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기업 지원 프로그램 'LG소셜펠로우' 13기
킥오프세리머니 르포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을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여기 계신 대표님들 평소에 ‘미쳤다’, ‘사서 고생한다’는 소리 자주 들으시죠? 저도 그래요.”
사회적경제기업(사회적 가치와 이윤 창출을 공동의 목표로 두고 경영하는 기업) 전문 투자사 MYSC 김정태 대표의 말에, 자리에 앉아있던 스타트업 대표들이 공감한다는 듯 웃었다.
요즘 많은 회사들이 ESG(기업의 비재무적 요소. 환경·사회 등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 활동을 뜻한다)를 외친다지만, 제대로 실천하는 기업을 찾는 건 쉽지 않다. 어떤 것부터 해야 할지 엄두도 안 나고 웬만한 규모의 기업이 아니라면 실천할 여력도 없다.
그런데 창업 목적 자체가 ‘환경 같은 사회 문제 해결’이라니, ‘이윤 창출은 차치하고 운영이 될까’라는 의문부터 든다. 그야말로 사서 고생하는 일이다.
고생을 자처한 기업 대표들에게 LG전자·화학이 지름길을 터줬다. 어려움을 겪을 때는 든든한 뒷배가 돼주고, 기업 성장에 도움 되는 활동을 지원한다. 5월 16일 오후 2시, 서울 성수동 메리히어 지하 2층에서 열린 LG소셜펠로우 13기 킥오프세리머니(발대식)를 찾았다.
◇통 큰 금융 지원으로 시작
‘LG소셜펠로우’는 LG소셜캠퍼스가 운영하는 기후환경 분야 사회적경제기업 지원사업이다. LG전자·LG화학은 2011년부터 ‘LG소셜캠퍼스’를 운영하면서, 환경 문제 해결을 비즈니스 모델로 삼은 사회적경제기업의 성장을 돕고 있다. LG소셜펠로우에 선정된 기업은 2년간 5000만원 이상의 금융지원을 받고 맞춤형 액셀러레이팅, 대기업과 협력 등의 기회를 누릴 수 있다. LG소셜캠퍼스 운영사인 사단법인 피피엘과 MYSC가 LG전자·LG화학 함께 펠로우 기업을 선정하고 지원한다.
이번 행사는 LG소셜펠로우 13기로 선정된 8개 기업의 발대식이었다. 13기 펠로우 기업의 첫번째 공식 일정이다. 사단법인 피피엘 한종훈 선임 매니저의 진행으로 행사가 시작됐다. 그는 “기후환경분야 기업을 육성해 생활 속 실질적 변화를 창출하는 LG소셜캠퍼스의 비전에 걸맞게 선정된 펠로우 기업으로서, 기후환경분야에서 긍정적인 인식이 확산되도록 캠페인, 교육 등 연 2회 이상의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개최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후 한 매니저는 바로 기업별 금융 계약 서류부터 취합했다. 각종 계약 서류를 안내하고 지원금 전용 통장을 지급하는 과정이다. 13기에 선정되자마자 금전 지원부터 받는 셈. 발대식에서 지급된 지원금은 기업별 2000만원으로 대환 목적을 제외하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추후 활동 성과에 따라 3000만원 이상의 지원금을 추가로 지급한다.
◇LG소셜펠로우 13기는 이렇게 뽑았습니다
기술력과 LG전자·LG화학 간 협업 가능성 등 비즈니스 확장성을 중점적으로 고려해 선정된 LG소셜펠로우 13기 기업은 그린컨티뉴·리플라·사라나지구·숲속의작은친구들·써스테인어스·에코넥트·이엠시티·티이로 총 8개 기업이다.
LG화학 CSR팀 이영준 책임, LG전자 사회공헌팀 최건 책임의 환영사에 이어 LG소셜캠퍼스 운영위원인 김부열 사단법인 피피엘 이사와 김정태 MYSC 대표의 격려사가 있었다.
LG화학 CSR팀 이영준 책임은 환영사에서 12기 LG소셜펠로우 기업과 LG화학 간 오픈이노베이션(기업 내부 자원·기술을 외부 기업과 공유하면서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어 내는 전략) 성공 사례로 12기 LG소셜펠로우 기업 ‘넷스파’를 들었다. 넷스파는 폐어망에서 나일론을 추출하는 기업이다. LG화학은 넷스파와 업무협약을 맺어 2024년 가동 예정인 충남 당진시 열분해유 공장의 원료를 넷스파에서 수급하게 됐다. 이 책임은 “13기 펠로우 기업과도 협업 지점이 있는지 궁리하겠다”고 밝혔다.
김부열 이사는 13기 선정 기준을 밝힌 후 선정 기업에 몇 가지 조언을 했다. 그는 “이번 13기는 기술력으로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기업을 선정했다”며 “LG전자·화학과의 오픈 이노베이션 기회를 꼭 잡아라”고 조언했다.
이어 비금전적 지원 프로그램도 적극적으로 이용할 것을 강조했다. “활동에 어려움이 있거나 사소한 궁금증이 있으면 주저 말고 LG소셜펠로우 운영위원을 귀찮게 하라”며 “장기적으로 보면 단순 금융 지원보다 LG소셜펠로우 활동에서 얻어가는 인적 자본, 교육 등이 훨씬 가치 있었다고 느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정태 대표는 자신감을 가질 것을 주문했다. 그는 “투자자라고 모든 비즈니스 모델을 다 이해하는 건 아니다”라며 “대부분의 사회적경제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은 복잡하다. 투자자가 부정적인 시선으로 사업 아이템을 평가해도 주눅 들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김 대표는 기억에 남는 LG소셜펠로우 기업으로 10기의 ‘트래쉬버스터즈’를 꼽았다. 각종 일회성 행사를 포함해 기업 탕비실·영화관·대학 캠퍼스 등에서 일회용품 없이 공간을 운영할 수 있도록 친환경 다회용기를 제공·세척·수거하는 기업이다.
그는 “펠로우 기업 선정 당시만 해도 기업가치가 5억원 수준이던 곳인데 지금은 기업가치를 300억원 이상으로 평가받고 있다”며 “LG소셜펠로우 활동 기간 동안 친환경 활동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선순환 비즈니스 구조를 정립하면 성과는 무조건 따라온다”고 강조했다.
◇“회사에서는 제가 곤충으로 돈 벌 줄 몰랐을 겁니다
LG소셜펠로우 기업 선정 증서 수여식 후 각 기업 대표의 비즈니스 모델 소개와 소셜펠로우 선정 소감을 나누는 시간이 이어졌다. 삼수 끝에 LG소셜펠로우에 선정된 ‘숲속의작은친구들’의 이용화(42) 대표가 연사로 나섰다.
숲속의작은친구들은 멸종위기 곤충 생육기기 ‘큐비인큐베이터’를 개발한 기업이다. 2015년 창업해 나무로 된 ‘곤충호텔’을 만들어 곤충 서식지가 파괴된 곳에 비치하는 일로 시작했다. 현재 큐비인큐베이터를 일본으로 수출해 연간 8억원 이상의 매출을 내고 있다.
이 대표는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방위 산업 분야 기업 부설 연구소에서 10년간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2015년 회사의 허락을 받아 부업으로 숲속의작은친구들을 창업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곤충을 좋아했다”며 “회사에 다니면서도 주말마다 곤충 채집과 서식지 탐사를 하러 다녔다”고 말했다.
곤충 애호가답게 눈썹을 사슴벌레의 뿔 모양으로 다듬은 그는 곤충에 대한 애정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평소 곤충 서식지를 꿰뚫고 있다 보니, 해가 바뀔 때마다 서식지가 파괴되고 곤충의 개체수가 줄어드는 게 잘 보였다”며 창업 계기를 밝혔다.
사업 초기에 이 대표는 희귀 애완 곤충을 길러 판매하는 비즈니스를 했었다. 곤충 판매 일을 하다가 지자체에서 환경 보호 활동의 일환으로 멸종 위기 곤충 서식지 개선 사업을 하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지자체로부터 사업을 발주받아 나무, 풀, 솔방울로 만든 곤충 호텔을 숲에 비치하면서 회사를 키웠다.
숲속의작은친구들은 2016년 예비 사회적 기업, 2018년 사회적 기업에 선정됐다. 이 대표는 2016년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사업에 전념했다. 그는 “2016년 울산에 600평 규모의 곤충 체험관을 설립하고 아동을 대상으로 생태 교육을 진행하며 곤충 생육기기 개발에 대한 욕구가 더 커졌다”며 “기계와 회로 설계를 잘하니 멸종 위기 곤충의 서식 환경을 인공적으로라도 조성해 멸종을 막고 싶었다”고 했다.
그가 개발한 ‘큐비인큐베이터’는 두점박이 사슴벌레·물방개 등의 멸종 위기 곤충을 생육하는 기기다. 얼핏 보면 플라스틱 상자 같다. 주요 기능은 항온이다. 열전 소자와 팬을 활용해 자동으로 온도를 조절한다. 곤충을 위한 에어컨과 열풍기가 한 번에 들어있다고 보면 된다. 조립식이라 곤충의 종류에 따라 공간을 자유자재로 넓히거나 좁힐 수 있다. 국내에서 조립식 곤충 생육기기를 개발한 기업은 숲속의작은친구들이 유일하다. 정부·대학의 연구 기관에도 납품했다.
숲속의작은친구들은 세 번의 탈락 끝에 LG소셜펠로우 사업에 선정됐다. 이 대표는 “기술력을 입증하는 지식재산권 확보와 곤충 산업의 성장, 제품 수출 물량 증가 등 다양한 요소가 시너지를 내 LG소셜펠로우에 선정됐다”며 “본사가 울산에 있어 투자 여건이 좋은 편은 아니었는데 LG소셜펠로우가 단비 같은 존재가 돼줬다”고 했다.
이 대표는 협업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을 보였다. 그는 “LG전자의 식물재배기 ‘틔운’처럼 애완 곤충 시장이 커지면 곤충 생육기기도 가전의 일부로 인식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큐비인큐베이터를 재생 플라스틱으로 생산하는 방안을 두고 LG화학에 조언을 구하고 싶다”며 “제품 개발 시 탄소 배출량을 더욱 줄일 방안을 고민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13기 LG소셜펠로우에 선정된 기업은 5월 16일 발대식을 시작으로 1년간 실무진 교육, 기업 등 자원 연계, 공간 제공, 기업 홍보 등 다양한 지원을 받는다. 5월 26일에는 LG화학 석유화학사업본부 환경안전팀과 LG전자 안전환경부서의 환경안전지원활동인 'SafeCon 사업 환경안전교육'이 진행된다.
/김영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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