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소셜펠로우 13기 에코넥트·이엠시티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을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친환경 스타트업이 꼭 선한 의도만으로 탄생하는 건 아니다. 특정 산업군 속 실무자들의 현실적인 고민에서 착한 아이디어가 탄생하기도 한다. 스타트업 에코넥트는 유통 대기업 구매 담당자를 만나면서, 이엠시티는 건물 관리자를 만나면서 사업 아이템을 찾았다.
두 기업은 모두 LG소셜펠로우 선정 기업이다. LG전자·LG화학이 운영하는 LG소셜캠퍼스는 사회적경제기업 지원 프로그램 ‘LG소셜펠로우’를 13년째 운영하고 있다. 비즈니스를 통해 다양한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스타트업을 돕는다. 에코넥트의 조민형(30) 대표와 이엠시티의 이봉호(45) 대표를 만나 혁신 기술의 개발 과정을 들었다.
◇대기업의 ESG 활동 움직임 포착해 개발한 서비스
에코넥트의 웹 서비스 ‘스테이션 제로’는 기업의 구매 담당자가 친환경 소재의 제품을 개발하거나 친환경 용기 등을 대량으로 구매하고 싶을 때 활용하는 데이터 기반 친환경 소재 큐레이션 웹 사이트다. 친환경 소재를 찾는 이용자가 스테이션 제로에 접속해 15가지의 질문에 답하면, 알고리즘이 알아서 적합한 소재를 골라준다. 소재 선정을 마치면 에코넥트가 ODM(개발력을 갖춘 업체가 판매망을 갖춘 유통업체에 상품을 제공하는 생산방식) 형식으로 제품을 개발한다. 친환경 소재 선정과 적합성 검토, 시제품 보완과 가공, 탄소 배출 저감량 분석 등 친환경 제품 개발 전 과정에 걸리는 기간을 이전 대비 79% 이상 단축했다.
2022년 3분기부터 시범서비스를 시작해 지난 7월 정식 서비스를 론칭했다. 식자재 유통 대기업 등 16곳 이상의 기업과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구내식당 내 도시락용 간편 용기나 유통용 포장 필름 등의 포장재를 친환경 소재로 변경하는 사업을 주로 진행하는 중이다.
조민형 대표는 국민대 화학과 출신이다. 졸업 후 전공지식을 활용한 사업을 하고 싶었다. 처음 도전한 분야는 B2C 소비재였다. “2021년 PLA라는 식물성 전분 소재를 활용해 생분해 칫솔을 만들었습니다. 학부생 시절부터 바이오 플라스틱 등 친환경 소재에 관심이 많았어서 제품 개발은 어렵지 않았어요.”
제품을 판매하면서 난관에 봉착했다. “크라우드 펀딩, 온라인 몰 입점 등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어요. 성과도 있었지만, 지속적으로 수익을 내기가 어렵더군요. 칫솔 시장이 레드오션이라 판매는커녕 제품을 알리는 것조차 쉽지 않았죠.”
소비자가 눈길을 줄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었다. 직접 발로 뛰었다. 당시 떠올린 아이디어가 ‘판촉물 영업’이었다. “일면식 없는 기업 구매 담당자에게 직접 메일을 보내고, 미팅을 진행했습니다. 영업 과정에서 기업 구매 담당자들이 ‘자사 제품의 친환경화’에 대한 고민이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칫솔보다는 PLA라는 소재에 더 큰 관심을 보이기도 했고요. ‘우리가 유통하는 00 제품에도 이 소재를 적용할 수 있나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기업들이 친환경 소재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피보팅(사업모델 전환)을 결심했다. “친환경 사업에 도전하기에 시기적으로 딱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2025년부터 대기업의 ESG 정보에 대한 공시가 의무화되거든요. 기업의 생존을 위해 친환경 요소를 사업에 적극적으로 도입해야만 하는 시기가 온 겁니다.”
단순히 제품의 용기만 바꾸는 것인데도 기업의 구매 담당자 입장에선 도입 과정이 지난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소재를 한데 모아 소재의 물성이나 적용 가능 범위에 대해 설명해주는 업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기업 입장에서 친환경 소재를 하나 결정하는 데도 수십 곳의 소재 기업과 미팅을 해야 했으니, 친환경 사업이 골칫덩이일 수밖에 없었죠. 시간과 비용도 많이 들고요. 스테이션 제로를 이용하면 웹 사이트에서 클릭 몇번 하는 것만으로 100종 이상의 친환경 소재를 구매해 제품을 개발할 수 있습니다. 친환경 소재 제조사 입장에서는 에코넥트가 고객을 연결해 주는 ‘중개인’ 역할을 수행합니다.”
다양한 친환경 소재에 대한 분석 정보를 기입해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제조사에서 받은 소재에 관한 정보를 고객사의 입장에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실용적으로 접근했어요. 소재의 투습성, 내열성, 산소 투과도, 융점, 강도, 연신율과 같은 학술적인 정보를 모르더라도 용기에 어떤 식재료나 물건을 담을 건지, 상온· 냉장·냉동 중에서 어떤 유통 방식을 이용하는지, 유통기한이 얼마나 되는지 등의 정보만 알면 적합한 소재를 찾을 수 있게 서비스를 기획했죠.”
서비스 공식 출시 전이었던 지난 5월, LG소셜펠로우 13기에 선정됐다. 최근 유한킴벌리의 그린 임팩트 펀드를 통해 투자도 유치했다. “2022년에 총 1억4000만원의 매출을 냈습니다. 누적 투자금액은 3억원입니다. 최근 LG소셜캠퍼스로부터 받은 2000만원의 지원금은 웹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인건비로 활용 중입니다.”
에코넥트는 2022년 5월부터 2023년 6월까지 여러 기업과 진행한 프로젝트를 통해 총 36톤의 탄소 배출량을 저감했다. “나무로 환산하면 6448그루의 나무를 심은 격입니다. 산업 곳곳에 쓰이는 석유계 플라스틱을 모두 친환경 소재로 바꾸는 것이 목표입니다.”
◇앱으로 소방 시설 오작동 문제 해결
건물에서 화재 경보가 울리면, 오작동일 것이라 짐작하고 대피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화재 감지기는 작은 규모의 화재도 감지할 수 있도록 설계해 오작동이 잦기 때문이다. 화재 경보에 대한 조치를 위해 건물 내 소방 관리자가 24시간 상주해야 하는 것은 필수고, 일부 건물은 관리의 편의를 위해 화재 감지기를 아예 꺼두기도 한다.
이엠시티가 개발한 앱 ‘비디앱’은 화재 감지기의 오작동 문제를 해결하는 서비스다. 건물에 비디앱 서비스를 도입하면 소방 관리자가 스마트폰으로 소방 시설을 관제할 수 있다. 화재 감지 후 건물 전체에 경보가 울리기 약 30초 전에 관리자가 앱을 통해 먼저 경보가 동작한 위치에 대한 알림을 받을 수 있다. 오경보일 경우 건물 전체에 경보가 울리기 전에 관리자가 끌 수 있다. 실제 화재일 경우 화재 발생 위치로 바로 이동해 신속한 초기 대응을 할 수 있다. 소방 관리자가 방재실에 상근하고 있지 않아도 원격으로 화재 경보를 제어할 수 있다.
이봉호 대표는 서울대에서 기계항공공학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 설비 모니터링 시스템 개발 기업에서 제품 개발·회로 설계 엔지니어로 20년간 근무했다. “반도체 생산을 위한 클린룸, 자동차 성능 시험을 위한 실험장 등 각 기업의 설비를 외부에서 제어할 수 있는 환경을 구현했습니다. 다양한 기업의 설비를 다루면서 설비별 최적화 방법이나 설비 제조사별 신호 해석법, 프로그램 개발법을 익혔죠.”
2021년, 시설을 원격으로 관리하는 기술을 활용한 사업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회사에 근무할 때 알고 지낸 설비·건물 관리 기업의 담당자가 털어놓은 시설 관리의 고충이 창업의 불씨를 지핀 것이다. “소방 관제시설에 대한 문제가 가장 많이 제기됐습니다. 소방 시설은 건물을 설립할 때 도입하는 경우가 많아 설비가 대부분 노후했습니다. 오작동은 점점 늘어가는데 소방 시설을 통째로 바꾸지 않는 한 별다른 대안이 있는 상황도 아니었죠.”
소방 설비 제조사마다 다른 전기 신호를 제조사의 도움 없이 해석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게 관건이었다. “여러 제조사가 국내 건물 소방 설비 산업에 진출해 있습니다. 문제는 기업마다 내부 설계 구조와 사용하는 전기 신호 체계가 다르다는 점인데요. 모든 제조사의 소방 설비와 호환되는 제품을 제작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소방 관제 패널 안쪽, 각종 신호가 한곳으로 모이는 병목 지점에 사물인터넷 기반 신호 수집·교란기 ‘비디콘(BDcon)’을 부착해 호환 문제를 해결했다. “내부 신호를 분석하고, 제어하는 원리입니다. 사업 초기에는 건물을 돌아다니면서 소방 시설의 전기 신호만 수집하는 일을 했습니다. 이후 사무실로 돌아와 신호를 역추론하는 방식으로 제품을 설계했죠. 이제는 노하우가 쌓여, 노후한 소방 시설이 장착돼있는 건물이어도 비디앱을 도입할 수 있습니다. 신호 수집기인 비디콘은 3D 프린터로 직접 제작합니다.”
비디앱 서비스는 구독제로 운영된다. 건물당 월 5만~10만원의 요금이 부과된다. 2021년 8월 제품 출시 이후 월평균 3000만원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아파트, 상가, 병원, 학교, 공장 등 전국 약 500곳의 건물이 비디앱 서비스를 도입했다. “지난 6월 기술보증기금을 통해 10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했습니다. 올해까지 1000개 건물에 비디앱을 도입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지난 5월 LG소셜펠로우에 선정됐다. 시설 원격 제어 기술을 여러 분야에 폭넓게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이 높게 평가받은 것이다. “비디앱은 화재 경보기 외에도 냉·난방기, 저수조, 배수펌프, 엘리베이터, CCTV, 주차설비 등 건물 내 모든 설비에 도입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호텔 등의 숙박시설에서 냉·난방기를 원격으로 제어해 에너지를 절약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죠. 생활 안전과 관련이 깊은 소방 문제를 해결했을 뿐만 아니라 에너지 절감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LG소셜펠로우에 선정된 기업은 5000만원 이상의 금융지원, 기업별 맞춤형 컨설팅, 오픈 이노베이션 협업 연계 등을 지원받는다. 비디앱의 경우 오는 9월 LG에서 개최하는 스타트업 박람회 ‘LG슈퍼스타트데이’에도 참가한다. “다양한 투자자와 잠재고객을 한번에 만날 수 있어 스타트업에겐 소중한 기회입니다.”
/김영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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