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기반 패션 의류 모델컷 제작 솔루션 개발기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코로나19 이후 전자 상거래가 급성장하면서 무신사, 퀸잇, 지그재그 등 패션 커머스 비즈니스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오프라인과 온라인 사이 차이를 줄이는 게 관건이다. 의류나 패션 아이템의 제품 컷만 보고 구매했다가 사진과 달라 낭패를 보는 식의 문제를 없애는 것이다.
‘모델컷’은 옷의 실루엣과 피팅감을 보여줄 수 있는 대표적인 대안이다. 말 그대로 모델이 해당 아이템을 착용한 모습을 상세 페이지에 제시하는 것이다. 모델컷의 유무는 매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문제는 모델컷을 찍는 데 적잖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는 점이다. 자본 규모가 크지 않은 사업자에겐 큰 문턱일 수밖에 없다. 스타트업 코디미의 정지혜(25) 대표는 이 점에 주목해, 가장 효율적으로 모델컷을 생성하는 솔루션을 개발했다. 정 대표를 만나 모델컷 시장에 주목한 이유를 물었다.
◇대치 키즈가 의사 대신 남몰래 선택한 꿈
코디미는 가상 모델이 의류 아이템을 착용한 이미지를 생성하는 솔루션 ‘루그 스튜디오’의 개발사다. 루그 스튜디오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해 특정 의류나 액세서리의 현실 핏(fit)을 보여준다.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는 후보정 자동화 기능을 제공한다. 이를 이용하면 단 몇 초만에 사진 속 모델의 몸매를 보정할 수 있다.
통상 모델컷 한 장을 제작하는데 7~9만원이 든다. 코디미는 루그 스튜디오를 통해 모델컷 제작 비용을 절반 이하로 낮출 구상이다. 현재 한 패션 플랫폼과 서비스 고도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 사교육 1번지 대치동에서 자란 ‘대치동 키즈’다. 의대에 진학해야 인정받는 분위기 속에서 남몰래 사업가를 꿈꿨다. “남들처럼 저도 의대에 가려고 애쓴 적이 있어요. 그러다 불현듯 진짜 원하는 건 창업이란 걸 깨달았어요. 다이슨의 창업자 제임스 다이슨의 자서전을 읽고 그 생각이 확고해졌습니다. 먼지통 없는 청소기라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사람들의 불편을 해결하고, 큰 보상을 누리는 그의 삶이 누구보다 멋지게 보였어요.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사람들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창업가가 되기로 마음먹고 2019년 성균관대 소프트웨어 학과에 입학했습니다.”
새내기 때부터 창업 준비에 돌입했다. 선배를 수소문해 창업 지도를 해줄 은사부터 찾았다. “삼성 임원 출신의 교수님을 알게 됐어요. 교수님을 찾아가 제가 생각해둔 아이디어들을 들이밀었어요. 교수님께서는 안되는 이유를 적나라하게 지적하셨어요. 모두 필요한 지적이었죠. 가혹하게 공격받고도 창업을 추진하려는 모습이 좋게 보였던 것 같아요. 팀원을 모아오면 도와주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팀원부터 모집했습니다.”
첫번째 아이디어는 대치동 학원가에서 나왔다. “대치동이 학구열이 높은 동네잖아요. 유명 강사의 대형 강의라도 있는 날엔 학부모들이 새벽 3시부터 줄을 서서 좋은 자리를 맡았어요. 요즘 같은 시대에 아이들 뒷바라지하겠다고 한파에도 긴 행렬을 이루는 모습이 안타깝고, 원시적으로 느껴졌죠. 여기 착안해 대치동 일대 유명 학원의 자리 예약 시스템을 개발할 생각이었어요.”
팀원들과 대치동 학원가로 달려가 시장 조사를 했다. 대형 학원의 원장을 인터뷰하면서 긴 행렬에 숨겨진 비밀을 알게 됐다. “긴 줄은 그만큼 인기 있는 강의라는 인상을 주기 위한 마케팅 전략이었어요. 학원으로선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었으니 예약 시스템에 참여할 유인이 전혀 없었죠. 너무 보수적인 시장이었어요. 바꾸고 싶은 문제였지만 포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학생 창업으로 B2C 서비스 개발 후 B2B로 전향한 이유
학교 창업 연계 프로그램을 통해 다시 창업에 도전장을 내밀어 보기로 했다. “평소 관심 있으면서 생활과 밀접한 영역에서 새 아이템을 발굴해 보기로 했어요. 평소 지그재그 같은 플랫폼으로 쇼핑하는 걸 좋아합니다. 그래서 ‘패션’과 관련된 아이템을 해보기로 했죠. 가진 아이디어 중 ‘디지털 옷장’을 기반으로 코디를 추천해 주는 플랫폼을 추진하기로 했어요. 이 아이디어로 2021년 예비창업패키지에 선정됐는데요. 팀장이 돌연 잠적했어요. 왜 사업화를 하지 않냐 물으니, 취업을 해야 하니 대충 마무리하고 각자도생 하자고 하더라고요. 납득할 수 없었어요. 대표자 변경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팀장을 내보내고 제가 다시 팀원을 모으기 시작했죠.”
가까스로 4명을 모았는데, 서버 개발자가 돌연 관뒀다. 3일 동안 서버 개발을 공부해서 패션 플랫폼 ‘코디미’ 개발에 들어갔다. “저와 앱 개발자, 디자이너 셋이서 한 달 동안 밤을 새며 만들었습니다. 옷 사진을 찍어서 올리면 배경을 제거해서 옷장에 등록해주고, 등록된 옷으로 다른 사람이 코디셋을 추천해 줄 수 있는 플랫폼이었어요. 옷의 속성을 분석해서 알아서 코디셋을 만들어주는 AI도 함께 개발했죠.”
2022년 5월 사업자등록을 하고 본격적으로 비즈니스에 뛰어들었다. 이용자 후기를 수렴하며 서비스를 개선해 나갔다. “AI가 만든 코디셋은 매력이 없었어요. 통계적으로 어울리는 옷끼리 꾸려져 다소 뻔하고 진부했거든요. 통통 튀는 재미가 없었죠. 사람들이 진짜로 원하는 건 코디셋이 아니라 코디셋을 실제로 입었을 때의 느낌을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공상과학에서나 나오는 발상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 연구되고 있는 기술이었죠. 그래서 가상시착 기술 연구에 착수했습니다. 가진 옷과 구매를 희망하는 옷을 매칭해서 코디할 수 있는 플랫폼을 목표로 설정했죠.”
2022년 11월, 코디미 앱 내에서 가상시착 기술의 MVP(최소기능제품)을 론칭했다. “코디 스티커와 유사한 기능이었습니다. 출시 후 한 달간 지표를 살펴봤는데요. 큰 반응이 없었습니다. 이용자들은 ‘모델보다 본인이 시착한 것을 보고 싶다’는 반응이었고 투자자들은 ‘이 아이템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어떻게 설계할 거냐’ 되물었죠. 저 스스로도 강한 의구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답이 안 나왔다. 답을 찾기 위해 가상시착 기술을 가지고 대형 패션 브랜드를 만나기 시작했다. “브랜드들도 소비자로부터 가상시착 서비스가 있으면 좋겠다는 요청을 많이 받았대요. 시착 유무가 반품율과 구매전환율에 큰 영향을 준다고 하더군요. 이때 가상시착 기능이 소비자 시장보다는 B2B(기업간거래) 시장에 더 필요하단걸 깨달았습니다. 사실 B2B 비즈니스가 진입 장벽이 높아서 그렇지, 잘 정착하면 크게 성장할 수 있잖아요. 다만 소비자 시착 기능은 기술적으로 구현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모델 시착’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상세 페이지 속 모델컷, 이토록 비싼 것이었다니
피보팅(사업모델 전환)을 단행하기로 했다. 패션 B2B 시장에서 파고들 만한 틈새를 발굴하고 나섰다. 그렇게 발견한 것이 ‘모델컷’ 시장이다. “시즌마다 수백, 수천 가지의 옷이 쏟아지는 대형 SPA 브랜드의 경우 모델컷이 없는 상품이 많습니다. 핏과 착용 느낌을 알 수 없으니 구매가 꺼려지죠. 업계 관계자들을 만나보니 모델컷 비용이 만만치 않아서 주력 상품만 모델컷을 적용하고, 나머지는 포기한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중소 패션 브랜드나 개인 쇼핑몰이 처한 상황은 더 열악했어요. 이제 막 쇼핑몰을 시작한 분 중에선 자본이 부족해 대표가 직접 모델이 되거나 마네킹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시장의 뾰족한 니즈를 발견한 거죠.”
기존의 모델컷 시장은 비효율투성이였다. “모델컷 하나 찍는데 옷 한 벌당 7~9만원이 듭니다. 모델료도 만만치 않죠. 인기가 많은 외국인 모델의 경우 3시간에 100만원을 줘야 합니다. 그렇게 촬영한 사진을 보정하는데 2주의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죠. 자체 몰이나 소규모로 쇼핑몰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시즌 초반에 여러 상품을 올리고 시장 반응을 봐 가면서 어디에 힘을 줄지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요. 현재의 구조로는 예상 매출을 가늠할 수 없는 상황에도 모든 상품에 공을 들여야 합니다. 업체로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죠. 보정도 문제였어요. 프로모션을 앞두고 있어도 모델컷 보정이 지연돼 발을 동동 굴리는 상황이 발생하곤 합니다.”
AI 가상 착장 서비스 ‘루그 스튜디오’ 개발에 들어갔다. 가상의 모델이 의류 아이템을 착장한 이미지를 생성하는 플랫폼이다. “이전에 개발한 시착 모델은 2D 이미지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서 옷의 핏까지는 구현하지 못했는데요. 이 2D와 3D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데 주안점을 뒀습니다. 마네킹에게 옷을 입힌 후 이 이미지를 인간 모델로 대치시키는 방식으로 왜곡을 최소화했어요. 궁극적으로는 모델과 옷을 선택한 후 원하는 포즈를 입력하면 모델컷이 생성되는 플랫폼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모델컷과 관련해 제기되는 주요 불편 요소 중 ‘시간’을 아끼기 위한 기능도 도입했다. “보정 자동화 기능을 개발했습니다. AI를 통해 단 1~2초 만에 허리와 팔뚝을 가늘게 조절할 수 있는 기능입니다. 외주 보정에 걸리는 시간과 비용을 절감하자는 취지에서 기획한 기능인데요. 보정 정도도 조절할 수 있습니다.”
가상 모델의 경우 실제 인물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가상시착 모델을 모집할 때 이틀 만에 30명이 지원했어요. 현재는 한 명의 모델로 플랫폼을 개발 중이지만 올 상반기에 30명의 모델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우선 우리나라 모델로 서비스를 출시할 계획인데요. 서비스가 안정되면 몸값이 비싼 외국인 모델도 도입할 구상입니다.”
◇인터넷 쇼핑몰용 모델컷, 싸고 빠르게 만들어드려요
지난 1월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가 주최한 창업경진대회(디데이) 본선에 진출했다. 인공지능 아이디어 공모전, AI ICT 등 성균관대에서 열린 창업경진대회에서는 대상과 우수상을 받았다. “저희 아이디어를 접한 예비 고객사들은 싸고, 빠르게 모델컷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 열광합니다. 온라인에서 ‘클릭 한 번으로 웹에서 모델컷을 만들 수 있다’는 광고를 집행했더니 순식간에 411명이 광고 페이지에 몰려들었어요. 뜨거운 관심을 체감하며 기존 시장의 비용과 비효율 문제를 잘 겨냥했다고 생각했어요.”
현재 한 패션 플랫폼과 POC(Proof of concept. 시장 출시 전 사전 검증)를 진행 중이다. “이 단계를 거친 후 클로즈 베타 서비스를 운영하며 피드백을 수렴할 계획입니다. 그 후 완성된 모습으로 정식 서비스를 출시하고 싶어요. 아직 기술적 보완이 많이 많이 필요한 상태죠. 기존의 코디미가 ‘있으면 좋은’ 서비스였다면 루그 스튜디오는 매출을 결정하는 주요 요인인 모델컷을 겨냥한, 큰 수요를 거느릴 서비스라고 확신합니다. 머스트 해브(must have) 아이템이죠. 쇼핑몰 사장님들이 보다 쉽고 편하게 모델컷을 확보할 수 있도록 돕는 회사로 성장하겠습니다.”
/진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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