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처리 통합 솔루션 중소기업 지앤지인텍 이가윤 부사장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물의 화학식은 H2O. 수소와 산소로 이루어진 물질이다. 하지만 일상에서 ‘H2O’를 만날 일은 거의 없다. 우리가 마시거나 씻는 물에는 무기질, 미네랄, 박테리아 등이 포함돼 있다. 어떠한 불순물도 용납하지 않는 순수한 H2O가 필요한 곳이 있다. 반도체 생산 공장이 대표적이다.
반도체 공정에서 초순수(Ultrapure Water)는 생명수나 다름없다. 반도체 웨이퍼(원판)의 불순물을 씻어내기 위해 필요한 초정밀 순수한 물이다. 우리나라 반도체 생산에 쓰이는 초순수는 대부분 일본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2020년대 들어 우리나라도 국산화를 위한 연구·개발에 뛰어들었다.
초순수 국산화의 초석을 다지는 국내 기업이 있다. 지앤지인텍은 국내 반도체 대기업은 물론 사우디아라비아의 권위 있는 연구 센터인 카우스트(KAUST)의 수처리 시설을 제작·운영하고 있다. 이가윤 지앤지인텍 부사장(40)을 만나 물 흐르듯 이어지는 초순수 국산화의 흐름을 들었다.
◇제약사부터 제철소까지 아우르는 물 산업
지앤지인텍은 연 매출 50억원 규모의 수처리종합전문기업이다. 삼성엔지니어링 출신인 이원권 대표(69)가 폐수 재이용 기술을 바탕으로 2001년 1월 설립했다. 국내외 대⋅중견기업, 대학, 정부기관을 고객사로 하며, 초순수·재이용·해수담수화·하폐수 분야에서 연구와 설비 제작·운영 등을 이어가고 있다.
이 부사장은 이 대표의 아들이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일을 돕고 싶다고 했지만 아버지는 통 답이 없으셨습니다. ‘물’이란 게 공공재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좀 더 신중하셨던 게 아닐까 해요. 마흔이 되기까지 언론사 기자, 미디어 스타트업 창업, 액셀러레이터 기업 팀장을 거쳤습니다. 그렇게 2022년 5월 퇴사도 이직도 없는 길에 들어섰습니다.”
물은 모든 산업의 원천이다. “물이 필요하지 않은 산업군이 없습니다. 공장에서 기계를 닦거나 씻을 때도 물이 필요하죠. 이미 사용한 물을 정화해 다시 이용할 수 있는 기술도 중요해요. 직접적으로 물을 쓰는 음료회사부터 제약사, 제철소는 물론 물을 다루는 공공기관인 수자원공사도 우리의 고객사가 될 수 있죠.”
국내 반도체 대기업은 지앤지인텍의 오랜 고객사다. "반도체 산업은 집적도가 높아 고순도의 초순수가 꼭 필요합니다. 특히 반도체 산업에서 사용하는 초순수의 경우 최고 품질을 요구해요. 최종적으로 만드는 사용점(P.O.U)은 비저항(Resistivity) 18MΩ.cm(옴센티미터) 이상, 총유기탄소량(TOC)은 1.0ppb 이하, 입자(Particle)는 0.8μm 이상1.0μm 이하를 기준으로 합니다. 고순도 초순수의 자격이 이렇게나 까다롭습니다."
초순수 플랜트는 전처리 시스템, 메이크업(Make-up) 시스템, 폴리싱(Polishing) 시스템이 상호 연결된 형태로 구성·운영된다. "전처리 시스템의 경우 A/C 필터 등을 이용해 유기물·잔류 염소 등을 제거하고 메이크업 시스템은 자외선(UV)·역삼투(RO)·전기탈이온장치(EDI) 등을 이용해 박테리아 저감·이온성 물질을 제거합니다. 폴리싱 시스템은 탈기막(MDG)·이온교환 수지 등을 이용해 수중에 있는 산소와 이온성 물질을 제거하는 단계죠."
하·폐수를 처리할 땐 호기성 미생물을 활용하기도 한다. "수소·산소를 제외한 황·염소·인·질소 등 물질에 각각 잘 달라붙는 미생물이 있습니다. 여러 물질이 섞인 물에 이 미생물을 넣으면 각자 타깃으로 하는 물질에 달라붙어 찌꺼기처럼 둥둥 뜨죠. 이걸 슬러지라고 합니다. 슬러지를 다 걷어내면 순수한 물만 남는 원리예요.”
◇사우디아라비아의 러브콜
지앤지인텍은 초순수, 하폐수처리 및 재이용 등 수처리 관련한 설계 및 시공 요청이 들어오면 배관·전기를 포함한 모든 설비를 설계하고 제작해 주고 있다. 이러한 실험을 위해 제작하는 설비를 벤치(bench) 타입이라고 한다. 지앤지인텍은 연구개발부터 벤치, 파일럿(pilot), 세미 플랜트(semi-plant) 등 상용화 이전까지의 사업영역을 담당한다.
프로젝트마다 짧게는 한 달, 길게는 1년이 넘게 걸린다. "다 만들어진 설비를 운영 유지하는 역할까지 맡기도 하죠. 2008년부터 국내 대기업·중견 반도체 회사와 초순수 파일럿 EPC(설계·조달·시공)를 수행·운전하고 있습니다. 15년간 중소부터 중급 규모의 초순수 플랜트를 제작·운영하며 기술적으로 지원하면서 노하우도 적지 않게 쌓였어요."
재이용은 이미 사용한 물을 다시 쓸 수 있도록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원리는 초순수와 비슷하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폐수를 정화해 식수로 쓰는 것을 허용하기도 했다. “수처리에서는 이를 ‘재이용’이라고 합니다. 물은 무한하지 않아요. 하지만 산업이 발전할수록 물이 계속 필요하죠. 재이용 기술은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앤지인텍은 2019년 사우디아라비아 카우스트의 하폐수 처리 시설을 설계·제작했다. 호기성 입상 슬러지(Aerobic Granular Sludge)와 미생물 전기분해 셀(Microbial Electrolysis Cell) 등을 벤치 형태로 제작했다. “중동은 물이 부족하면서 동시에 유제품 선호도가 높은 곳입니다. 유제품 폐수에서 일종의 젖산을 제거해 자원화하는 프로젝트였어요.”
3년 뒤 카우스트에게 한 번 더 러브콜을 받았다. “그 사이 중국이나 유럽에 비슷한 프로젝트를 맡겼는데 기술적으로 부족함을 많이 느꼈다더군요. 2019년의 프로젝트를 파일럿 규모로 키워 제작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기존의 중앙 집중형 하·폐수 처리 시스템을 지역별 하·폐수 처리가 가능하도록 설계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목표도 있었어요.”
지앤지인텍의 핵심 기술 중 하나는 모듈러 공법이다. “재이용·초순수 등 물을 처리할 때는 적게는 10여 개 많게는 30여 개의 단계를 거칩니다. 모든 설비를 만든 후에 수출하면 제작 과정이 길어질 뿐만 아니라 운송비도 만만치 않아요. 각 단계를 모듈로 나눠 설계하고 제작해 그 단점을 보완했습니다. 납기일을 줄이고 설치기간도 단축시켰죠.”
◇K-물결로 일으키는 파도
합류 직후 회사소개서 업데이트를 위해 직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이 일을 하는 이유’, ‘회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등을 물었다. “지앤지인텍 구성원의 평균 근속햇수는 10년입니다. 설문조사지를 보니 모든 구성원이 회사에 얼마나 애정이 있는지 느낄 수 있었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회사소개서에는 고급 인력으로 고부가 가치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한국의 반도체는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평가받는다. 그에 비해 초순수 분야는 세계 시장 점유율이 낮은 편이다. “국내 반도체 대기업에서 사용하는 초순수 시설(Palnt)은 대부분 구리타, 노무라 등 일본 기업에 의존하고 있어요. 그런 와중에 25년 넘게 버티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지앤지인텍은 경쟁력을 확인받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글로벌 시장 진출은 물론 양산용 플랜트 설비까지 진출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머지않아 전 세계를 물들일 겁니다.”
/이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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