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PS 기반 축구 데이더 분석 솔루션 개발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저 친구는 왜 안 뛰는 걸까.”
조기축구회 같은 운동 동호회에서 활동한 이들은 한번쯤 품어봤을 의문이다.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팀 성적이 좋아질 것 같은데, 최선을 다하지 않는 누군가를 보면 속이 답답하다. 하지만 태도의 문제라 뭐라 지적하기에도 애매하다.
축구에 진심인 유비스랩의 황건우 대표(41)는 클럽의 성장을 위해 타당한 지적을 하고 싶었다. GPS 기반 축구 활동량 분석 솔루션 ‘사커비’를 개발한 계기다. 그를 만나 스포츠 활동에 데이터 관리가 필요한 이유를 들었다.
◇우리 축구 클럽 실력이 10년 전과 똑같은 이유
연세대 전기전자공학과 출신이다. 창업 전 LG디스플레이에서 엔지니어로 6년 근무했다. 전 직장에서 하드웨어에 들어가는 보드와 알고리즘 개발, 데이터 분석 위주로 경력을 쌓았다. 사커비는 그의 능력치가 절묘하게 결합된 결과물이다.
- 좋은 직장을 두고 창업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늘 창업 의지는 있었어요. 가설 수준에서 멈추긴 했지만 정말 많은 아이디어를 구상했어요. 현실의 벽 때문에 중도에 관둬야 하는 프로젝트가 대부분이었지만요. 사커비 역시 사이드 프로젝트로 출발했어요. 제가 좋아하는 분야라 그런지 비교적 매끄럽게 프로토타입까지 제작할 수 있었죠. 거창한 사명감보다는 필요로 시작했는데 점점 진심이 되더군요.”
- 어떤 필요일까요.
“축구 마니아입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동호회에서 뛰고 있어요. 몸담고 있는 클럽만 3곳이에요. 어릴 땐 재미로 축구를 했는데 성인이 되고 나니 축구의 전술과 승패요인 분석에 관심이 생겼어요. 전략적으로 축구에 임하다 보니 안 뛰는 팀원에 대한 불만이 생겼어요. 뭐라 하고 싶어도 논거가 없어서 답답했죠. 저는 전문가가 아니니까요. 운동장에서의 태도를 데이터로 파악하고 싶었습니다.”
- 데이터요? 그렇게까지 해야 할 일인가요.
“사실 아마추어 단에서 높은 수준의 기술을 요구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활동량은 태도와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운동장에서 마땅히 갖춰야 할 애티튜드를 갖추지 않은 사람들이 많아요. 불성실한 태도는 적은 활동량으로 귀결되고, 누군가가 덜 뛰면 팀은 패배할 수밖에 없죠. 프로 스포츠는 책임질 감독이라도 있지만 하부리그나 아마추어 축구에서는 성적이 저조해도 책임질 이가 없습니다. 10년 전 저희 팀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이 같은 데서 강한 문제의식을 느꼈어요. 주말 소중한 시간을 투입해도 경기가 제자리 걸음인 게 아쉬웠어요.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현재 상황부터 제대로 진단해야 한다 생각했습니다.”
◇GPS 기반의 활동기록 추적 솔루션 개발
GPS 기반의 웨어러블 추적기와 기록을 확인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앱) 사커비를 개발했다. 조끼와 기기가 함께 제공된다. 기기를 켜서 조끼에 탑재한 후 앱을 켜면 동기화된다. 그대로 경기를 하면 운동 데이터가 전송된다. 경기 후 앱을 보면 분석 시간, 이동거리, 최고속도, 평균 속도 등의 데이터가 뜬다. 시각 자료를 통해 스프린트를 한 위치와 강도 같은 활동 데이터도 확인 가능하다.
- 사커비의 목적은 무엇인가요.
“최우선 목표는 활동량을 기반으로 그 선수가 포지션에 맞게 얼마만큼의 역량을 수행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공격수와 수비수에게 요구되는 역할이 다르니까요. 데이터를 측정할 수단을 정할 때도 이 목적성을 고려했습니다. 영상, 블루투스, RFID, GPS 등의 수단이 후보에 올랐는데요. 가장 비용 효율적이면서 데이터의 신뢰성이 높은 GPS를 선택했죠. GPS 데이터가 정확하지 않다는 오해가 있는데요. 사실이 아닙니다. 기술적으로는 cm단위의 변화까지 측정 가능합니다. m단위인 사람 보폭의 차이 정도는 충분히 포착하죠.”
- 결국 데이터가 관건이네요.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어떤 작업을 거쳤나요.
“맞아요. 결과물이 납득이 가야 꾸준히 사용합니다. 잘못된 데이터가 나올 확률을 줄이기 위해 UX(사용자경험) 최적화에 주력했습니다. 튀는 데이터는 알고리즘으로 걸렀어요. 기기를 손에 쥐거나 주머니에 넣는 등 잘못된 방식으로 사용해서 데이터 왜곡을 초래하는 유저에게는 페널티를 부여했어요. 올바른 방식으로 사용하도록 교육도 진행하죠. 그렇게 여러 차례의 필터링 작업으로 신뢰도 높은 데이터를 쌓았어요.”
- 개발 단계에서 어려움은 없었나요.
“코로나 팬데믹의 여파로 성장의 허들을 겪었습니다. 하드웨어를 기반으로 하는 솔루션을 개발하다 보니 양산과 판매로 정량적인 성과를 내야 하는데 쉽지 않았어요. 거의 2년 동안 맘놓고 야외 활동을 못 했으니까요. 비전은 있지만 매출이 없어서 투자자들을 설득하지 못하는 답답한 상황이 오래 이어졌죠. 수요 확인과 가설 검증도 제때 못했습니다. 사람들이 축구를 안 하는 건지 외부 요인으로 못하는 건지 판단하기 어려운 상태로 미지의 1~2년을 보냈어요. 지금 생각하면 코로나라는 핑계로 소중한 시간을 허투루 보낸 것 같아서 아까워요. 물론 깨달음을 얻은 덕분에 지금 누구보다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생활 체육에 진심인 미국 시장서 호응
2019년 프로토타입을 만든 후 위기의 시간을 거쳐 2022년 사커비를 정식 론칭했다. 범용성을 높이기 위해 구매 모델과 대여 모델을 동시에 도입했다. 조기 축구 클럽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었는데 주니어 시장과 프로 클럽에서도 관심을 보였다. 멋진 축구인의 이미지를 획득하기 위해 조끼만 구매하는 재미있는 소비자층도 형성됐다. 만국 공통 언어인 축구의 특성 덕분인지 미국과 일본으로 빠르게 진출했다.
- 사커비의 활용 사례를 알고 싶습니다.
“선수 개인이 자기 데이터를 관리하는 문화를 정착하는 게 목표였는데요. 이 의도가 프로 시장에서도 통했나 봅니다. 대학 진학을 준비하거나 프로 입단을 준비하는 꿈나무들로 소비자층이 확장됐습니다. 재미있는 건 해외에서 이런 경향이 짙다는 거예요. 특히, 생활 체육이 잘 정착한 미국에서는 스포츠가 주요 과목 중 하나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30대 이용자 중심으로 반응이 왔는데 미국에서는 10대, 20대층의 관심이 뜨거워요.”
- 이해관계자들은 어떤 효용을 얻을 수 있나요.
“1차 고객은 선수 본인이지만, 효용의 범위는 학부모, 팀 코치나 감독, 에이전시까지 뻗어갑니다. 선수는 컨디션이 좋을 때와 나쁠 때의 지표를 확인해서 퍼포먼스를 관리할 수 있어요. 감독은 특정 선수가 포지션에 맞게 역량을 잘 발휘하고 있는지 판단해서 의사 결정을 합니다. 예컨대, 기술은 좋은데 활동량이 떨어지는 선수가 있다면 후반부에 교체하는 식으로 자원을 관리할 수 있죠. 에이전시들은 구단에 선수를 추천할 때 영상을 보여주는데요. 영상은 한계가 많습니다. 공식대회 기록이 부족한 후보자의 역량을 가늠할 논거도 부족하죠. 아무리 전문가라도 주관적인 판단으로 계약을 성사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인생을 걸고 커리어를 쌓는 선수들에게 가혹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커비로 보다 객관적으로 선수의 능력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성실한 학생들이 내신관리를 잘하듯 GPS 데이터를 꾸준히 관리한 후보자의 성실함을 담보할 수 있죠.”
- 유사한 솔루션이 또 있지 않나요.
“타깃이 다릅니다. 가장 유명한 곳은 팀 단위 시장에 집중합니다. 그들의 타깃은 선수가 아니라 피지컬 코치와 트레이너에요. 조직력 관리에 중점을 둔거죠. 사커비는 선수가 포트폴리오를 만드는데 도움을 줍니다. 선수 개인에 집중했죠. 비유하자면 타사가 레알 마드리드 같은 유명 구단을 유치하고 싶어한다면 저희는 레알 마드리드에 가고 싶어하는 모든 지망생들을 노립니다. 축구인이라면 누구나 명문 구단 입단을 원해요. 하지만 거기 도달할 때 까지가 문제잖아요. 저는 그 과정에 주목했습니다. 싸고, 사용법이 쉬워서 문턱이 낮지만 그만큼 신뢰성 데이터를 제시하는 솔루션을 개발한 이유죠.”
- 이용자 반응이 궁금합니다.
“’활동량을 알 수 있어서 좋다’, ‘프로처럼 축구하는 기분이다’는 피드백이 많아요. 그날그날 어떻게 운동했는지 복기할 수 있어서 좋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죠. 현재는 경기 복기로 효용을 주고 있지만 시장을 확장하려면 ‘경기력 개선 방안’까지 제공해야 합니다. 데이터를 코칭에 활용하는 방안을 구상 중입니다.”
◇남미 시장 진출 목표
사람들은 코로나 팬데믹 때 축구를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것이었다. 엔데믹이 선언되고 일상을 회복하자 많은 이들이 다시 운동장으로 달려나갔다. 사커비 이용자도 빠르게 늘었다. 지금까지 3만명의 이용자를 모았다. 풋살 참가자 매칭 앱 ‘용병구함’과 API로 연동해 플레이어 1만명의 프로필도 등록했다. 지난 4월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의 창업경진대회 디데이 본선에 진출했다. 이미 글로벌화에 성공한 점과 높은 사용자 유지율(리텐션)을 좋게 평가받은 덕이다.
- 앞으로의 계획은요
“해외 진출 범위를 확대하는 것입니다. 국가별로 요청이 들어오고 있어요. 시장적합도도 확인한 상태죠. 이제는 최대한 빨리 알리고, 빨리 써보게 하는 게 관건입니다. 올해 미국을 거점으로 남미 국가로 진출하는 게 목표입니다. 유럽 상위 리그에 남미 출신 선수가 많아요. 이 시장에 깃발을 꽂아서 선점 효과를 누리려 합니다.”
- 사커비의 비전은 무엇이가요.
“데이터를 활용해서 새로운 스포츠 경험을 창출하고자 합니다. 스포츠 경험의 청사진을 만들고 싶어요. 그 시작점은 주먹구구식으로 돌아가던 스포츠계에 데이터를 접목하는 겁니다. 축구라는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 같아 아주 보람 있습니다.”
/진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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