어요. 예상대로 수요가 꾸준했습니다. 의류 사업체의 계절별 옷이나 건조식품, 스포츠용품 등 다양한 물류를 보관했죠. 2018년 홍콩 소재의 물류 기업에 인수합병됐습니다.”

2020년 9월, 키친밸리에 합류했다. “회사 매각 후 영국 런던의 핀테크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요. 클라우드키친에서 입사 제안을 해왔어요. 한국 진출 계획이 있는데, 사업 확장을 주도할 한국 지사 담당자를 찾고 있다는 내용이었죠. 한국 시장의 특성을 파악해 공유 창고 사업을 했던 경력을 좋게 평가했던 것 같아요. 다시 한번 한 회사의 경영자로 일해볼 수 있다는 생각에 바로 합류하게 됐죠.”

◇창업 자본금 1000만원 현실화한 서비스

키친밸리 공유주방 내부 휴게 공간과 개별 주방. /키친밸리

키친밸리의 모회사인 클라우드키친은 전 세계 40개국에서 공유 주방을 운영중이다. 한국은 클라우드키친의 첫 해외 진출 국가다. 국가별 사업 실적을 봤을 때 미국과 중국을 포함해 3위 안에 들 정도로 규모가 크다.

가까이서 본 키친밸리의 사업 모델은 참신했다. “한국에서 요식업은 경쟁이 박 터지는 레드오션이잖아요. 공유 주방은 요식업자의 창업 문턱을 확 낮춰줘요. 키친밸리에서는 1000만원대의 비용으로 창업할 수 있어요. 80%가 공간 보증금, 나머지 20%는 주방 집기 등의 준비 비용이죠.”

공유 주방 내부 모습. 소규모 주방을 한데 모은 형태다. /키친밸리

‘공유’의 장점을 십분 활용했다. “키친밸리는 자체 데이터 분석팀이 있습니다. 키친밸리를 통한 배달 데이터와 수도권의 인구 이동 자료를 분석해 강남, 서초 등 상권의 요충지에 공간을 매입하죠. 혼자 창업하려면 넘볼 수도 없었던 값비싼 공간을 나눠서 쓸 수 있으니 부담이 적습니다. 입주자들이 '조리'라는 본업에 충실할 수 있게 지점마다 키친밸리 상주 직원을 배치했습니다. 입주한 사업자가 조리를 마치면 상주 직원이 배달원에게 음식을 전달하죠. 매출 성장을 위해 배달 앱별 매출, 요일과 시간대별 매출 분석, 지역별 매출, 인기 메뉴 등의 현황 리포트도 제공합니다.”

현지화 전략 덕분에 2500곳이 넘는 국내 공유 주방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사업 성장을 위해서는 ‘현지화’가 가장 중요합니다. 부임하자마자 한국 요식업만의 특성을 면밀히 살폈어요. 눈에 띈 부분은 ‘프랜차이즈’였죠. 요식업과 배달 문화가 가장 발달한 나라인 만큼, 프랜차이즈 브랜드도 정말 많더군요. 키친밸리에 방문하는 자영업자들도 모두 개인 창업보다 프랜차이즈 창업을 희망했죠. 다만 어떤 브랜드를 창업해야 할지 조언을 구하는 입주자들이 많았어요. 키친밸리가 직접 프랜차이즈 브랜드를 소개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키친밸리의 사업모델을 설명하는 최 대표. /키친밸리

바로 본사에 새로운 사업 구상을 설명하고, 실행에 옮겼다. “작년 초부터 유명 프랜차이즈 브랜드들과 업무 협약을 했어요. 지금은 협력 브랜드가 100개가 넘죠. 키친밸리는 입점을 희망하는 창업주에게 브랜드를 소개합니다. 브랜드는 배달 전용 매장 개업권을 키친밸리에게만 독점으로 제공하거나, 키친밸리를 통해 창업하는 점주에게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방식이죠. 더본코리아의 일부 배달 매장 전용 브랜드는 키친밸리를 통해서만 창업이 가능합니다.”

◇한국 소비자 수요가 ‘글로벌 스탠다드’인 이유

키친밸리는 한국 현지화 전략으로 유명 프랜차이즈 브랜드들과 업무협약을 맺었다. /키친밸리

키친밸리 공유 주방의 계약기간은 1년이다. 음식 연구 개발, 파일럿 프로젝트 용도로 주방이 필요한 이들은 3개월, 6개월 단위로 단기계약을 할 수 있다. 초기 보증금과 월 서비스 이용료를 내면 된다. 350명 이상의 사업자가 키친밸리의 공유주방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서비스 지역 확대를 단기 목표로 삼고 있다. “외연 확장을 위해 부산과 대구 진출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즉석조리 매장뿐만 아니라 아이스크림 등의 디저트, 생필품 등의 배달 상품도 공유 공간에 입점시킬 계획입니다. 본사 직원끼리 ‘한국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서비스는 다른 나라에서도 통한다’는 말이 나와요. 그만큼 한국은 중요한 시장이죠. 앞으로도 신규 서비스 출시에 주력할 예정입니다.”

한국 내 서비스 지역 확대를 계획 중이다. /더비비드

현지 시장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공유 주방 사업은 지역별 특성, 인구 밀도, 요식업, 배달 문화를 이해하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습니다. 현지에 대한 이해가 기본이죠. 본사 직원을 모실 때 그 부분을 가장 중요하게 봤어요. 보통 외국계 기업은 영어를 채용 필수요건으로 두는 경우가 많은데요. 제가 부임한 이후 그 요건을 폐지했어요. 언어 제한을 없애고 요식업, 식품 유통업 종사자 등 현지 시장을 잘 아는 분들을 우선 채용했죠. 이 방법이 키친밸리의 현지화에 한몫했다고 생각합니다.”

/김영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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