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팔뚝에 작은 패치 하나, 의사의 색다른 다이어트 아이디어

더 비비드 2024. 6. 24. 14:40
혈당 다이어트 앱 '글루코핏' 개발한 랜식 양혁용 대표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랜식의 양혁용 대표. 의사 출신 창업가다. /더비비드

“저탄고지, 간헐적 단식, PT 등 안 해본 다이어트가 없어요. 모두 일시적이었죠. 살을 빼는 건 어렵지 않은데, 유지하는 게 늘 어려웠어요.”

다이어트는 평생의 숙제다. 랜식의 양혁용(30) 대표도 체중 조절이 늘 고민이었다. 어릴 때부터 통통한 체구의 소유자였던 그는 의대 진학 후 불규칙한 식사와 잦은 밤샘을 반복하면서 심한 요요 현상을 겪었다. 몸무게가 15kg씩 찌고 빠지는 일을 반복하자 직접 논문을 들춰보며 지속 가능한 다이어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논문을 통해 그가 찾아낸 방법은 ‘혈당 다이어트’다. 실시간으로 혈당을 파악할 수 있는 패치형 혈당측정기를 부착하고 생활하면서 자신에게 잘 맞는 음식과 운동법을 찾는다는 발상이다. 효과를 확인하고 이 아이템으로 창업까지 했다. 양 대표를 만나 혈당 다이어트를 사업화한 과정에 대해 들었다.

◇다이어트에 혈당 패치 접목

랜식의 글루코핏 세트. 팔에 붙일 수 있는 연속 혈당 측정기와 앱을 함께 사용해야 한다. /더비비드

같은 음식을 섭취해도 사람마다 식후 혈당 반응이 다르고, 운동 효과 또한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헬스케어 스타트업 ‘랜식’은 이 점에 착안해 체중 관리 서비스 ‘글루코핏’을 개발했다. 글루코핏은 앱과 패치형 연속혈당측정기로 구성돼 있다. 팔 안쪽에 연속혈당측정기를 부착하고 앱을 통해 실시간으로 혈당 수치를 파악해 생활 습관을 교정하는 원리다.

이용자는 앱을 통해 개인별 혈당 데이터에 기반한 혈당 조절법을 조언받을 수 있다. ‘식후 혈당 수치가 급격히 상승하고 있으니 15분간 산책을 하라’는 식이다. 섭취했을 때 혈당 스파이크(식후 혈당이 급격히 상승하는 현상) 증상이 도드라지는 음식, 많이 먹어도 혈당 변화가 안정적인 음식 등을 정리한 ‘혈당 리포트’도 매주 제공한다.

8개월의 검증 기간을 거쳐 지난 4월 정식 서비스를 론칭했다. 현재 500명의 유료 회원이 글루코핏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아이디어의 참신함을 인정받아 지난 7월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의 창업경진대회 ‘디데이’에서 본선 진출 기업으로 선정됐다.

◇의사가 창업 결심한 계기

의대생 시절 아이티로 의료 봉사를 떠났던 양 대표. /양혁용 대표 제공

양 대표는 단국대에서 의학을 전공했다. “어릴 때부터 정신과 의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친구한테 ‘혁용이가 고민 상담을 잘한다’는 말을 자주 들었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철이 없었지만 20대 초반에는 어깨에 힘 좀 주고 지냈어요. ‘앞으로 어떻게 환자를 대하고 질병을 치료할까’에 대한 고민보다는 의대에 진학했다는 개인적 성취감에 취해 있었죠. 열심히 공부해 원하던 목표를 이뤘고, 부모님도 좋아하셨으니까요.”

대학교 2학년, 아이티에서 의료 봉사를 하면서 임상의(환자를 직접 대하여 진단과 치료 행위를 하는 의사)의 구조적 한계를 체감했다. “대학교 2학년 때 아이티에서 지진이 발생해 의료 봉사 대원으로 현장을 방문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의료 기술을 갖고 있어도 기본적인 항생제조차 부족한 환경에서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적이더군요. 군 전역 후에는 2021년 6월부터 약 1년간 지역 보건소에서 근무하며 코로나 항원 검사 검체 채취 업무를 했습니다. 통제할 수 없는 요인으로 환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일을 반복적으로 겪다 보니, 진료실에서 질병에 사후적으로 대응하는 것보다 애초에 사람들이 질병을 겪지 않도록 돕는 서비스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창업을 떠올리게 됐죠.”

갖고 있는 의료 지식으로 창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양 대표는 스타트업에 인턴으로 입사해 업계를 경험했다. /더비비드

벤처 업계를 경험해 봐야겠다는 생각에 헬스케어 스타트업에 입사했다. “‘뷰노’라는 헬스케어 스타트업에서 인턴 연구원으로 활동했습니다. 제품개발에 사용되는 의학용어가 맞는지 확인하는 일을 했죠. ‘챌린저스’라는 스타트업에서 헬스케어 서비스 기획 업무도 6개월간 했습니다. 병원과 협업해 습관 관리 앱의 효과를 입증하는 업무였죠. 세상에 없는 서비스를 만드는 스타트업을 보며 창업에 대한 열망이 더 커졌습니다.”

◇고구마·닭가슴살이 늘 정답은 아니다

양혁용 대표의 의대생 시절 모습. 어릴 때부터 잦은 요요로 체중 변화가 심했다. /양혁용 대표 제공

2022년 6월 의사 면허 취득 후 바로 창업 아이템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건강 관리를 할 때 가장 어려움을 겪던 지점에서 출발했다. 바로 ‘체중 감량’이다. “갖은 방법을 동원하며 다이어트를 했는데, 생각처럼 쉽게 살이 빠지지 않더라고요. ‘비만, 고혈압, 당뇨 등의 대사 질환 해결’을 목표로 잡고 사업 아이템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대사 질환이란 체내 신진대사 활동과 관련된 모든 질병을 의미한다. 고혈압, 당뇨, 비만 등의 성인병이 대사 질환에 속한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어 질병으로 의식하기 어렵지만, 대사 질환 환자에겐 뇌졸중과 같은 심혈관 질환이나 암 등 사망률이 높은 질병이 합병증으로 찾아오기 쉽다. “대사 질환의 공통점은 약으로 고칠 수 있는 질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활 습관 관리가 중요하죠. 처음에는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을 모아 서로 생활 습관을 확인해 주는 커뮤니티 형태의 서비스를 구상했어요. 반응이 꽤 좋았습니다. 이용자가 한달에 5000원을 내고 채팅방에 참여하는 형태였죠. 재결제 비율이 50%를 넘긴 덕에 투자사로부터 7000만원의 초기 투자금을 유치할 수 있었습니다.”

양 대표는 1년 넘게 연속혈당측정기를 부착하며 앱을 기획했다. /양혁용 대표 제공, 더비비드

초기 자본을 마련해 한시름 놓았지만 뭔가 아쉬웠다. 이용자에게 과학적인 근거를 기반으로 생활 습관을 개선하는 법을 알려주고 싶었다. “한 의학 논문에서 ‘개인별로 다른 혈당 반응을 통해 최적의 식단을 구성할 수 있다’는 내용을 봤어요. 수면 시간, 음식 섭취 시간, 음식 섭취 후 활동량, 인슐린 분비량 등 사람마다 선천적인 특성과 생활 습관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같은 음식이라도 사람마다 혈당 반응이 다르다는 것이 골자입니다. 생활 습관, 식단 관리에 있어서 절대적인 답은 없다는 거죠. 내게 맞는 최적의 방법을 찾으려면, 실시간마다 달라지는 혈당 수치를 확인해 내 몸부터 정확하게 알아야 하는 겁니다.”

혈당 수치를 이용해 살을 빼려면 살찌는 원리부터 알아야 한다. “몸에 영양분이 공급돼 혈당이 증가하면, 췌장에서 인슐린이 분비되고 포도당이 지방으로 바뀌는데요. 여기서 신체 활동을 통해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으면 지방이 체내에 축적돼 살이 찌는 겁니다. 여기서 관건은 사람마다 혈당이 오르내리는 정도가 다르다는 겁니다.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혈당 수치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면 지방으로 바뀌는 포도당의 양이 줄면서 자연스레 체중을 감량하는 거죠.”

글루코핏 앱 사용법에 대해 설명하는 양 대표의 모습. /더비비드

당뇨 환자가 사용하는 연속혈당측정기를 활용해 체중을 감량하는 서비스를 구상했다. 서비스를 소프트웨어로 구현하기 전 작은 실험부터 진행했다. “직접  참가자를 모아 채팅 앱을 활용해 혈당 관리 서비스를 진행했어요. 참가자에게 혈당 변화와 관련한 조언을 실시간으로 해주며 체중 변화를 살폈죠. 실험 참가자에게 연속혈당측정기를 부착해서 혈당측정기 앱을 통해 확인한 혈당 수치와 식단 정보를 요청했습니다. 공유받은 정보에 제 의학 지식을 적용해 1대1 조언을 했죠. 치킨을 먹더라도 채소를 소량 섭취한 후 먹어라, 소스 대신 소금을 찍어 먹어라, 식후에 바로 눕지 말고 5분만 걸었다 앉아라 등의 내용이었어요. 엄격한 식단 관리를 하지 않았는데도 성과가 좋았어요. 우선 저도 7kg 감량에 성공했고요. 초기 참가자 3명 모두 목표 체중에 도달했죠. 초기 당뇨 환자였던 참가자 한 분은 심지어 당화혈색소(포도당에 의해 당화(糖化)된 헤모글로빈을 수치화한 것)가 정상 수치로 내려와 질병 치료 효과까지 봤습니다.”

특정 음식을 섭취한 직후 1시간 내로 즉각적인 혈당 변화를 볼 수 있어 식이조절에 유용하다. 사람마다 살찌는 음식이 다르다는 것도 눈으로 확인했다. “고구마는 대표적인 다이어트 음식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서비스 이용자 중 일부는 고구마 섭취 후 오히려 혈당이 급격하게 올랐습니다. 누군가에겐 고구마가 체중 감량에 좋은 음식이 아닐 수도 있는 겁니다. 혈당을 통해 식단을 관리하면 전형적인 다이어트 공식이 통하지 않는 몸도 구제할 수 있는 거죠.”

시범 서비스를 진행하며 직접 참가자를 만났던 양 대표의 모습. /양혁용 대표 제공

앱이 완성되기도 전에 입소문이 나면서 서비스 이용 의사를 밝힌 이가 늘었다. “이용자가 직접 연속혈당측정기를 구비해 오면 채팅 앱을 통해 건강 관련 조언을 해주는 식으로 시범 서비스를 진행했어요. 입소문만으로 2022년 하반기부터 지난 1월까지 서비스 이용자가 100명으로 늘었죠. 시범 서비스를 이용한 회원들은 4주 동안 평균 혈당이 8% 개선되고, 체지방은 평균 1.5% 감량했습니다.”

앱 개발을 위해 혈당측정기 앱의 혈당 수치 정보를 글루코핏 앱으로 이관하는 작업부터 했다. 건강 조언 데이터도 확보했다. “건강 조언에 필요한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을 학습시키는 데 제가 직접 서비스 이용자에게 조언한 1만건 이상의 조언을 활용했습니다.”

◇토스의 이승건도 반한 서비스

글루코핏 앱 서비스 이미지. /더비비드

지난 4월 글루코핏 정식 서비스를 론칭했다. 지금까지 500명의 유로 회원이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좋아하는 음식 중에서 다이어트에 도움 되는 음식을 찾을 수 있어 좋다는 반응이 많아요. 토스의 이승건 대표, 프라이머의 권도균 대표님도 글루코핏 서비스를 이용하셨어요. 이 소식을 듣고 스타트업 업계에서 인정받은 기분이 들어 뿌듯했죠.”

수입원은 서비스 이용료다. 2주 동안 사용할 수 있는 혈당 측정 패치 2개와 글루코핏 앱을 묶은 1개월 구성이 30만원이다. 장기로 이용할 경우 할인폭이 더 커진다. 올해 3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연속혈당측정기 1개가 10만원입니다. 진입 장벽이 높은 편이죠. 1년 내내 연속혈당측정기를 부착하면 가장 정확하게 데이터를 얻을 수 있지만, 서비스를 이용하는 첫 1개월만 혈당측정기를 부착하면, 이후에는 앱이 기존에 습득한 혈당 변화 정보를 바탕으로 혈당 변화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서비스의 정확도를 위해 계절이 변하거나 생활 환경이 달라질 때마다 혈당 패치를 붙여서 측정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전세계 대사 질환자의 수를 0명으로 만드는 것이 랜식의 목표다. /더비비드

전세계 대사 질환자의 수를 0명으로 만드는 것이 랜식의 목표다. “주변에서 왜 안정적인 의사 월급을 포기하고 창업했냐는 질문을 받기도 해요. 그런데 전 오히려 기회비용을 꼼꼼히 따져서 창업을 택했습니다. 전세계 대사 질환자가 10억명인데, 제가 평생 쉬지 않고 진료해도 만날 수 없는 규모잖아요. 서비스 하나를 개발해 사회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을 생각하면 창업을 통한 의료 행위의 가치도 엄청나지 않을까요.”

/김영리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