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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7년차 사회인 고졸과 서울대생이 함께 쇼핑몰을 만든 결과

가상현실 아바타를 제작, 거래할 수 있는 마켓 스튜디오 개발기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프롬서울의 박범진 아트디렉터. /더비비드

대학이라는 울타리 대신 바깥세상을 택했다. 올해 26살이지만 7년 차 사회인이다. 프롬서울의 박범진 아트디렉터(26) 이야기다. 디지털 아트 작가로 활동한 그는 온라인 아티스트들의 지평을 넓히는데 관심이 많다. 늘 대체불가능토큰(NFT), 메타버스 같은 최신 기술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최근에는 가상현실 아바타를 제작, 거래할 수 있는 마켓 스튜디오를 개발했다. 그를 만나 ‘온라인 자아’ 아바타에 주목한 이유를 물었다.

◇NFT에 꽂힌 두 청년의 만남

박범진 아트디렉터는 성인이 되자마자 디지털 아트 작가로 활동했다. /더비비드

예술을 사랑하는 청년이다. 가장 좋아하는 음악 장르는 힙합. 기성에 저항하고 진리를 탐구하는 힙합 정신을 삶에 녹이고 싶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입학하는 대신 사회에 뛰어들었습니다. 안정적인 길보다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하고 싶은 일에 뛰어들고 싶었어요. 주로 음악 브랜딩 크리에이터로 활동했어요. 음반이나 포스터에 들어가는 이미지를 제작했죠. 특성화고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긴 했지만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디자인 지식과 그림 공부는 독학했습니다. 여행 다니다 만난 디자인학과 교수님에게 이것저것 배우기도 했죠.”

​디자인의 범위를 넓혔다. 2017년부터 UI/UX(사용자 인터페이스, 사용자 경험) 기획자로 근무했다. “웹, 앱 서비스 개발 에이전시에서 근무했습니다. 평소 IT 기술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이곳에서 경력을 쌓다 보니 내가 좋아하고, 원하는 서비스를 만들고 싶었어요. 창업이라는 꿈이 생겼어요.”

박 아트디렉터의 작업물들. 모두 앨범 커버를 디자인한 것이다. /박범진 아트디렉터 제공

2022년, 음악 공연을 보러 간 자리에서 공동창업자인 최현세 대표를 만났다. 곧바로 가까워졌다. “최 대표는 서울대에서 조경을 전공한 후 기술경영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저희 둘의 공통 관심사는 NFT였습니다. NFT는 디지털 작품의 미술작품화를 가능케 합니다. 디지털 아트를 하는 사람에게도 시장의 길이 열린 것이죠. 저 역시 디자이너가 아니라 작가로서 일어서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또한 NFT가 사람들을 연결하는 강력한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고 느껴서 이 기술에 매료됐습니다.”

최 대표와 손을 잡고 블록체인 미디어 스타트업 ‘프롬서울’을 설립했다. “NFT 관련 기사나 뉴스레터를 제작하는 회사였습니다. 사이드로 NFT 관련 프로젝트도 진행했죠. 하지만 NFT 관련 논란이 끊임없이 발생하면서 시장이 죽어갔습니다. 이 기술에 대한 사람들의 불신만 커져갔죠. 제대로 시작조차 할 수 없겠다고 판단했습니다. 새로운 기회를 찾아보기로 했어요.”

◇공간의 제약을 무너뜨린 메타버스의 본질에 집중

에덴을 개발 중인 모습. /프롬서울

좋아하는 것으로 눈을 돌렸다. “팀원 모두 오타쿠(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 특정 대중문화에 몰두하는 취미를 가진 사람을 일컫는 말)적인 취미와 기질이 있습니다. 평소 게임, 애니메이션, 개인방송 같은 콘텐츠를 즐기죠. 마침 메타버스 기술이 화두가 되면서 가상 아이돌이 음반을 내고 디지털 휴먼이나 아바타, 캐릭터로 만든 콘텐츠가 보편화됐습니다. 본모습 대신 아바타로 방송을 진행하는 버투버도 많아졌죠. 팬의 마음으로 메타버스 시장에 뛰어들기로 했습니다.”

현대인들의 온라인 자아 ‘아바타’ 시장에 주목했다.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싫어하거나 어려워하는 분들에게 아바타는 익명성이라는 보호막이 돼 줍니다. 자유롭게 개성을 표출하면서 개인정보를 보호할 수 있죠. 하지만 아바타 제작 비용은 만만치 않습니다. 적으면 50만원부터 많으면 1000만원까지 들어요. 플랫폼 간 호환이 되지 않아 다른 아바타 마켓에서 산 아이템을 바로 적용할 수도 없어요. 3D 프로그램 다루는 법부터 공부해야 하죠. 아바타 시장이 겉보기엔 가볍고, 반짝 유행에 보일지 몰라도 실은 진입장벽이 아주 높은 시장입니다.”

(왼쪽부터) 아바타 편집 툴인 에덴 스튜디오, 아바타나 아이템을 사고 팔 수 있는 에덴 마켓 플레이스 화면. 두 아바타 모두 박 씨가 제작한 것이다. /프롬서울

‘사람들이 아바타를 만드는데 여러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는 가설을 세우고 접근했다. “아바타 편집 툴인 ‘스튜디오’와 완성한 아바타를 타 서비스에 연동시켜주는 ‘허브’ 두 개의 최소기능제품(MVP)을 만들어서 테스트를 진행했습니다. 이전에는 아바타 만드는데 8시간이 걸렸는데, 단 몇 분만에 만들 수 있어서 좋다는 호평을 받았어요. 반면 다양한 스타일의 아바타를 지원했으면 좋겠다는 피드백도 많이 받았습니다.”

다양한 콘텐츠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2차 MVP에 ‘마켓’ 기능을 추가했다. “아바타를 디자인해서 판매하는 버추얼 아티스트가 이미 많이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어요. 이들이 제작한 아바타를 편하게 거래할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해보기로 했죠. 일본 애니메이션, 3D 캐릭터 등 수요자는 원하는 그림체의 아바타와 아이템을 구매할 수 있어요. 아티스트는 아이템을 업데이트해서 판매품을 늘릴 수 있죠.”

에덴에서 구입, 편집한 아바타는 VR챗에 연동된다. /프롬서울

서비스명은 ‘에덴’(eden)이라고 지었다. 이용자의 첫 아바타 경험을 함께하는 온라인 낙원이라는 의미다. “에덴은 스튜디오, 마켓, 허브 3개의 축으로 구성됐습니다. 누구나 아바타를 구매해서 원하는 형태로 꾸밀 수 있습니다. 아바타의 머리카락이나 눈동자 색, 이목구비까지 세부조정 가능하죠. 아티스트에게 의뢰해서 보다 정교하게 편집할 수도 있고요. 아티스트는 에덴을 통해 소비자를 쉽게 유치할 수 있죠. 완성된 아바타는 메타버스 게이밍 플랫폼인 VR챗과 개인방송 송출 프로그램인 OBS Studio에 연동됩니다. 연동 서비스를 차차 늘려 활용도를 높일 구상이에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확장성’이다. “게임에 적용되는 아바타와 영화에서 사용하는 아바타는 기술적으로 다른 포맷을 요구합니다. 3D라는 데이터의 기본 구조는 일치하지만 밀도에서 차이가 나죠. 보통 영화 같은 콘텐츠에서 더 디테일한 모델링을 필요로 하는데요. 저희는 아바타의 밀도를 단계별로 나눠, 희망하는 포맷에 맞춰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걸 목표로 합니다. 이 방향대로 개발 중이죠. 자사 서비스로 만든 아바타만 사용할 수 있는 타 메타버스 플랫폼과 달리 저희는 공간을 뛰어넘는 메타버스의 철학을 계승하고 있어요. 메타버스의 본질에 집중한 거죠.”

◇CES 같은 국제 무대 데뷔, 아바타가 ID로 통용되는 세상 꿈꿔

CES 참가 당시 모습. /프롬서울

초기 스타트업이지만 많은 성과를 냈다. 작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에 이어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 참가했다. 두 행사를 발판으로 글로벌 파트너를 모집하는 중이다. 비슷한 시기에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의 창업경진대회 디데이 본선에 진출했다. 에스엠컬처파트너스와 기술검증(PoC)을 진행해 메타버스 콘텐츠도 개발했다.

정식 버전 출시를 앞두고 최종 준비 절차를 밟는 중이다. 약 120명의 아티스트가 마켓에 입점했다. 그 중 절반이 일본인이다. “한국인 작가 60명, 일본인 작가 60명을 섭외했습니다. 저 역시 아티스트 중 하나입니다.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을 염두에 두고 있었어요. 특히 일본은 아바타 시장이 한국보다 10배, 100배 이상으로 활성화된 시장입니다. 좋은 반응을 얻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박 아트디렉터는 아바타가 하나의 아이디로 통용되는 미래를 꿈꾼다고 했다. /더비비드

아바타가 하나의 아이디(ID)로 통용되는 미래를 꿈꾼다. “아바타라는 문화가 생소하게 느껴지는 사람도 아바타를 쉽게 만들고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가 되는 게 저희의 미션입니다. ‘나도 아바타나 하나 만들어볼까’ 가볍게 마음먹고도 완성도 높은 아바타를 만들 수 있는 서비스를 구축하려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어요.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처럼 아바타나 메타버스 생태계의 대표적인 플랫폼으로 성장하겠습니다.”


/진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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