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여러 번 빨아써도 차단 성능 그대로, 한 달 30만개 팔리는 한국 마스크

더 비비드 2024. 7. 9. 11:23
미국, 일본, 싱가포르 등 수출

iLe 쿼드 마스크 개발을 주도한 스포컴의 정성우 부문장. /스포컴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쓰는 ‘일회용 마스크’가 팬데믹 시대 새로운 사회 문제로 대두했다. 일회용 마스크는 재활용이 되지 않아 어마어마한 쓰레기를 만든다. 국민권익위의 조사 결과를 보면 국내에서만 연 73억 개에 달하는 마스크가 버려진다.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 차원 진화한 마스크가 등장했다. 주인공은 스포컴의 ‘iLe 쿼드 마스크’.  iLe는 ‘I love the earth’(나는 지구를 사랑해요)의 줄임말이다. 쿼드는 ‘4중’이라는 뜻이다. 최대 50회 사용 가능하다. 각기 성능이 다른 4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최대 10번까지 세탁해도 방수나 비말 차단 기능에 문제가 없다. 제품 개발을 주도한 스포컴 헬스케어부의 정성우 부문장을 만나 친환경 마스크 개발기를 들었다.

◇이민 대신 귀국, 안정적인 직장 대신 창업 선택

iLe 쿼드 마스크를 만드는 스포컴은 1979년 설립된 한국OGK의 자회사다. 한국OGK는 광학 기술을 기반으로 세계 유명 브랜드의 스키 고글, 스포츠 선글라스 등을 OEM으로 제조하는 회사다. 전세계 광학렌즈 시장 점유율 42%를 자랑하는 알짜 기업이다. 스포컴은 한국OGK 제품의 국내외 판매를 담당하는 자회사로 미국을 비롯한 6개 국가에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iLe 쿼드 마스크를 착용한 스포컴 구성원들. /스포컴
스포컴 본사 전경. /스포컴

정 부문장은 90년대 초반 뉴질랜드로 이민을 떠났다가 1999년 귀국했다. “오클랜드 대학교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습니다. PC가 보급화 되기 시작한 시점이라 컴퓨터를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싶었거든요. 개인 사정으로 90년대 말 귀국해서 2001년 한 지상파 방송국에 방송 마케팅 직군으로 입사했습니다. 방송 홍보와 마케팅을 담당하는 자리였어요.”

안정적이고 좋은 직장이었지만 도전을 갈망했다. 4년간 일했던 방송국을 떠나, 2005년 온라인 마케팅 회사를 차렸다. “온라인에서 물건을 팔고 싶어하는 업체들을 상태로 컨설팅을 했습니다. 2000년대 초 중반부터 온라인 쇼핑몰 붐이 일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관심 많은 영역이었어요. 저와 고객사 모두 성장하는 일이라 재미있었습니다.”

◇광학렌즈 전문 회사가 마스크 제조에 뛰어든 이유

(오른쪽) iLe 쿼드 마스크의 모델은 가수 송가인씨다. /스포컴

온라인 쇼핑몰 생태계가 성장하고 경쟁업체도 많아지면서 회사 운영이 어려워졌다. 안정적인 직장이 다시 그리웠다. 2012년 스포컴의 온라인 판매, 영업 담당자로 입사했다. “입사 당시 스포컴은 온라인 기반이 약한 상황이었어요. 입사하자마자 미친듯 일했어요. 자체 온라인몰을 만들고 유명 커머스 플랫폼에 자사 제품을 입점 시켰죠. 덕분에 매출이 20배 이상 뛰었습니다.”

온라인 기반을 다진 후부터는 신제품을 개발하는 재미에 빠졌다. “주로 기능성 선글라스를 개발했습니다. 골프나 러닝 할 때 적합한 스포츠용 렌즈를 상품화해서 인기몰이 한 적도 있었죠. 유명 외제차 브랜드와 협업해서 운전자용 선글라스를 만들 적도 있어요. 해외 시장에서 저희 선글라스가 기능도 좋은데 디자인도 훌륭하다고 정평이 나 있거든요.”

정 부문장. /스포컴

기능성 마스크 아이디어는 주력 상품인 선글라스와 고글 소비자의 고충에서 탄생했다. “소비자로부터 ‘마스크와 저희 제품을 동시에 착용할 때 렌즈에 김이 서려서 불편하다’는 말을 자주 들었어요. 봄 황사철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함께 쓰고 야외활동하는 분들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김 서림 방지 마스크 개발에 들어갔습니다. 마침 회사의 기조가 ‘친환경 경영’으로 넘어가던 추세라, 한 번 쓰고 버려질 마스크 대신 여러 번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기로 했습니다.”

2017년 다회용 마스크를 출시했다. “국내 최초 KF-94 기능을 갖춘 스포츠 마스크였어요. 메시 원단을 사용해 답답함을 줄이는 대신 필터를 주기적으로 교체해야 하는 방식이었죠. 마스크에 밸브가 있어서 안경이나 선글라스에 김 서리는 걸 막아요. 입김이 위로 올라가지 않고 밸브를 통해 바깥으로 배출되니까요. 출시했을 땐 일회용 마스크보다 비싼 편이라 큰 주목을 못 받았는데, 나날이 미세먼지가 심해지고 자전거 열풍이 불기 시작하면서 판매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습니다. 2019년까지 매년 10만장 이상 나갔어요.”

◇물기에 노출돼도 비말 차단 기능 유지하는 소재

iLe 쿼드 마스크의 모델인 가수 송가인 씨. /스포컴
매장에 진열된 iLe 마스크. /스포컴

마스크가 효자 상품으로 자리잡았을 무렵 코로나19가 전세계를 덮쳤다. 코로나 초기엔 마스크 대란이 번지더니, 마스크가 보급화 되고 나서는 환경 문제가 불거졌다. “우리나라에서만 매일 2000만 개의 마스크가 버려집니다. 친환경을 표방하는 회사로서 이런 상황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요. 기존 밸브 마스크는 밸브를 통한 바이러스가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감염병 사태에 적합하지 않았어요.”

회사 구성원들 과의 논의 끝에 바이러스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하면서도 여러 번 사용할 수 있는 마스크를 개발하기로 했다. “여러번 사용해도 오염물과 비말을 차단할 수 있는 소재를 찾다 ‘그래핀 필터’를 발견했어요. 일회용 마스크는 물에 닿으면 필터 기능이 사라지지만, 그래핀 필터는 물에 닿아도 다시 쓸 수 있어요. 입이 닿는 부분이랑 마스크 바깥쪽은 향균 코팅을 하기로 했죠. 시험 기관으로부터 비말 100% 차단, 99.9% 향균 기능을 인정받았어요.”

마스크 생산 라인의 모습. /스포컴
iLe 쿼드 마스크는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 중 하나인 독일의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2021’ 제품 디자인 부분에서 본상 격인 ‘위너’(Winner)를 수상했다. /스포컴

여러 번 쓰는 제품인 만큼 착용감에 신경 썼다. “서양인, 동양인별 얼굴 데이터를 모아서 마스크를 디자인했습니다. 인종별 얼굴 데이터 DB를 구해서 연구했고,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60여명을 섭외해서 3개월 간 테스트 했죠. 해외 바이어들에게 제품을 보내서 피드백 받고 약점을 보완하기도 했어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호소하는 불편함이 ‘귀 통증’이더라고요. 귀 통증을 최소화하기 위해 끈 부분을 길게 디자인했습니다.”

8개월 동안 200여개의 시제품을 만든 끝에 완제품이 탄생했다. 지난 3월, 온라인몰 등에서 iLe 쿼드 마스크를 출시했다. “마스크 제품에 대한 피로도 때문인지 처음엔 시장 반응이 미미했어요. 그런데 페트병으로 만든 가방, 청바지 등 친환경 제품이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저희 제품의 인지도도 덩달아 올랐어요. 하나에 8000원이지만 50번 쓸 수 있어서 하루 160원씩 드는 격이니 ‘일회용 마스크보다 가성비가 좋다’는 인식도 퍼지기 시작했죠.”

지금은 월 30만장씩 팔린다.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태국 등 동남아 시장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같은 선진 시장에도 진출했다.

◇몽골에 마스크10만장 기부

가수 송가인 씨(오른쪽)와 함께 사진을 촬영한 정 부문장(왼쪽). /본인 제공
스포컴은 친환경 캠페인에도 앞장서고 있다. /스포컴

자사 홍보 모델인 트로트 가수 송가인씨와 함께 친환경 캠페인에도 앞장서고 있다. “얼마 전 몽골에 마스크 10만장을 지원했습니다. 감염병 사태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힘을 보태고 싶었어요. 회사 차원에서 다문화 가족 재단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의 취업 활동을 지원하고 있죠. 사회 공헌 활동 소식이 알려지면서 착한 소비자분들이 저희를 더 자주 찾아 주시는 것 같아요.”

선글라스나 스포츠 고글에 적용할 수 있는 친환경 소개를 연구·개발 중이다. “요즘 ESG(환경(Environment)·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가 화두잖아요. 이윤을 창출하면서도 쓰레기를 줄이는 데 앞장 서는 회사가 되고 싶습니다.”

/진은혜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