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발이 편한 신발에 도전하는 스타트업
저 직업은 무슨 일을 하는 걸까? 저 일을 하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궁금한 일이 있으셨나요. 직업별 궁금증을 해소하는 ‘그 일이 알고 싶다’ 시리즈. 이번 편에선 기업 CSO(최고전략책임자)가 하는 일을 소개합니다.
발이 편해야 몸도 편하다. 사람마다 발의 모양이 다르고 걷는 자세도 제각각이다. 기성 제품에 발을 맞추다 보면 불편을 감내해야 할 게 많다.
기능성 깔창 및 신발 제조 스타트업 나인투식스는 깔창으로 입지를 다진 후 기능성 신발을 제조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인의 발 모양을 고려한 물컹슈즈를 출시했다. 나인투식스 김성호(32) CSO(Chief Strategy Officer, 최고전략책임자)를 만나 한국형 기능성 신발의 개발기를 들었다.
◇한국인의 발 모양대로 만든 기능성 신발
나인투식스는 ‘워킹마스터클럽’이라는 브랜드로 기능성 깔창과 운동화를 제작해 판매한다. 소비자의 발 모양 데이터를 분석하는 ‘풋스캐너’ 시스템을 보유한 기업으로, 전 세계 수천만 명의 발에 대한 빅데이터를 갖고 있는 미국 aetrex사가 개발한 장비를 국내에서 유일하게 갖고 있다.
최근에는 기능성 운동화 ‘워킹마스터 물컹슈즈’를 출시했다. 한국인의 발 모양을 고려한 구조와 실리콘 깔창의 푹신함이 특징이다. 기능성 깔창을 판매하며 쌓은 데이터 3만여건을 기반으로 착화감과 디자인을 모두 챙겼다.
◇두 번의 창업 실패 후 취업
김 CSO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미국으로 건너가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에서 물류학을 전공했다. 26살이던 2016년 귀국해 문구 사업을 하는 아버지의 일을 돕기 시작했다. “확실한 꿈이나 목표가 없어서 일만 했어요. 일주일 내내 12시간씩 쉬는 날 없이 소처럼 일했죠. 어느 시점이 되니까 한계가 오더라고요. 아버지의 회사에서 벗어나 창업이든 취업이든 저만의 길을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2018년 1월 관심을 살려 1인 의류 쇼핑몰을 창업했다. “밤에는 동대문도매시장에 가서 옷을 사입하고, 낮에는 착용 컷을 홀로 활용했어요. 직접 홈페이지까지 만들어 옷을 팔았는데 사무실 월세만 겨우 벌 수 있었죠. 그러다 아버지 제안으로 아버지 사업장 옆에 카페를 창업했어요. 항상 촬영 장소가 애매했는데, 둘을 함께 운영하게 되면서 카페를 쇼핑몰 배경으로 활용했죠.”
두 개의 사업을 병행하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쇼핑몰을 관두고 카페에 집중하기로 했다. “힘들게 내린 결정이었는데, 오히려 카페 매출이 점점 떨어져 고민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코로나19가 창궐해 제대로 타격을 받았어요. 시간이 빌 때마다 앱이나 웹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는 코딩 공부를 했습니다. 그때 나인투식스의 기희경 대표와 연락이 닿았어요. 기 대표는 과거에 창업 관련 교육을 함께 들으며 연을 맺었는데요. 제가 코딩과 데이터 공부를 한다는 걸 듣더니 자기 일을 좀 도와달라고 하더라고요.”
나인투식스의 ‘풋스캐너’(소비자의 발 모양을 정밀 분석해주는 시스템)로 수집한 데이터를 소비자에게 전송하는 작업을 도와달라는 요청이었다. 이 일을 하면서 뜻밖의 시장에 눈을 떴다. “외주 개발사와 나인투식스의 중재자로서, 서비스 기획과 개발 중간쯤의 일을 했어요. 기 대표를 도우면서 깔창의 수요가 크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습니다. 전혀 몰랐던 분야였거든요. 제품력은 좋으니 소비자에게 접근할 방법론만 잘 설정하면 사업을 더 크게 성장시킬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때마침 기 대표로부터 제안을 받아 2020년 6월 나인투식스의 CSO로 합류하게 됐습니다.”
◇주먹구구로 돌아가던 회사에 물류 체계 도입
CSO란 기업의 경영, 투자 등 회사의 미래를 위한 전략적 판단을 내리는 자리다. 입사 후 나인투식스의 시스템 전반을 보강하는 작업부터 착수했다. “물류학을 전공해서 유통에는 자신 있었어요. 제가 처음 합류한 시점의 나인투식스는 물류 체계라는 게 없는 상태였어요. 주문이 들어오면 비로소 재고를 확인하고, 제품을 직접 포장해 발송하는 상황이었죠. 재고 파악이 안 되니 미리 제품을 만들지도 못했고, 대량 주문이라도 들어올 때면 혼란에 빠졌습니다.”
각 제품에 바코드 번호를 부여했다. 재고 관리 시스템도 구축했다. “본사와 창고에 제품이 몇 개씩 있는지 실시간으로 재고 파악이 가능해졌어요. 제품을 대량 생산해야 할 때의 부담이 확실히 줄어들었죠. 마케팅에도 도움이 됐어요. 어느 제품이 잘나가는지, 안전 재고는 어느 정도 확보해야 하는지 파악하는 게 쉬워졌으니까요. 재고 관리 시간을 줄인 덕에 신제품 개발, 소비자 응대 등 다른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쏟을 수 있었습니다.”
◇3만건 데이터 분석, 오래 서거나 걷는 사람 위한 신발 개발
‘내 발에 맞는 깔창 찾기’라는 콘셉트로 끼운 첫 단추는 성공적이었다. 제품군을 대폭 늘려 2019년 국내에서 가장 많은 기능성 깔창 품목을 보유한 회사로 성장했다.
다음 단계로 도약을 꾀했다. “웬만한 깔창은 다 했다고 생각했어요. 오프라인 매장을 찾은 소비자들이 신발은 안 파냐고 묻더군요.”
깔창을 판매하며 쌓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기능성 신발을 만들기로 했다. “사람들이 발에 맞는 신발을 찾는 게 아니라 발을 신발에 맞추고 있단 생각이 들었어요. 예를 들어 동양인은 대체로 발볼이 넓어요. 그런데 해외 브랜드 운동화는 발볼 부분이 좁죠. 오프라인 매장에서 매일 소비자의 대략적 연령대와 성별, 통증부위, 구매한 깔창 종류를 기록했어요. 온라인 판매 기록까지 합하니 3만건 넘는 데이터가 쌓였죠. 깔창 소비자들의 발볼 넓이의 최고점과 최저점을 찾아 평균치를 적용했죠.”
깔창 제작 경험을 살려 소재도 하나하나 신경 썼다. “깔창이 너무 푹신해도 안 좋아요. 무게중심이 잡히지 않아서 금세 피로해지거든요. 너무 딱딱하면 발이 아프고요. 적당한 착화감을 만드는 소재가 실리콘이에요. 신발을 신으면 땅을 밟는 느낌이 아니라 말랑한 실리콘 위를 걷는 느낌이 나요. 단가가 비싸서 망설였지만 이만한 소재를 찾지 못하겠더군요. 마진을 줄이더라도 최상의 소재를 쓰기로 결심했어요.
밑창은 미끄럼 방지를 위해 천연고무를 이용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전부 고무를 넣으니 무거워지더라고요. 신발이 너무 가벼우면 발을 보호하는 기능이 떨어지고 무거우면 오래 신기 어렵잖아요. 그 중간점을 찾았어요. 밑창 속을 가벼우면서도 쿠션감이 좋은 소재인 EVA로 채웠습니다.”
◇딱 맞는 신발을 추천해드립니다, 신발 큐레이션
마지막 관건은 디자인이었다. “화려한 디자인은 고려하지 않았어요. 유행을 타지 않고 오래 신을 수 있는 신발을 떠올렸죠. 다만 손이 가지 않는 투박한 기능화의 이미지는 탈피하고 싶었어요. 무난한 검정색부터 아이보리색, 분홍색 등 여섯 가지의 심플한 색상으로 만들었습니다. 편하면서 보기에도 예쁜 기능화라는 점에 초점을 맞췄어요.”
기능을 테스트하며 완제품을 만들기까지 꼬박 2년이 걸렸다. “한국인 발에 최적화된 기능화를 합리적인 가격에 이용할 수 있다는 게 최대 장점입니다. 가격은 10만원 아래로 비교적 저렴하게 책정했죠. 착화감은 서비스업 종사자분들께 시착을 요청해 확인했어요. 일하면서 발이 신경 쓰이지 않았던 적은 처음이라는 등 반응이 돌아오더군요.”
당분간 신제품 개발에 집중할 계획이다. ”발이 편한 것을 모토로 한 물컹 슈즈로 자신감을 얻었는데요. 이번에는 건설 현장과 같은 산업 현장에서 위험 요소로부터 발을 보호하는 안전화를 만들 생각이에요. 보통 안전화는 바닥 부분을 철판으로 만드는데요. 정작 발이 들어갈 공간이 좁아져 착용감이 안 좋은 경우가 많죠. 발볼을 넓게 만들어 착용감을 제고한 안전화를 만들 계획입니다.”
발의 모든 것을 아우르는 플랫폼으로서의 확장도 준비하고 있다. “풋스캐너에 그치지 않고 설문 조사를 통해 맞춤형 깔창 및 신발을 추천해주는 큐레이션 서비스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나인투식스 쇼핑몰을 신발 판매처가 아닌 내 발에 대해 알 수 있는 사이트로 만들고 싶어요. 일종의 플랫폼 형식으로요. ‘발볼이 넓고 걸을 때 뒤꿈치에 힘이 많이 실리는 사람이라면 이런 신발이 편하다’ 추천해주는 거죠. 나인투식스 제품 뿐만 아니라 다른 브랜드 제품도 포함하는게 제 목표입니다.”
어떤 서비스가 사람들에게 도움 될까 고민하고 항상 새로운 것을 공부한다. “무엇이든 미리 공부하면 기회가 찾아오는 것 같아요. 카페 일을 하면서 코딩과 앱 개발을 공부한 덕에 나인투식스와 연이 닿은 것처럼요. 저는 끊임없이 뭔가를 배우는 게 좋습니다. 일단 큐레이션 서비스를 완벽하게 운영되는 궤도로 올리는 게 당면한 목표인데요. 이를 위해 지금도 공부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CSO는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자리잖아요. 항상 총알을 들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나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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