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슬립테크
직장인 A씨는 매일 밤 스마트워치를 착용하고 잔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간밤의 수면 상태를 심박수, 숙면 시간 등의 데이터로 확인한다. 숙면하지 못한 다음 날에는 수면의 질을 높이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한다. 잠들기 30분 전, 수면 유도 음료를 마시고 명상을 한다. 침상에 들어서는 숙면 유도등을 켜고, 깊은 잠으로 유도한다는 ASMR을 재생한다.
A씨가 이렇게까지 숙면에 공들이는 이유는 삶의 질 때문이다. A씨는 “제대로 잠들지 못하면 다음날 업무 효율이 떨어지고 우울감을 느낀다”며 “수면 상태에 접어든 8시간이 나머지 16시간을 좌우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수면에 대한 관점이 달라졌다. 2015년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수면 부족을 ‘공중보건 감염병(public health epidemic)’이라고 정의 내린데 이어, 코로나 팬데믹으로 헬스케어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결과다. A씨의 사례처럼 ‘깊은 잠’은 좋은 밤이 아니라 좋은 삶을 위해 필요하다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그만큼 슬립테크(Sleep과 Tech의 합성어. 숙면과 관련된 기술이라는 의미) 기술도 고도화됐다. 숙면에 최적화된 환경을 제공하는 기술뿐만 아니라 숙면의 생리학적 메커니즘을 기반으로 깊은 잠을 유도하는 기술까지 시중에 등장하고 있다.
◇꿈나라로 향하는 양탄자 '매트리스'에 데이터를 더했다
슬립테크 열풍은 전세계적인 형상이다. 그 출발은 2017년 1월 개최된 세계최대 가전박람회인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다. 당시 미국수면재단이 마련한 ‘슬립테크 마켓플레이스’에서 다양한 수면 관련 기술이 소개되면서 전세계의 기술력이 이 시장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혁신이 가장 먼저 이뤄진 분야는 침대, 베개 등 전통적인 수면 관련 소비재 영역이다. 신체 굴곡을 기억하는 메모리폼 매트리스 회사로 유명한 수면 솔루션 기업 ‘삼분의일’은 최근 수면 데이터 기술 회사 '바이텔스'를 100% 자회사로 인수했다.
바이텔스는 수면 상태 측정 센서를 개발, 판매하는 기업이다. 바이텔스의 수면 측정 센서는 뒤척임, 수면 시간, 시간당 호흡수 등의 생대 데이터뿐만 아니라 시간당 코골이 횟수 등을 정밀하게 측정해 수면 무호흡증 여부를 이용자에게 알려줄 수 있다.
삼분의일은 이번 인수를 통해 자사 제품에 바이텔스의 기술력을 적용할 계획이다. 스마트 매트리스에 바이텔스의 수면센서를 부착해 다양한 수면 측정 데이터를 진단해 이용자에게 맞는 수면 환경을 제공하겠다는 구상이다.
스타트업 퓨어렉스는 코골이, 수면무호흡 방지 베개를 출시했다. 이 베개는 수면 호흡 데이터를 학습한 AI 기반 기기와 연동된다. 자다가 코골이나 수면무호흡 증상이 나타나면 AI와 연동된 베개가 베개의 높낮이와 부피를 조절해 준다.
◇빛과 소리로 숙면을 유도하는 법
빛이나 소리, 전기 자극 등 숙면 메커니즘에 영향을 주는 요소를 깊은 잠을 유도하는 기술도 시장에 등장하는 추세다. 특히 기기를 수면 환경 근처에 배치하면 되는 니어러블(Nearable) 제품이 활발하게 개발되고 있다.
‘소리’를 이용한 기술도 있다. 무니스는 디지털 수면 솔루션 ‘미라클나잇’의 운영사다. 미라클나잇은 특정한 리듬에서 뇌의 특정 주파수가 유도되는 ‘뇌파 동조 현상’에 착안한 서비스다. 전문용어로 모노럴 비트(monaural beat)라 하는데, 여기서 유발되는 뇌파로 수면을 유도하는 원리다.
기반이 되는 기술은 어렵지만 이용 방법은 쉽고 직관적이다. 앱을 켜서 스트레스, 불안, 피곤, 편안 등 오늘의 상태를 선택하고 희망 기상 시간을 설정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주변 소음에 맞는 볼륨의 모노럴 비트를 들려준다. 이용자는 반복적인 리듬을 들으며 깊고 빠르게 잠들 수 있다. 연세대 응용뇌인지과학 연구소와 한국표준과학연구원으로부터 숙면 효과를 검증받았다. 특히 무니스는 포화 상태였던 수면 시장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꿀잠 이어폰에 이어 꿀잠 헤어밴드까지 등장
보다 직관적인 수면 효과를 위한 웨어러블 기기도 개발되고 있다. 영국의 업체 코쿤은 수면에 도움을 주는 헤드폰을 판매한 바 있다. 주변의 소음을 차단하면서 수면에 도움이 되는 백색 소음을 제공하는 헤드폰이다. 코쿤은 여기서 더 나아가 코 고는 소리 등의 소음을 완벽히 차단하고 수면 상태 측정 기능을 갖춘 이어폰을 출시했다. 기존의 헤드폰보다 부피가 훨씬 작아 사용감이 개선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나라의 슬립테크 스타트업 리솔은 머리띠처럼 써서 사용하는 기능성 숙면 유도 기기 ‘슬리피솔’을 개발했다. 슬리피솔은 두개전기자극(CES , Cranial Electrotherapy Stimulation)을 이용한 기기다. CES는 신체에 1mA(밀리암페어)보다 적은 양의 미세전류를 두개에 전달해 불안감, 우울증, 스트레스 등의 증상을 완화하는 비약물적 치료법이다.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감소시킨다는 임상 결과도 있다.
철저하게 과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 뇌가 미세전류의 자극을 받으면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 DMN(default mode network)가 활성화된다. DMN은 뇌가 아무 활동을 하지 않을 때 작동하는 부위로, 이 DMN이 활성화되지 않으면 편하게 잠을 잘 수 없고 우울감이 생긴다. 만약 미세전류로 뇌를 자극하면 DMN을 유지하면서 수면의 질을 높일 수 있다.
슬리피솔은 머리띠 형태로, 이마에 착용하면 된다. 권고 사용 시간은 1일 2회 30분이다. 2주 이상 꾸준히 사용하면 스트레스 완화와 숙면에 도움이 된다. 분당서울대병원에서 두 번의 임상시험을 거쳤고, 미국식품의약청(FDA) 안전성 기준을 통과했다. 미국연방통신위원회(FCC)와 유럽의 상품규격인증(CE)에서도 안전성을 인증받았다. 미국과 일본에 수출하고 있다.
슬립테크 기술 발전과 더불어 우리나라 수면 시장은 고속 성장 중이다. 한국수면산업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2011년 4800억원이었던 우리나라 수면 시장 규모는 2021년 말 기준 3조원까지 늘어났다.
숙면이 보편적인 건강관리법으로 자리 잡으며 꿀잠을 향한 혁신은 계속될 전망이다. 시장조사 업체 글로벌마켓인사이트는 전 세계 슬립테크 시장의 규모가 2019년 110억 달러에서 2026년 321억 달러까지 확장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리솔의 연구소장으로서 슬리피솔의 개발을 주도한 이승우 박사는 “수면 장애는 몽유병, 졸음운전 등 만약의 근원”이라며 “수면의 질을 높여야 뇌 전반을 관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진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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