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전세계 사용자 170개국 100만명 넘었다, 게으른 한국 청년이 개발한 이 앱

더 비비드 2024. 6. 27. 10:29
인공지능 활용한 자기 관리 앱 ‘루빗’ 개발한 이준영 대표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인공지능 활용한 자기 관리 앱 ‘루빗’ 개발한 이준영 대표. /더비비드

선택할 때마다 더 좋은 것은 없는지 고민하느라 시간이 걸리는 사람. 완성도를 높이려고 애쓰다가 일정을 못 맞추는 사람.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 아직 준비가 덜 됐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 이런 사람을 두고 ‘게으른 완벽주의자’라고 한다. 실수 없이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너무 커 상황을 회피하려다 일을 그르치는 일이 잦다.

가장 힘든 사람은 본인이다. 잦은 실패의 경험은 자존감을 깎아낸다. 이준영 루빗 대표(27)는 자신을 ‘게으른 완벽주의자’라고 소개했다. ‘게으른’이란 말을 지우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고 가장 효과적인 극복법을 찾았다. 루틴, 즉 습관 형성이다. 이를 서비스화한 앱이 자기 관리 앱 ‘루빗’이다. 170개국에서 100만명 이상이 사용하고 있다. 이 대표를 만나 습관의 중요성을 들었다.

◇스무 살부터 스타트업에 올인

스타트업 창업가를 만나 인터뷰를 하며 간접 경험을 쌓았다. /이준영 대표 제공

서울과기대 기계공학과 17학번이다. “로봇 만드는 걸 좋아해 선택한 전공이었지만 막상 학교에서 배우는 건 물리학, 공학이었어요. 그보다 우연히 들었던 창업 관련 강의가 더 재미있었죠. 2학년에 올라가면서 대학생 창업 동아리에 가입했습니다. 스타트업의 생태계에 대해 직접 부딪히며 공부하고 싶었어요.”

첫 프로젝트는 스타트업을 알려주는 스타트업 전문 미디어 ‘써봄’이었다. 갓 창업한 기업의 대표를 만나 인터뷰하고 사업 모델을 정리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렸다. “인터뷰를 하면서 좋은 제품·서비스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믿고 맡길 수 있는 광고 대행사를 찾는 일을 어렵게 느끼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둘을 잘 연결하는 서비스를 만들기로 결심했죠.”

광고 대행사 중개 플랫폼 ‘김광고’로 2019년 청년 스타트업 어워즈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이준영 대표 제공

2019년 광고 대행사 중개 플랫폼 ‘김광고’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먼저 소상공인을 찾아가 광고 대행을 할 때 어떤 점이 가장 힘든지 물었다. “온라인 광고에 대해 익숙지 않은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눈 가리기 아웅식 편법을 쓰는 사례가 너무 많더군요. 이를테면 월 5만원에 블로그 광고를 해 주겠다고 하고 1년 치 광고비 60만원을 먼저 받은 다음, 갈수록 질이 떨어지는 콘텐츠를 발행하는 업체도 있었어요.”

광고주와 광고대행사를 연결할 수 있는 웹페이지를 제작했다. 팀원 중 개발자가 없었기 때문에 외주 제작을 맡겼다. “외주를 맡긴 뒤로 6개월간 아무 결과물을 받지 못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미련한 짓이었죠. 이를 답답하게 여긴 동료들은 각자의 길을 찾아 하나둘씩 떠났습니다. 사업은 둘째치고 ‘나’라는 사람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번아웃을 겪으면서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상담을 받거나 약물치료를 받기도 했죠.”

이 대표가 우울감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비결은 ‘루틴’이었다. /더비비드

약, 상담보다 확실한 도움을 준 건 ‘루틴’이었다. “전 정말 게으른 사람이에요. 이런 제게 찾아온 우울감은 그나마 남은 의욕을 모두 빼앗아 갔죠. 이럴 때 욕심부리지 않고 ‘딱 하나만 해보자’는 마음을 먹는 게 중요해요. 아침에 일어나서 기록하는 습관을 만들었습니다. 몇 시에 일어났다는 기록이 쌓이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더군요. 이런 기록을 남길 앱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부지런한 사람이 자신의 행동을 추적하기 위한 서비스는 있었지만, 저처럼 게으른 사람도 부지런해질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는 없었습니다.”

◇나의 슬럼프 극복기를 담은 앱

루빗 초기 버전. 스마트폰을 루빗 스팟(왼쪽)에 가져다 대며 습관 형성을 돕는 서비스로 출발했다. /이준영 대표 제공

2020년 중순 다시 한번 창업에 도전했다. 직접 겪은 어려움을 바탕으로 한 자기 관리 앱 ‘루빗’이다. “‘루틴화해 습관을 만들자(Make routine to habit)’는 뜻이에요. 습관이 곧 삶을 지탱하는 힘이란 걸 모두가 알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죠. 스마트폰의 NFC(무선통신기술) 기능을 이용했습니다. 기상 알람이 울리면 NFC 스티커를 붙여둔 곳에 스마트폰을 태그해야만 알람이 꺼지는 원리예요.”

크라우드 펀딩을 하며 가능성을 확인했다. “전용 앱 이용권과 NFC 태그용 스티커의 구성으로 400만~500만원의 매출이 났습니다. 2020년 12월 31일까지 앱 다운로드 수 500을 넘기는 게 목표였는데 5000이 넘었어요. 시간과 비용을 더 쏟아서라도 사람들의 일상에 더 도움이 될 수 있는 앱을 만들고 싶다는 동기부여가 됐습니다.”

사용자의 피드백을 반영해 퀘스트, 상점 등 기능을 더했다. /더비비드

기존 사용자의 피드백을 반영해 퀘스트 기능을 더했다. 사용자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캐릭터인 토끼 ‘루빗’도 만들었다. “기존 앱들은 정해진 루틴을 수행하면 끝이지만 루빗에선 보상으로 당근을 줍니다. 미션을 달성할 때마다 당근을 받고, 당근을 게임머니 삼아 가상의 방을 꾸밀 수도 있죠.”

매일 생기는 퀘스트 중 하나는 ‘일기 쓰기’다. 그날 있었던 일이나 느꼈던 감정 등을 기록하면 당근 3개가 주어진다. “당근은 기본, 답장도 받을 수 있어요. AI(인공지능)가 일기 내용을 바탕으로 위로와 응원을 담은 편지를 써 줍니다. AI 기술이 얼마나 많이 발전했는지, 마치 친한 친구가 토닥여주는 것처럼 느껴져요. 저도 편지를 받고 위로를 받을 때가 많아요.”

한국어판 루빗의 아이템 보상 화면(왼쪽)과 영어판 루빗의 응원 편지(오른쪽). 일기를 쓰면 AI 작성한 답장을 받을 수 있다. /루빗

한국인 이용자 10만명을 달성한 다음 해외 시장을 노렸다. “당시엔 챗GPT도 없던 때라 앱 내의 모든 문구를 모두 번역하는 게 지난한 작업이었어요. 구글 번역기로는 어림도 없었죠. 외국인 번역가를 고용해 1차 번역을 하고, 내부 테스트를 거치고, 유저들의 테스트까지 마친 다음 2022년 11월 영어판을 출시했습니다.”

◇루빗과 함께 한 걸음씩

현재 루빗을 이끌고 있는 팀원들과 이준영 대표. /이준영 대표 제공

현재 170여 개 나라에서 한국어·영어·스페인어·일본어로 된 루빗을 사용하고 있다. 2024년에 접어들면서 루빗은 급격히 성장하고 있다. 전체 유저 100만명 중 60만명이 2024년에 유입된 유저다. 루빗은 디캠프(은행권청년창업재단)의 창업 경진대회인 4월 디데이 본선 무대에 진출해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구글플레이 ‘올해를 빛낸 자기계발 앱’에 선정되기도 했다.

최근엔 유저의 감정과 지금까지의 행동 패턴을 추적해 새롭게 만들 루틴을 추천해 주는 기능을 개발 중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목표한 루틴을 모두 수행했을 때 가장 이탈률이 높더군요. 그에 맞는 보상을 적절하게 부여하려 합니다. 가령 게임을 좋아하는 유저라면, 새롭게 출시된 게임을 소개하며 여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제안하는 방식이죠. 현재 99%의 확률로 맥락에 맞는 루틴을 추천해 주는 정도까지 개발해 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루빗을 사용법을 설명하며 환하게 웃고 있는 이 대표. /더비비드

루빗 1호 유저는 이 대표 본인이다. “힘들 때 절 일으켜준 앱입니다. 지금은 루틴이 체화돼 기록용으로 쓰죠. 루빗 덕분에 많이 부지런해졌습니다. 처음 루틴 만들 땐 ‘시작’이 어려워요. 이후엔 ‘지속’이 어렵죠. 관건은 스트레스 관리입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서까지 루틴을 만들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휴식도 루틴만큼이나 중요해요. 루빗과 함께하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제가 그 증거입니다.”

/이영지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