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터뷰

전직원이 서울대 출신으로 구성된 회사가 하는 일

쇼핑몰 실시간 추천 서비스 '제트에이아이' 인터뷰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스타트업 제트에이아이(Z.Ai)의 이지혁·설형욱 공동대표. /더비비드

“이런 상품은 어때요?”​

온라인 쇼핑몰을 둘러보다 맘에 드는 셔츠를 봤다. 사기 위해 장바구니에 담았더니, 비슷한 상품을 추천하는 안내창이 떴다. 비슷한 색·소재의 셔츠와 그에 어울리는 하의가 안내돼 있었다. 셔츠 한 장 살 생각이었는데, 장바구니가 금세 가득 찼다. ‘10만원 이상 구매 시 무료배송’이란 조건을 가뿐히 넘어 버렸다.​

전자제품 전문몰 테스트밸리, 여성 패션 쇼핑앱 브랜디, 중고 명품 쇼핑앱 카멜 등 15곳에서 이러한 실시간 추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들 커머스 플랫폼은 인공지능 개인화 추천 솔루션 자이(Z.Ai)를 이용하면서부터 구매 전환율이 20~30%씩 상승했다. 자이를 개발한 스타트업 제트에이아이(Z.Ai)의 동갑내기 창업자 이지혁·설형욱(25) 공동대표를 만나 창업 스토리를 들었다. ​

◇달라서 잘 보였던 서로의 장점

대학 재학 시절 설형욱 대표. 16학번 학술 동아리에서 이지혁 대표를 만났다. /설형욱 대표 제공

두 사람은 서울대학교 16학번 동기다. 새내기를 위한 문화예술 학술 동아리에서 처음 만났다. 학술을 핑계로 친목 도모의 장이 만들어졌다. 그때부터 둘은 언제든 부르면 달려오는 친구 사이가 됐다. 경제학 전공인 이 대표와 컴퓨터공학 전공인 설 대표는 서로를 늘 흥미로운 대상으로 봤다. 달라도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 ‘문·이과의 차이’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한가.​

(이지혁 대표, 이하 이) “진로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달랐어요. 전 처음부터 취업보다 창업에 관심을 뒀습니다. 직원 30~40명 규모의 IT 회사를 운영하시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죠. 반면에 설 대표는 학자를 꿈꿨습니다. 미국 유학을 준비하고 영어로 논문을 써 내려가는 모습이 대단해 보였지만 한편으로는 아깝더군요. 저 능력으로 새로운 서비스나 재화를 만든다면 어떨까 싶었죠.”​

(설형욱 대표, 이하 설) “2년 전부터 이 대표가 ‘네 능력이 아깝다’는 둥 ‘5년 안에 100억원을 벌게 해 주겠다’는 둥 이상한 소리를 하더군요. 처음엔 코웃음 치며 흘려들었는데 점점 이야기가 구체화됐습니다. 몇 개월 안에 어떤 서비스를 만들어서, 어떻게 고객을 늘려나갈 것인지 얘기하는 이 대표의 말에 점점 끌렸죠. ‘1년만 눈 딱 감고 일탈해보자’는 생각으로 계획에 동참했습니다.”

이지혁 대표는 스타트업 카멜에서 인턴 생활을 하면서 유저를 위한 실시간 제품 추천 소프트웨어의 필요성을 느꼈다. /이지혁 대표 제공

- 창업 아이템은 어떻게 찾았나.​

(이) “일단 스타트업 카멜에서 인턴 생활을 했어요. ‘추천’이라는 단어에 꽂혔습니다. 카멜은 중고 명품 쇼핑앱인데요. 유저 개개인을 위한 제품을 실시간으로 추천해주는 소프트웨어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마침 설 대표가 페이스북 추천 시스템의 알고리즘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기에 인공지능 기반의 ‘추천’ 시스템을 함께 만들어보자고 제안했죠.” ​

- 어떻게 개발했나.​

(설) “2021년 11월 초, 아직 아이디어만 있는 상황에서 대뜸 이 대표가 카멜 대표님을 만나고 오겠다더군요. 카멜과 PoC(Proof of concept)를 하기로 했다며 소프트웨어를 3주 안에 만들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3주간 자취방을 사무실 삼아 밤샘 작업을 했죠.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듯 코드를 작성하고 설명을 워드 문서로 기록하는 일의 반복이었습니다.”​

PoC(개념증명)란 새로운 프로젝트의 실현 가능성을 가늠해보기 위해 기술적인 관점에서부터 검증하는 과정을 말한다. 두 사람이 개발한 개인화 추천 시스템의 프로토타입(시제품)을 카멜 앱에 적용해보고 유저의 반응을 관찰했다. 기존에 쓰던 단순 알고리즘 기반의 추천 시스템과 비교해 상품 클릭률이 15% 이상 올랐다.​

(이) “이제 와 돌이켜보면 조악하기 그지 없었지만 용기를 얻기에는 충분했습니다. 프로토타입에서는 하나하나 사람의 손이 필요했지만 앞으로는 인공지능(AI)이 스스로 학습해 실시간으로 추천해주는 시스템을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전문가 없이 전문가처럼

설형욱 대표가 노트북 모니터를 가리키며 제트에이아이의 작동 시스템을 설명하고 있다. /더비비드

2021년 12월 제트에이아이(Z.Ai)라는 이름으로 법인을 설립했다. AI(인공지능)를 좋아하는 Z세대라는 뜻이다. 유저를 위한 추천 시스템을 기본 틀로 가져가되 머신러닝(Machine Learning)·딥러닝(Deep Learning) 기술을 최대한 활용하기로 했다. 머신러닝은 컴퓨터가 자가 학습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을 뜻한다. 딥러닝은 컴퓨터가 예시를 통해 학습하도록 가르치는 머신 러닝 기법이다. 6개월 만에 개발을 마치고 이듬해 7월 자이(ZAi) 정식 서비스를 시작했다.​

- 머신러닝·딥러닝 기술을 어떻게 활용했나.​

(설) “쉽게 말해 컴퓨터가 유저 개개인이 어떤 사람인지 실시간 공부하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유저가 몇 시 몇 분 몇 초에 어떤 링크를 클릭하고, 어떤 단어로 검색했으며, 어떤 평점을 남겼는지 등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하죠. 수집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해당 유저가 만족할 만한 화면을 AI가 정해주는 방식입니다.”​

- 개인 정보 유출 우려는 없을까.​

(이) “모든 데이터는 고유 식별 번호로 관리됩니다. 각 유저별로 무작위로 정해진 번호가 있을 뿐 성별·나이·주소 등 개인 정보는 전혀 담겨있지 않아요. 유저의 데이터를 고객사로부터 전달받는 방식도 자동화했습니다. 처음 솔루션을 세팅할 때 고객사에서 1~2줄의 코드만 작성하면 됩니다. 유저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전달받고 곧바로 유저에게 추천할 화면을 정해주죠. 오늘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았는데 추천 상품을 3일 뒤에 띄워주면 아무 의미가 없으니까요.”

고객사의 앱에서 유저에게 어떤 화면을 띄워줄 지 인공지능에게 물어보고 답을 들을 때마다 횟수가 쌓여 월 요금에 반영된다. /설형욱 대표 제공

- 비슷한 솔루션이 많은데 자이만의 차별점이 있나.​

(이) “자이의 첫 단계는 ‘문제 재정의’입니다. 단순히 고객사의 매출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빈틈을 찾아 메우는 것에 집중해요. 가령 어떤 쇼핑몰에서 판매하는 품목 1000개 중 10개 제품만 잘 팔리고 나머지 제품이 팔리지 않는 경우 개인 맞춤형 추천 알고리즘을 적용해 해결할 수 있습니다. 솔루션을 적용한 후에도 소비자 데이터 변화에 맞춰 유지 보수 작업을 하죠.”​

제트에이아이는 월 사용량에 따라 요금을 매겨 고객사에 과금한다. 고객사의 앱에서 유저에게 어떤 화면을 띄워줄 지 인공지능에게 물어보고 답을 들을 때마다 횟수가 쌓여 월 요금에 반영되는 식이다. 월 과금액은 고객사가 관리하는 유저의 규모에 따라 적게는 월 50만원에서 많게는 1000만원대까지 폭이 넓다. ​

- 월 이용량에 따른 과금 방식으로 정한 이유는.​

(설) “진입장벽을 낮추고 싶었습니다. 자이를 한번 써 보면 계속 쓰게 될 것이란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죠. 처음엔 유저 수가 1만명 이내인 스타트업을 주 타깃층으로 잡았는데요. 지금은 유저 수가 100만명이 넘는 쇼핑몰도 자이를 쓰고 있습니다. 자이같은 시스템을 회사 내부에서 만들기 위해서는 적어도 박사급의 데이터 전문 인력이 여러 명 필요할 거예요.”​

◇창업하지 마세요

제트에이아이 팀원은 둘에서 열 명으로 늘었다. 모두 서울대학교 출신이다. /설형욱 대표 제공

제트에이아이는 지난 9월 은행권청년창업재단 디캠프가 개최한 데모데이 디데이에서 우승했다. 솔루션을 정식으로 출시한 지 6개월 만에 고객사 15곳을 유치했다. 지난 6개월간 매출은 약 2억원 남짓. 내년 예상 매출은 15억원이다. 팀원은 둘에서 열 명으로 늘었다. 모두 서울대학교 출신이다.​

- 학생 창업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이) “학생 창업이 오히려 유리한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인재 영입이 수월해요. 진로가 결정되지 않은 능력자들과 함께 학교에 다니고 있기 때문이죠. 창업 전에, 먼저 창업한 선배 대표님들에게 물어보니 다들 하지 말라더군요. 진짜 뛰어들 사람은 누가 말려도 하고, 하지 말라고 해서 주저하는 사람이라면 안 하는 게 맞다는 이유였습니다. 주변에서 창업을 고민하는 친구가 있다면 똑같이 말할 것 같아요. 창업하지 말라고요.”​

(설) “잠깐의 일탈이라고 생각했던 창업이 이제는 제 모든 것이 돼 버렸습니다. 지금은 아마 이 대표보다 제가 더 절실할걸요. 학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면 공학적인 지식은 늘었을지 몰라도 지금만큼 성장하는 기분을 느낄 순 없었을 거예요. 창업은 단연 제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영지 에디터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