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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우리가 뭘로 가방을 만드는지 들으면 깜짝 놀라실걸요?"

친환경 패션 스타트업 창업기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네이크스의 서지흔 대표(왼쪽)와 서인아 대표(오른쪽). /컨셔스웨어

친환경 제품은 ‘착한 마음에 구매는 했는데, 어딘가 아쉬운 제품’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친환경 2.0 시대로 진입하면서 판도가 달라졌다. 친환경 딱지를 떼고 봐도 지갑을 열고 싶은 제품이 쏟아지고 있다.

패션 스타트업 컨셔스웨어가 운영하는 ‘네이크스’(nakes)도 그런 패션 브랜드다. 유기농 면이나 선인장, 한지를 압착한 식물성 가죽으로 옷과 가방을 만든다. 모두 생분해 가능한 소재다. 세련되고 멋진 디자인 덕분에 선의에 호소하지 않고도 구매욕을 자극한다. 친환경 가죽 전문 제작·유통 기업으로 본격적인 출사표를 던졌다. 컨셔스웨어의 서인아(30) 공동대표를 만나 친환경 패션의 확장 가능성에 대해서 물었다.

◇패션 산업의 민낯에 실망한 의류학도

재생 가죽으로 제작한 미니백(왼쪽)과 선인장 가죽으로 만든 비즈니스 백(오른쪽). 재생 가죽의 경우 글로벌 리사이클 스탠다드 인증을 받은 제품이다. 선인장 가죽은 선인장 잎을 분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네이크스 온라인몰

친환경 패션 스타트업 컨셔스웨어의 첫번째 축은 패션 브랜드 '네이크스'다. 선인장이나 버섯 균사체 등으로 된 비건 가죽, 유기농 면, 도토리 단추 같은 생분해·식물성 소재로 패션 의류나 잡화를 만든다. 공정도 친환경적이다. 친환경 처리 약품과 코팅제 등으로 만든다. 상의와 하의가 일체형인 점프수트와 선인장 가죽으로 만든 비즈니스 백이 인기다.​두번째 축은 친환경 가죽 생산이다. 최근 친환경 가죽 테크(tech) 분야에 뛰어들었다. 자투리 가죽을 갈아서 압착한 재생 가죽, 옥수수 가죽 등 친환경 가죽 등을 직접 개발 및 생산해서 유통까지 할 구상이다. 이를 위해 친환경 가죽 특화 공장, SK케미칼 등과 손잡았다.

서인아 대표. /컨셔스웨어

경희대 의상학과 출신이다. 옷을 직접 디자인하는 것보단 소재와 패션 비즈니스에 관심이 많았다. 졸업 전 패션 기업의 생산관리자로 취업했다. 주문을 받아 제품을 해외로 수출하는 해외 영업 업무도 맡았다. 주로 여성복, 임부복, 어린이 옷 등의 대량 생산을 담당했다.

- 전공을 살려서 취업, 순탄한 진로 아니었나요.

“직장 생활을 하면서 많은 걸 배웠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회의감이 커졌어요. 상상 이상으로 버려지는 옷이 많았거든요. 일단 생산량이 어마어마해요. 분기당 60가지의 종류의 옷을 적으면 1만벌, 많으면 30만벌 가까이 생산합니다. 바이어에게 보여지고 버려지는 샘플은 1500장에 달했죠. 한 주가 지나기 무섭게 폐기물이 쌓였어요. 게다가 좋은 재료와 공정으로 양질의 샘플을 만들어 놓고선 생산에 들어가면 질 나쁜 원료로 바꿔 만드는 일이 비일비재 했어요. 이런 행태에 지쳤죠.”

- 그래서 퇴사를 결심한건가요.

“3년 일한 회사를 관두고 유럽 여행을 떠났어요. 한 달 간 영국, 프랑스, 포르투갈 등의 국가를 돌았는데요. 문득 프랑스에 별로 친하진 않았지만 대학 동기가 있다는 게 떠올랐어요. 지금의 공동창업자인 서지흔 대표였죠. 당시 서 대표는 명품 브랜드 시제품을 제작하는 아뜰리에에 근무 중이었어요. 파리에서 서 대표를 만나 저녁 식사를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서 대표 역시 부푼 꿈을 안고 간 파리에서 패션업계의 어두운 단면을 직접 겪고 실망했대요. 서 대표가 일했던 아뜰리에 구성원 대부분이 아시아나 저개발 국가 출신인데요. 이들이 생산한 명품을 돈 많은 나라의 소비자가 소비하는 괴리에 회의감을 느낀 거죠. 이날 서로 지속가능한 패션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 그 이후는요.

“한국으로 돌아와서 숨 돌릴 겸 팬시 브랜드를 운영했어요. 크게 키울 요량보다는 취미삼아 시작했는데 꽤 잘 됐어요. 텐바이텐이나 교보 핫트랙스 같은 인기 문구점에 입점했고, 영국의 문구점에서 입점 제안도 받았죠. 브랜드를 직접 운영해보니 사업을 해도 괜찮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때마침 서 대표가 귀국했어요. 만나서 지속가능한 패션 분야로 창업 해보기로 했죠.”

◇친환경 패션 브랜드 네이크스 론칭

(왼쪽부터) 네이크스에서 출시한 의류와 패션 소품들. 창업 초기 네이크스 제품을 착용한 가수 화사. /네이크스 온라인몰, 컨셔스웨어

지속가능한 패션을 키워드로 설정하고 패션 산업 전반을 공부했다. 공방이나 공장을 다니며 기초를 쌓았고 가죽을 비롯한 다양한 패션 소재를 연구했다. 2019년 자투리 가죽으로 만든 가방 스트랩과 벨트 아이디어로 업사이클 공모전에서 서울시장상을 수상했다. 개인사업자로 ‘네이크스’ (nakes)라는 이름의 친환경 패션 브랜드도 론칭했다.

- 네이크스 브랜드로 어떤 제품을 출시했나요.

“처음에는 ‘지루하지 않은 패션’에 주안점을 뒀어요. 버섯 균사체 가죽, 한지 가죽, 선인장 가죽 등의 친환경 가죽으로 브라렛 같은 파격적이고 유니크한 패션 아이템을 만들었어요. 걸그룹 마마무의 화사가 저희 제품을 착용하면서 화제 몰이가 됐죠.”

- 친환경 소재 중에서도 가죽에 주목한 이유는요.

“가죽은 다른 소재보다 높은 전문성을 요구하는 소재예요. 친환경 가죽만의 특성이 있어서 이 분야를 잘 파고들면 차별성을 갖출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앞으로 더 발전할 여지가 많은 영역이기도 하고요. 개인적으로도 가죽을 좋아합니다. 닳으면 닳은 대로 매력적이고, 카시트나 신발 등에도 적용할 수 있고. 범용성이 큰 소재잖아요. 다른 소재가 유행했다가 저무는 동안에도 가죽 수요는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판단했어요.”

- 소재 공부는 어떻게 했나요.

“지인을 통해서 가죽 분야로 진출한 분들을 소개받아서 무작정 만나고 다녔어요. 사무실이 동대문에 있었는데, 패기 넘치게 근처의 공장을 무작정 방문하기도 했어요. 공장에서 궁금한 걸 질문하고 공정 과정을 지켜봤죠. 친환경 가죽, 인조가죽, 소가죽을 비교하는 실험을 진행하면서 친환경 가죽의 품질을 높이는 법 등도 연구했어요.”

◇친환경 가죽 직접 개발하기로 결심

(왼쪽부터) 가죽 시트를 재활용하는 모습. 옥수수 가죽으로 만든 가방. /컨셔스웨어

소재 연구를 하면서 브랜드를 운영하다 보니 욕심이 생겼다. 브랜드가 아니라 기업으로 성장하고 싶었고, 부족한 경영 지식에 대한 갈증이 생겼다. 카이스트(KAIST) 사회적 기업가 경영전문대학원에 진학했다. 이곳에서 배운 내용을 토대로 사업 방향성을 재설정하기로 했다. 브랜드 정체성도 재정립했다. 지난 1월 컨셔스웨어 법인을 설립했다.

- 방향성을 어떻게 틀기로 한 건가요.

“디자인을 타임리스(timeless. 유행을 타지 않는) 스타일로 변경하기로 했어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브랜드가 돼야 큰 영향력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판단했거든요. 가죽을 외국 등에서 소싱하다가, 직접 개발해서 유통까지 하기로 했어요. 패션 기업이 오래 살아남으려면 기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친환경 가죽의 품질을 높일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이기도 했고요.”

- 친환경 가죽 개발에 뛰어든 구체적인 이유는요.

“소비자에게 친환경 소비의 당위를 설명하는 대신 생산 방식에 변화를 주려고 한 겁니다. 공급자 입장에서 대체 생산에 주목한 거죠. 동물 가죽이 꼭 필요한 영역이 분명히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은 분야도 많아요. 저희는 후자의 영역을 친환경 가죽으로 대체하려고 해요. 저희가 생각하는 ‘지속가능한 산업’이란, 생산 과정에서 환경에 미치는 피해를 최소한으로 한 것인데요. 친환경 가죽을 확산해서 가죽 산업 전반의 오염물질 발생량을 줄이고 싶었습니다.”

친환경 가죽 공장 내부의 모습. /컨셔스웨어

- 동물 가죽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합니다.

“동물 가죽은 친환경 가죽보다 환경오염 지수가 3배 이상 높아요. 공정 과정에서 물을 더 많이 쓰고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하거든요. 또 동물 가죽을 무두질 할 때 ‘크롬’이라는 중금속을 사용합니다. 가죽 자체는 자연 소재지만, 제조 과정에서 중금속에 노출되면서 폐기될 때 토양이나 수질 오염을 유발하죠. 그 대안으로 등장한 게 폴리우레탄을 소재로 한 인조 가죽인데요. 폴리우레탄 가공 가죽이 동물 가죽보다는 환경에 영향을 덜 미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환경에 좋지 않으 점이 여전히 많습니다. 저희는 SK케미칼과 손잡고 옥수수에서 추출한 바이오소재, 폴리우레탄을 가공해서 만든 옥수수 가죽을 개발 중입니다. 식물성 바이오 원료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생산 과정에서 온실가스가 덜 발생합니다.”

- 다른 가죽과 비교했을 때 친환경 가죽만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생산자 입장에서 동물 가죽은 동물을 자른 모양이라 활용할 수 있는 영역이 적어요. 반면 친환경 가죽은 직사각형 원단으로 나오기 때문에 동물가족보다 생산비가 저렴합니다. 또한 동물 가죽은 물이나 햇빛에 약한데, 친환경 가죽은 상대적으로 빛과 물에 강합니다. 또한 배합에 따라 가죽의 경도나 느낌을 조절할 수 있어요. 인조가죽과 비교했을 때 갈라짐이 적고 내마모성이나 내구성이 좋은 편입니다. 사용감 측면에서 보면, 친환경 가죽은 동물 가죽 특유의 냄새가 없고요. 가방으로 착용했을 때 촉감이 폭신하고 가벼운 편입니다.”

◇브랜드 발판으로 글로벌 패션 기업 되는 게 목표

백화점 팝업 스토어 진행 당시 모습. /컨셔스웨어

네이크스 브랜드는 우리 소비생활에 깊숙이 침투하는 중이다. 29cm나 무신사처럼 인기 커머스 플랫폼에 입점한데 이어 현대백화점의 친환경 전문관에 진출했다. 신세계백화점과 롯데백화점에서는 친환경 팝업 스토어를 운영했다.

비즈니스의 공익성과 독특함 덕분에 외부의 주목도 많이 받았다. 작년 여름, 현대자동차와 협업해 300여명의 옷을 수거해서 리폼한 후 돌려주는 업사이클 티셔츠 캠페인을 진행하며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의 창업경진대회(디데이) 본선에 진출했다.

- 네이크스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은요.

“많이들 호기심을 보입니다. 환경 이슈에 관심 많은 핵심 소비자층으로부터 ‘이런 소재는 어떻게 만들어지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패션 전공자나 동종업계 종사자 분들로부터 소재 구하는 법에 대한 자문을 구하는 연락도 많이 받았죠. 크고 작은 관심이 여러모로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친환경 가죽을 해외에 유통하는 것이 목표다. /컨셔스웨어

- 이 일을 시작하고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은요.

“폐가죽을 가공해서 크리스마스 장식품을 만드는 원데이 클래스를 진행한 적이 있어요. 15분, 20분이면 끝나는 간단한 수업이었는데요. 어떤 참가자분이 친구에게 하는 말이 귀에 들어왔어요. ‘내가 여기 온 이유는 이거 하나뿐이다’라며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제3자가 버려진 소재로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에 큰 보람과 행복을 느끼는 모습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어요. 제가 이 일을 하는 이유를 확인 받은 순간이었죠.”

- 앞으로의 목표가 궁금합니다.

“우리나라 가죽 시장은 세계 10위 규모로 큰 편이에요. 파급력이 큰 시장이죠. 이런 우리나라에서 친환경 가죽 부문 1위 기업이 되고 싶어요. 가죽 브랜딩을 잘 해서 해외에 진출하겠다는 욕심도 있어요. 저희에게는 브랜드라는 든든한 다리가 있으니까요. 요즘 해외 편집숍 입점 제안이 많이 들어오고 있는데요. 브랜드를 발판으로 글로벌한 패션 기업이 되길 소망합니다.”

/진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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