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5분 짜리 유튜브 하나 만드는 데 얼마나 많은 대화가 오가게요?”

더 비비드 2024. 6. 27.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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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콘텐츠 협업 툴 개발한 한국 스타트업

단 5분 짜리 영상  만드는 데도 수십 수백 건의 피드백이 오간다. 하나 하나 모두 소중하다. 그러나 효율적으로 반영되는 경우는 드물다. 꼭 하나 둘씩 빼먹어 수정을 재차 요구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영상 제작업체에서 이런 상황을 15년 간 봐온 사람이 있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며 회사까지 차렸다. 영상 콘텐츠 협업 툴을 개발한 브라이튼(BRIGHTN)의 정재헌 대표(43)를 만났다.

◇영상 최종본 최종의 최종.mp4

영상 제작 효율성을 끌어올린 '윕샷'을 개발한 정재헌 브라이튼 대표. /더비비드

브라이튼은 영상이나 사진을 수정할 때 편리하게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업무 협업 도구 ‘윕샷(wipshot)’을 개발했다. 윕샷을 이용하면 동영상이나 사진에 직접 내용을 표시하면서 피드백을 남기고 팀원들과 공유할 수 있다. 콘텐츠를 제작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소통 오류를 바로잡아 업무 효율을 극대화했다.

정 대표는 홍익대 멀티미디어디자인과 98학번이다. “인터넷 문화가 막 태동하던 시기였어요. 인쇄물로 보던 글, 라디오로 듣던 음악, 비디오테이프로 보던 영상을 디지털을 통해 접하기 시작했죠. 멀티미디어의 시대가 열린 겁니다.”

윕샷으로 영상 피드백을 주고 받는 모습. /정재헌 대표 제공

2004년 대학 졸업과 함께 광고 프로덕션 회사인 서울비전에 입사했다. 촬영해 온 영상에 컴퓨터 그래픽을 입히는 일을 했다. 5년 뒤인 2009년 로커스라는 영상 제작업체로 이직했다. 맡은 일은 그래픽 디자인이 아닌 프로듀싱이었다.

프로듀서가 하는 일은 소통이다. “영상 만드는 데 고객사, 제작자, 촬영 스탭 등 수많은 사람이 참여하는데요. 그만큼 다양한 의견이 나옵니다. 의견이 많은 건 좋아요. 정리가 안 되는 게 문제죠. 프로듀서가 그 중재를 맡아야 합니다.”

짧은 영상이라고 빨리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5~10분 내외의 영상 콘텐츠를 완성시키기 위해 많게는 수 십번의 버전이 만들어집니다. 클라이언트, 그래픽 디자이너, 담당PD 등 영상 제작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각 버전을 확인할 때마다 피드백을 주고받죠. 분초단위로 메모장에 기록합니다. ‘몇분 몇초에 화면 색감을 더 따뜻하게 해야한다’, ‘몇분 몇초에 배경이 더 흐려져야한다’는 식으로요.”

로커스에서 CG 슈퍼바이저로 일할 때 모습. 사진은 미국 유니버셜 스튜디오다. /정재헌 대표 제공

다 완성됐다고 생각했던 결과물에 오류가 그대로 남은 경우가 꽤 잦았다.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오류라면 몰라도, 이미 피드백했던 부분이 수정되지 않은 경우라면 무척이나 답답하더군요. 이런 일이 반복되다보니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게 아니라, 구조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로운 업무 시스템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집을 담당하는 사람이 실수할래야 실수할 수 없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하는 거죠. 각 수정본을 공유할 때마다 이메일로 수백MB짜리 영상을 업로드하고 다운받야 하는 일련의 과정도 너무 비효율적이었습니다. 콘텐츠 산업에 몸 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소통 시스템을 만들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눈이 번쩍 뜨일 거예요

로커스에서 CG 슈퍼바이저로 일할 때 모습. 영화 '변호인' 촬영 현장에서 정 대표 모습이다. /정재헌 대표 제공

2019년 2월 사표를 쓰고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퇴직금 외에 그동안 모아둔 돈을 끌어모아 3억원을 마련했다. 초기 목표는 O2O플랫폼을 만드는 것이었다. “O2O는 온라인(online)과 오프라인(offline)의 결합을 말하는데요. 곧 생각을 다시 했습니다. 영상 제작 현장에서 오프라인의 영역이 갈수록 축소되고 있다는 점에서, O2O플랫폼보다 온라인 소통채널을 개발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간단해보이는 이 결정을 내리기 위해 7~8개월을 고민했죠.”

2019년 11월 정식으로 회사를 설립했다. 사명은 브라이튼(BRIGHTN). 밝아진다는 뜻의 영어 ‘brighten’에서 ‘e’만 뺀 것이다. IT 기술을 활용해 콘텐츠 산업이 더 밝아지도록 만들겠다는 포부를 담았다. “일 자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서 더 명료하게 볼 수 있도록 돕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기술을 적절히 활용하면 업무 강도를 얼마든지 낮출 수 있을거란 확신이 있었죠.”

2021년 6월 '넥스트라이즈(Nextrise) 2022 서울' 참가기업으로 선정돼 코엑스에 부스를 차렸다. /정재헌 대표 제공

2020년 7월 윕샷의 초기 모델이 나왔다. 창업 8개월 만이다. “개발 과정에서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린 일은 소프트웨어를 웹으로 구현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쉽게 생각하자면 포토샵이나 일러스트처럼 프로그램이 설치돼야 구동하던 것을 웹만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인데요. 영상을 온라인으로 빠르게 공유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웹을 고집할 수밖에 없었죠.”

윕샷은 팀 또는 프로젝트 단위로 이용할 수 있다. 주 담당자가 계정을 만들어 팀원을 초대하는 방식이다. 클라우드 방식으로 영상·사진 등의 파일이 저장돼 팀원 모두에게 공유된다. 통합된 비디오 허브에 영상이 업로드되면 팀원 누구나 코멘트를 남길 수 있다. 화면에 직접 그림을 그려가며 기록할 수도 있다. 이 모든 과정은 초 단위가 아닌 프레임 단위로 이루어진다.

윕샷의 가장 큰 장점은 사용성이다. “영상 편집 담당자가 클릭 한 번을 하더라도 언제 어떤 화면에서 주로 어떤 버튼을 클릭하는지 저는 줄줄 꿰고 있습니다. 영상 제작 회사에서 15년간 일하면서 영상이 어떤 과정으로 만들어지는지 몸소 경험했기 때문이죠. 그 경험을 그대로 녹여 만든 툴이 바로 윕샷입니다.”

윕샷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정 대표. /더비비드

대표 기능이 코멘트 정렬 방식과 확인 버튼이다. “코멘트를 생성한 시간 순서와 비디오 시간 순서 두가지 방식으로 정렬할 수 있게 했습니다. 그리고 코멘트 오른편에 확인 버튼을 배치했어요. 편집자가 해당 피드백을 반영했다면 그 버튼을 눌러 수정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윕샷은 네 종류의 회원제가 있다. 글로우, 스파크, 플레임, 블레이즈 등으로 회원제가 높아질수록 저장용량이 커지고, 코멘트를 남길 리뷰어를 많이 초대할 수 있다. 가장 많이 이용하는 버전은 '스파크'로 업로드할 수 있는 파일은 무제한이고 저장용량은 500GB까지다. 영상을 외부로 공유할 때 비밀번호를 설정할 수 있도록 해 보안까지 신경 썼다.

윕샷 서비스 화면 모습. /정재현 대표 제공

이용자의 반응을 확인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일정 기간 이상 사용한 고객사를 찾아가 인터뷰를 요청했어요. 어떤 기능을 가장 자주 쓰는지, 불편한 점은 없는지 등을 물었죠. 덕분에 뜻밖의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윕샷은 애니메이션·광고 등 전문 영상 제작자를 타깃으로 만든 서비스였는데 마케팅·홍보를 목적으로 영상 콘텐츠를 만드는 팀에서 만족도가 더 높았어요. 내심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죠.”

새로운 관점이 보였다. “오히려 타깃층이 더 넓어지는 셈이더군요. 영상과 아무 상관이 없는 기업들도 저마다 유튜브 채널 하나쯤은 운영하는 시대가 됐으니까요. 가령 현대건설에서 과거에는 보도자료를 통해 회사를 소개했다면 최근엔 ‘매거진H’라는 유튜브 채널에 재건축·재개발 같은 주제로 영상을 올립니다. 영상 하나가 올라가기까지 기획자, 마케터, PD, 편집자 등 수많은 사람의 손을 거친다는 점에서 윕샷의 경쟁력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현대건설·사람인도 쓰는 영상 협업 툴

브라이튼은 2022년 하반기 아산나눔재단 창업지원센터 '마루360'에 입주했다. /더비비드

1년 넘게 윕샷을 꾸준히 쓰고 있는 고객사의 특징은 ‘기업의 소셜마케팅팀’이라는 점이다. 홍보대행사 ‘커뮤니크’, 채용 플랫폼 사람인에서 콘텐츠를 만드는 SMC팀이 대표적이다. 보통 10명 내외로 구성된 팀별로 구독한다. “최근 한 증권사는 주식 시황을 영상으로 만들겠다며 윕샷을 구독하기도 했어요.”

2022년 하반기 아산나눔재단 창업지원센터 ‘마루360’에 입주했다. “스타트업이 모여있는 이곳이 제겐 아이디어 창고 같아요. 영상 콘텐츠를 활용해서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스타트업이 많습니다. 스페이스웨이비, 뉴즈 등 다른 입주사들에게 먼저 미팅을 요청해서 어떤 영상을 만드는지, 영상을 제작할 때 가장 큰 어려움은 뭔지 등을 물어보곤 합니다. 창업 이후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은 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러 다니는 일입니다. 늘 그 속에 정답이 있더군요.”

/이영지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