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연령 69세 직원을 이끄는 20대 CEO가 하는 일

2024. 6. 28. 09:26인터뷰

실버 배송 서비스 '옹고잉' 창업기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실버 정기 배송 서비스 '옹고잉'을 운영하는 내이루리의 정현강 대표. /더비비드

주5일 오전 7시부터 정오까지 5시간 근무, 4대 보험, 수도권 근무지, 60세 이상, 정규직, 월급 평균 125만원, 출퇴근용 차량 제공.​

2021년 12월, 노인 일자리 시장에서 27살 젊은 스타트업 사장이 이런 근무 조건을 내밀었다. ‘자녀가 부모님께 권유해도 이상하지 않을 일자리’를 주겠다고 했다. 내이루리의 정현강(27) 대표는 시니어 구직자 40명을 고용해 정기 배송 서비스 ‘옹고잉’을 운영 중이다. 옹고잉에서 배달원으로 근무하는 사람을 ‘프로’라고 부르는데, 프로의 평균 연령은 69세다. 50대 후반 중년부터 80세 노인까지 근무하고 있다.​

정 대표를 직접 만나 자녀가 부모에게 권할 만한 일자리를 만들게 된 배경과 노인 일자리 사업 운영 과정을 듣고 왔다.​

◇사업 결심하게 만든 히말라야발(發) 크라우드 펀딩

실버 정기배송 서비스 옹고잉의 서비스 이미지. 직원 평균 연령이 69세다. /내이루리

옹고잉은 주로 도시락 정기 구독 전문 업체와 계약해서 이들의 도시락을 직장인들에게 대신 배달한다. 옹고잉 배달원이 책임지는 아침·점심 도시락만 매월 13만개에 달한다. 서울 강남구, 중구, 마포구, 구로구 등 사무공간 밀집 지역에서 활동하고 용인과 남양주 등 경기 일부 지역에서 배달을 대행한다. 2021년 12월에 서비스를 시작해 월 7000만원 이상의 매출을 내고 있다. 최근 11억원 이상의 프리-A 단계 투자 유치에도 성공했다.​

사회공헌 서비스이면서 매출도 높아 업계서 성공 사례로 주목받았다. 지난 9월 은행권청년창업재단 ‘디캠프’의 창업경진대회 ‘디데이’에서 발표사로 나섰다.

정 대표는 히말라야 등반을 위해 방문한 파키스탄에서 컴퓨터 교실을 열어 주목을 받았다. /정현강 대표 제공

정 대표는 고려대학교에서 동양사학과 소프트웨어벤처 융합학을 전공했다.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공부하면 통찰력을 체득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다양한 과외 활동으로 견문을 넓혔다. “대학을 다니며 해병대 입대, 중국 고비사막 마라톤대회 참가, 히말라야 등반을 해봤어요. 극한 상황을 겪어보면서 ‘어떤 일에 도전해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배웠죠.”

대학 시절 히말라야를 등반했던 모습. /정현강 대표 제공

2018년 히말라야산맥 등반을 위해 파키스탄에 간 것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해발 고도 5000m부턴 ‘셰르파’라고 부르는 현지인 가이드와 꼭 동행해야 해요. 등반가들이 완전 무장해도 헤매는 험지 구간을 그들은 전문 장비 하나 없이 오르죠. 저는 17살 ‘괄람’이라는 친구와 함께했는데요. 등반하며 일이 힘들지 않은지, 학교는 안 다니는지 물었죠. 돌아온 답변에 충격받았습니다. 졸업 후 대학에 가려면 셰르파 일을 해서 돈을 모아야 한다더군요. 일이 위험해 벌써 동네 친구들과 형제들을 포함해 10명 정도 일하다 목숨을 잃었다고 했어요.”

크라우드 펀딩으로 모은 기금으로 칸데에 컴퓨터 교실을 만들었다. /정현강 대표 제공

괄람을 돕고 싶었다. 그가 다니는 학교는 해발고도 3000m 쯤에 있는 ‘칸데’라는 동네에 있었다. 그마저도 동네에서 유일한 학교였는데, 컴퓨터가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크라우드 펀딩이 떠올랐다. “한국에 돌아와 현지 사정을 알리고 학습용 장비를 지원해주는 크라우드 펀딩 프로젝트를 열었어요. 모금에 성공해 컴퓨터 15대와 태블릿 5대, 빔프로젝터 등의 디지털 학습 비품을 갖고 2019년 다시 괄람을 찾았죠. ‘칸데’의 사례가 해외 언론에 알려져, 파키스탄의 교육부 장관이 칸데 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의 대도시 취업 연계를 약속했어요. 작은 시도로도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우리나라 문제부터 먼저 해결해볼까

할배달 서비스 초창기 도보 배달원을 모았던 모습. /내이루리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프로젝트를 지속할 순 없었지만, 앞으로 가야할 길이 뭔지는 명확히 찾았다. 2020년 2월,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두고 내이루리를 창업했다.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노인 빈곤율 1위, 고령화 속도 1위라는 것을 확인하고 노인 문제를 먼저 다루기로 했다.​

내이루리가 가장 먼저 접근한 문제는 ‘노인 일자리’였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노인 빈곤율 1위, 고령화 속도 1위라는 점을 알게됐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 사태로 장년층의 이른 은퇴와 자영업 폐업이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다. “업무 난도가 높지 않으면서도, 팬데믹 상황에서 인력 부족 현상이 일어난 곳에 노인 일자리를 만들어 보기로 했어요. 배달 시장을 노렸죠.”

사업 초기 아이디어 보드와 일자리 간담회 모습. /내이루리

2020년 6월부터 내이루리의 첫 사업 아이템인 ‘할배달’로 시장을 검증했다. 근거리 도보배송 대행 서비스였다. “배달 음식 플랫폼의 자료를 보니 전체 음식 주문의 49%가 1km 이내에서 발생한다는 통계가 있었어요. 배송이 생각보다 근거리에서 이뤄지고 있더군요. 그 중에서도 도보배달이 가능한 500~700m 사이의 초단거리 배달을 위주로 도보 배달을 대행했죠. 지자체의 일자리 알선 기관을 통해 인력을 모았습니다.​

월 1000건 정도의 배달을 대행했지만 노인 일자리의 특성을 파악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1년 간 서울 성북구, 남양주 별내신도시를 위주로 운영했는데요. 우선 초단거리 배달이 생각만큼 많지 않았어요. 1시간에 2~3건 정돈데, 많은 일자리를 만들기에 턱없이 부족한 물량이었죠. 또, 단순 걷기라 근무 난이도가 쉬울 거로 생각한 것도 오산이었어요. 각 아파트 단지마다 출입하는 방법, 배송요청사항마다 다른 배송법, 지도로는 찾기 복잡한 대학가 원룸촌 등 배송업에 처음 도전하는 장년층에겐 어려운 과제가 많았어요. 근속률이 떨어지니 지자체 일자리 센터에선 할배달에 인력을 추천하지 않았어요.”​

◇노인 배달 한계, 장점으로 바꾼 방법

내이루리는 자체 앱을 통해 배달 현황을 관리한다. /더비비드

서비스 보완이 시급했다. 배달 시장 전수조사를 하다 ‘식음료 정기 배송’ 시장을 발견했다. 노인 일자리에 딱 맞는 시장이었다. 정 대표가 정기 배송 시장을 타깃으로 삼은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근무 난이도가 더 쉬워 노인 일자리에 적합했다. “매일 같은 배송지로 배달하는 전담 배송 업무이니 난이도가 확 낮아졌죠. 한번에 130인분 정도의 도시락을 차에 싣고 이동합니다. 배송 가방 한 개에 5kg 정도의 무게로 부담이 크지 않아요. 정기배송이니 배달원이 다뤄야 할 돌발 상황이 줄어들고요.”

옹고잉의 렌트카. 프로들이 정기배송을 이용하는 차량이다. /내이루리

둘째, 일정 물량이 보장돼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었다. “2020년 기준 국내 식음료 정기 배송 시장 규모는 1조2000억원 정도입니다. 2025년엔 3조1000억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죠. 사업 초기 푸딩, 웃어밥, 위잇딜라이트 등 기업·단체 대상 식사 구독 기업에 문을 두드렸어요. 안 그래도 직접 인력을 운영하는 데 어려움을 겪던 기업들이 바로 옹고잉에게 일을 맡겼습니다. 정기배송 시장이 일반 배송에 비해 단가가 낮아 청년 배달원들이 선호하지 않는 배달업에 속하거든요. 틈새를 노린 거죠. 작년 12월에 시작해서 3개월도 안 돼 월 13만인분의 식사 배달과 수거 작업을 하게됐습니다.”​

인력을 구하는 일도 쉬워졌다. “상대적으로 급여보단 안정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장년층에겐 최적의 일자리였어요. 일이 척척 진행됐습니다. 내부적으로는 지자체 일자리 알선 기관, 내부 채용 공고를 통해 40명의 장년층 배달원을 고용했죠. 업무를 시작하고 3일 간 본사 담당자가 동승해 교육을 한다음 정식으로 투입됩니다.”​

◇내 부모님께 권할 수 있는 일자리 만들기

사회적 성격의 스타트업도 수익 구조를 만들 수 있다고 조언했다. /더비비드

옹고잉을 운영하는 내이루리 본사 직원은 자체 앱을 통한 배달 현황 파악, CS 업무, 월별 배송 스케줄 기획, 배달원 교육, 배송 차량 관리 등을 담당한다.​

노인 빈곤과 사회적 소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내이루리의 미션이다. 세탁물, 소형 택배물 등 시간 압박이 크지 않은 배송 분야로도 사업을 확장할 생각이다. “교수, 공기업 은퇴 후 옹고잉에 취직하신 분들이 꽤 계십니다. 다들 근로 의지가 강하시죠. 업무의 노련미가 돋보이기도 하고요. 2025년이면 65세 이상 인구가 1000만명을 넘어요. 노인 일자리의 빠른 증가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내이루리는 사회적 성격의 스타트업도 확실한 수익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시혜적 성격으로 노인 일자리 문제를 바라보고 있지 않아요. 청년보다 장년층이 더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개척하려 해요. 자생할 수 있는 수익 구조가 나와야 또 다른 사회 문제를 해결할 자본이 생기니까요.”​

/김영리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