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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딱 1시간 앉아 일할 공간, 그 필요만 파고 들었더니"

시간제 업무공간 예약 서비스 '원루프' 개발기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원루프 양승현 대표는 회계사 출신이다. /더비비드

코로나19로 재택근무를 한 번 해보니, 사무실에 집착할 이유가 없어졌다. 기업은 사무실 유지비가 들지 않고 직원은 출퇴근에 시간을 뺏기지 않아도 되니 좋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준비되지 않은 채 재택근무를 도입해 애로점이 있다. 홀로 상경한 사회초년생이라면 집이 좁아 사무공간을 마련하기 어렵다. 다른 가족 구성원과 함께 거주하는 경우 화상회의 중 가족들이 불쑥불쑥 들이닥치는 난처한 상황도 발생한다.​

집에서 가까운 사무공간이 있으면 좋을텐데 인터넷 검색 손품을 팔아야 하니 쉬운 일이 아니다. 공인회계사였던 양승현(36) 씨는 일하면서 실제로 겪은 고충을 해결하기 위해 창업했다. 애플리케이션에서 집 주변 업무 공간을 찾고, 시간제로 예약해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 원루프다. 원루프의 양승현 대표를 만나 시간제 업무공간 서비스를 개발한 이유를 들었다.​

◇이론과 다른 스타트업의 기업 가치

원루프 구의점 공간 전경. /원루프

원루프에선 흩어진 사무공간을 한눈에 찾아볼 수 있다. 원하는 지역에서 업무 공간을 골라 예약해 이용할 수 있다. 금액은 시간당 4000원.​

공유 오피스 운영도 한다. 카페보다 조용하고, 사무용 좌석과 책상이 구비돼있다. 일반 독서실과 달리 조용한 대화나 업무상 통화가 가능하다. 직영 오피스인 3곳의 ‘원루프랩’과 수도권 40곳의 제휴 지점에서 사무 공간을 고를 수 있다.

회계사 시절 양승현 회계사 모습. /양승현 대표 제공

2014년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회계사 시험에 합격한 후 삼일회계법인에서 일했다.​

입사 3년차, 창업이 하고 싶어졌다. “유명 IT기업이 투자한 스타트업의 감사 업무를 맡으면서 스타트업 생태계를 처음 접했는데요. 기존에 알던 회계 지식과 다르게 운영되더라고요. 이렇다 할 수익이 없고, 재무제표도 불안정한데 수백억원의 투자금이 모이는 걸 보고 놀랐죠. 직접 회사에 방문해보면 열정적인 직원들로 가득하더군요. ‘도대체 뭐가 이들을 열정적으로 만들까’ 궁금해졌어요.”​

창업을 결심하고 퇴사했다. 처음엔 안정적인 전문직을 두고 난데없이 창업한다는 핀잔을 들었다. “회계사로서 어느 정도 입지를 다진 후 도전해보라는 조언이 있었어요. 하지만 연차가 쌓일수록 현실에 안주할 것 같았어요. 2017년 퇴사하고 혜움랩스와 파이낸셜 인사이트라는 세무회계 데이터 관련 스타트업에서 근무하며 코딩을 배우고, 스타트업의 업무수행 방식을 익혔어요.”

제주도 건물은 '원루프 제주점'으로 탈바꿈했다. 1인 워케이션 숙소로 운영중이다. /원루프

새 회사를 세우는 방식이 아닌, 기존 사업을 인수해 확장하는 방식으로 창업했다. 앞선 스타트업 경험에서 팀빌딩의 중요성을 깨달은 결과다. 2019년 공간 제공 사업을 하던 원루프를 인수했다. “당시 원루프는 제주도의 오피스텔 건물을 관리하고, B2B 사원 식당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었어요. 운영하는 서비스에 맞는 기획·실행 인력이 모두 합류해 있는 상태였죠. 이전 스타트업에서 인력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일을 직접 해봐서 공수가 굉장히 많이 드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힌 상태에서 시작하면, 기업을 안정 궤도로 올리기 수월할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내 고민 해결한 창업 아이템

기존 사업을 인수해 확장하는 방식으로 창업한 양 대표. /더비비드

기업 인수 직후 복병을 만났다. 코로나19 감염병 사태가 일어나며 공간 관리 산업이 침체기를 겪은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많은 회사가 재택, 원격근무를 하면서 사원 식당 업무 수요가 줄었다. 사업의 전환점이 필요했다. 위기 속에서 기회를 포착했다.​

“회계사 때 외근이 잦았어요. 저와 동기가 책상 하나를 돌아가면서 썼는데 3년 동안 일하면서 사무실 출근 겹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외부 미팅 전에는 집에서 업무를 봤고, 외근을 마치면 근처 카페에서 일하는 게 일상이었죠. 그러다 처음 방문하는 지역에선 마땅한 장소를 찾지 못해 난처한 경험도 하고요. 코로나19로 재택근무를 하게 된 직장인들이 저와 같은 시행착오를 겪을 거라 직감했습니다.”

공유 오피스 산업을 조사하면서 공간 구획도 직접 했다. 공간을 구획한 방법을 설명하는 모습. /더비비드

기존의 공유 오피스 산업을 조사했다. 최소 1개월에서 길게는 몇 년 단위로 미리 계약하고 사용하는 방식뿐이었다. ‘시간제로 사용할 수 있는 업무 공간’을 구상했다. “직장인 커뮤니티를 보면 재택 근무하며 겪은 황당한 일이나 불편함에 관해 이야기 하는 게시글이 많았어요. 앱으로 업무 공간을 찾아서 예약하고 원하는 시간만큼만 이용하는 서비스가 통할 거라 판단했습니다.”​

직영점을 운영하면서 사업성을 검증하기로 했다. “입지 선정에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거주지 밀집 지역이면서 근처에 회사도 많은 역세권의 빈 상가 건물을 찾아 다녔죠. 첫 직영점을 구의역에 내기로 정한 뒤에는 인테리어 전문가를 모셔서 공간을 디자인했습니다.”​

독서실이나 카페와는 달라야 했다. “소음이 허용되는 라운지 공간, 통화 부스, 회의실, 듀얼 모니터 좌석 등을 필수 조건으로 두고, 프린터기나 다과류 같은 사무실 비품도 갖췄습니다.”

실제 원루프 공간에서 근무하는 원루프 팀 직원들. 폰부스, 회의실 뿐만 아니라 대화가 가능한 라운지도 구성돼있다. /원루프

2021년 10월, ‘원루프랩’이라는 이름으로 구의역에 시간제 업무 공간을 차렸다. 프리랜서 개발자나 디자이너, 외근이 잦은 영업직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 “듀얼 모니터 좌석과 소규모 회의실, 그리고 통화 부스는 모두 일반 카페에서는 누릴 수 없는 기능들이죠. 업무 공간에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는 소비자를 보고 사업 확장에 확신을 가졌습니다.”​

구의역에 이어 사당점, 한대앞점까지 직영점을 3곳으로 늘렸다. 직영 방식만으론 서비스 지역을 빠르게 늘릴 수 없는 한계가 있었다. 역세권 공유 오피스들과 잔여 좌석을 원루프 앱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제휴했다. “공간 사업은 서비스 권역이 넓어야 합니다. 앱 하나로 여러 곳에서 같은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어야 앱을 계속 사용하거든요. 특정 지역에 점포를 열어달라는 소비자 문의가 많기도 했고요.”

키오스크 대신 공간 자동 출입문 상단에 소형 IOT 기기를 부착하는 방식으로 원루프 회원과 오프라인 공간을 연결했다. /더비비드

도입이 쉽고 빨라야 했다. 간편한 출입 방법을 고안했다. “공유 오피스에선 출입카드를 제공하거나, 입구 앞 키오스크에 정보를 입력해 출입하는 등 저마다 개방 방식이 달라요. 여러 브랜드의 사무 공간과 빠르게 제휴하기 위해, 최대한 간단한 입출입 시스템을 고민했습니다. 출입구에 부착된 QR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스캔하면 출입문이 개방되는 방식입니다. 제휴사는 입구에 QR코드를 붙이고, QR코드가 인식됐을 때 자동문이 열리도록 알고리즘만 추가하면 됩니다.”

​앱 사용성도 높였다. “제휴 공간을 직접 방문해 공간의 특성을 꼼꼼히 기록했어요. 건물 내 주차 공간, 좌석 개수, 좌석의 특성, 회의실 유무, 다과, 인쇄 등 편의시설도 하나하나 확인해서 앱에 표시했습니다.”​

◇우리 집 바로 앞 일하기 좋은 공간

8월 디데이(은행권청년창업재단 창업경진대회)에서 발표하는 양 대표 모습과 원루프 앱 서비스 화면. /디캠프, 더비비드

테스트를 마치고 지난 8월 원루프 앱을 공식 출시했다. 재택근무 장점을 누리면서 업무 효율도 높일 수 있다는 서비스의 참신함을 인정받았다.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의 창업경진대회(디데이)에서 결선 발표자로 나서기도 했다. 수도권 지하철 400개 역에 1개의 이상의 원루프 제휴점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마음먹었을 때 바로 실행하는 추진력이 여기까지 오게 했다. 창업에 적기는 없다고 했다. “회계사로 일할 때 스타트업 감사 업무를 맡지 않았다면, 창업에 대한 꿈을 품지 않았겠죠. 창업을 고민하던 찰나에 기업을 인수해 보란 제안을 받기도 했고요. 누구나 절호의 기회와 같은 순간이 올 겁니다. 그 순간을 놓치지 마세요. 생각했던 것보다 힘들 수도 있지만 그만큼 비교할 수 없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어요.”​

/김영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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