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화면을 코드로 바꿔주는 SaaS 개발한 펑션투웰브 박승호 대표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무심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발견한 5만원 권 지폐 한 장. 분명 ‘원래 내 돈’인데, ‘횡재했다’는 기분이 든다. 과거의 나에게 뜻밖의 선물을 받은 것 같기도 하다. 세탁기에 돌리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안도의 숨을 내쉰다.
펑션투웰브(function12) 박승호 대표(38)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2016년 디자인 화면을 개발 코드로 바꿔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지만, 투자자들에게 외면받고 상용화에 실패했다. 주머니에 찔러넣어 뒀던 아이템은 6년 만인 2022년에 빛을 발했다. 그 해 10월 베타버전을 출시하고 11월엔 소프트웨어계의 빌보드 차트라고 불리는 ‘프로덕트 헌트(Product Hunt)’에서 1위를 차지했다. 박 대표를 만나 횡재한 소감을 들었다.
◇창업으로 월급 벌기
펑션투웰브는 사용자 인터페이스·사용자 경험(UI·UX) 디자인을 코드로 옮기는 과정을 자동화해주는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다. 가령 웹페이지 하나를 만든다고 할 때 디자이너가 설계한 디자인을 바탕으로 프론트엔드(사용자에게 보여지는 화면) 개발자가 코드를 작성한다. 펑션투웰브는 이 과정에 들어가는 시간과 수고로움을 덜어주는 소프트웨어다.
3년 차 이상의 프론트엔드 개발자를 대상으로 펑션투웰브의 최소기능구현제품(MVP)을 테스트한 결과, 기존 개발 방식 대비 작업시간을 최대 1/25로 줄일 수 있었다. 개발자 사이에서 난 입소문이 해외까지 퍼졌다. 2022년 10월 베타 서비스를 오픈한 이후 5개월 동안 약 150개국에서 펑션투웰브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박 대표는 한양대학교 정보시스템학과 05학번이다. 2009년 졸업을 앞두고 들었던 ‘의료정보’ 수업을 계기로 대학원 진학을 결정했다. “대학원에 들어가 서울성모병원에 연구실을 둔 교수님을 따라 ‘의료 정보의 처리 방안’, ‘스마트폰이 인터넷 중독에 미치는 영향’ 같은 연구를 함께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IT와 의료정보를 접목하는 일이 생소하고 복잡해서 인력이 많이 필요했어요. 후배들을 설득해서 3명 정도를 연구실로 데려왔죠.”
2년 만에 연구실 운영비가 바닥났다. “제 월급은 못 받더라도 후배들 몫은 어떻게든 챙겨줘야겠다는 생각에 청년창업공모전에 나갔습니다. 제출 서류 양식을 보니, ‘문제점 분석’, ‘기대효과’ 등 그 구조가 연구실에서 연구비를 지원받기 위해 공공기관에 제출하는 서류와 비슷하더군요. ‘운동 이력 관리 앱’을 주제로 3000만원의 창업지원금을 받았습니다.”
그때 월급을 나눠 가졌던 후배 중 한 명이 현재 펑션투웰브의 박범준 최고기술책임자(CTO)(34) 다. “첫인상부터 강렬했어요. 통성명하자마자 노트북을 꺼내더니 자신이 만든 총 게임을 자랑하듯 보여주더군요. ‘개발을 진짜 좋아하는구나!’ 싶었죠. 창업지원금 수령 조건은 당연히 ‘창업’이었는데요. 이 친구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같이 창업해보자고요.”
◇연 소득 최고치 찍었을 때의 기분
2012년 새로운 프레임워크(framework·수월하게 개발할 수 있도록 만든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보자며 스타트업 ‘아이앤아이’를 만들었다. “여러 아이템을 시도했어요. 자바(객체지향프로그래밍 언어)로 스마트폰 앱을 개발할 수 있는 툴, 의료정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의료 레지스트리(윈도우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었지만 모두 상용화의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그 다음 떠올린 아이디어가 ‘디자인 투 코드(Design to Code)’였다. “당시 박 CTO와 투룸에서 함께 살았는데요. 종종 밤늦은 시간까지 ‘어떻게 하면 개발을 빨리 할 수 있나’를 주제로 수다를 떨었습니다. 디자인을 코드로 바꾸는 작업만 빨리 해도 시간이 절반은 줄어들 것이란 얘기가 나와, 그길로 개발에 뛰어들었습니다. 포토샵 파일에서 데이터를 추출해 코드로 변환시키는 서비스 개발에 성공했죠. 문제는 이후였습니다. 여러 투자자를 만났지만, ‘한국에서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를 만드는 건 비상식적’이란 반응이었어요. ‘한국이 그 정도 수준은 아니다’란 판단이 작용한 것이었죠.”
2017년 사업 방향을 ‘시니어 헬스케어’로 전환하고 사명도 ‘올봄’으로 바꿨다. 어르신 방문 돌봄 서비스를 확대하겠다는 의도로 출발했지만, 3년 만에 4억8000만원의 빚을 졌다. 박 CTO의 제안으로 2019년 블록체인 플랫폼 샌드스퀘어를 만들었지만 그마저도 2년 만에 관뒀다. 이미 레드오션인 데다 성향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2021년부터 프리랜서 개발자로 일하면서 돈 되는 일은 다 했습니다. 박 CTO와 밤낮으로 노트북 화면을 보느라 콧잔등에 안경 자국이 지워질 새가 없었어요. 그렇게 독하게 일했더니 둘이서 1년에 6억원 정도를 벌었더군요. 하지만 행복하지 않았어요. 어떻게든 ‘우리의 것’을 만들어보자며 서랍 속에 묵혀뒀던 아이템을 다시 꺼내봤습니다.”
가장 아쉬웠던 아이템이 ‘디자인 투 코드’였다. “들여다볼수록 ‘이젠 되겠다!’ 는 생각이 들었어요. 2016년엔 없었던 피그마(UI·UX 툴), API(운영체제·응용프로그램 사이에 사용되는 언어·메시지 형식), 클라우드(데이터를 중앙컴퓨터에 저장하고 인터넷에 접속해 데이터를 이용하는 서비스) 등이 도움을 줄 수 있겠다 싶었죠.”
포토샵은 자유로움이 장점이자 단점이다. “포토샵으로 만든 디자인을 분석하려면 암호를 해독하듯 하나하나 풀어야 하는데요. 피그마는 UI·UX를 위해 만들어진 디자인 도구라는 점에서 포토샵과 간단한 코딩이 합쳐진 프로그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차 코딩이 돼 있으니 그다음 단계는 훨씬 수월하겠다 싶었어요.”
프론트엔드 개발자의 고충을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가령 그림 하나에 글 두 줄, 버튼 3개 정도의 간단한 디자인 원본을 코드로 옮긴다고 해 보죠. 구조 분석은 눈으로 쓱 보고 1분 만에 끝내는데, 코드는 수백 줄을 써야 합니다. 반복되는 디자인은 복사, 붙여넣기를 반복해야 하고요. 여기에 디자인이 변경되기라도 하면 이 작업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합니다. 이런 단순 반복 작업에 할애하는 시간을 단축시키고 싶었습니다.”
◇글로벌 경쟁사도 두렵지 않아
2021년 연말은 펑션투웰브의 MVP를 만드는 데 모든 시간을 쏟았다. “반복되는 코드를 하나로 묶는 컴포넌트(component) 기술을 적용했어요. 소프트웨어 구성단위(모듈)를 미리 만든 뒤 이 모듈을 조립하는 방식이죠. 3년 차 개발자 2명을 대상으로 실험해 보니 6시간 넘게 걸리던 작업이 20분 만에 끝나더군요. 여기에 확신을 얻고 2022년 4월 ‘펑션투웰브’ 법인을 설립했습니다. 그리곤 6개월 만인 10월 10일 베타 서비스를 출시했죠.”
펑션투웰브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링크 입력 창’이 가장 먼저 보인다. “디자이너들이 많이 사용하는 UI·UX 툴, 피그마의 주소를 적는 곳입니다. 복사·붙여넣기만 하면 디자인 구조를 자동으로 분석해 코드를 생성해줍니다. 펑션투웰브의 주 기능을 설명할 때 사칙연산으로 비유하는데요. 수십 개씩 나열된 사칙연산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손이 많이 갑니다. 여기에 괄호를 씌우거나, 공통된 숫자·수식을 이용하면 시간을 줄일 수 있죠. 펑션투웰브는 이런 방식으로 빠르고 정확한 코드 작성을 도와줍니다.”
우리나라 사람 특유의 ‘빨리빨리’ 정신이 경쟁력이다. “미국의 애니마(Anima), 싱가포르의 로코파이(Locofy) 등 전 세계 25개 팀이 디자인 투 코드시장에 뛰어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아요. 펑션투웰브만큼 빠르고 간단하게 작동되는 서비스는 못 봤습니다. 타사 서비스들은 페이지 방식으로 한 장 띄우는 데 최소 5초 이상 걸리는데 펑션투웰브에서는 모든 페이지를 한 번에 띄워놓고 작업할 수 있어요.”
펑션투웰브는 2022년 11월 15일 미국 커뮤니티 플랫폼 ‘프로덕트 헌트’에서 ‘오늘의 제품(Product of the Day)’ 1위에 선정됐다. 프로덕트 헌트는 2022년 10월 기준 월 500만명이 방문하는 스타트업계의 빌보드 차트다.
펑션투웰브 출시 이후 약 5개월간 5만4000명이 새로 유입됐다.그중 1만3000명이 가입했다. 미국, 한국 외에도 베트남, 프랑스, 브라질, 멕시코 등에서 펑션투웰브 가입자를 찾을 수 있다. “유튜브,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에 약 50건 정도의 후기가 올라왔는데요. 정말 신기한 게 그중에 한국어 후기는 단 1건뿐입니다. 선플 찾아보는 연예인이 된 것처럼 후기를 보고 또 봅니다. 글로벌 고객들을 만나기 위해 영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어요.”
◇해외 팬이 더 많은 한국 소프트웨어
주요 수익원은 구독료다. 월정기 구독 방식으로 월 49달러(약 6만3000원), 연 468달러(약 60만원)를 받고 있다. “아직 월 매출은 100만원을 맴돌고 있어요. 현재 버전으로는 대부분의 기능을 무료로 쓸 수 있기 때문이죠. 2023년 상반기 중으로 새로운 버전을 내놓을 계획입니다. 지금까지 무료로 풀어둔 기능은 그대로 두고 새롭게 추가되는 기능에만 요금을 부과하려 해요.”
2023년 2월 디캠프(은행권청년창업재단)에서 주최하는 창업경진대회 디데이 글로벌 리그에서 ‘디캠프 상’을 받았다. “어쩌다 보니 ‘연쇄 창업가’라는 타이틀이 생겼지만, ‘내가 이렇게까지 확신을 가진 적이 있었나’ 생각한 아이템은 펑션투웰브가 유일합니다. 이젠 앞만 보고 달려갈 거예요. ‘비상식적’이라던 한국산 SaaS가 글로벌 시장에서 이름을 떨치도록 만드는 게 제 사명입니다.”
/이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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