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92년생 전역 군인이 5000평 파프리카 농장 해서 버는 연수입

더 비비드 2024. 6. 26. 11:27
경남 고성 5000평 파프리카 스마트팜 다녀왔습니다

선미원 농장의 이세훈 농부. 수확할 때 사용하는 전동레일 카 위에서 포즈를 취하는 모습. /더비비드

“처음에는 그저 몸 쓰는 일은 자신 있다는 생각으로 뛰어들었어요. 그런데 요즘 농사일은 머리도 많이 써야 하더라고요. 비닐하우스 내 온·습도·이산화탄소 농도 관리와 에너지 소비량 확인, 크고 작은 돈 관리까지. 팔자에 없는 수학을 하고 있다니까요.”

선미원 농장의 이세훈(31) 농부는 공군 부사관 출신이다. 전역 후 코로나19로 계획하던 일이 연기되면서 2020년 고성에 내려와, 부모님의 논밭에서 일손을 거들기 시작했다. 어쩌다 시작한 농업이 적성에 딱 맞았다. 5000평 규모의 스마트팜 파프리카 농장을 이어받아 직접 돌보고 있다. 축구장(약 2200평) 2개가 족히 들어가는 규모다. 2세대 농부의 농사 도전기를 들었다.

◇일본에서 더 좋아하는 코리아 파프리카

파프리카는 피망을 개량한 채소다. 수분이 많고 단맛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더비비드

피망과 헷갈리기 쉬운 파프리카는 피망의 매운맛을 줄이고 단맛을 내도록 개량한 채소다. 빨강·노랑·주황 등 열매 색상이 다양하다. 피망보다 과육이 단단하면서 두껍고, 수분 함량이 90% 이상이라 아삭하다.

영양도 풍부하다. 파프리카 1개에 1일 비타민C 권장 섭취량의 6.8배가 들어있어 슈퍼푸드로 불린다. 개당 비타민C 함량이 레몬의 2배, 토마토의 5배, 사과의 41배에 이른다. 베타카로틴·파라진·칼륨 등 항산화 물질과 무기질도 함유하고 있다.

선미원 농장 직원들이 전동레일 카를 타고 파프리카를 수확하는 모습. /더비비드

외래종 채소로 알려진 파프리카는 알고 보면 수출 효자 농산물이다. 경남 고성군의 대표 농산물인 파프리카는 군 전체 농산물 수출량의 69%를 차지한다. 수출용 고성 파프리카는 대부분 일본으로 간다. 2022년 고성군에서 생산한 3340톤의 파프리카 중 64%인 2155톤이 일본으로 수출됐다.

◇농업에서 적성 찾은 ‘어쩌다 농부’

이세훈 농부는 직업 군인이었다. 잠시 부모님의 농사일 도우려다 적성을 찾았다. /더비비드

1992년생인 이세훈 농부는 직업 군인이었다. 고성군 구만면에서 태어나 고성 항공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11년부터 2017년까지 충남 서천에서 부사관 생활을 했다. 전역 후 그간 모은 돈을 들고 무작정 호주로 갔다. 2년간 워킹 홀리데이(해외여행 중인 청소년이 방문한 국가에서 일할 수 있도록 특별히 허가하는 제도) 생활을 하며 타일·미장·목공일 등 건축업을 했다. 2020년 귀국 후 잠시 부모님의 농사일을 도우려던 것이 전업이 돼버렸다.

-이른 나이에 귀농을 결심한 계기가 있나요.

“부모님 일손을 거들다 자연스럽게 정착했어요. 사실 인테리어 사업가를 꿈꾸며 호주에서 건축 관련된 기술을 공부하고 있었는데요. 2020년 1월, 한국에 돌아오니 코로나19 때문에 사업을 시작하기엔 적기가 아니었어요. 그때 부모님 농장은 하늘길이 막히면서 외국인 근로자가 부족한 상황이 됐죠. 처음에는 아버지께서 자잘한 기계 보수를 하나둘씩 맡기셨어요. 그 생활을 두달 정도 이어간 어느 날 새벽 절 깨우시면서 ‘시급 1만원을 주겠다’며 농사를 권하시더라고요.”

(위에서부터)선미원 파프리카 농장의 모습. 파프리카 줄기가 2.5m 이상 높게 자란 모습이다. /더비비드

-요즘에는 농업을 물려받지 않으려는 농부 2세대가 더 많지 않나요.

“그렇죠. 일이 고되고, 주변에 친구도 없고. 많은 걸 포기하고 내려와야 하니까요. 솔직히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저도 귀농하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부모님께서 힘들게 일하시는 모습을 보니까, 젊은 사람이 있어야겠더라고요. 아무리 스마트팜이라도 육체노동이 필요한 분야니까요. 군 생활을 했다 보니 몸 쓰는 일에는 자신 있었어요. 좀 더 공부하면 스마트팜의 숨은 기능들을 폭넓게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농사일에 전력을 쏟기로 결심하고, 부모님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일을 배웠죠.”

◇물은 하루 18번 주고, 전기료는 월 3000만원 나오는 파프리카 스마트팜

파프리카 종자는 배지에 파종한다. 각 줄기마다 양액기가 꽂혀있다. 시간에 맞춰 자동으로 양액이 주입된다. /더비비드

외래종인 파프리카는 1년 내내 23℃ 이상의 환경에서 자라야 한다. 이런 이유로 국내에선 대부분 스마트팜 시설에서 파프리카를 재배한다. 선미원 농장은 2013년 파프리카 재배 시설을 마련했다. 1만7000평이던 논 한쪽에 32억원을 들여 5000평 규모의 파프리카 농장을 설립했다. 시설 마련을 위해 빌린 자본은 파프리카 재배 10년차인 현재 60% 이상 상환했다. 현재 연 8억원의 매출을 내고 있다. 이세훈 농부는 올해부터 파프리카 농장 관리를 전담하고 있다.

자연 수정을 위해 설치한 벌통의 모습. /선미원농장
파프리카 열매가 맺힌 모습. 생장 주기는 7~8주다. /더비비드

-파프리카 재배 과정이 궁금합니다.

“파프리카 농사는 8월 초 종자를 구입해 육묘 밭에 심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2주 동안 모종을 길러 본 밭의 배지에 옮겨 심죠. 지지대를 세워 두달 정도 기르면 줄기가 허벅지 높이까지 자랍니다. 파프리카는 자가수정 작물이라 농장 곳곳에 벌통을 두면 알아서 열매가 맺힙니다. 열매 생장 주기는 보통 7~8주입니다. 12월부터 7월까지 일주일에 2번씩 수확하죠. 파프리카는 줄기가 계속 자라기 때문에 성인 키보다 높게 자라기 시작하면 천장의 지지대에 끈을 매달아 묶어 주는데요. 이때부터 햇빛을 받지 못하는 밑부분 잎(하엽)은 제거하면서 밭을 관리해야 합니다. 수확 이후에는 본 밭을 모두 철거하고, 다음 농사를 준비하죠.”

(왼쪽부터) 기형으로 자란 파프리카와 병충해가 든 파프리카의 모습. /더비비드

-파프리카 재배의 최대 고충은요.

“외래종인 데다 제한된 환경에서 키우는 작물이라 병충해가 생기기 쉽습니다. 매번 약품을 이용해 소독할 순 없어 생각한 방법이 바로 ‘천적 곤충’입니다. 진딧물, 총채벌레 등 잎을 갉아 먹는 벌레들의 천적을 수입해 밭에서 키우는 농법입니다. 네덜란드에서 지중해이리응애, 애꽃노린재, 진디벌 등을 들여와 하우스 안에서 기르면, 농약 사용을 최소화하면서 충해를 막을 수 있어요.”

시든 잎을 제거하는 이세훈 농부의 모습. /더비비드

-5000평 규모를 혼자서 관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요.

“스마트팜 시설 때문에 가능해요. 스마트팜은 온·습도 유지와 양액 공급을 알아서 해줍니다. 온실 내 희망 온도를 설정해 두면, 시설이 알아서 난방을 돌리고, 보온 커튼을 칩니다. 더울 경우에는 천창(지붕 창문)을 열어 온도를 낮추죠. 파프리카는 90%가 수분으로 이루어진 작물이라 수확 직전까지 물을 많이 먹어요. 각종 무기질이 섞인 배양액만 하루에 18번을 줘야 하죠. 이것 또한 밭 전체에 깔린 파이프를 통해 양액기가 시간에 맞춰 알아서 공급합니다. 하루에 쓰는 물의 양만 5톤이에요.”

-사람 손을 필요로 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하엽 제거, 순 치기, 수확은 사람 몫입니다. 줄기가 빨리 자라기 때문에 1~2주에 한번씩 관리하지 않으면 금방 넘어져요. 줄기가 성인 키보다 커서 전동레일 카를 타고 들어가서 열매를 따야 해요. 어제는 3톤 정도 수확했습니다.”

스마트팜 전체에 주입할 양액을 보관하는 양액통과 간이선별기의 모습. /더비비드

-파프리카 선별 과정과 유통 경로가 궁금합니다.

“파프리카는 당도 기준이 따로 없어 XS·S·M·L·XL로 크기만 분류합니다. 일본 소비자들은 성인 주먹만 한 ‘M’ 규격을 가장 선호해요. 수출 물량이 대부분인데, 전부 지역 식품 무역 업체로 바로 출하하고 있습니다. 5kg당 평균 수매 가격은 4만원입니다. 간혹 고성군청 온라인 쇼핑몰에서 주문이 들어오는 경우에는 농장에 있는 간이 선별기를 이용해 바로 납품하기도 해요.”

-고정 수요가 있어 매출이 안정적일 것 같습니다.

“연 매출 8억원 중 7억원이 수출에서 발생합니다. 사실 이 정도 매출이 나지 않으면 운영이 어려워요. 파프리카 종자가 금보다 비싸거든요. 파프리카 종자 1g이 10만원 정도합니다. 대략 한알에 700원이 넘는 꼴이죠. 금 1g의 시세가 8만2000원이니까, 말 그대로 금보다 비싼 겁니다. 겨울철에는 난방으로 인한 전기료가 월 3000만원 정도 들고요. 체계적으로 운영하지 않으면, 자칫 한순간에 큰 적자를 볼 수도 있어요.”

◇파프리카 위해 합숙까지, 공부는 끝이 없다

청년농부사관학교 홍성구 교육팀장과 이세훈 농부의 모습. 이 날 홍 팀장은 이 농부의 농장을 찾아 파프리카 출하 현황을 살폈다. /더비비드

3년간 부모님 어깨너머 농업을 배웠다기에는 방대한 농업 지식을 지니고 있었다. 자신감의 원천엔 ‘공부’의 힘이 있었다. 그는 농협중앙회 창업농지원센터의 청년농부사관학교 7기 출신이다. 2022년 상반기 청년농부사관학교에 입학해 1등 성적으로 수료했다.

청년농부사관학교 7기의 수업 현장 모습. /농협중앙회 청년농부사관학교

청년농부사관학교란 농협이 만 39세 이하 청년을 연 100명씩 선발해 농업의 기초부터 가르치는 청년 농부 육성 프로그램이다. 2018년부터 진행했다. 농업 기초 교육을 위한 합숙·농촌 현장 실습·농업 장비 자격증 이수 수업이 6개월 과정으로 짜여 있다. 승계농 자녀, 대학생, 직장인 등 참가자의 출신이 다양하다. 젊은 귀농인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 경쟁률은 2:1 수준이다.

청년농부사관학교 홍성구 교육팀장의 설명에 따르면 선발 기준은 오로지 ‘영농 의지’다. 기초적인 작물 재배 원리부터 스마트팜 운영법, 농기계 사용법까지 차근차근 가르친다. 교육 과정 이후에는 수료생이 무사히 첫 시작을 할 수 있도록 매니저 역할을 자처한다. 농기계 임대, 투자 기관 소개, 유통 판로 확보 등 정착에 필요한 요소를 수료생과 함께 고민한다. 2023년 4월 기준 누적 수료생 457명 중 291명이 안정적으로 귀농지에 자리 잡았다.

바닥에 깔린 파이프의 나사 결합 부분이 느슨해질 때는 이 농부가 직접 보수 작업을 한다. /더비비드

-농업 공부를 더 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나요.

“농사할 때 보통 도제식으로 기술을 전수받아요. 직접 부딪히면서 각종 기술을 빠르게 체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머릿속에서 정리되는 기분은 아니었어요. 너무 많은 지식이 한번에 들어오니 헷갈렸죠. 동네에 청년이라고는 저 혼자뿐이니 자극이 될 만한 동료도 없었고요. 체계적인 커리큘럼이 있는 곳에서 교육받고 싶었어요.”

(왼쪽부터) 비닐하우스 천장에 설치된 보온용 커튼과 개폐형 천창의 모습. /더비비드

-‘농부’와 ‘학교’라는 단어의 조합이 잘 와닿지 않는데요. 기억에 남는 수업이 있을까요.

“책상과 칠판이 있는 강의실 대신 작물별 재배 조건에 맞게 구현된 배양 시설에서 수업을 받았습니다. 안성시 청년농부사관학교에 가면 실제 농촌 현장과 같은 노지, 비닐하우스, 스마트팜 시설이 드라마 촬영용 세트장처럼 꾸려져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스마트팜 운영법 관련 수업에서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몰랐던 스마트팜 기기의 기능들도 알게 됐고, 간단한 보수도 스스로 할 수 있게 됐죠. 10년 전에 도입한 스마트팜이라 요즘 부쩍 잔고장이 늘었거든요. 바닥에 깔린 파이프의 나사 결합 부분이 느슨해지면서 배양액이 새기도 하고요. 이제 이런 문제가 생겨도 따로 사람을 부르지 않고 제가 직접 땅을 파서 고칠 수 있습니다.”

◇젊은 농부 장점 살려 다양한 도전, 10억 매출 목표

구만면 저연리에서 30대 청년은 이세훈 농부뿐이다. /더비비드

구만면 저연리에서 30대 청년은 이세훈 농부뿐이다. 농장 대표 역할도 잘하는데 동네 어르신까지 살뜰히 돌봐 동네에선 ‘기특한 청년’으로 소문났다. 올해 선미원 농장의 목표 매출은 10억원. 부모님께 파프리카 농사를 물려받은 이후 손해 보지 않고 소득을 조금씩 올리고 있다. 올해 방송통신대학교 농학과에 23학번으로 입학해 공부를 이어가고 있다. 말 그대로 주경야독의 삶이다.

-농장 운영만 해도 바쁠 것 같은데 공부를 계속하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스마트팜은 공부하면 할수록 더 많은 기능이 나타나요. 신식 기기와 부품들이 계속 출시되니 새로운 정보도 놓치지 말아야 하고요. 스마트팜에서 나오는 데이터들을 더 많이 활용하기 위해서 공부를 이어가고 있어요. 선배 농부들과의 인맥도 생기니 서로 정보를 주고받기도 수월하죠.”

관제 장치를 이용해 천창을 제어하는 이 농부의 모습. /더비비드

-MZ세대 농업의 특별한 점이 있을까요.

“부모님의 관록은 이길 수 없지만 창의성은 제가 한 수 위인 것 같아요. 주변 농가의 일손을 거들면서 어르신들이 낡은 농기구로 힘겹게 밭을 일구는 모습을 목격했어요. 최근 이 문제를 ‘파프리카 펀딩’으로 풀었습니다. 펀딩 사이트에서 파프리카를 판매하고 있는데, 목표 매출을 넘기면 수익금으로 마을 어르신들의 낡은 농기구를 바꾸고, 노인 회관의 비품도 새로 구비할 계획이에요. 선미원 농장의 파프리카도 알리고요.”

-농부님만의 스마트팜 운영 팁이 있을까요.

“모순되는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는데요. 스마트팜을 맹신하면 안 됩니다. 생각보다 스마트팜 제어 화면에서 볼 수 있는 정보와 현장 사이의 간극이 크거든요. 컴퓨터 화면에서는 모든 게 정상처럼 보여도, 농장에 가보면 문제가 발생해 있는 경우도 종종 있어요. 스마트팜이 일을 ‘대신 해준다’는 마음가짐보다, ‘나를 도와주고 있다’는 생각으로 임하면, 분명 시너지 효과를 볼 수 있을 겁니다.”

파프리카는 단단할수록 신선하다. /더비비드

-맛있는 파프리카 고르는 법도 알려주세요.

“정말 쉬워요. 최대한 단단한 파프리카만 고르면 됩니다. 수확한 지 얼마 안 됐다는 뜻이거든요. 당도가 가장 높은 건 주황색 파프리카입니다. 생으로 드시려면 주황색이 좋죠. 오래 보관하려면, 랩으로 감싸서 냉장 보관하세요.”

-10년 후 이 농부님의 농장은 어떤 모습일까요.

“스마트팜을 활용해 다양한 작물을 길러보고 싶어요. 파프리카만 키우고 있진 않을 겁니다.  수익을 내 새로운 스마트팜 장비도 들이고 싶어요. 지금도 납작 봉숭아, 무화과 등 고부가가치 농작물을 실험 삼아 조금씩 길러보고 있어요. 10년 후 다시 찾아주세요. 그때는 다른 작물 이야기도 들려드릴게요.”

/김영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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