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 플라스틱 거르는 생수 필터 개발한 리얼워터 권혁재 대표
많은 아이디어가 발상의 전환이나 우연에서 시작되지만, 상품으로 시장에 나오려면 부단한 노력과 시행착오가 필요합니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실행은 엄두내기 어려운데요. 나만의 아이디어로 창업을 꿈꾸는 여러분에게 견본이 될 ‘창업 노트 훔쳐보기’를 연재합니다. 그간 독자 반응이 좋았던 인터뷰를 다시 소개합니다.
얼마전 유명 과자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다량 검출된 일이 있었다. 세계자연기금(WWF)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한 사람이 일주일간 섭취하는 미세플라스틱 양은 5g에 달한다. 신용카드 1장의 무게와 같다.
미세 플라스틱은 맑은 생수에도 들어있다. 생수병을 성형 틀에 대고 팽창시키는 과정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리얼워터의 권혁재(37)는 대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수병 입구에 꽂아 사용하는 필터를 개발했다. 권 대표를 만나 생수 필터 개발 계기와 과정을 들었다.
◇예민하고 까다로운 사람이 사업하면 좋은 점
리얼워터는 미세 플라스틱을 걸러주는 생수 필터를 개발하는 기업이다. 리얼워터의 생수 필터에는 5㎛(마이크로미터. 0.005mm와 같음) 물질까지 여과할 수 있는 촘촘한 마이크로 세디먼트 필터가 장착돼 있다.
국내외 연구를 통해 생수에서 검출된 미세플라스틱의 크기는 59~139㎛이다. 리얼워터의 필터를 이용하면 생수 속 미세 플라스틱을 전부 걸러낼 수 있다는 의미다. KIAST 한국분석과학연구소의 시험성적서를 통해 크기 45㎛ 이상의 미세플라스틱을 완벽히 제거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두꺼운 생수병 뚜껑처럼 생겼다. 우리나라에서 유통되는 모든 생수병에 장착할 수 있다. 생수병 뚜껑을 열고, 병 입구에 생수 필터를 돌려 끼운 뒤 병을 눌러 물을 컵에 따라 마시면 된다. 성인 하루 권장 물 섭취량인 물 2L를 매일 여과한다고 했을 때, 필터 1개당 2개월 사용할 수 있다. 2020년 6월 첫 출시 후 지금까지 8만개 이상 팔렸다.
권혁재 대표는 학창 시절부터 광고에 관심이 많았다. 세종대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취업 대신 창업을 택했다. “어린 마음에 돈을 벌려면 취업보다는 규모가 작더라도 회사를 직접 차려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좋게 말하면 패기 넘쳤고, 나쁘게 말하면 무모했죠.”
2013년, 처음 창업에 도전한 분야는 ‘유통업’이었다. “동대문에서 신발을 사입해 오픈마켓 등 온라인에서 팔았어요. 매일 새벽 동대문으로 가 신발을 찾아다녔죠. 혼자서 시작했는데 직원이 3명까지 늘었습니다. 한창 잘될 때 연 매출 10억원까지 내봤습니다. 평소 ‘예민하고 까다롭다’는 말을 자주 듣는 편입니다. 스스로는 인지하지 못했는데, 신발도 밑창, 질감, 품질 등 모든 요소를 꼼꼼히 따져서 꽤 잘 골랐던 모양입니다. 깐깐한 기질 덕에 질 좋은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해서 좋은 성과를 낸 것 같아요.
2018년 6월, 사업 5년차에 회사를 매각했다. “이미 만들어져 있는 제품을 판매하다보니 큰 성취감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보통 유통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은 남들이 모르는 제품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뿌듯함을 느끼던데, 어느 순간부터 저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직접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기질과 관심사의 공통 분모를 찾았다. ‘건강 관리’ 분야였다. “제가 피곤한 성격이 된 이유가 있어요. 어릴 때부터 비염과 두통을 달고 살았어요. 만성 질환은 병원에서 약을 먹는다고 나아지진 않더라고요. 생활습관 관리를 잘해야 하죠. 오랜 시간 건강식품을 찾아 먹고, 꾸준히 운동하며 깨달은 게 있어요. ‘좋은 걸 많이 하는 것보다 나쁜 걸 안 해야 한다’는 거요. 영양제를 매일 한 움큼씩 먹는 것보다 배출이 어려운 미세플라스틱 섭취, 환경호르몬과 같은 독성 화학물질을 피하고, 술·담배는 안 하는 게 건강 관리 효과가 더 좋다고 느끼고 있었죠.”
◇개발만 10개월, 리얼워터 생수 필터 개발 노트
1. 상품의 존재 이유 찾아라
건강 관리 분야에서 사업 아이템을 모색하던 2019년, 생수병에 담긴 물속에서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됐다는 뉴스를 접했다. “정수보다 생수에 미네랄이 더 많다고 해서 일부러 생수만 마셨는데, 웬걸 전 세계 생수의 93%에서 미세플라스틱이 1L당 최대 1만개까지 검출됐다더군요. 충격받았어요.”
150㎛ 이하의 미세플라스틱은 소화관 내벽과 혈관 벽을 통해 신체 기관 곳곳으로 흡수된다. “임산부가 미세플라스틱을 섭취하면 태반을 거쳐 태아에게까지 전달될 정도로 침투력이 강합니다. 신체에 흡수된 미세플라스틱은 배출이 안 돼 체내에 축적됩니다. 여러 연구 결과를 보면 몸에 쌓인 미세플라스틱은 뇌 조직 손상과 암, ADHD 등을 유발할 위험이 있다고 합니다.”
생수 속 미세플라스틱을 걸러주는 제품은 따로 없었다. 제조 공정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이상, 페트병에 든 생수의 미세플라스틱 양을 줄일 방법도 없었다. “생수 속 미세플라스틱은 병을 가공하는 과정에서 생깁니다. 페트병은 풍선에 바람 불듯, 작은 플라스틱 덩어리를 5초 안에 팽창시켜 만듭니다. 이때 플라스틱 분자의 사슬이 끊어지면서, 미세 플라스틱 가루가 발생합니다. 미세플라스틱 검출량을 줄이려면 페트병을 고압이나 물로 세척해야 하는데, 이 과정을 거치면 생수 가격이 크게 올라 시행하고 있는 업체가 거의 없습니다. 유리병에 든 생수를 사면 괜찮지만, 가격이 너무 비싸죠. 빈틈이 기회로 보였어요. 생수에 꽂아서 사용하는 형태의 필터를 직접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2. 공장 사장님한테 10번 퇴짜 맞고 찾아간 곳
제품 개발을 결심하고 40만원짜리 간이 3D 프린터를 구비해 연구에 돌입했다. “필터 소재인 ‘마이크로 세디먼트’는 시중 정수기에 들어가는 필터 소재에 대한 정보를 기반으로 하면 돼서 어렵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구조 설계였죠. 생수병 뚜껑의 단면적이 작고 입구가 비좁아 여과 속도가 느렸어요. 필터의 높이를 mm단위로 조절하면서 적정한 필터의 크기를 찾아 나섰습니다. 시제품만 30번 이상 제작해 봤습니다. 노력 끝에 필터 구조에 대한 특허 2건을 등록할 수 있게 됐죠.”
시행착오 끝에 설계도를 완성했더니 새로운 과제가 나타났다. 생산 업체를 찾아야 했다. “존재하지 않던 생소한 유형의 제품인 탓에 생산 공장을 찾는 게 쉽지 않았어요. 11곳의 공장 문을 두드렸는데요. 그중 생수 속 미세플라스틱 문제에 공감하는 정수기 필터 제조 공장 사장님과 계약을 맺었습니다. 당시 업계 평균 최소주문수량(MOQ)이 2만개였는데요. 제가 금형비를 모두 부담하는 대신 첫 생산량에 한해 최소주문수량을 5000개로 줄이는 식으로 계약을 맺었습니다.”
3. 상품성에 대한 의심 불식시켜라
4번의 금형 수정 끝에 공장 시제품을 완성했다. 정식 출시 전 마지막 관문인 ‘성능 검증’에 들어갔다. “낯선 제품인 만큼 제품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최대한 많은 시험을 거쳤습니다. 기준 항목별 전문 시험기관에 제품 분석을 맡겼어요. 항목별로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까지 들었죠. 미세플라스틱 여과율 100%, 환경호르몬 불검출, 형광증백제 불검출, 기타 유해 물질 불검출 등의 시험 성적서를 제품 출시 전 모두 획득했습니다.”
제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예민한 기질을 십분 발휘했다. “소비자라고 생각하고 생수 필터에 대해 의구심을 가질만한 부분을 모두 메모하고 검증했어요. 이 과정에서 발견한 부분이 ‘필터 제조 공정 중 발생할 수 있는 미세 플라스틱 문제’와 ‘미네랄 여과 문제’입니다. 생수 필터의 겉 소재는 플라스틱이니 생산 과정 중 미세플라스틱이 발생할 수 있어요. 공정 마지막 단계에 고압 세척 공정을 추가해 이 문제를 해결했어요. 미네랄은 물속에 화학적으로 녹아있어 물리적인 필터로는 여과되지 않는데요. 소비자의 불안함을 덜기 위해 미네랄 수치 측정 실험을 통해 이 사실을 입증했어요.”
4. 소비자 반응 토대로 제품 개선
2020년 6월, 1년 5개월의 제품 개발·생산 기간을 거쳐 제품을 출시했다. 반응이 좋았다. 첫 크라우드 펀딩에 도전해 목표치의 2150%를 달성했다. “어린 자녀를 키우는 여성 소비자한테 인기가 많았습니다. ‘이런 제품을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들을 때 뿌듯해요.”
출시 이후에도 1년에 한 번씩 제품 리뉴얼을 통해 품질을 개선했다. “소비자의 피드백을 흘려듣지 않았습니다. 2021년, 여과 속도가 너무 느리다는 피드백을 반영해 필터 내부 면적을 최대한 넓혀 한 번에 더 많은 물이 나오게끔 개선했습니다. 2022년에는 병 입구가 낮은 해외 생수병에도 호환이 가능하도록 필터의 높이를 조정했죠.”
◇누적 판매량 8만개, 해외 진출 목표
생수병에 꽂아서 사용하는 형태의 필터는 리얼워터 생수 필터가 유일하다. 지금까지 8만개 이상의 필터가 판매됐다. 연매출은 약 3억원이다.
해외 특허 출원을 완료했다. 해외 시장에 진출할 예정이다. “연내 미국에 진출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우리나라 생수 시장은 1조원 규모인 것에 비해 미국 시장은 24조원 규모입니다.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시장이죠. 현재 협력사를 통해 해외 특허, 유통 경로 등의 규제 검토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기술 연구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연구 자본이 마련되면 옥수수전분 등 생분해 플라스틱으로도 생수 필터를 만들어 보고 싶어요.”
레드오션보다 블루오션 시장 공략이 더 어렵지만, 재미있다고 했다. “레드오션인 신발 유통업과 블루오션인 생수 필터 제조를 두루 경험했는데요. 후자가 더 즐겁습니다. 신시장을 개척하는 게 더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남들보다 먼저 머릿속에서 구상하던 물건을 실물로 구현하는 것에서 엄청난 희열을 느낍니다. 남들이 봤을 때는 ‘피곤하게 산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특정 문제를 해결했다는 뿌듯함에 취해 지치지 않는 거죠. 대부분의 사장님이 그 맛에 사업하시는 거 아닐까요.”
/김영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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