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울진 붉은 대게, 권태은 전국붉은 대게근해통발협회장
아침 9시, 경상북도 울진군 후포항에 도착했다. 80t에 육박하는 붉은 대게잡이 배가 항구에 들어왔다. 작업자들은 노란색 플라스틱으로 된 운반용 상자에 붉은 대게를 담아 배에서 뭍으로 옮기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항구 안쪽에선 파닥파닥 움직이는 붉은 대게를 배가 보이게 뒤집어 보기 좋게 줄을 세웠다. 30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에 수십 마리의 붉은 대게가 바닥을 꽉 채웠다.
빨간 모자를 쓴 사람을 중심으로 사람이 모여들었다. 실시간 경매가 이뤄지는 현장이다. 바닥에 있는 대게를 한 번 더 슬쩍 보곤 손바닥만 한 나무판에 뭔가를 써서 낸다. 경매가 늘 그렇듯 오늘 들어온 붉은 대게는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한 사람에게 돌아간다. 권태은 전국붉은 대게근해통발협회장(49)을 만나 붉은 대게의 행선지를 물었다.
◇붉은 대게, 대나무처럼 길쭉한 각선미
‘대게’라는 이름은 크다(大)고 붙여진 것이 아니다. 몸통에서 뻗어 나간 다리의 모양이 대나무처럼 곧다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45권 평해군편 및 울진현편을 보면 대게를 울진군의 주요 특산물로 기록하고 있다. 대게는 단백질 함량이 높고 그중에서도 라이신, 메싸이오닌 등 필수 아미노산이 풍부하다. 껍질에 다량 함유된 키토산은 건강식품과 화장품 원료로 이용되기도 한다.
대게는 색깔에 따라 황금색·은백색·분홍색·홍색 등 4종류로 구분한다. 울진군에서는 붉은 대게를 주로 취급한다. 연간 어획량이 8000t에서 1만3000t에 달한다. 80~90%는 가공공장에서 붉은 대게장, 게살 등으로 가공된다. 붉은 대게 가공품은 국내 유통은 물론 태국, 일본 등으로 수출하기도 한다. 나머지 10~20%는 살이 꽉 찬 상품(上品)으로 그대로 쪄 먹는다. 최근엔 살아있는 붉은 대게를 온라인으로 주문해 택배로 받아볼 수도 있다.
◇휴어기 동안 토실토실 살 오른 붉은 대게
권 협회장은 경북 울진이 고향이다. 그의 할아버지는 우리나라 최초로 붉은 대게 통발 어선을 운영했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에서 ‘통발잡이’ 기술을 배워 장비와 어선을 들여온 것이 시초였다. 이를 아버지도 이어받아 어린 시절부터 붉은 대게가 친숙했다. 다만 서울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 울진에서 가장 상냥한 말씨를 가진 선주가 됐다. 2009년 1월부터 고향에 내려와 본격적으로 일을 배웠다.
- 어떤 일부터 배웠나요.
“바로 배를 탔을 거로 생각하셨을 텐데요. 붉은 대게 가공공장으로 먼저 출근했습니다. 게살 가공 과정을 살피고 어떤 변화를 줄 수 있을지 고민했죠. 당시 대부분의 가공 제품이 단순히 껍데기를 제거한 게살 형태였습니다. 외면받던 재료인 게딱지와 게장, 자숙액(게를 삶은 물)을 활용해 새로운 가공 제품을 개발했습니다. 대게딱지장, 붉은대게장 등은 당시 편의점에도 납품할 정도로 인기였어요.”
- 아무래도 붉은 대게의 제철은 겨울이죠.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입니다. 붉은 대게가 서식하기 좋은 수온은 1~2℃인데요. 400~500m에서부터 2000m까지 깊은 바다에서 살기 때문에 계절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자원 보호를 위해 매년 여름마다 45일의 금어기를 가집니다. 2023년엔 어종 보호를 위해 자체 휴어기 15일을 더해 총 60일간 조업을 멈췄어요. 그 사이 붉은 대게가 더 튼실하게 자라 이번 겨울엔 더욱 육질이 단단한 붉은 대게를 기대할 수 있겠죠.”
◇출항했다하면 일주일 배멀미는 각오해야
붉은 대게는 주로 통발로 잡는다. 통발은 일반적인 그물과 달리 그물에 추를 달아 바다 밑으로 내려 미끼를 통해 대게를 유인해 포획하는 장치다. 붉은 대게는 깊은 바다에서 주로 서식하기 때문에 통발 조업이 유리하다. 40m 간격으로 300여 개 정도의 통발을 연결하면 총 12㎞까지 이어진다. 미끼로는 주로 청어나 고등어를 이용한다.
- 배의 규모는 보통 어느 정도인가요.
“전 71t 규모의 붉은 대게 근해 통발 선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까운 바다를 연안, 먼바다는 근해라고 하는데요. 대부분의 붉은 대게 선박이 70~80t 규모의 근해 통발 선입니다. 플라스틱으로 된 운반용 상자를 ‘가구’라고 표현하는데요. 한 척이 한번 입항할 때 600가구 정도를 들여옵니다. 한 가구에 35㎏ 정도니 한 번에 약 21t을 들여오는 셈이죠.”
- 대게잡이 배에서는 어떤 일을 하나요.
“조업 한 번에 7박 8일이 걸립니다. 후포항에서부터 300㎞ 이상 떨어진 한일 중간수역의 끝자락까지 가는 데에만 꼬박 하루가 걸려요. 통발을 하나씩 거둬 올리면서 동시에 배 위에서 1차 선별을 합니다. 선별 기준은 살수율(살이 차 있는 정도)입니다. 배를 만져보면 알 수 있어요. 배를 살짝 눌렀을 때 손이 푹 들어가면 가공용으로, 단단하게 만져지면 원물용으로 분류하죠.
◇홍게 말고 붉은 대게로 불러주세요
붉은 대게는 한때 ‘홍게’라고 불렸다. 대게에 비해 살점이 적다는 인식도 있었다. 울진군에서는 그러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 10여 년 전부터 ‘붉은 대게’라고 부르고 있다. 붉은 대게의 대부분은 가공공장에서 프리미엄 게살, 대게장 등 가공식품으로 재탄생한다. 가공품의 75%는 태국, 일본 등으로 수출하고 있다. 2021년 기준 수출량은 약 77t에 달한다.
- 대게와 붉은 대게는 무엇이 다른가요.
“서식 환경이 다릅니다. 대게는 200~400m의 해역에 서식합니다. 흔히들 대게가 붉은 대게에 비해 살수율이 높은 걸로 알고있는데요. 살이 찬 붉은 대게의 맛을 본 사람은 붉은 대게만 찾습니다. 쪄먹으면 대게보다 더 짭짤한 감칠맛이 느껴지기 때문이죠. 경매가격으로 비교해도 대게와 살찬 붉은 대게는 거의 차이가 없어요. 가장 최근 시세를 보면 400g짜리 한 마리가 동일하게 1만2000원 정도에 팔립니다.”
- 뭍으로 올라온 붉은 대게는 얼마나 오래 살아있나요.
“환경만 잘 갖춰주면 평균 2주 정도는 싱싱하게 살아 있습니다. 수족관에 바닷물을 받아서 1~2℃로 온도를 유지하면 됩니다. 원물은 울진군을 방문한 소비자는 물론 온라인으로도 판매하고 있습니다. 과거엔 전화로 주문을 받아 여기에서 찐 다음 고속버스 짐칸에 실어 보내곤 했는데요. 최근엔 온라인으로 주문을 받아 살아있는 채로 아이스박스에 담아 배송합니다. 1박2일 정도의 배송기간이면 신선도는 충분히 유지됩니다.”
- 붉은 대게를 찔 때 주의할 점이 있나요.
“찜기에 넣기 전 기절시키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살아있는 상태로 찌면 붉은 대게가 움직이면서 다리가 다 떨어져 버리거든요. 수돗물에 20분 정도 담가두면 움직임이 둔해집니다. 또 찜기에 올릴 땐 배가 보이도록 뒤집어야 게장이 흘러나오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따뜻할 때 먹는 게 좋습니다. 육즙이 흘러나오면서 살을 발라내기가 더 수월하죠.”
- 붉은 대게 맛있게 먹는 법을 소개해 주세요.
“다리 껍데기를 깔끔하게 벗겨 먹는 걸 어려워하는 분들이 많은데요. 초보자라면 관절 부위를 톡 부러뜨리고 뺀 다음, 빼낸 작은 다리를 손잡이 삼아 살점을 밀어 올려 먹는 걸 추천합니다. 대게장을 비벼 먹을 때는 등딱지에 그대로 비벼 먹으면 보기엔 좋지만 맛은 2% 부족합니다. 조금 귀찮아도 프라이팬에 한 번 볶아주면 풍미가 확실히 다릅니다. 대게장이 끓으면 녹진해지면서 구수한 향이 올라오거든요. 앞에 불판이 있다면 내장이 있는 채로 등딱지를 불에 올려둬도 좋아요. 소스처럼 만든 다음 밥에 비벼 먹으면 꿀맛이 따로 없습니다.”
- 요즘 개발 중인 붉은 대게 가공식품이 있나요.
“대게장과 게살을 함께 맛볼 수 있는 가공식품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대게장 거래처 담당자나 소비자에게 ‘두 가지를 한꺼번에 담을 순 없느냐’는 피드백을 자주 들었거든요. 기존에 대게장을 포장하던 용기에 대게장은 절반만 채우고 그 위에 게살을 꾹꾹 담아 올렸습니다. 지금은 포장이나 유통 방법 등을 고민하는 중이에요. 앞으로도 붉은 대게로 만들 수 있는 건 뭐든 다 만들고 싶습니다.”
/이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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