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골공원에서 만난 시민들에게 ‘꼰대의 기준’을 물었더니
“공부할 때가 제일 좋았지. 공부가 제일 쉬운 거야.”
어릴 땐 몰랐습니다. 어른들의 ‘공부 찬양론’이 잔소리가 아니라 푸념이라는 사실을. 사회생활 하다 보니 공부 보다 어려운 일이 한둘이 아닙니다. 업무 관련 문제는 물론이고 집값(월세), 인간관계 등 신경써야 할 것이 너무도 많더군요. 저도 어느덧 지나가는 학생 볼 때면 ‘공부할 때가 좋았다’는 생각부터 듭니다.
<꼰대의 기준은? 영상으로 내용 바로 확인>
‘어른’이기만 하면 다행입니다. 방심하는 순간 ‘꼰대’가 됩니다. 꼰대가 되지 않겠다 다짐했지만 문득 ‘나도 꼰대인가?’ 싶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꼰대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니 쉽지 않은데요. 사람들은 어떤 경우를 꼰대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해졌습니다.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탑골공원에서 시민들을 만나 ‘꼰대의 기준’에 대해 물어봤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런 말 하면 꼰대일까
점심 약속이 있어 나왔다는 여성 시민을 만났습니다. 20대 초반인데도 벌써 스스로 꼰대라고 여기는 순간이 있다고 했는데요.
명절을 맞아 온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수험생 동생에게 “공부할 때가 제일 편한 거야”라고 말하는 사촌언니가 있다면 꼰대라 할 수 있는지 물었는데요. "본인이 예전에 그렇게 느꼈다고 해서, 상대방도 그럴 것이라고 넘겨짚는다면 꼰대"라고 답했습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20대 커플을 만났습니다. "9시 출근인데 15분 일찍 나와서 준비하라"는 알바 사장님은 꼰대인지 물었더니 꼰대가 아니라고 답했습니다. 알바 근무 시간 동안 최소 15분 정도는 스마트폰을 보며 시간을 보낼 것 같다는 이유였죠.
커플이 꼰대를 규정하는 지점은 따로 있었습니다. "꼰대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꼰대가 완성된다"는 말을 남긴 채 커플은 버스를 타고 사라졌습니다.
<좀 더 자세한 답변 영상으로 확인>
한눈에 봐도 전혀 다른 차림새의 두 남성이 벤치에 앉아있기에 다가가 봤는데요. 친구 사이라는 두 사람에게 꼰대 자가 진단을 부탁했더니 넥타이를 맨 시민은 “(나는) 꼰대가 아니다”, 티셔츠를 입은 시민은 “(나는) 꼰대다”라고 답했습니다. 직장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각자 그렇게 생각할 만한 이유가 있겠다 싶었죠.
다시 한번 상황극을 시도했습니다. 직장인이라면 한 번쯤 겪어봤을 법한 회식과 관련한 상황이었죠. “나는 괜찮은데 윗분들이 불편해하시니까 개인 사정으로 회식 빠지지 마라”고 하는 직장 상사는 꼰대인지 물었는데요. 두 사람의 의외의 답변을 듣고 ‘꼰대의 기준’이 더욱 헷갈려졌습니다.
<기사로 다 담지 못한 내용 영상으로 확인>
익선동 카페 골목에 브런치를 먹으러 왔다는 50대 시민을 만났습니다. 꼰대에 대해 물었더니 누구나 상황에 따라 꼰대가 될 수 있다면서 누구도 매 순간 꼰대이진 않을 것이라고 했죠. 꼰대라는 말을 듣는 순간 ‘아, 내 젊음이 다 갔구나’란 생각이 드는 것 같다고도 했습니다.
여행 가방을 끌며 걸어가는 한 가족을 만났습니다. 그중 50대 남성 시민에게 스스로 꼰대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더니 손사래를 쳤죠. 휴가 기간에도 카톡 답은 해야 한다는 상사가 꼰대인지 판별을 부탁했는데요. 다른 사람의 입장을 헤아리지 못한다는 점에서 ‘110% 꼰대’라고 확신에 찬 답을 내놓았습니다. 이 시민은 우리 사회가 ‘꼰대’라는 단어를 바라보는 관점을 꼬집는 한마디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여행 삼아 상경했다는 부산 커플을 만나 꼰대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는데요. 스스로 꼰대라 생각하는지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후배가 먼저 인사하지 않을 때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고 했죠. 꼰대의 기준을 묻자 ‘나 때는 말이야’처럼 특징적인 말투보다는, 말하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 꼰대를 정의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꼰대의 잣대 그보다 중요한 건
꼰대는 권위적인 어른을 낮춰 부르는 학생들의 은어였는데요. 최근엔 세대 갈등을 대표하는 단어가 됐습니다. 비교적 어린 나이인데도 그보다 어린 사람에게 권위적으로 대하는 ‘젊은 꼰대’, 어떤 조언도 모두 꼰대로 치부해버리는 ‘역 꼰대’ 등 꼰대에서 파생된 단어나 표현도 다양하죠.
고대 이집트 벽화에 ‘요즘 젊은 애들은 버릇이 없다’는 내용이 있다고 합니다. 그만큼 세대 갈등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문제인데요. 그런 내용을 새긴 사람도 한때는 ‘버릇없는 젊은이’였을지 모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죠. 같은 30대라도 20대 앞에선 꼰대가 될 수 있고, 40대인 꼰대를 만날 수도 있습니다.
/이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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