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스토리 김병철 대표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스타트업 익스토리의 김병철(47) 대표는 초등학생 때 정보처리기능사에 합격할 정도로 컴퓨터를 좋아했다. 대학에선 반도체를 공부했다. 20대 후반에는 유학길에 올라 마케팅을 공부했다. 제3자의 눈에는 경력을 중구난방으로 쌓은 것으로 보이겠지만 그가 밟은 모든 길은 ‘창업’으로 귀결됐다.
‘이제 와서 보니 내 삶의 모든 궤적이 창업을 가리켰다’는 김 대표를 만났다.
◇개발자와 비개발자 사이 소통 창구
익스토리는 기업 개발팀 조직 관리 및 개발자 이력 관리 서비스인 ‘BCTO(Be CTO(최고기술경영자)의 약어)’의 개발사다. 기업 회원과 개인 회원에게 다른 서비스를 제공한다.
기업 회원에게는 사내 개발팀 조직 관리 기능과 해외에서 개발 인력을 조달하는 외주 인력 매칭 서비스를 제공한다. 조직 관리 기능을 통해 현재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진행 상황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방법은 간단하다. BCTO 웹 사이트에 가입 후 프로젝트 조직을 생성하고, 구성원을 추가하면 조직에 소속된 개발자가 어떤 프로그램 언어를 이용해 어느 프로젝트를 개발하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다. 개발자에게 설명이나 보고서를 요구할 필요가 없다. 기업 CTO의 업무를 대체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개발 인력을 정규 채용할 여력이 안 되는 소규모 기업을 위해 외주 인력을 연결해 주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베트남, 두바이 등지에 8개의 협력사를 두고 있다. 협력사 소속된 개발자는 약 2000명에 이른다. 같은 경력의 한국인 개발자보다 50% 이상 저렴한 인건비로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다.
개인 회원은 회원 가입 후 깃허브(개발자들이 소프트웨어 코드를 공유 및 저장하는 커뮤니티) 등 자신이 사용하는 코드 저장소와 연동만 해두면 된다. BCTO에 개발 관련 정보가 실시간으로 저장되면서 다룰 수 있는 프로그래밍 언어, 각 언어로 개발한 소프트웨어, 진행한 프로젝트 수, 개발 빈도, 프로젝트 참여도, 코드 수정 횟수 등 개발 이력을 보기 쉽게 알아서 정리해 준다.
기업의 핵심 인력으로 부상하고 있는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관리·채용 시장 속 틈새를 공략한 덕에 지난 1월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의 창업경진대회 ‘디데이’ 본선에 진출했다. 현재 은행권청년창업재단의 스타트업 보육 공간 ‘디캠프’에 입주해 있다.
◇공학은 한국에서, 마케팅은 캐나다에서, 코딩은 다시 한국에서
수원대에서 전자재료공학을 전공했다. 다양한 분야로 진출할 수 있는 전공인데, 취업하지는 않았다. 좋아하는 게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컴퓨터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독학으로 정보처리기능사를 딸 정도로 컴퓨터를 좋아했어요. 취업이 잘된다는 말에 점수 맞춰 반도체와 관련된 전자재료학과에 진학했지만, 막상 취업할 때가 되니 컴퓨터를 다루고 싶더라고요. 학원의 도움을 받아 그에 걸맞은 역량을 쌓기로 했어요. ‘자바’라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습득해 2001년 IT기업에 웹 개발자로 취업했습니다.”
업무는 적성에 맞았지만 다소 열악한 처우가 아쉬웠다. 삶에 새로운 변화를 주기 위해 유학을 결심했다. “일 자체는 재미있었지만, 요즘 말로 ‘워라밸(Work & Life Balance: 일과 생활의 균형)’이 꽝이었어요. 동료들과 했던 우스갯소리지만, 자정이 되기 전 회사를 나오면 정시퇴근이라고 할 정도였죠. 보수는 아쉬웠고요. 이직으로 국면을 전환하는 덴 한계가 있었어요. 업계 전반적으로 비슷한 상황이었거든요. 스스로 경쟁력을 갖추고, 전직에 대한 가능성도 열어둘 겸 2003년 캐나다 토론토로 건너가 세네카 칼리지에서 유학 생활을 했습니다. 경영학과 마케팅을 공부하고 2005년에 귀국했죠.”
해외 경험이 쌓이니 같은 업계에 있어도 선택의 폭이 늘었다. “외주 개발 기업에서 정보시스템 통합(SI), 장비 모니터링, 사내 클라우드 도입 등의 업무를 했습니다. 외국인 클라이언트나 직원과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게 되자 어디를 가나 핵심 인력으로 대우받았어요. 2012년부터는 러시아 기반의 다국적 IT 기업에서 개발 엔지니어로 근무했습니다.”
◇CTO 경험 후 서비스 기획
개발자로 20년간 경력을 쌓으며 프로그래밍뿐만 아니라 프로젝트를 이끄는 능력을 함양했다. 덕분에 2020년부터 다양한 스타트업으로부터 CTO 제의를 받았다. “1년씩 2개의 스타트업에서 CTO를 했습니다. 둘 다 소프트웨어 개발사였어요. 기술 영업, 투자 유치 활동도 했지만, 주로 개발자를 관리하는 일을 했습니다. 비개발자 출신의 경영진은 개발 업무의 강도나 소요 시간을 잘 모르니, 제가 개발자와 경영진 사이의 중개자 역할을 했죠. 경영진에게는 개발자의 요구 사항을 전달하고, 개발자에겐 적정량의 업무를 배분해 성취도를 파악한 뒤 인력을 적재적소에 배치했습니다.”
CTO가 되어보니 ‘개발자의 업무 진행 상황을 한번에 파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종 업계에서 일하는 CTO들을 만나봐도 비슷한 고충이 들렸다. “개발 인력은 이제 모든 기업의 필수 인력이 됐습니다. 채용해야 할 개발자, 관리해야 할 개발자도 점점 많아지는데 이들의 프로젝트 상황과 경력을 쉽게 정리해 줄 수 있는 도구가 없더군요.”
2022년 6월 퇴사 후 개발자 프로젝트 관리 서비스를 기획하기 시작했다. “창업 전 마지막으로 근무하던 스타트업에서 2019년부터 ‘데브투잡(dev2job)’이라는 개발자 전용 채용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었습니다. 개인 개발자의 이력을 자동으로 정리해 주는 서비스였는데, 수익이 나지 않아 계류된 비운의 프로젝트였죠. 관점을 바꿔 기업, 경영자 입장에서 프로젝트를 다시 기획해 보면 좋은 서비스가 탄생할 것 같았습니다. 다니던 기업의 허락을 받아, 데브투잡에 살을 붙여가는 식으로 새로운 서비스를 기획했습니다.”
‘CTO였을 때 어떤 기능이 필요했나’를 떠올리며 기능을 보완했다. “경영진 입장에서 가장 불안한 건 ‘업무 진행 상황을 모른다’는 겁니다. 특히 개발 영역은 업계에서 사용하는 용어나 프로그램을 잘 알지 못하면 따라잡기가 어려워요. 더군다나 외주로 프로그램 개발을 맡기는 경우, 중간 진행 상황을 전혀 알 수 없어 정보의 격차가 더 벌어질 수밖에 없어요. 기업의 핵심 서비스를 구축하는 과정을 외부인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죠. 비개발자도 최소한의 지식으로 개발자의 활동 이력을 볼 수 있도록, 커밋(코드 수정) 횟수·프로그램 접속 빈도 등을 도식화했습니다.”
CTO 시절 갑작스러운 인력 공백에 난항을 겪었던 경험을 살려 외주 인력 매칭 서비스도 기획했다. 해외의 개발자와 한국의 기업을 연결하는 서비스다. “외국계 기업에서 근무해 본 경험이 있어 해외 개발자들의 실력이 좋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과거 직장 동료 등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개발자에게 연락을 돌려 8곳의 외주 개발 기업을 협력사로 확보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아직 ‘외국인 개발자를 고용하면 의사소통이 어려울 것이다’라는 선입견이 남아 있는데요. 영어로 소통이 어려운 경우 국내 용역 대행사를 통해 계약할 수 있도록, 4개의 국내 계약 대행사와도 업무 협약을 맺었습니다.”
‘개발자 감시용 서비스가 아니냐’는 지적에 나름 할 말이 있다. “성실하게 역량을 쌓아온 개발자에겐 오히려 좋은 이직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요즘에는 워낙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운 이가 많아 그 언어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능숙한 개발자를 가려내기 힘든데요. 익스토리를 이용하는 개인회원은 기업에 재직한 기간 동안 어떤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프로젝트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수치로 정리된 경력 기술서를 만들 수 있습니다. 단순히 ‘000 프로젝트 참여: 기여도 30%’이라고 적힌 주관적인 이력서보다, ‘000 프로젝트 참여: 코드 수정 횟수 200회, 참여 기간 3개월’로 증빙되는 BCTO 속 경력 기술서만 있으면 따로 포트폴리오를 제작하지 않아도 이직을 시도해 볼 수 있는 거죠.”
◇개발자가 일만 열심히 하면 구글에서 데려가는 세상
지난 2월 법인을 설립하고 곧바로 시범 서비스를 시작했다. 현재 기업 1곳과 3개의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타깃을 명확히 설정한 덕에 수익 구조를 정립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기업 회원에게만 서비스 이용료를 받는다. 관리하는 개발 인원 1명당 월 20달러(한화 약 2만6000원)의 이용료가 발생한다. 이력 정리용으로 BCTO에 가입하는 개인 회원은 무료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최근 스타트업 투자사 ‘프라이머’로부터 초기 투자금을 유치했다.
모든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BCTO를 가입하게끔 만드는 것이 목표다. “CTO는 인력을 적재적소에 배치할 수 있어 편하고, 개발자는 별다른 이직 준비를 하지 않아도 다니던 기업에서 일만 열심히 하면 양질의 일자리를 제안받는 플랫폼을 만들고 싶어요.”
같은 개발자 출신의 창업가들에게 기술력 강화에 천착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잠재 고객의 특성을 파악하는 것이 기술력을 강화하는 것보다 중요해요. 단지 신기하다는 이유만으로 고객이 서비스를 이용해 주진 않거든요. 만들고 싶은 서비스가 있다면, 그 서비스가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그래서 누가 사용할 것 같은지 반드시 분석해 보세요. 너무 당연한 말 같지만 수십년 동안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어서 그런지 이걸 까먹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김영리 에디터
'인터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억대 연봉 딜러가 다른 딜러들 위해 시작한 일 (0) | 2024.06.24 |
---|---|
수학의 정석 다시 꺼냈던 25살 서울대 불문학도, 20년 후 꾸고 있는 꿈 (0) | 2024.06.24 |
"삼성과 헤어질 결심,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 (0) | 2024.06.24 |
"대구가 아녜요. 요즘 한국에서 홍로 사과가 가장 맛있는 곳은" (0) | 2024.06.24 |
"아산 신고배 과수원집 처가살이 33년 하고 손에 쥔 것" (0) | 2024.06.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