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기반 지식, 정보관리 솔루션 개발기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우리 모두 어느 분야의 전문가입니다. 스스로 몰랐을 뿐이죠.”
정보 과잉의 시대. ‘태그’는 이정표 역할을 한다. 태그도 효율적으로 관리하지 않으면 곧 휘발될 하나의 정보에 그치고 만다.
스타트업 텍스트웨이의 유승민 대표(39)는 그동안 접한 정보만 잘 관리해도 누구나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특정 정보를 태그로 분류하고, 태그를 일목요연하게 관리할 수 있는 툴 ‘태깅박스’를 개발한 계기다. 그를 만나 정보관리의 중요성에 대해서 들었다.
◇ 파편처럼 흩어진 정보를 모으다 발견한 가능성
유 대표는 늘 글과 가까이 지냈다. 영어영문학 전공 후 언론홍보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글을 쓰고 읽는 게 좋아서 출판사에서 사회 첫 발을 뗐다. 이후 대기업 분사 조직에서 4년간 테크니컬 라이터로 근무했다.
- 테크니컬 라이터라니 특이한 직무네요.
“가전 제품용 이용자 가이드를 기획하고 작성하는 직무입니다. 이용자 가이드는 독특한 포맷의 콘텐츠입니다. 가전의 다양한 기능을 한데 모은 정보의 집합체이죠. 각 기능을 개발한 사람들로부터 특정 지식을 뽑아내야 하는 과정이 필수였습니다. 미팅이나 메신저로 수없이 많이 소통해 조각된 정보를 수집해야 했죠.”
- 글을 쓰다가 창업이, 간극이 큰데요.
“그 다음에 헬스케어 스타트업에서 기획자로 4년 근무했습니다. 작은 조직일 때 들어가서 영업, 크라우드 펀딩, IR 등 다양한 경험을 했죠. 스타트업 생태계에 몸 담은 게 자극이 됐습니다. 평소 불편함을 느꼈던 점을 내 비즈니스로 녹여내고 싶었어요.”
- 어떤 불편함을 해결하고 싶었나요.
“테크니컬 라이터 시절 정보 관리하는 게 너무 힘들었습니다. 가이드에 써야 하는 각 기능의 특징을 일일이 노트에 수기로 기록했죠. 회사 보안 때문에 컴퓨터로 관리하는 데 한계가 있었거든요. 석사 논문을 쓸 때도 인용할 내용을 잔뜩 찾아두고도 안 쓴 게 너무 많았어요. 수소문해보니 저만 겪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회사 내에서도 정보 교류가 잘 안돼, 이미 정리된 자료가 있는데도 굳이 밤새워 보고서를 작성하거나 관련 자료를 못 찾는 일이 비일비재했어요. 모은 정보를 디지털화해서 쉽게 찾을 수 있게끔 하면 정보를 효율적으로 잘 관리할 수 있겠다 생각했죠”
◇에디터 개발하다가 접은 이유
필요한 정보에 태그가 달려 있다면, 태그만 검색해서 필요한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다면. 이 생각이 출발점이었다. 2022년 8월, 창업 경험이 있는 지인과 개발자 출신의 동료를 영입한 후 텍스트웨이 법인을 설립했다. 처음엔 워드프로세서나 한글처럼 정보를 입력하는 에디터 방식의 솔루션을 구상했다.
- 왜 에디터였나요.
“처음엔 정말 단순하게 생각했어요. 글을 쓰다가 문제의식을 느꼈으니, 입력 창 내에서 문장을 드래그를 하면 태그를 자동 생성하는 방식을 구상했죠. 약 7개월 간 에디터를 만들다가 한계점을 느꼈어요. 한글이나 워드프로세서라는 좋은 프로그램이 있는데 사람들이 굳이 돈을 내가면서 우리 에디터를 쓸까 의문이었죠.”
- 만들던 걸 접는 게 쉬운 일은 아닐텐데요.
“피봇(사업모델전환)을 결정하고 동료들과 제주도로 내려가서 난상 토론을 벌였습니다. 이날 아주 중요한 이야기가 나왔어요. 스스로 인지하지 못했을 뿐 우리 모두 무언가의 전문가라는 이야기였어요. 이미 특정 분야에 통달했는데 정보가 다양한 채널이나 프로그램애 흩어져 있어서 어느 정도로 아는지 자각하지 못했던 거죠. 정보를 한곳에 모아서 관리하고, 재활용할 수 있다면 한 단계 더 가치 있는 것을 만들 수 있겠다고 확신했습니다.”
◇문장 속 핵심 단어를 추출해서 모으는 기능 개발
글을 작성하는 게 아니라 ‘수집’해서 ‘저장’하고 ‘재활용’하는 것에 방점을 맞추기로 했다. 2023년 1월부터 데이터 수집부터 분석, 데이터 공유, 검색, 생산까지 지식이 생성되는 모든 과정을 관리할 수 있는 솔루션 개발에 들어갔다. ‘태그’ 중심으로 정보를 관리하기 때문에 태깅박스(tagging Box)라 이름 지었다.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와 PC에 설치하는 앱 두가지다.
전문가용 위키피디아를 표방한다. 태깅박스의 주요한 축 하나는 ‘정보 아카이빙’(저장)이다. 저장하고 싶은 문장을 드래그하거나 입력하면 해당 문장에 대한 태그를 지정해준다. 태그를 자동 추천하지만 스스로 입력도 가능하다. 두번째 축은 ‘정보 재활용’이다. 태그로 저장한 정보는 ‘사전’의 형태로 저장된다. 기존의 에디터는 기능으로 살려뒀다. 전용 에디터에 글을 쓰다가 특정 태그를 검색하면 사전의 내용을 불러올 수 있다.
- 태깅박스 이용 방법 설명 부탁드려요.
“저희 기술의 핵심은 문장을 분석해 가장 적합한 태그를 자동으로 추천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메모에 스티커를 붙이는 것처럼요. ’나는 커피를 좋아합니다’라는 문장을 드래그한다고 가정할게요. 그러면 해당 문장에 ‘커피’가 자동으로 태깅됩니다. 이후 커피가 들어가는 다른 문장을 드래그하면 커피 태그를 자동으로 추천합니다. 그렇게 유사한 문장들이 한 태그로 묶입니다.”
- 활용 예시가 궁금합니다.
“정보가 필요한 모든 일에 자유로이 적용 가능합니다. IT 종사자나 자격증 취득을 준비하는 분들이 용어 정리 용도로 활용합니다. 대학생들은 주로 팀 발표를 위한 자료 취합용으로 사용합니다. 팀 단위로도 사전을 만들 수 있거든요. 관공서, 기업과 기술검증(PoC)도 진행했는데요. 관공서에서 일하는 분들은 유관 법률, 지침 중에서 업무에 적용되는 지침만 사전에 포함시켜 정보 검색 시간을 줄이더군요. 콜센터분들은 방대한 매뉴얼 속에서 필요한 가이드라인만 추려서 사용해요. 회사 연혁이나 개요를 사전에 포함시킨 뒤 저희 에디터로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는 스타트업 담당자도 있었어요.”
◇ 정보, 그저 모으고 정리하는 게 능사는 아닙니다
3차례에 걸쳐 베타 테스트를 진행했다. 2024년 2월 기준으로 200여명의 이용자가 무료로 베타 버전을 이용했다. 3월 중 정식 버전을 출시할 계획이다. 정식 버전은 사전에 탑재된 태그 간의 관계도를 보여준다. 태그 검색도 보다 쉽게 할 수 있다.
우여곡절의 결실을 인정받고 있다. 작년 성균관대 캠퍼스타운 IR 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은 데 이어 서울시가 주최한 스타트업 축제 ‘트라이 에브리싱’에서 혁신상을 받았다. 같은 해 12월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의 창업경진대회 ‘2023 디캠프 올스타전’에서 본선에 진출했다.
- 정식 출시 전에 많은 성과를 이뤘네요.
“저희는 대구, 경북 지역 기반의 스타트업입니다. 이 지역에서 수상을 몇 번했지만 수도권에 진출하는 건 또 다른 차원이었어요. 어려운 과제였는데 드디어 여러 곳에서 인정을 받았습니다. ‘기존에 이런 서비스가 없었다’는 심사위원의 피드백이 가장 인상 깊었어요. 점점 성장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 타 정보관리 서비스와 비교했을 때 태킹박스만의 차별점은요.
“시중에 나온 서비스 모두 훌륭합니다. 다만 결과물을 산출하는 방식이 달라요. 예컨대, 어떤 서비스는 사용자가 필요로 하는 검색결과를 추려주거나, 대형언어모델(LLM)을 활용합니다. 저희는 사용자가 한 번 소화한 지식을 휘발하지 않고 다시 활용할 수 있는데 주안점을 뒀어요. 검색결과나 LLM으로 습득한 정보가 ‘레퍼런스’라면 그 레퍼런스를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한 것이죠.”
- 산재하는 지식을 잘 정리하는 팁 좀 알려주세요.
“요즘은 노력을 많이 들이지 않고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툴이 많습니다. 하지만 툴에 너무 의존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결국 습득한 정보를 한 번은 소화해야 하죠. 정보를 정리만 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메모에 우선 순위를 부여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하세요. 그리고 적시에 그 정보를 꼭 활용하길 바랍니다.”
/진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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