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덕업일치론
사회초년생 영지 기자의 취재 기록을 브이로그 형식으로 담아봤습니다. 자신의 색깔을 분명히 아는 사람들을 만나 어떤 경험이 자신의 색을 찾는 데 도움이 됐는지 물었습니다. 브이로그 인터뷰 시리즈 ‘인터뷰로그’를 게재합니다. 인터뷰로그 6-2화에선 한국폴리텍대학 익산캠퍼스의 양진호 교수를 만났습니다. 영상을 통해 확인하시고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려요!
몇 년 전부터 ‘덕업일치’라는 말이 유행했습니다. 덕업일치는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분야의 일을 직업으로 삼는 경우를 말하는데요.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례는 드라마 ‘응답하라 1997’ 주인공 성시원입니다. HOT의 열혈 팬 출신 방송작가로 등장했죠.
한국폴리텍대학 익산캠퍼스 컴퓨터응용기계과 양진호 교수를 만나봤는데요. 양 교수는 1995년 국제기능올림픽 기계설계 캐드(CAD) 종목 금메달리스트이기도 합니다. 누구보다 ‘덕업일치’에 공감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고개를 내저었습니다. 양 교수가 그동안 고민해 온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습니다.
<영상으로 내용 바로 확인>
◇계획적인 간절함은 불안하지 않다
영지) 간절함을 가장 큰 동력으로 삼았다고 하셨는데요. 얼마나 간절했기에 국제기능올림픽에서 금메달까지 딸 수 있었을까 싶더라고요. 무엇이 교수님을 그렇게 간절하게 만들었나요?
진호) “제가 기계설계 캐드(CAD) 종목으로 출전했던 때가 1995년이었는데요. 직전 대회인 1993년까지 10연패를 기록했던 종목입니다. 제가 11연패를 달성할 차례였죠. 그런데 만약 금메달을 못 따면 나라의 역적이 될 것 같더군요. 그런 간절함으로 국가대표 합숙 훈련을 할 때 새벽에 일어나서 새벽에 잠드는 생활을 했습니다.”
영지) 의지력이 대단하시네요.
진호) “사실 그 반대입니다. 의지력이 약하고 쑥스러움도 잘 타는 수줍은 성격이에요. 이런 성격을 이용했습니다. 주변 사람들한테 ‘나 이번에 금메달 딸 거야’라고 떠벌리고 다녔어요. 그렇게 얘기하고 다녔는데 못 하면 얼마나 창피하겠어요? 그 창피함을 모면하려면 열심히 노력할 수밖에 없었죠.”
영지) 제가 취업 준비를 할 때 가장 힘들었던 건 ‘막연함’이었습니다. 누군가 ‘2년만 노력하면 무조건 성공할 거야’라고 말해줬으면 싶었죠. 3년이 될지 4년이 될지 모르는 취업 준비 기간이 저를 더 지치게 했던 것 같아요. 그런 막연함으로 인한 불안함은 없었나요?
진호)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일 겁니다. 그나마 저를 지탱했던 건 스스로와의 약속이었습니다. ‘될 때까지 한다’가 아니었어요. ‘내가 정한 3년이란 기간 동안 미친 듯이 해보겠다’는 마음가짐이었죠. 3년간 죽어라 달려들었는데도 목표에 다다르지 못했다면 나와 맞지 않는 길이란 뜻입니다. 3년이 지났다면 시간을 더 끌 것 없이 그와 관련된 다른 일을 찾으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좀 더 자세한 답변 영상으로 확인>
◇‘덕업일치’는 행복할까?
영지) MZ세대 사이에서 ‘덕업일치’라는 말이 유행입니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다는 뜻이죠. 덕업일치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진호)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건 큰 행운이죠. 하지만 덕업일치를 성공의 척도로 여길 순 없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과 과정을 따라 공부를 하고 직장에 취직합니다. 스마트폰을 만들고 싶어서 삼성전자에 들어간다거나 자동차를 만들고 싶어서 현대자동차에 들어가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그렇다고 해서 그런 사람들이 ‘실패’했다고 볼 순 없죠. 성공의 모습은 다양하니까요. 열심히 일한 만큼 성과를 인정받고 행복하고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고 있다면 누구보다 성공한 삶이 아닐까요.”
영지) 사실 저는 ‘덕업일치’를 이뤘다고 생각해요. 중학생 때부터 방송과 관련한 일을 꿈꿨습니다. 국어 시간에 선생님이 무작위로 고른 출석번호 학생이 책을 읽어야 했는데 제 번호가 불리기만을 바랐어요.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걸 좋아한다는 걸 비교적 일찍 깨달았고 지금 하는 일에도 만족합니다.
진호) “어쩌면 ‘잘할 수 있는 일’을 선택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어져 온 걸지도 모릅니다. 잘하는 일을 더욱 잘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 칭찬을 받고, 그런 기억들이 쌓여 ‘즐기는 일’이 된 것이라는 뜻이죠. 반대가 되면 조금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가령 정말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40대가 됐을 때 그 일이 망한다면 어떨까요? 그때부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게 되고 지난 선택을 후회하기도 하겠죠. 장기적인 안목으로 봤을 때 당장 즐거운 일보다 생산성이 있는 일을 먼저 찾는 것이 더욱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양진호 교수의 육성 영상으로 확인>
영지) 덕업일치에 다소 회의적인 데 반해 정작 교수님은 기계설계 분야에 있어서 이미 덕업일치를 한 것처럼 보이는데요.
진호) “결과론적으로는 그렇다고 볼 수 있죠. 하지만 처음부터 기계설계를 좋아했던 건 아니에요. 도면이 뭔지도 모르는 상태로 시작했지만 잘하려고 노력했고 그 노력 덕분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잘한다’ 소리 들으니 ‘재미’는 그냥 따라오더군요.
지금 학생들에게 설계 교과를 가르칠 때 스스로 정말 뿌듯합니다. 내가 가진 지식을 풀어내고 학생들과 소통하는 과정이 정말 재미있어요. 뭐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 같아요. 잘하게 되니까 좋아하는 일이 되고 결국엔 즐길 수 있는 일까지 됐습니다. 저에게 있어 덕업일치는 ‘과정’이라기보다 ‘결과’로 보는 게 더 정확하겠네요.”
/이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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