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도면 솔루션 개발한 팀워크 정욱찬 대표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최초의 설계 도면을 그대로 구현한 건물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겉으로는 똑같아 보여도 창문 위치, 배관 크기, 문고리 하나라도 조금씩 달라지기 마련이다. 달라진다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현장 상황에 따라 더욱 효율적인 배치 방법을 적용하거나 비용을 절감하는 방법을 고안할 수 있다.
문제는 ‘소통’이다. 건물 한 채에 많게는 수천 장에 달하는 도면이 쓰인다. 건축·구조·기계·전기·토목 등 각종 분야의 전문가들이 협업해야 하지만 다른 분야의 변경 사항까지 확인하기란 쉽지 않다. 작업 현장에서는 ‘최종 결정 사항’이 맞냐는 확인 전화를 수시로 해야 한다.
팀워크 정욱찬 대표는 원하는 도면을 5초 만에 찾아볼 수 있는 솔루션 ‘팀뷰’를 개발했다. 롯데건설, GS건설, 호반건설 등 13개 건설사에서 팀워크의 스마트 도면 솔루션을 사용하고 있다. 정 대표를 만나 도면의 디지털화가 필요한 이유를 들었다.
◇효율적인 건설이란
팀워크는 클릭만으로 원하는 정보를 찾을 수 있는 디지털 도면 통합 관리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팀뷰’를 개발했다. 팀뷰는 모바일 클라우드 기반으로 종이 도면과 달리 스마트폰·태블릿·노트북 등으로 언제 어디서든 도면을 열어볼 수 있다. 작업 도중 도면이 수정되더라도 실시간으로 소통·협업이 가능하다.
팀뷰에서는 일반 도면처럼 하늘에서 내려다본 듯한 도면이 기본값이다. 다만 원하는 도면을 찾기 위해 수십·수백 장에 달하는 종이를 들춰볼 필요가 없다. 보고 싶은 곳을 클릭·터치만 하면 된다. 세부 기능을 활용하면 더욱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 이를테면 전기 담당자는 전기 도면을 ‘북마크’ 해 두고 보다가, 구조·기계 도면을 동시에 확인하고 싶을 때 전체 도면을 한꺼번에 띄울 수 있다. 그리고는 ‘최근 본 도면’으로 돌아가면 된다.
2016년 9월, 청주대 건축학과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마포구의 한 건축설계사무소에 입사했다. “건축사 한 분이 대부분의 일감을 관리하는 작은 사무소였어요. 1년 차에 과장·차장급에서 할 만한 일을 맡았습니다. 그러다 배관 설계 단계에서 선 하나를 잘못 그려 넣어 100억원의 손실을 볼 뻔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때의 경험 덕분에 강심장으로 단련이 된 것 같아요.”
2년 뒤 GS건설로 이직했다. “대기업에 가고 싶었던 게 아니라 ‘현장’에 가고 싶었어요. 당시 GS건설이 경기 시흥에 ‘스마트 건설’을 모토로 1719세대 규모 아파트를 건설하고 있었습니다. 스마트 건설이라고 하면 모든 시스템이 이미 갖춰져 있을 것 같지만, 아니에요. 그런 시스템을 만드는 게 제 일이었어요. 전화도 통하지 않는 건설 현장에 네트워크 선을 깔고, 사각지대가 생기지 않도록 CCTV를 직접 설치했죠.”
더 다양한 건설 현장을 찾아 2019년 코바엔지니어링으로 옮겨갔다. 건축정보모델(BIM) 팀장으로 일하며 드론을 띄워 현장을 관제하거나 로봇 현장 관리 시스템을 테스트했다. “2D든 3D든 도면을 아무리 잘 그려도 현장 상황에 따라 수정사항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이때 건설사·관·발주처가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충돌하죠. 통계나 데이터에 따른 의사결정이 필요한데 결국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더군요.”
회의감이 일었다. “실랑이가 길어지면서 설계 의도와 다르게 시공되는 사례를 수없이 봤습니다. 예를 들면 ‘올라갈 수 없는 계단’, ‘열 수 없는 문’ 같은 엉뚱한 시설이 생기는 것이죠. 효율적인 건설 현장을 만들고 싶었는데, 이대로 주어지는 일만 하다 보면 꿈이 점점 멀어질 것 같았습니다.”
2020년 4월 대책 없이 사표를 던졌다. 건설 현장에서 보고 들으며 느낀 점을 돌이켜 봤다. “스마트 건설을 표방하는 곳에서도 기존 2D 설계 정보를 단순히 3D 모델링으로 전환하는 것에 그치고 있었습니다. 그마저도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3D모델보다 건물이 더 빨리 지어진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어요.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작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편리한 시스템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동안 지나쳤던 도면에 시선이 갔다. “건설팀 소장님에게 수정된 도면을 보여드렸을 때 ‘도면 안 보고도 건물 잘 짓는다’는 말을 듣고 아연실색한 적이 있어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도면을 꼼꼼하게 확인하기 어려운 환경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파트 한 채에 짓는데 투입되는 도면이 20~30권에 달하는 데다, 당장 필요한 도면이 어디에 있는지 찾는 것만 해도 일이었으니까요. 현장 작업자가 언제든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도면의 디지털화가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불합격과 합격의 차이
소프트웨어 개발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새싹(Seoul Software Academy) 프로그램에 등록했다. “3개월에 10만원 받는 비전공자 개발 입문용 과정이었어요. 웹, IOS, 안드로이드를 동시에 만들 수 있는 언어인 플러터(Flutter)를 배웠죠. 그리곤 소프트웨어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현장에서 일하는 선후배 동료들에게 ‘보기 좋게 만들어 주겠다’며 도면을 받아왔다. 6개월간 머리를 싸맨 끝에 팀뷰 초기 모델을 완성했다. ‘거실’, ‘안방’ 같은 이름이 아니라 위치 정보로 도면을 찾아볼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를 위해 도면을 데이터화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기존 도면 5000장을 재가공했더니 약 2만개 이상의 데이터가 나왔다. 검색이 용이하도록 단순 파일을 최소 단위로 쪼갠 것이다.
최소기능제품(MVP)도 나왔겠다, 기대를 안고 스타트업 공모전에 출전했다. “2020 스마트 건설 창업 아이디어 공모전, 중소벤처기업부 청년창업 아이디어 경진대회 등에서 줄줄이 낙방했습니다. 한 번은 탈락 이유가 너무 궁금해 심사위원을 붙잡고 물어봤어요. ‘건설사가 과연 구매하겠느냐?’, ‘실제 사용 사례가 너무 적다’는 평을 들었죠.”
MVP를 만들면서 협업했던 GS건설, 금성백조건설 등 건설사 담당자들을 다시 찾아갔다. “디지털 도면의 사용 후기를 들려달라고 했어요. ‘파일명을 떠올릴 필요 없이 원하는 위치를 터치하기만 해도 도면을 볼 수 있다’, ‘사용 방법을 따로 교육할 필요가 없다’ 등의 내용을 녹음했죠. 효율적인 건설 현장을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건설사가 충분히 비용을 지불할 것이라는 근거를 쌓아갔습니다. 사례가 쌓이자 경기주택도시공사(GH)와 업무협약을 맺고, 건설사업비 총 1조원 규모의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졌습니다.”
2021년 5월 예비창업패키지에 선정됐다. 첫 성과였다. 이어 11월에는 ‘도전! K-스타트업 예비창업리그’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상금은 고스란히 개발비에 재투자했다. “정식으로 개발팀을 꾸리고 기능을 하나씩 추가했습니다. 가령 도면 메모 기능으로 특정 위치에 전달 사항을 써두면 관련 작업자 모두에게 공유되도록 했어요. 기존엔 ‘타일에 금 갔음’, ‘벽면이 울퉁불퉁하니 고르게 해야 함’ 같은 내용을 현장 벽면에 분필로 썼습니다. 못 보고 지나치거나 지워지면 없던 일이 돼버리죠."
해외에도 블루빔(Bluebeam), 플랜그리드(Plangrid) 등 도면의 디지털화를 구현한 스타트업이 있다. “타사에서는 여전히 도면을 ‘파일’ 단위로 구분합니다. 원하는 정보를 찾을 때 다른 솔루션에서 5분 넘게 걸리는 일을 팀뷰로 40초 만에 해낸 적도 있어요. 폴더 위치나 파일명을 몰라도 평면 도면에서의 위치만 알면 모든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솔루션은 팀뷰가 유일합니다.”
◇언어가 없는 도면
지난 1년간은 포트폴리오를 쌓는 데 집중했다. “지금까지 13개의 건설사에게 3만8419장의 설계도서를 받아 15만2664개의 데이터를 만들었습니다. 2023년은 본격적으로 매출을 내야 할 시점이에요. 도면 5000장 기준 서비스 구축 비용 1000만원, 건설 기간 내 솔루션 사용료 월 100만원, 데이터 분석·보관 비용 월 20만원 등으로 책정했습니다. 올해 10억원의 매출을 내는 게 목표입니다.”
팀워크는 2023년 3월 디캠프(은행권청년창업재단)에서 주최하는 창업경진대회 디데이에서 우승했다. “건설사에서 직장생활을 한 덕에 옛 동료들에게 팀뷰 사용 후기를 자주 들을 수 있습니다. 현장마다 작업자 연령대가 다양한데, 디지털 기기에 익숙지 않은 중·장년층도 금세 사용법을 익힐 수 있었다는 평을 들었을 때 정말 뿌듯했습니다.”
팀뷰가 건설 현장의 필수재가 되는 날을 꿈꾼다. “건축·설계 분야 종사자 중에서 오토캐드(AutoCAD)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종이에 직접 그리던 도면을 컴퓨터 소프트웨어로 옮긴 프로그램이죠. 팀뷰도 도면이 존재하는 모든 곳에서 쓰이는 솔루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프로그램에 비해 해외 진출도 수월해요. 도면엔 언어가 없으니까요.”
/이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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