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딜러를 위한 금융 앱 ‘셀비’ 개발한 탐즈 최우듬 대표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손님이 왕’이란 말이 무색해지는 순간이 있다. 부동산이나 전자상가에 들어설 때면 온몸에 힘이 잔뜩 들어간다. 정보의 격차가 큰 탓이다. 상대가 어떤 패를 숨기고 있는지 가늠하는 것조차 힘들다. 큰 금액이 오가는 거래다 보니 단 한 번의 선택으로 수십만원, 많게는 수억원의 손해를 볼 수도 있다.
비슷한 상황은 자동차 매장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자동차 견적이 영업사원의 손 끝에 달려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자동차 딜러를 위한 금융 견적 서비스 앱을 만든 스타트업 탐즈는 그 순간에 주목했다. 자동차 딜러 출신의 탐즈 최우듬 대표(34)를 만났다.
◇고객에게 투자하는 영업사원
자동차 딜러 생애의 출발점은 누구나 같다. 첫 월급은 대부분 최저시급에 준한다. “2015년 당시 첫 월급으로 170만원 정도를 받았어요. 여기에 판매 실적에 따라 추가수당이 더해지지만 처음엔 실적이랄 게 없었습니다. 심지어 역마진으로 판 적도 있었어요. 손해를 보면서 차량을 판매했다는 뜻이죠. 그렇게라도 해서 경험을 쌓아야 했습니다.”
나름의 원칙을 세웠다. 수익의 40%는 고객에게 돌려주기로 했다. “가령 100만원의 마진이 남으면 그중 40만원은 서비스 비용으로 재투자했어요. 고객의 취향에 맞춰 옵션을 추가하거나 출고 전 차량 관리 비용으로 썼죠. 새 차를 받아본 고객이 만족하는 만큼 입소문이 나면서 새로운 고객을 유치할 가능성이 높아지리라 판단했습니다.”
예상은 적중했다. 느리지만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입사 4년 만에 월 1000만원을 벌 정도가 됐다. “일에 적응은 했지만 능숙하다고 말하기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했어요. 손님 대하는 일이 늘 어려웠습니다. 매월 말일에 그 달의 실적이 성적표처럼 숫자로 찍히는데요. 월초에 계약하기로 했던 고객이 변심하진 않을까 항상 노심초사했습니다."
2019년 자동차 시장에 새바람이 불었다. 전기차의 등장이다. “그해 8월 우리나라에 테슬라 모델 3가 공식 출시됐는데요. 딜러들 사이에서도 큰 화젯거리였습니다. 테슬라는 딜러사 없이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방식을 선택했기 때문이죠. 머지않아 자동차 딜러라는 직업이 사라질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이 들었습니다. 동시에 전기차라는 새로운 시장을 선점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길로 사업계획서를 작성해 정부지원사업인 청년창업사관학교에 지원서를 제출했다. 전기차 구매자를 위한 금융 상품 비교 플랫폼이라는 아이템이었다. “자동차 구매자의 80%가 금융 서비스를 이용해요. 다시 말해 대부분 대출을 끼고 차를 산다는 뜻이죠. 딜러가 없는 전기차 시장에서 금융 서비스를 안내하는 역할이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삼수 끝에 2021년 4월 청년창업사관학교 지원 대상에 선정됐고 곧바로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전기차에도 딜러가 필요했던 이유
2021년 탐즈(TAMS·The Advanced Mobility Service) 법인을 설립했다. “이 세상에 완전히 새로운 건 없다고 생각했어요. ‘조금 더 나은’ 서비스를 만드는 걸 목표로 삼았죠. 정부지원금으로 전기차 구매자가 관련 대출 상품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웹 페이지 ‘이고(ego)’를 만들었습니다. 자동차금융 상품을 비교하고 즉시 출고 가능한 차량을 조회할 수 있도록 했죠. 2022년 상반기에만 50억원 규모의 금융 상품을 중개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고’의 정체성에 의문이 생겼다. “전기차를 다룬다는 것 외엔 딜러로 일할 때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어쩌면 금융 서비스야말로 딜러가 하는 일의 핵심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차량 구매에는 현금·할부·오토캐시백·리스·렌트 등 5가지 방법이 있는데요. 현금과 할부를 제외한 세 방법엔 각각 8~12개의 금융 상품이 있습니다. 차 한 대를 구입하기까지 40여 가지의 상품을 비교하며 견적을 내야 하죠.”
의외의 복병이 등장했다. ‘금융소비자보호법(이하 금소법)’이다. “2020년 금소법이 공포되면서 자동차 딜러가 소비자에게 견적서를 직접 전달하는 일은 불법이 됐습니다. 금융모집인 자격이 없기 때문이죠. 이후 금융 에이전시에 금융 견적 전달을 요청하는 단계가 추가됐습니다.”
단계가 늘어난 만큼 시간과 비용도 늘었다. “소비자가 견적을 확인하기까지 평균 4시간, 길게는 48시간이 더 걸렸습니다. 금융 에이전시에 수수료로 찻값의 3%를 지급해야 했어요. 이 역시 소비자의 몫이었죠. 이런 이유로 금소법 이후 고객 이탈률이 30% 이상 늘었습니다. 영업사원에게 ‘비밀로 할 테니 빨리 견적을 확인해달라’고 종용했다가, 돌연 태도를 바꿔 신고하지 않는 대가로 1000만원을 요구한 고객도 있었죠.”
딜러와 소비자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거래를 위해서는 단계 축소가 시급했다. “발목을 잡았던 ‘금융모집인 자격’이라는 장애물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카카오페이와 토스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법인 명의로 금융모집인 자격을 획득한 다음 금융 상품을 중개하는 방법을 그대로 적용하기로 했죠. 가장 시급한 문제를 해결했으니 본격적으로 딜러의 업무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습니다.”
◇딜러를 위한 세일즈 비서
2022년 10월 자동차 딜러를 타깃으로 한 금융 서비스 앱 개발에 착수했다. 딜러를 위한 세일즈 비서라는 뜻으로 앱 이름은 ‘셀비(SELBI)’라 지었다. 그러자면 딜러부터가 여러 금융 상품을 한눈에 비교할 수 있어야 했다.
“1억원짜리 차를 초기 비용 3000만원에 36개월 할부로 구매하려는 고객을 만났다고 가정해 볼게요. 기존엔 딜러가 금융사마다 정해진 엑셀 시트에 이런 조건을 하나하나 입력해서 견적을 확인해야 했습니다. 셀비에서는 구매 조건을 딱 한 번만 입력하면 쇼핑 앱처럼 최저가 순으로 정렬된 화면이 뜹니다. 소비자 한 명에게 쏟는 에너지가 ⅓ 수준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확신해요.”
딜러나 소비자에게 수수료를 받지 않는다. “오직 금융사에게만 찻값의 0.7%에 해당하는 수수료를 부과합니다. 셀비가 대출 상품을 중개한 대가를 받는 셈이죠. 금융 상품은 보통 한 달에 1~2번씩 세부 조건이 변하는데요. 그런 변동사항도 수시로 반영되도록 했습니다.”
셀비 앱 구축 과정을 공장 설립에 비유하면, 기본 설비를 모두 갖추고 원료를 준비하는 단계에 왔다고 볼 수 있다. “신차 자동차의 옵션별 출고가격 출고가격 데이터를 앱 안에 채워넣는 중이에요. 자동차 브랜드는 약 20여 개 정도인데요. 현대자동차의 신차 정보를 입력하는 데에만 꼬박 2주가 걸렸습니다. 추석을 전후로 약 2개월간 자동차 딜러 200명을 대상으로 베타 테스트를 할 예정입니다.”
◇우물 안 개구리가 한강에서 살아남는 법
사직서를 쓰지 않고 계속 딜러로 살았더라면 통장 잔고가 지금보다 더 넉넉했을 것이라 장담한다. “최종 연봉이 1억원을 넘었으니까요. 그땐 콧대도 높았어요. 소득이 1억원이니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거든요. 막상 창업에 뛰어들고 보니 ‘영업’은 한 부분일 뿐이더군요. 기획·인사·재무·마케팅 등을 한꺼번에 하려니 스스로가 한없이 작게만 느껴졌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가 한강을 만난 기분이랄까요.”
탐즈는 느리지만 천천히 전진하는 중이다. 지난 7월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이 주관하는 창업경진대회(디데이) 지역 리그 무대에 올랐다. “이제 막 출발점에 섰다고 생각해요. 방향을 잡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죠. 장기적으로는 리스나 장기렌터카 상품까지 다루는 금융사를 설립하고 싶습니다. 그때까지 쉼 없이 달릴겁니다.”
/이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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