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육 간편식 기업 브라잇벨리(Brightbelly) 양영란 대표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일본 소설 ‘달팽이 식당’의 주인공은 엄마와 딸이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엄마는 딸에게 특별한 부탁을 한다. 키우던 애완 돼지를 잡아 장례식 피로연을 해 달라는 것이다. 딸은 그 돼지로 혼신의 힘을 다해 요리를 하고 무사히 장례식을 마친다. 읽는 사람에 따라 다소 엽기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결말이다.
브라잇벨리 양영란 대표(53)는 돼지를 죽이고 요리하는 부분에서 생각에 잠겼다. 육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고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게 된다면 한 끼라도 덜 먹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양 대표는 육식을 즐기지 않지만 그렇다고 채식주의자도 아니다. 대체육 간편식 스타트업 브라잇벨리(Brightbelly)를 이끌며 자연스럽게 고기와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는 양 대표를 만났다.
◇단절된 경력 이어 붙이기
브라잇밸리는 다양한 비건 식품을 만든다. 플랜트 왕교자, 플랜트 유니짜장면, 아시안 노밋피자(no meat pizza)에 이어 최근 올비건(All-vegan) 떡볶이를 개발했다. 고기를 쓰지 않는 단순한 혀속임에 그치지 않으면서, 맛있는 비건 음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현재 온라인몰에서 한정기간 공동구매 행사중이다.
1992년 상명여대 국어교육학과를 졸업하자마자 교단에 섰다. ‘선생님’으로 불린 지 딱 10년째 되던 2002년, 돌연 캐나다로 떠났다. “결혼을 하면 남편을 따라가는 게 당연하던 시절이었어요. 아들딸을 키우며 오타와대 교육학과에서 공부를 이어갔습니다. 그땐 몰랐는데 그게 ‘경력 단절’의 시기였더군요.”
캐나다에서의 삶은 온통 ‘자연’으로 가득 차 있었다. “법이 얼마나 엄격하냐면요. 길에서 흙 한 줌도 마음대로 가져갈 수 없고, 우리 집 텃밭에조차 농약을 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다양한 동물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어요. 집에서 요리하고 있으면 냄새를 맡고 온 비버, 스컹크, 사슴이 창문 가에 나타났고, 매년 9월이 되면 냇가에 연어가 올라와 알을 낳았죠.”
2005년 겨울, 급히 귀국길에 올랐다. 소장과 대장 사이에 생긴 용종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기 위해서였다. 수술은 무사히 끝났다. 문제는 급격히 불어난 몸이었다. “평생 164㎝에 45~47㎏을 벗어난 적 없었는데 56㎏까지 쪘어요. 먹는 양을 줄여도, 고강도의 운동을 해봐도 소용없었죠. 논문을 뒤져보다 ‘항생제 과다 복용’이 원인일 수 있다는 연구를 발견했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논문에 소개된 녹두·팥·계피 등을 먹었더니 10㎏이 순식간에 빠졌어요. 건강한 식품이 웬만한 약보다 낫다는 사실을 실감했죠.”
3년 뒤 한국에 다시 터를 잡았다. ‘엄마’, ‘와이프’가 아닌 ‘양영란’으로 불리는 삶을 찾아 돌아왔다. 청소년 리더십 캠프를 운영하는 한국호비본부에서 실장으로 일하다 2010년 헤럴드미디어 전략사업팀으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헤럴드를 이끌던 홍정욱 올가니카 회장이 제 인생의 롤모델이었어요. 이 사람이 가진 걸 스펀지처럼 흡수하겠다는 각오로 이직했죠.”
2014년 헤럴드미디어의 자회사인 식물성 혁신 푸드 기업 올가니카(ORGANICA)의 세일즈마케팅 본부장으로 발령받았다. 올가니카는 동물성 재료를 제외한 자연 재료를 활용해 주스·프로틴 등을 만드는 기업이다. “캐나다에서 지내는 동안 몸소 느꼈던 ‘친환경’을 제품으로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에 설렜습니다.”
본부장에서 상무, 이사를 거쳐 대표 자리에 올랐다. “좋은 음식을 만들자는 사명감을 마음에 새겼습니다. 소비자의 건강과 자연환경을 함께 지키는 음식이 진짜 좋은 음식이라고 생각해요. 한 번은 클렌즈 샐러드를 만들어 고객사와 미팅한 적이 있는데요. 샘플 제품에서 살아있는 달팽이가 나왔습니다. 농약을 치지 않고 유기농으로 재배했기 때문이었죠. 고객사에선 오히려 좋게 봤는지 바로 계약이 성사됐고, 그 해 샐러드로 20억원의 매출을 냈습니다.”
부침이 없었던 건 아니다. “단백질 파우더 3억원어치를 대형마트에 입고한 첫날이었어요. ‘툭툭’ 소리가 나더니 창고에 쌓여있던 파우더 포장지가 순식간에 모두 뜯어졌습니다. 친환경이라며 비싼 종이를 썼지만 충분히 튼튼한지 확인하지 않은 탓이었죠. 수천만원을 들여 10개 매장에서 제품을 반품·교환했습니다.”
◇육식주의자가 먹는 비건 음식
2017년 무렵 올가니카 내부에서 ‘대체육’이 화두로 떠올랐다. 어쩌면 한발 늦은 시점이었다. 미국·유럽 등에선 이미 대형마트에서 대체육 제품을 사 먹을 수 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아니 외면했던 축산업의 잔혹함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사육장에서 돼지가 스트레스를 받아 서로의 꼬리를 물자, 인간은 갓 태어난 돼지의 꼬리를 자르고 이빨을 뽑아버리는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닭의 수명은 7~13년 정도인데요. 치킨용 닭은 빠르면 한 달 만에 키워져 뜨거운 기름으로 들어갑니다. 닭이라기보다 ‘조금 큰 병아리’에 가깝죠. 이렇게 고기를 ‘생산’하는 걸 보면, 키우던 돼지를 잡아 요리한 소설 속 주인공이 오히려 더 ‘인간적’이라고 느껴지지 않나요.”
2021년 2월 대체육 간편식 신사업 팀을 꾸렸다. 6개월간의 개발 끝에 7월 브라잇벨리가 법인으로 정식 출범했다. “처음엔 임파서블푸드 등 미국의 식품벤처기업처럼 대체육을 만드는 자체 기술을 개발하고 싶었어요. 독일·영국·벨기에·네덜란드 등으로 출장을 다니며 식물 유래 성분으로 만든 우유, 치즈, 초밥을 맛보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대체육을 ‘콩고기 스테이크’ 정도로 한정하기엔 확장성이 너무나 컸죠. 고기가 들어가는 모든 음식을 대체육으로 바꾸는 방향으로 노선을 변경했습니다.”
비건(육류·우유·생선·동물의 알 등 동물에게서 얻은 식품을 일절 먹지 않는 채식의 한 형태)을 비롯한 채식주의자뿐만 아니라 간헐적 채식주의자들의 메뉴 선택의 폭을 넓히는 것을 목표로 정했다. “한 금융기관의 보고서를 보면 2021년 우리나라 비건 인구 약 250만명 중 49%가 ‘간헐적 육류 섭취를 한다’고 응답했습니다. 유연한 채식주의자가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대체육 간편식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육식을 즐기는 사람이라도 일주일에 하루, 한 끼 정도는 고기 대신 먹을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죠.”
플랜트 왕교자, 플랜트 유니짜장면, 아시안 노밋피자(no meat pizza)에 이어 최근 올비건(All-vegan) 떡볶이를 개발했다. “‘대체육’이라 하면 거창하고 무겁게 들린다고들 하더군요.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해 호불호가 갈리지 않으면서 고기 비중이 너무 크지 않은 메뉴로 선택했습니다. BTS 멤버들이 떡볶이를 먹는 모습이 전파를 탄 이후 ‘떡볶이’에 대한 세계의 관심도 급상승했죠. 수출까지 기대하고 있어요.”
떡볶이에 떡만 들어가는 게 아니다. 어묵, 만두, 튀김, 차돌박이 등 토핑도 놓칠 수 없다. 떡볶이가 ‘비건’이기 어려운 이유다. “브라잇벨리 비건 국물떡볶이는 대체육으로 만든 왕만두와 두부를 넣었습니다. 궁중떡볶이에는 대체육 불고기를 올렸어요. 기존 간장·짜장 떡볶이는 주로 카라멜 색소 등 인공 감미료를 넣어 먹음직스러운 색과 맛을 내는데요. 인공 색소, 첨가물, 액상 과당 등은 배제하고 버섯, 양파, 마늘 등 천연재료로 감칠맛을 끌어올렸습니다.” 현재 온라인몰에서 한정기간 공동구매 행사중이다.
◇고기 없는 월요일을 채우는 음식
브라잇벨리는 순항 중이다. 2021년 8월 출시한 비건 함박스테이크는 1년간 90만개 넘게 팔렸다. 그 외에 피자, 부리또, 떡볶이 등 10가지 종류의 음식을 식물성 원료만으로 만들어 냈다. 지난 2022년 11월에는 주한유럽상공회의소(ECCK·European Chamber of Commerce in Korea)가 주관한 ‘2022 ECCK 지속가능성 어워드’의 그린 스텝 부문을 수상했다. 지속 가능성 활동을 적극적으로 실천한 기업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비틀즈 멤버 폴 매카트니가 ‘고기 없는 월요일(Meat Free Monday)’ 캠페인을 제안한 적이 있어요. 축산 동물의 고통, 기후 변화의 속도를 줄이기 위해 일주일에 월요일 하루만이라도 고기 없이 살자는 뜻이었죠.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당장 그만 먹으라고 할 순 없습니다. 저도 그건 못해요. 하지만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고기를 대신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찾아보길 바랄 뿐입니다. 그 자리를 채워줄 음식이 브라잇벨리가 되길 희망합니다.”
/이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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