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품, 가품 식별 가능한 중고 명품 거래 플랫폼 개발기
창업 기업은 한 번 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에르메스, 루이비통, 샤넬 등 명품의 인기가 치솟으면서 가격 경쟁력이 있는 중고 명품이 주목받고 있다. 글로벌 회계·컨설팅업체 딜로이트는 럭셔리 브랜드의 중고 시장이 2018년 162억달러(약 18조 5000억원)에서 2026년 685억달러 규모로 성장할 거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가품’ 우려 때문에 섣불리 거래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엔드앤드는 중고 명품 글로벌 '도매' 거래 플랫폼을 운영하는 스타트업이다. 한국, 일본 등 아시아 중고 명품을 미국, 유럽 등의 업체가 도매로 구매할 수 있도록 플랫폼을 만들었다. 제품 신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세계 감정사들이 엔드앤드에 올라온 중고명품의 진품 유무를 평가하게 만들었다. 월 1만 2000여건의 감정 요청이 올라오고 4만여건의 감정 의견이 달리는 등 이용자 참여가 활발하다.
대면 시장에서도 해결하기 힘든 중고 명품 시장의 정보 비대칭성을 어떻게 비대면으로 해결하는 것일까. 엔드앤드의 김동현 대표를 만나 얘기를 들었다.
◇영국에서 제품 디자인 전공
영국 유학생 출신이다. “한국에서 제품 디자인을 전공하다가 2009년 영국 노섬블리아 대학교로 편입했습니다. 제가 경상북도 김천 출신인데요, 해외에서 더 새로운 경험과 다양한 문화를 경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유학을 결심했죠. 영국에서도 제품 디자인을 공부했습니다. 제품의 기획부터 생산까지 전 과정을 배웠죠.”
영국과 한국을 오가며 같은 제품이라도 가격차가 크다는 걸 알게 됐다. “한국에서 저렴한 제품이 해외에서 프리미엄을 붙여 판매되거나, 영국에선 안 비싼 제품이 한국에서 비싸게 팔리는 걸 숱하게 목격했어요. 이 차이를 이용하면 사업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12년 귀국해 유통 사업을 시작했다. “화장품, 장난감, 전자제품 등 종류를 가리지 않고 물건을 팔았어요. 식품과 의류 빼고는 다 해본 것 같아요. 영국에서 유명 브랜드의 그릇을 사입 해서 국내 유통했고, 반대로 우리나라 화장품이나 국산 가전을 해외 곳곳에 팔았습니다."
-어려움 점은 없었나요.
"물건을 공수해서 유통하는 과정은 어렵지 않았는데, CS(고객응대)가 복병이었어요. 제품을 받았는데 못 받았다고 거짓말하거나, 반품하겠다면서 쓰던 물건을 돌려보내는 일이 허다했거든요. 운영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꼈어요.”
사회 경험 없이 2년 간 개인 사업을 하니 조직 생활에 대한 갈증이 커졌다. 하던 일을 접고, 2014년 반려동물용 가전제품 스타트업의 공동 창업자로 합류했다. “반려동물용 정수기, 드라이어 등을 만드는 회사였어요. 직접 아이디어도 내고 제품 디자인도 할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팀원들과 제가 내놓고 싶어하는 제품 라인업이 달랐어요. 몇 번 마찰을 겪고 나니 누구 하나가 포기해야 아름답게 이별할 수 있겠더라고요. 아쉬웠지만 1년 6개월만에 그 조직을 떠났습니다.”
◇개인 사업 경험 기반으로 중고 명품 사업 시작
다시 사업을 하기로 결심하고 아이디어를 구상했다. “유통 사업을 할 때 20만 개 정도의 물건을 유통했어요. 그때 경험을 살려서 잘 팔리는 물건의 요건을 정리해 봤습니다. 해외 시장에서 꾸준히 수요가 있고, 가격 경쟁력이 있는 제품이어야 했습니다. 리스트를 압축해보니 중고 명품이 제격이란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한국의 중고 명품이 해외에 비해 적게는 20~30%, 많게는 50%까지 저렴하거든요. 한국 중고 명품을 해외로 판매하는 경쟁자도 없고요.”
2016년 1월 해외 고객을 대상으로 한국 중고 명품 유통 사업을 시작했다. “아마존, 이베이 등 온라인 쇼핑몰에 몰을 개설해서, 한국에서 나온 중고 명품을 판매했어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중고 명품을 매입해 판매했죠. 개인에게서 사기도 하고 업체 분들과 어렵사리 신뢰도 쌓아 제품을 확보해 판매했습니다.”
연 매출이 적게는 7억~8억원, 많게는 10억원까지 나올 정도로 회사가 성장했다. 숙원이었던 ‘중고 명품 거래 플랫폼’을 2018년 개발하기 시작했다. “해외 중고 명품 업체로부터 ‘어떤 제품을 구해달라’, ‘한국의 중고 명품 공급처를 연결해달라’ 등 다양한 요청을 받았어요. 협력사 사장님 중에도 해외 도매로 중고 명품을 판매하고 싶어 하는 분이 많았고요.”
개인 대상이 아닌 B2B 사업에 방점을 두기로 했다. “미국 중고 명품 업체들이 한 번씩 한국에 와서 제품을 쓸어간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들여가며 한국을 방문하는 이유는 딱 하나예요. 진품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서죠. 만약 온라인에서 가품을 판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한다면 미국 업체들의 비즈니스 과정을 효율적으로 바꾸면서, 우리도 성장할 수 있겠다 생각했죠.”
◇집단 지성 이용한 ‘명품 감정 시스템’ 도입
감정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집중했다. “플랫폼에 제품 사진을 올리면 전세계 감정사들이 진품 여부를 확인하는 방식이에요. 개인과 업체 모두 무료로 감정 받을 수 있어요.”
의류나 가방 등 각 카테고리별로 가이드라인을 주고, 이에 맞춰서 제품 사진을 올리면 된다. “인기 많은 루이비통의 리버풀 제품을 예로 들어 볼게요. 기본적으로 TC코드(생산연도와 생산국을 식별할 수 있도록 루이비통에서 만든 일련번호)를 공유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물쇠, 바느질 상태를 증명하는 사진뿐만 아니라 가죽 상태를 확인할 수 있도록 가방의 앞, 뒤, 옆면, 속 사진까지 올려야 하죠. 만약 사진 상태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감정사가 ‘더 나은 이미지’를 요청할 수 있어요.”
감정사의 실수를 보완할 수 있도록 제품 하나에 여러 감정사가 달라붙는다. “현재 활동하는 감정사 대부분이 명품을 오래 다룬 전문 판매자들입니다. 만약 감정사 한 명의 의견에만 의존한다면 진짜가 가품이 되고 가품이 진짜가 될 위험이 있어요. 저희는 감정사 여러 명이 한 제품을 감정하는 ‘집단 감정’ 방식입니다. 누군가의 실수를 다른 사람이 정정할 수 있도록 한 거죠. 가품이 의외로 많습니다. 감정 의뢰가 들어온 제품 10개 중 2~3개꼴로 가품이 나와요.”
판매자가 감정을 요청한 제품이 진품으로 판명 나면 판매로 연결된다. “개인 사업을 할 때 CS 문제로 애를 먹은 기억이 있어서 거래 중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상황을 바탕으로 ‘자동 거래 프로세스’를 구축했어요. 거래가 발생하면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에 대화창이 형성됩니다. 이 창에서 제품 배송일을 확인할 수 있고 반품 절차도 밟을 수 있어요. 구매자와 판매자를 직접 연결해서 소통할 수 있도록 한 거죠. 구매 과정도 감정 과정만큼 중요하니까요.”
2년간의 개발 끝에 지난해 5월 엔드앤드 웹 서비스를 론칭했다. “지금까지 한국, 미국, 일본 등 전세계 50여 명의 감정사와 100여 곳의 중고 명품 판매업체가 엔드앤드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현재 5만개의 제품이 올라와 있어요. 누적 소비자 회원은 8000여 명입니다. 업체와 개인 회원 모두 포함된 수치이며, 이들의 97%가 캐나다, 미국 등 북미 출신입니다. 참고로 개인 회원도 중고 명품을 판매하고 구매할 수 있습니다. 무료 감정을 받은 결과를 토대로 본인의 제품을 판매할 수도 있죠.”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고 있다. “지난 6월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이 신한카드, VISA와 공동 주최한 디데이(창업경진대회)에서 최종 6개 사로 선정됐습니다. 지금까지 거래 성사 경험이 있는 업체의 재이용률은 100%에 달해요. 투자금을 받지 않고 저희가 번 돈으로 버티며 플랫폼을 개발했는데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어서 다행입니다.”
◇정보 비대칭 심한 중고 명품 시장 혁신하고파
가품이 판치는 중고 명품 시장의 특수성 때문에 ‘신뢰’를 최우선 가치로 두고 있다. 전세계 소비자에게 무료로 중고 명품 감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목표다. “거래 성사 경험이 있는 모든 업체의 재이용률이 100%에 달합니다. 저희의 의도가 통한 것 같아 뿌듯합니다. 내년 말까지 거래액 110억원 달성이 목표에요.
궁극적으로는 불평등한 정보와 폭리가 만연하는 중고 명품 시장의 부조리를 해결하는 게 목표다. “온라인 커뮤니티나 앱을 통해 중고 거래가 자주 이뤄지지만 진품인지 알아내려면 별도의 감정비를 내야 하죠. 감정사 한 명에게 의존하기에 불안하기도 하고요. 소비자가 공정한 거래와 합리적인 서비스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게 저희의 비전입니다.”
/진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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