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메달리스트 아들의 중고차 구독 서비스 스타트업 창업기
일정 금액을 내고 정기적으로 제품이나 서비스를 받는 구독경제가 대세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에 따르면 전세계 구독기반 전자상거래시장 규모는 2018년 기준 132억달러(약 14조6000억원)에 달한다. 증가세는 더 무섭다. 연평균 68%씩 고속 성장해 2025년 4782억달러(약 529조3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이제 ‘자동차’도 구독한다. 스타트업 ‘더트라이브’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중고차 구독 서비스 'trive(트라이브)'를 시작했다. 리스나 렌트와 달리 보증금과 이자가 없다. 마치 넷플릭스 이용료를 결제하듯 매월 이용료를 내고 차를 구독할 수 있다. 쏘나타, 말리부 같은 중형차부터 벤츠, 아우디 같은 외제차는 물론 페라리, 롤스로이스 같은 슈퍼카까지 내가 원하는 기간 동안 탈 수 있다. 시범 서비스를 마치고 7월 1일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 트라이브 창업자 전민수 대표를 만났다.
◇R8, 맥라렌 등 슈퍼카도 버튼 하나로 ‘구독’
원하는 차량을 6개월 단위로 바꿔탈 수 있는 서비스다. 매월 이용료는 차종에 따라 다르다. 벤츠 E클래스는 월 70만원, BMW i3는 월 85만원, 테슬라 모델 S의 경우 월 165만원이다. 현대·기아, 포르쉐, 벤츠, 맥라렌, BMW, 아우디, 재규어, 렉서스, 랜드로버, 캐딜락, 머스탱 등 차량 제품군이 다양하다.
신차 리스보다 가격이 크게 저렴한 것은 중고차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더트라이브가 확보한 중고차를 연식과 모델 별로 가격을 설정해 인도한다.
7월 기준 약 84대 차량이 트라이브 앱에 등록돼있다. 원하는 차를 택해 구독을 신청한 뒤 신용카드로 결제하면 된다. 트라이브 소속 직원이 차를 끌고 고객에게 인도한다. 계약 기간이 끝나면 직원이 다시 차를 가지러 온다. “자산으로 소유하는 것 대신 경험을 중시하는 소비 트렌드에 부합하는 서비스예요. 질리면 다른 차로 바꿔 탈 수 있어요.”
중고차를 살 때 드는 3가지 걱정거리를 없애는 데 초점을 맞췄다. 비용 걱정, 관리 부담, 허위 매물 우려다. “매달 구독료를 제외하곤 내야 하는 비용이 없습니다. 취등록세도, 자동차세도 없죠. 무리하게 대출해서 생기는 할부 이자 부담도 없고요. 구독료에는 월 1회 세차, 정기점검 서비스도 포함입니다. 부품 고장나면 바꿔드리고요. 차를 구독하는 것이기 때문에, 막상 가보니 내가 찾던 차종이 아닌 '허위 매물 우려'도 없습니다. 내가 구독한 차가 아닌 차가 온다면 계약을 위반한 거니까요.”
장기 렌터카, 리스 서비스를 이용할 때 고민인 장기 계약 기간과 대여차 표시임을 알리는 ‘하’, ‘허’, ‘호’도 없다. “저희는 최소 6개월 단위로 다른 차를 바꿔탈 수 있어요. 트라이브에서 소유한 차량을 빌려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차량 번호는 일반 번호판과 같습니다.”
구독이 끝난 차는 앱에 다시 등록해 다른 고객이 이용하도록 하거나, 중고차 매매 상사에 매각해 상품회전율을 높인다.
◇차량 중개 플랫폼 창업, ‘구독서비스’로 전환
전 대표는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국내로 돌아와 광고회사에서 광고기획자로 4년 간 일했다. 소주 '처음처럼', IBK기업은행 광고 등을 기획했다. 이후 프리랜서 광고PD로 잠깐 일하다, 2014년 한국에 진출한 인도 회사 ‘기나 소프트’로 이직했다. 자동차 제조사에 솔루션을 납품하는 회사였다. “옮긴 회사에 적응하기도 전에 폭스바겐이 디젤 배출가스 배출량을 조작한 ‘디젤 게이트’가 터졌어요. 자동차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기나 소프트는 한국에서 철수하기로 했죠. 혼란이었어요.”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 창업에 나섰다. 그 모습을 보고 새로운 도전에 관심이 갔다. 인도 본사 근무를 제안 받았지만 뿌리치고 2016년 12월 자본금 5000만원으로 창업 했다. “중고차 시장이 그때만 해도 불신이 팽배했어요. 자동차 속을 모조리 뜯어볼 수 없는 노릇이니, 소비자는 순전히 중고차 딜러만 믿을 수밖에요. 딜러가 소비자를 속이기 쉬운 구조였고, 괜한 오해를 사는 착한 딜러들에게도 악영향이었죠. 신뢰할 수 있는 중고차 구매 모델을 만들고 싶었어요.”
시작은 애플리케이션에서 자동차 판매자와 소비자를 연결해주는 중개 플랫폼이었다. 기대와 달리 시장 반응이 시원치 않았다. “암암리에 카페 같은 데서 이뤄지던 중고차 거래를 양지로 끌어올리고 싶었어요. 그런데 자동차 제조사에서 차를 온라인에서 팔지 못하도록 하더군요. 온라인에서 차를 판 딜러에게 불이익을 주는 경우도 있었고요. 결국 사업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해 철수를 고민하게 됐죠.”
2018년 4월 중고차 구독 서비스로 피봇팅(Pivoting·기존 사업 아이템을 변경해 다시 시장성을 검증하는 것)했다. “차는 자산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잖아요. 재산을 추정할 때 차를 포함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차량 공유 서비스가 대중화되면서 ‘반드시 차를 소유해야한다’는 인식이 흐려지고 있어요. 여기서 착안해 소유욕을 충족시키면서 공유서비스 편의성도 제공할 수 있는 ‘구독모델’로 사업을 전환했죠.”
2020년 1월부터 1년 6개월의 시범 서비스 기간 1250명이 구독을 신청했다. 트라이브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인원만 1000명에 이른다.
주요 타깃은 경제력이 있는 30~40대다. 이들의 수입차 소유욕을 겨냥한다. "우리나라 중고차 평균 교체주기가 18개월입니다. 중고차를 타시는 분들은 자주 사고 팔고 하시는 거죠. 이렇게 영구적인 소유도, 그렇다고 공유도 싫은 분들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외제차 빌려주는 서비스인데, 현대차가 투자
잇따라 외부 투자를 유치하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현대자동차에서 1억원 투자를 유치한 것을 시작으로, 중소벤처기업부의 스타트업 창원 지원 프로그램에서 6억원을 투자 받았다. 또 한 엔젤클럽에서 1억4000만원, 한국벤처투자협회에서 1억6000만원을 투자받았다. "현대차에서 투자 받게 된 계기는 무작정 보낸 콜드메일(사전에 약속되지 않은 갑작스러운 메일)이었어요. 지레 겁먹지 말고 ‘한번 해보자’ 싶었는데 현대차에서 저희 서비스를 좋게 평가해주셨네요."
최근 정성모터스 이현복 대표를 트라이브 부대표로 영입했다. “이 부대표님은 20년 넘게 중고차 업계에서 일한 베테랑입니다. ‘중고차 업계 메시’라 불려요. 이전까진 트라이브에서 구독할 수 있는 차종에 한계가 있었는데요. 이젠 부대표님 소유 중고차를 트라이브에서 구독 가능할 수 있게 되면서 차종이 늘었습니다.”
모든 이동수단에 구독 서비스를 결합하는 것이 목표다. "고객이 집에서 인천공항까지 트라이브에서 구독한 차량을 타고 가고, 비행기 예약도 저희가 알아서 해주고요. 출장지에서는 또다시 우리 서비스 차량을 이용하는 식이죠.”
창업가로서 '끈기'를 장점으로 꼽는다. "지금 인력이 부족해서 하루하루 정신 없이 지나가요.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지만 견뎌낼 자신 있습니다. 아버지가 레슬링 국가대표(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 올림픽 대회 레슬링 동메달리스트 전해섭 선수)셨어요. 저도 그 영향을 받아 고등학교 때까지 레슬링 훈련을 했습니다. 고2 때 팔에 부상을 입고 그만뒀지만요. 레슬링 선수 하면 ‘버티기’ 아니겠어요? 힘들 때도 있지만 끈기 있게 버티고 있습니다.”
/이연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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