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꼭 모두가 돈만 보고 달려 가야 하나요?" 이런 창업도

더 비비드 2024. 6. 19. 15:16
아산 비영리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

서로를 바라보며 활짝 웃고 있는 나 매니저(왼쪽)와 이 대표(오른쪽). /더비비드

비영리. 흔히 ‘단체’나 ‘재단’이란 말이 따라붙는다. 비영리 조직은 주로 사회적 약자를 돌보거나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등 소위 ‘돈 안 되는 일’을 한다는 인식이 있다. ‘성장’은 그들에게 자주 사치로 보인다. 조직을 키우거나 프로젝트를 규모를 확장하는 것보다 ‘문제’ 해결이 우선이란 짐작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 인식을 깨는 사례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비영리 ‘스타트업’의 활약 덕분이다.  스타트업은 세상에 없던 물건이나 서비스를 만들어 사회를 혁신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목적이 ‘비영리’라 해도 주요 키워드는 스타트업과 다를 바 없다. 성장 그리고 혁신이 핵심 가치가 된다.

2021년 아산나눔재단은 ‘아산 비영리스타트업(이하 아비스)’ 프로젝트를 출범했다. 다년간 스타트업을 지원했던 노하우를 바탕으로 비영리 스타트업의 성장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다. 2023년 아비스 출신 비영리 스타트업 ‘자원’의 이수영 대표(39)와 아산나눔재단 사회혁신팀 나민수 매니저(34)를 만나 비영리 스타트업의 ‘성장’에 대한 생각을 들었다.

◇휴면 자원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

휴면 자원을 이용해 놀잇감을 만드는 비영리 스타트업 '자원' 이수영 대표. /더비비드

‘자원’의 전신은 영리 기업이었던 ‘페이퍼풀즈’다. 이 대표는 2016년 아동·여성·노인·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공간의 부재를 느끼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창업에 뛰어들었다. 어린이 인문예술학교를 운영하고 전국 공공도서관 내 청소년을 위한 제3의 공간을 만드는 등 프로젝트를 했다.

휴면 자원으로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고 있는 아이들. 매뉴얼 없는 놀잇감으로 창의력을 키울 수 있다. /자원 공식홈페이지 캡처

- ‘자원’의 탄생 배경이 궁금합니다.

(이) “2018년부터 아이들의 놀잇감 소재에 집중했습니다. 제조기업에서 나오는 안전한 부산물, 자투리 등의 휴면 자원을 놀이 소재로 전환해 어린이 작업실 ‘모아모아랩’을 기획했죠. 일주일에 100명이 넘는 어린이를 만나면서 사용 방법이 정해지지 않은 놀잇감의 중요성을 느꼈습니다. 휴면 자원은 어떤 아이를 만나느냐에 따라 완전히 새로운 작업물로 재탄생합니다. 3년간 기록한 아이들의 놀이 과정에서 영감을 받아 비영리 스타트업 ‘자원’을 설립했습니다.”

아이들의 놀잇감으로 재탄생할 수 있는 휴면 자원의 종류는 종이, 끝, 튜브 등 다양하다. /아산나눔재단

- 비영리 스타트업이어야 했던 이유가 있나요.

(이) “아이들의 놀이문화라는 생태계를 완전히 변화시키고 싶다는 목표가 있었습니다. 그러자면 기업을 운영하기 위해 모인 이해관계자들의 목소리보다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더 집중해야 했어요. 조직 구성원 한 명 한 명이 이러한 비전을 스스로 내재화하길 바랐죠. ‘비영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어요. 2022년 ‘자원’을 공익 법인으로 전환했습니다.”

(나) “영리·비영리 법인의 가장 큰 차이는 수익 배분입니다. 주식회사는 연 매출을 주주와 나누죠. 비영리법인은 설립 당시 작성했던 정관에 따라 돈을 써야 해요. ‘자원’의 경우 수익이 생기면 아동의 환경 개선을 위한 공익 목적의 사업에 다시 투자해야 한다는 의무가 있습니다. 돈 100원도 허투루 쓸 수 없죠.”

◇'아비스' 만나고 달라진 자원

레미다와의 파트너십 체결에 대해 발표하는 이 대표. /아산나눔재단

비영리 스타트업 ‘자원’은 2023년 아산비영리스타트업에 선정됐다. 아비스는 신생 비영리 조직을 선정해 다각도로 지원하는프로그램이다. 2021년 3팀, 2022년 7팀, 2023년 10팀을 모집했다. ‘자원’은 2023년 5월부터 약 6000만원의 프로젝트 지원금을 비롯 사무 공간, 스타트업 전문가의 코칭 등을 지원받고 있다.

- ‘아비스’에 선정된 이후 어떤 프로젝트를 했나요.

(이) “이탈리아에서 우리와 비슷한 사업을 하는 레미다(Remida)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걸 목표로 삼았어요. 레미다는 생산 공정에서 버려지는 휴면 자원을 교육 자원으로 활용하는 기업입니다. 교육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하죠. 아비스의 지원을 받아 이탈리아에 있는 레미다에 직접 찾아가 일주일간 하루 5시간씩 미팅을 가졌습니다. 그 결과 아시아 기업 최초로 ‘자원’이 레미다의 파트너사가 됐죠.”

지난 11월 6일 열렸던 ‘휴면 자원의 가능성을 찾아서’ 포럼에서 여러 기업의 담당자를 만나 휴면 자원의 활용 가능성을 알렸다. /아산나눔재단

- 휴면 자원의 공급처는 어떻게 찾나요.

(나) “레미다와의 파트너십 체결 이후 ‘휴면 자원의 가능성을 찾아서’라는 이름의 포럼을 기획했습니다. 기업 내부의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팀이나 ESG(사회·환경적 관점의 기업성과지표) 담당자가 관심을 가지길 바랐죠. 55개 기업의 담당자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휴면 자원을 제공하면 이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를 발표했고 이니셔티브(주도권)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했습니다.”

(이) “저뿐만 아니라 레미다에서도 담당자가 나서서 ‘휴면 자원의 활용 가능성’에 대해 발표했습니다. 그 덕분에 신세계, 풀무원 등 식품 제조·유통 업계, 화장품·패션·자동차 제조기업 등 다양한 기업과 휴면 자원 공급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2023년 모은 휴면 자원은 약 2t(톤)에 달합니다. 적어 보일 수 있지만 부피로 따지면 웬만한 사무실 한 칸은 꽉 채우고도 남을 거예요.”

(왼쪽부터) 나 매니저와 이 대표. 고민이 있을 땐 늘 함께 머리를 맞댄다. /더비비드
비영리 스타트업 콘퍼런스에서 6개월 간의 성장 과정과 성과를 발표하는 이 대표. /아산나눔재단

- 아비스의 활동 기간은 언제까지인가요.

(나) “정식 활동 기간은 5월부터 10월까지 약 6개월입니다. 2023년 11월엔 비영리 스타트업 콘퍼런스, 일명 ‘비스콘’이라는 이름의 행사가 열렸어요. 일종의 졸업식 같은 개념이죠. 저마다 어떤 사업 내용을 가지고 있고, 지난 6개월 얼마나 어떻게 성장했는지 발표하는 자리였습니다. 활동 기간이 끝난 비영리스타트업은 아산 알럼나이(동문)가 됩니다.”

(이) “11월 이후에도 아산나눔재단 사회혁신팀과 계속해서 교류하고 있어요. 사실 일방적으로 제가 괴롭히고 있죠. 어려움이 있을 때 연락하면, 마치 자기 일인 양 함께 진지하게 고민해 줍니다. 몇 시간씩 대화하다 보면 신기하게 해결 방법이 떠오르거나 아이디어가 몇 가지로 좁혀져요.”

◇비영리 조직에 ‘성장’이란

2023 아비스 워크숍 단체사진. /아산나눔재단

아산나눔재단은 2024년 아비스 참가팀을 모집하고 있다. ‘성장 트랙’은 기존 방식과 동일하게 프로젝트 지원금 6000만원과 스타트업 전문가의 멘토링, 사무 공간 등을 지원한다. 설립 10년 이내, 연간 수입총액 2000만원 이상 등의 자격 요건이 있다. 지난해와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도전 트랙’의 신설이다. 성장 트랙 8팀, 도전 트랙 20팀(상·하반기 각각 10팀)을 모집한다. 지원서 제출 기간은 오는 3월 25일까지다.

- 도전 트랙에겐 어떤 기회가 주어지나요.

(나) “사회를 혁신할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진 팀을 찾기 위한 트랙입니다. 팀당 지원 금액은 성장 트랙보다 적은 500만원인데요. 아이디어를 검증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게 있다면 최대한 지원할 계획입니다. 무엇보다 ‘비영리 스타트업’이란 개념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요. 비영리 조직도 스타트업처럼 성장·혁신을 핵심 가치로 삼을 수 있습니다. ‘자원’을 보면 그게 정말 가능하단 걸 알 수 있죠.”

2024년 아비스에도 지원해 더 성장하고 싶다는 이 대표. /더비비드

- ‘자원’은 앞으로 어떤 계획을 하고 있나요.

(이) “최근 가장 큰 관심사는 휴면 자원을 이용한 놀이를 체험할 수 있는 오프라인 공간을 마련하는 겁니다. 그 공간을 운영할 교사와 그곳에서 놀 아이들이 모두 편하게 찾아올 수 있는 지역을 찾고 있어요. 미팅이 없을 땐 2024 아비스 지원서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재지원에 제한이 없더군요. ‘자원’만이 할 수 있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제시하고 아산나눔재단의 도움을 받아 한 번 더 성장하고 싶어요.”

/이영지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