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8년 전 투명망토 개발해 화제 됐던 연세대생의 근황

더 비비드 2024. 6. 28. 09:23
사업 실패로 주저앉을 뻔했던 기계공학박사의 창업기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신동혁 대표는 메타물질을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하겠다며 스타트업 메타맵을 세웠다. /더비비드

영화 ‘해리포터’를 본 사람이라면 투명망토의 매력에 한 번쯤 빠졌을 것이다. 주인공 해리포터가 목까지 투명망토를 두르고 걸어 다닐 때 머리만 둥둥 떠다니는 장면을 보면 투명망토를 가져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다.

투명망토가 실제로 있다면 어떨까? 초등학생에게나 할 법한 질문이 결코 아니다. 2014년 연세대학교 대학원 기계공학과 연구진이 메타물질(Metamaterial)을 이용해 물체의 형태와 관계없이 덮기만 하면 보이지 않게 만드는 투명망토를 개발했다. 메타물질은 자연에서 존재한다는 증거는 있으나, 아직 발견되지 않은 특성을 가지도록 인공적으로 설계된 물질을 말한다.

메타맵 신동혁 대표(38)는 투명망토 연구의 핵심 연구진이었다. 메타물질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보고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하겠다며 스타트업 메타맵을 세웠다. 전공 분야를 파고들며 발자국 센서, 초음파 핸드드라이어에 이어 자외선 살균기 유브렐라(UVRELLA)를 개발했다. 공부가 제일 쉽고 사업이 제일 어렵다는 신 대표에게 사업을 꾸려온 이야기를 들었다.

◇투명망토를 전투기에 씌우면

신 대표는 2003년 연세대학교 기계공학과에 입학한 이후 같은 전공으로 15년간 공부했다. /신동혁 대표 제공

평생 연구만 하고 살 운명인가 싶었다. 신 대표는 2003년 연세대학교 기계공학과에 입학한 이후 같은 전공으로 15년간 공부했다. 그 사이 석·박사 학위까지 취득했다. “대학을 졸업했을 때 주변 친구들은 대기업·조선사에 많이 취업했습니다. 하지만 전 공부할 게 남았다고 생각했어요. 기왕 시작한 공부, 매듭을 짓고 싶어서 학교에 남았죠.”

주 연구 대상은 ‘메타물질(Metamaterial) 변환 광학’이었다. 메타는 그리스어로 ‘뒤에’, ‘넘어서’를 뜻한다. 메타물질은 말 그대로 ‘물질을 넘어선 물질’이라는 뜻으로 아직 자연에서 발견되지 않은 특성을 가지도록 인공적으로 설계된 물질을 말한다. “흰색 줄과 검은색 줄이 교차된 체크무늬를 멀리서 보면 회색으로 보이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우리 눈은 물체에 부딪혀 반사되는 빛으로 물체를 알아보는데요. 특정 물질을 빛의 파장인 700㎚(나노미터)보다 더 작은 구조로 만들면 새로운 물성을 만들 수 있습니다.”

‘스마트 메타물질 변환 광학’이라는 논문을 내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YTN 뉴스 캡처

2014년 2월 메타물질을 이용한 투명망토를 개발해 TV 뉴스에도 출연했다. “투명망토라고 하면 해리포터에 나오는 망토를 상상할 텐데요. 우리 연구팀은 국방과학 분야에서 전투기가 적의 추적을 피할 수 있도록 하는 스텔스 기능을 연구했습니다. 이런 내용으로 ‘스마트 메타물질 변환 광학’이라는 논문을 내 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막상 학교를 벗어나자 일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대학 창업지원단에서 주최한 창업설명회에서 새로운 경우의 수를 찾았습니다. 꼭 취업하지 않아도 내 회사를 만드는 방법도 있구나 싶었죠. 정부지원금을 받거나 외부에서 투자를 받아 참신한 제품을 개발하면 먹고살 만한 돈은 벌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99에서 다시 0으로

지도를 벗어나 새로운 길을 개척한다는 뜻으로 사명을 ‘메타맵(META-map)’이라 지었다. /신동혁 대표 제공

2019년 7월 지도를 벗어나 새로운 길을 개척한다는 뜻으로 ‘메타맵(META-map)’을 세웠다. 그동안 연구한 메타물질 변환 기술을 일상생활에 적용해 전에 없던 생활 가전제품을 개발하고 싶었다. 하지만 사업은 녹록지 않은 일이었다. “애써 딴 박사 학위가 여기선 종이 한 장에 불과하더군요. 15년을 공부했더라도 사업엔 일자무식이었으니까요."

첫 아이템은 발자국 센서였다. 발자국 소리로 사람의 위치를 파악해 화면을 통해 볼 수 있는 시스템을 고안해 2019년 중소벤처기업부 예비창업패키지에 선정됐다. 여기서 지원금으로 받은 1억원은 센서 개발 단계에서 1년 만에 동났다. “자금이 없는 상태에서 연구를 이어갈 수 없었습니다. 좀 더 빠르게 상용화할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해 지원금을 더 받아보기로 했어요.”

(왼쪽부터) 에이빔과 2021년 한국전자전에 참가한 신동혁 대표. /메타맵

이듬해 초음파를 이용해 손의 물기를 제거하는 핸드드라이어 A-beam(에이빔)을 개발했다. “초음파가 만든 공기 그물을 통과할 때 손에 묻은 물을 잡아 분리하는 원리입니다. 바람이 아닌 비가청영역 초음파(4㎑)를 쓰기 때문에 소음이 없고 물기가 주변으로 튀지도 않죠. 2020년 6월 초기창업패키지에 선발됐고 시제품을 만들어 2021 KES(한국전자전)에참가했어요.”

에이빔 출시가 초읽기에 들어간 듯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그를 벼랑 끝으로 몰아냈다. “거의 다 왔다 싶었던 순간 다시 0으로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개발자로 일하던 한 직원이 겸업 일거리를 회사에 가져와 작업한다는 사실을 알게 돼 지적했더니, 컴퓨터를 포맷하고 잠수를 탔어요. 6개월간의 작업물이 모두 다 사라져버렸죠. 복구할 방법을 수소문했지만 헛수고였어요.”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분명 위기였습니다. 그럴 때일수록 지난 과정을 돌이켜보며 재기할 방법을 찾아내야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동안은 ‘투자’에 너무 매몰돼 있었더군요. 투자받기 좋은 아이템을 개발하기 급급했죠. 실제 소비자들의 마음을 얻는 것에 더 집중해보기로 했습니다. 기존에 있는 제품 중 부족한 부분을 찾아 변형을 주거나 나만의 포인트를 하나 더해보자고 다짐했어요.”

◇15년 공부한 것, 어디 안 간다

식당에서 컵·수저 살균을 위해 흔히 쓰는 살균기를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 자외선 살균기 제품 시장 조사에 돌입했다. /메타맵

2022년 1월 투명망토 연구의 핵심이었던 ‘광학’으로 다시 돌아갔다. “식당에서 컵·수저 살균을 위해 흔히 쓰는 자외선 살균기가 눈에 띄었습니다. 햇살 좋은 날 마당에 이불을 널어두는 것과 같은 효과일 것이라 짐작했지만 정작 그 살균기에 이불을 넣을 순 없겠다 싶었죠. 다른 자외선 살균기 제품에 대한 시장 조사에 돌입했습니다.”

자외선은 빛의 파장에 따라 크게 세 종류로 나뉜다. 파장이 긴 순서대로 A, B, C 알파벳이 붙는다. UV-A나 UV-B에도 살균 효과는 있지만 그 정도가 워낙 미미해 수 시간을 쬐어야 한다. UV-C는 가장 강력한 자외선으로 10분 이내에 박테리아·세균을 죽이고 비교적 큰 곰팡이·진드기도 20분이면 충분히 박멸할 수 있다. 단 사람의 눈이나 피부에 해로워 안전장치를 충분히 갖춰야 한다. 2020년 한국소비자원은 자외선(UV) 살균제품 안전실태조사 보고서를 통해 UV 살균기 25개 중 22개(88%) 제품이 살균효과가 없거나 위험성이 높다고 발표했다.

UV 살균기 25개 중 22개(88%) 제품이 살균효과가 없거나 위험성이 높다. /한국소비자원 보고서 캡처

“모자라지도 과하지도 않은 자외선이 나오는 제품을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실제로 금속탐지기처럼 한 손에 들고 쓰는 제품을 사 써봤더니 이불 하나 살균하려면 몇 시간 동안 들고 있어야 하더군요. 한 캠핑용 자외선 살균기는 강력한 UV-C를 뿜어내는데 안전장치가 없어 전원을 켜면 30초 안에 사용자가 그 공간에서 도망가야 하는 제품이었습니다.”

연구했던 투명망토처럼 물체를 감싸는 방식을 찾아야 했다. 우산을 뒤집어보기로 했다. 광범위한 면적을 한 번에 살균하면서도 주변 공간과 분리해 안전성을 갖추기 위해 떠올린 디자인이다. 이름은 유브렐라(UVRELLA). “우산 손잡이 부분에 작동버튼을 두기로 했어요. 유브렐라를 펼쳤을 때 생기는 돔 가장 안쪽에 UV-C 램프를 장착하고 유브렐라가 옆으로 넘어지면 자동으로 꺼지도록 설계했습니다.”

유브렐라가 옆으로 넘어지면 UV-C 램프가 자동으로 꺼지도록 설계했다. /메타맵

자외선 살균은 세균과의 속도전이다. “박테리아·세균은 20~30분 사이에 2배로 증식합니다. 세균 증식 속도보다 빨리 죽여야 하는 것이죠. 이 때문에 UV-C 램프를 LED가 아닌 석영으로 제작했습니다. LED는 거리가 멀어질수록 살균효과가 떨어지는 반면 석영은 광선 투과율이 90% 이상이라 거리에 따른 효과 차이가 미미해요. 석영 하나가 발휘하는 에너지가 4W(와트)로 LED(0.1W)의 40배 수준이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었죠.”

안전에 만전을 기했다. 석영 램프가 깨지지 않도록 램프 갓이 천에 닿지 않는 피라미드 형태로 디자인했다. 설사 램프가 깨지더라도 유리·수인 등이 유출될 위험은 없다. “스마트폰 강화유리 액정필름 중 비싼 제품은 필름이 깨지더라도 유리 파편이 튀지 않도록 가공처리가 돼 있어요. 유브렐라에 들어간 석영램프도 같은 원리로 파편이 튀지 않게 처리 했습니다.”

우산을 펼치듯 유브렐라를 펼쳐 살균을 원하는 곳 위에 씌우면 된다. /메타맵

사용방법은 간단하다. 우산을 펼치듯 유브렐라를 펼쳐 살균을 원하는 곳 위에 씌우고 손잡이에 달린 타이머로 5분·10분·20분 등 시간을 설정하면 끝이다. 설정해둔 시간이 지나면 UV-C 램프는 자동으로 꺼진다. 침대·매트리스·장난감·주방 식기·신발 등에 번식하는 박테리아·세균·곰팡이·진드기 등을 10~20분 만에 90% 이상 사라지게 한다. 사용하지 않을 때는 접어 한쪽에 세워 보관할 수 있다.

올해 8월 유브렐라 판매를 시작했다. 기본 구성인 싱글 살균 케어 세트가 10만원 후반대다. “처음엔 10만원에 팔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유브렐라를 만들 때 안전 기준을 보수적으로 잡다보니 단가가 자꾸 높아지더군요. 가령 천 하나에 2000원이면 될 줄 알았는데 텐트에 쓰일 정도로 튼튼한 재질로 제작하니 1만5000원으로 훌쩍 뛰어서 지금 판매가격이 됐죠.”

◇타협에도 순기능이 있다

메타맵은 2020년 9월 은행권 청년창업재단(디캠프) 창업경진대회(디데이)에서 최종발표 6팀 중 한 팀으로 선발됐다. /더비비드

메타맵은 2020년 9월 은행권 청년창업재단(디캠프) 창업경진대회(디데이)에서 최종발표 6팀 중 한 팀으로 선발됐다. 당시 주력했던 제품은 초음파 핸드드라이어 A-beam(에이빔)이었다. “에이빔을 그저 지나간 제품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같은 기술로 얼마든지 새로운 제품을 개발할 수 있기 때문이죠. 핸드드라이기보다 좁은 범위의 초음파를 쏘는 헤어드라이기 제품도 계속 개발 중입니다.”

‘타협’이 때론 꼭 필요하단 사실을 이젠 받아들일 때가 됐다. “연구원 출신이다 보니 목적에 부합하는 결과물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게 있었어요. 그런 강박 때문에 ‘99.9% 살균’에 치중했더니 전압이 높아져 화재 위험성이 커지더군요. 파장이 잦은 AC(교류) 대신 전류가 일정하게 흐르는 DC(직류)로 변환하거나, 자외선 양을 줄이고 사용시간을 5분 정도 늘리는 방법으로 타협점을 찾고 있습니다.”

신 대표는 언젠가 마법같은 제품을 만들고픈 꿈을 품고 있다. /더비비드

언젠가 마법같은 제품을 만들고픈 꿈을 품고 있다. “해리포터 투명망토를 개발했던 것처럼 공중 부양을 활용한 물건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초음파 핸드드라이기 에이빔을 만들 때 떠올린 아이디어인데요. 초음파는 물질을 뚫거나 띄우거나 전달하는 등 활용 가능성이 높습니다. 거창한 것보다 소소하게 어린이용 장난감부터 만들어보려고요.”

/이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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