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구매, 관리, 판매를 책임지는 하나의 플랫폼 차봇모빌리티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운전면허만 따면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끝이 아니다. 자동차 보험을 가입했다고 해도 운전자 보험을 따로 들어야 한다. 중고차를 살 때는 생각지 못했던 취득세가 더해져 예산을 초과하기 십상이다. 신차를 산다면 고민은 더 깊어진다. 블랙박스, 외장재 코팅 등 옵션을 지원해준다는 딜러가 있는가 하면 옵션 없이 현금으로 100만원을 준다는 딜러가 있다. 뭘 선택해도 후회할 것만 같다.
자동차는 정보의 불균형이 무척 심한 분야다. 폭스바겐 판매왕 출신 차봇모빌리티 강성근 대표(40)는 소비자들의 고민을 십분 이해한다. 3년간 3000명이 넘는 고객을 만나면서 같은 얘기를 숱하게 들었다. 그 목소리를 동력 삼아 창업에 뛰어들었다. 2022년 9월 자동차 관리 앱 ‘차봇’을 개발했다. 차량 구매, 타던 차 판매 등 모든 일을 할 수 있다.
강성근 대표는 자동차에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가서 하루 15시간 버스 운전을 했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폭스바겐 영업직으로 입사해 이듬해 판매왕에 올랐다. 자동차 딜러 경력을 살려 딜러를 위한 보험·금융 서비스를 중심으로 사업을 키워왔다. 이제는 ‘운전자’의 손발이 되고 싶다는 강 대표를 만났다.
◇연말 시상식이 기다려지던 자동차 딜러
어릴 적부터 장사에 소질이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는 반에서 열린 바자회에서 제일 많은 물건을 팔았고 4학년 땐 ‘뽑기’를 만들어 친구들을 상대로 영업을 했다. “커다란 마분지에 1등·2등·3등과 ‘꽝’을 무작위로 섞어넣고 친구들이 좋아할 만한 상품을 내걸었어요. 한 번 뽑는 데 50원을 받았죠. 선생님께 들켜서 된통 혼났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2002년 총신대학교에 입학했다. “경영학과에 가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뜻에 따라 기독교교육과로 진학했어요. 원하던 진로가 아니었기에 1년간 학교에 가는 둥 마는 둥하며 학사경고까지 받았죠. 이듬해 휴학을 하고 일할 곳을 찾았습니다. 스카이라이프 강남지사 영업직이었는데요. 고급 주상복합아파트를 돌아다니며 위성방송에서만 HD화질이 나온다고 영업했어요. 한 달에 250만~300만원씩 벌었죠.”
‘그래도 졸업은 해야지’란 생각에 학교로 돌아갔다. 교생 실습을 마치고 교원 자격증도 받았다. “그 사이 결혼해 가정을 꾸렸어요. 도서관에 앉아 공부를 하다가 갑자기 ‘새로운 환경에 가면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겠다’ 싶더군요. 고민이 길어질수록 결심만 어려워질 것 같았습니다.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가기로 결심하고는 바로 행동으로 옮겼어요. 2012년 12월28일 25인승 1종 대형면허를 취득하고 31일 아내와 함께 호주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하루 14~16시간씩 운전대를 잡았다. 아내와의 세계 일주를 꿈꾸며 기업의 출·퇴근 버스와 마을 무료 버스, 쇼핑몰 셔틀버스까지 닥치는대로 몰았다. 오래 가지 못했다. “인생이 계획대로 흘러가는 법이 없더군요. 아내가 임신하면서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그간 모은 돈 대부분은 호주에서 병원비로 써야 했습니다. 간단한 초음파 한 번에 200달러가 넘더군요. 하던 일을 정리하고 2013년 8월 한국에 입국해 9월에 첫째를 품에 안았습니다.”
마냥 행복할 수 없었다. 가장의 책임감이 어깨를 짓눌렀다. “막연히 자동차 관련 사업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일단 경험을 쌓는 게 우선이라 판단했어요. 적성을 살려 폭스바겐 영업직으로 입사했습니다. 첫 달 실적은 바닥이었어요. 고민 끝에 인터넷 카페에 저를 소개하는 장문의 글을 남겼습니다. 그렇게 연이 닿은 고객에게 차를 팔고선 꽃다발과 함께 두 장짜리 손 편지를 드렸죠. 그 다음달엔 10대를 팔았습니다. 사장님이 여는 조찬모임에 초대받을 정도의 실적이었어요.”
성과급으로 받은 500만원을 재투자했다. “영상 전문 감독에게 의뢰해 차를 소개하는 유튜브 영상을 제작했습니다. 경기 가평의 한 호숫가에 드론까지 띄워서 당시 최고화질 4K로 영상을 찍었죠. ‘강한 딜러의 카브리데이’라는 이름으로 영상을 업로드하고 이후 만나는 고객들마다 그 영상 링크를 먼저 보냈습니다.”
2014년 사내 신인상에 판매왕까지 휩쓸었다. 최연소 팀장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2016년 폭스바겐과 이별해야 했다. “폭스바겐의 배기가스 조작 사건이 드러났습니다. 진심을 다해 차를 소개하고 판매했기에 저 역시 배신감이 들었죠. 한편으로는 지금이 ‘사업 타이밍’이랑 생각도 들었습니다. 동료 7명을 모아 ‘우리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일을 해 보자’며 의기투합했습니다.”
◇자동차의 생애주기를 따라서
2016년 9월 본컨설팅네트웍스를 세웠다. 1억원으로 10평 남짓한 사무실을 얻고, 폐업한 카페에서 20만원에 가구를 들여왔다. “자동차 매장에서 하던 일을 그대로 사무실로 가져왔어요. 그간 고객들을 직접 만나 차를 소개했다면 이젠 온라인·전화를 통해 상담했죠. 고객의 예산과 필요 조건에 맞는 자동차를 찾아주고 계약까지 돕는 일이었습니다.”
사업은 여의치 않았다. “연락은 많이 왔지만 좀처럼 계약까지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은 고객 성향이 달랐습니다. 온라인에서 만나는 고객들은 쉽사리 구매 결정을 하지 못하더군요. 부가 옵션 등을 따졌을 때 최상의 조건을 제시해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더라고요.”
적자를 거듭하다 고객이 아닌 자동차 딜러를 위한 서비스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딜러로 일할 때 자동차 뿐만 아니라 고객에게 보험·금융 상품을 소개하는 일도 했는데요. 이런 딜러의 일을 도와주는 서비스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300명의 딜러들에게서 고객 명단을 받아 딜러 대신 전화를 돌렸습니다. 당시 비대면 보험 가입 상품인 ‘다이렉트 보험’이 시장에 풀리면서 고객들은 이전보다 25% 이상 저렴한 비용으로 보험에 가입할 수 있었어요.”
보험사와 금융사에서 받은 광고비로 수익을 내며 사업이 안정을 찾았다. 직원 급여와 마케팅 비용 등을 제한 영업이익률이 40%를 넘었다. 하지만 보험 서비스만 하는 회사로 남고 싶진 않았다. “처음부터 제 마음은 늘 ‘자동차’에 있었어요. 자동차를 사고, 타고, 다시 파는 과정까지 통합하는 플랫폼을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2019년 5월 회사명부터 손봤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 ‘카봇’을 변형해 ‘차봇’이라 지었다. ‘차봇 모빌리티’란 이름 아래 여러 서비스를 두기로 했다. 기존 보험 서비스에는 ‘차봇 인슈어런스(insurance)’란 이름을 붙였다. 연달아 차봇파이낸스, 차봇드라이버, 차봇모터스, 차봇파트너스 등 서비스를 만들었다. 각각 금융·운전자·신차·중고차 등을 담당하도록 했다. 예를 들어 차봇프라임은 신차 딜러가 고객 관리를 편리하게 할 수 있도록 돕는 앱이고, 차봇VIP는 자동차보험 설계사를 위한 고객 관리 앱이다.
B2B(기업 간 거래)를 중심으로 매출은 꾸준히 올랐다. 2020년 63억원, 2021년 105억원을 기록했다. “캐시카우(수익창출원)를 확보했으니 이제 진짜 운전자를 위한 서비스를 내놓을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차량 구입 뿐만 아니라 관리까지 할 수 있는 앱을 만들기로 했어요.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자동차 관련 서비스를 하나로 모으기로 했죠.”
2022년 9월 운전자를 위한 앱 ‘차봇’을 출시했다. “차계부(차+가계부)를 콘셉트로 잡았어요. 차량번호를 입력하면 주행기록, 지출내역 등의 정보를 통해 차량 점검 시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앱 안에서 차량 구매와 판매를 할 수 있고 보험금융 상품을 추천받을 수도 있죠. 방문세차나 방문정비 서비스 이용도 가능해요. 최근엔 렌터카 서비스도 추가했어요. 앱 정식 출시 이후 누적 다운로드 수는 10만회를 넘었습니다.”
◇일이 스트레스를 가져가는 지경
2022년 11월 중소벤처기업부는 차봇모빌리티를 ‘아기유니콘 200’으로 선정했다. 혁신적인 사업 모델과 성장성을 검증받은 것이다. 은행권청년창업재단 디캠프 올스타전에 참가하기도 했다. 차봇모빌리티가 운영하는 서비스의 전체 누적 이용자는 70만명을 넘었다. 작년 매출은 230억원에 달한다.
“제가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은 ‘일’입니다. 친구들에게 이런 소릴 했다간 분명 욕 한마디씩 들을 거예요. 창업한 이후로 새로운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카타르시스가 느껴져요. 지난 10월 영국 이네오스사의 오프로드 자동차 그레나디어의 한국 공식 수입사로 선정됐는데요. 올해부터 이 차를 온라인으로 판매할 생각을 하면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이런 전율을 한번 느껴본 이상 벗어날 수 없어요. 일에 단단히 중독됐습니다.”
차봇모빌리티를 ‘자동차와 함께하는 모든 순간을 다루는 모빌리티 플랫폼’으로 정의한다. “가끔 저희 회사가 정체성을 알 수 없다는 피드백을 듣습니다. 사업이 너무 많다는 뜻이죠. 그럴 땐 스마트폰을 빗대어 설명해요. 통화만 하던 휴대전화에 인터넷 기능이 더해지면서 식당 예약, 드라마 시청, 은행 업무 등 모든 일상이 스마트폰을 통하게 됐죠. 완전자율주행차가 도로를 달리는 세상은 모두의 상상을 뛰어넘을 겁니다. 그 세상에서 차봇모빌리티가 필수 앱이 되길 바라요.”
/이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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