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의순간

수줍음 많던 고교생을 금메달리스트 만든 의외의 동기 부여

더 비비드 2024. 7. 1. 14:07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덕업일치론

사회초년생 영지 기자의 취재 기록을 브이로그 형식으로 담아봤습니다. 자신의 색깔을 분명히 아는 사람들을 만나 어떤 경험이 자신의 색을 찾는 데 도움이 됐는지 물었습니다. 브이로그 인터뷰 시리즈 ‘인터뷰로그’를 게재합니다. 인터뷰로그 6-2화에선 한국폴리텍대학 익산캠퍼스의 양진호 교수를 만났습니다. 영상을 통해 확인하시고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려요!

한국폴리텍대학 익산캠퍼스 컴퓨터응용기계과 양진호 교수는 1995년 국제기능올림픽 기계설계 캐드(CAD) 종목 금메달리스트이기도 하다.

몇 년 전부터 ‘덕업일치’라는 말이 유행했습니다. 덕업일치는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분야의 일을 직업으로 삼는 경우를 말하는데요.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례는 드라마 ‘응답하라 1997’ 주인공 성시원입니다. HOT의 열혈 팬 출신 방송작가로 등장했죠.

한국폴리텍대학 익산캠퍼스 컴퓨터응용기계과 양진호 교수를 만나봤는데요. 양 교수는 1995년 국제기능올림픽 기계설계 캐드(CAD) 종목 금메달리스트이기도 합니다. 누구보다 ‘덕업일치’에 공감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고개를 내저었습니다. 양 교수가 그동안 고민해 온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습니다.

<영상으로 내용 바로 확인>

◇계획적인 간절함은 불안하지 않다

기계설계 캐드(CAD) 종목은 1993년까지 10연패를 기록했던 종목이다. /인터뷰로그 6-2화 캡처

영지) 간절함을 가장 큰 동력으로 삼았다고 하셨는데요. 얼마나 간절했기에 국제기능올림픽에서 금메달까지 딸 수 있었을까 싶더라고요. 무엇이 교수님을 그렇게 간절하게 만들었나요?

진호) “제가 기계설계 캐드(CAD) 종목으로 출전했던 때가 1995년이었는데요. 직전 대회인 1993년까지 10연패를 기록했던 종목입니다. 제가 11연패를 달성할 차례였죠. 그런데 만약 금메달을 못 따면 나라의 역적이 될 것 같더군요. 그런 간절함으로 국가대표 합숙 훈련을 할 때 새벽에 일어나서 새벽에 잠드는 생활을 했습니다.”

양 교수는 스스로 의지력이 약하고 쑥쓰러움이 많은 편이라고 했다. 이를 이용해 간절함을 끌어올렸다. /인터뷰로그 6-2화 캡처
양 교수도 막연함과 불안함으로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인터뷰로그 6-2화 캡처

영지) 의지력이 대단하시네요.

진호) “사실 그 반대입니다. 의지력이 약하고 쑥스러움도 잘 타는 수줍은 성격이에요. 이런 성격을 이용했습니다. 주변 사람들한테 ‘나 이번에 금메달 딸 거야’라고 떠벌리고 다녔어요. 그렇게 얘기하고 다녔는데 못 하면 얼마나 창피하겠어요? 그 창피함을 모면하려면 열심히 노력할 수밖에 없었죠.”

영지) 제가 취업 준비를 할 때 가장 힘들었던 건 ‘막연함’이었습니다. 누군가 ‘2년만 노력하면 무조건 성공할 거야’라고 말해줬으면 싶었죠. 3년이 될지 4년이 될지 모르는 취업 준비 기간이 저를 더 지치게 했던 것 같아요. 그런 막연함으로 인한 불안함은 없었나요?

진호)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일 겁니다. 그나마 저를 지탱했던 건 스스로와의 약속이었습니다. ‘될 때까지 한다’가 아니었어요. ‘내가 정한 3년이란 기간 동안 미친 듯이 해보겠다’는 마음가짐이었죠. 3년간 죽어라 달려들었는데도 목표에 다다르지 못했다면 나와 맞지 않는 길이란 뜻입니다. 3년이 지났다면 시간을 더 끌 것 없이 그와 관련된 다른 일을 찾으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좀 더 자세한 답변 영상으로 확인>

◇‘덕업일치’는 행복할까?

영지) MZ세대 사이에서 ‘덕업일치’라는 말이 유행입니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다는 뜻이죠. 덕업일치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진호)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건 큰 행운이죠. 하지만 덕업일치를 성공의 척도로 여길 순 없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과 과정을 따라 공부를 하고 직장에 취직합니다. 스마트폰을 만들고 싶어서 삼성전자에 들어간다거나 자동차를 만들고 싶어서 현대자동차에 들어가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그렇다고 해서 그런 사람들이 ‘실패’했다고 볼 순 없죠. 성공의 모습은 다양하니까요. 열심히 일한 만큼 성과를 인정받고 행복하고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고 있다면 누구보다 성공한 삶이 아닐까요.”

MZ세대 사이에서 ‘덕업일치’라는 말이 유행이다. /인터뷰로그 6-2화 캡처
장기적인 안목으로 봤을 때 당장 즐거운 일보다 생산성이 있는 일을 먼저 찾는 것이 더욱 합리적이다. /인터뷰로그 6-2화 캡처

영지) 사실 저는 ‘덕업일치’를 이뤘다고 생각해요. 중학생 때부터 방송과 관련한 일을 꿈꿨습니다. 국어 시간에 선생님이 무작위로 고른 출석번호 학생이 책을 읽어야 했는데 제 번호가 불리기만을 바랐어요.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걸 좋아한다는 걸 비교적 일찍 깨달았고 지금 하는 일에도 만족합니다.

진호) “어쩌면 ‘잘할 수 있는 일’을 선택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어져 온 걸지도 모릅니다. 잘하는 일을 더욱 잘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 칭찬을 받고, 그런 기억들이 쌓여 ‘즐기는 일’이 된 것이라는 뜻이죠. 반대가 되면 조금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가령 정말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40대가 됐을 때 그 일이 망한다면 어떨까요? 그때부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게 되고 지난 선택을 후회하기도 하겠죠. 장기적인 안목으로 봤을 때 당장 즐거운 일보다 생산성이 있는 일을 먼저 찾는 것이 더욱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양진호 교수의 육성 영상으로 확인>

한국폴리텍대학 익산캠퍼스 내부 공간을 설명하는 양 교수(왼쪽). /인터뷰로그 6-2화 캡처

영지) 덕업일치에 다소 회의적인 데 반해 정작 교수님은 기계설계 분야에 있어서 이미 덕업일치를 한 것처럼 보이는데요.

진호) “결과론적으로는 그렇다고 볼 수 있죠. 하지만 처음부터 기계설계를 좋아했던 건 아니에요. 도면이 뭔지도 모르는 상태로 시작했지만 잘하려고 노력했고 그 노력 덕분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잘한다’ 소리 들으니 ‘재미’는 그냥 따라오더군요.

지금 학생들에게 설계 교과를 가르칠 때 스스로 정말 뿌듯합니다. 내가 가진 지식을 풀어내고 학생들과 소통하는 과정이 정말 재미있어요. 뭐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 같아요. 잘하게 되니까 좋아하는 일이 되고 결국엔 즐길 수 있는 일까지 됐습니다. 저에게 있어 덕업일치는 ‘과정’이라기보다 ‘결과’로 보는 게 더 정확하겠네요.”

/이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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