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학점 2.7 지방대생, 줄줄이 서류 탈락하다 끝내 평생 직업 찾은 비결

더 비비드 2024. 7. 9. 13:04
대학 재입학, 서른 살 재취업 성공기

본인 제공

중견기업 원익큐앤씨 생산팀에서 용접기술자로 일하는 서준호(31) 씨는 원래 기계를 정비하는 엔지니어였다. 3년 간 일했다. 이후 과감히 하던 일을 그만두고, 한국폴리텍대학(폴리텍대)에 재입학했다. 이곳에서 1년간 산학연계 취업 맞춤 과정을 밟은 후 새 직업을 찾았다.

서 씨처럼 사회로 나갔다가 특수대학에 입학해 재교육 받는 사람이 늘고 있다. 실무 기술 위주로 가르치는 폴리텍대학은 올해 2년제 학위 과정 신입생 6834명을 뽑았는데, 이중 약 17%에 해당하는 1151명이 다른 대학을 다녔던 사람들이다. 전문기술과정의 경우 3940명 중 2100명(53%)이 '유턴' 입학생이다.

그들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올해 1월 다시 신입사원이 된 서 씨를 만나 새 진로를 찾기까지 여정을 들었다.

◇공고 대신 공대

기술을 배워 빨리 취업하고 싶다는 생각에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하려 했지만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다. 대신 공대에 입학했다. 금오공대 재학 시절 서준호 씨. /본인 제공

어릴 적부터 기술을 배워 빨리 취업하고 싶었다. 공업고등학교에 가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강력한 반대로 인문계고등학교로 진학했다. 대신 대학은 원하던 공부를 할 수 있는 공대를 택했다. 2009년 금오공과대학교 신소재시스템공학부에 입학했다.

기대와 현실은 달랐다. “죄다 모르는 용어뿐이었어요. 도면, 코딩, 캐드 등의 기본적인 개념도 모르는 상태에서 진도를 따라가는 것조차 버거웠죠. 한번 흥미를 잃으니 아예 공부를 외면했습니다. 평균학점 4.5점 만점에 2.7점으로 졸업했어요. 화려한 대외활동 스펙이나, 변변한 자격증이 있던 것도 아니었죠. 입사지원을 했더니 줄줄이 서류전형부터 탈락했습니다.”

구직사이트를 뒤적이다 높은 학점 없이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현장직이었다. “27살 울산에 있는 설비업체에 입사했습니다. 전기용접과 기계를 정비하는 엔지니어였어요. 뭔가 고장 났다고 하면 밤낮없이 달려가 고치는 일이었습니다. 기술이 없어서 하나부터 열까지 물어가며 배웠죠.”

한국 폴리텍 대학에서 용접 실습하는 모습. /본인 제공

2년 7개월 만에 퇴사를 결심했다. "전문적인 기술을 갖추지 못한 채 현장에 뛰어들었다보니 단순 업무가 반복됐죠. 하루에 12시간 넘게 일하는 날이 부지기수였다는 점도 사직서를 쓰는 데 한몫했습니다.”

퇴사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자격증 준비였다. “현장 경험 하나는 자신 있었지만 이를 증명할 자격증이 하나도 없더군요. 용접, 지게차 자격증 위주로 알아봤는데요. 찾아볼수록 어떤 것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어요.”

그때 눈에 띈 것이 한국폴리텍대학 포항캠퍼스 신입생 모집 공고였다. “폴리텍대학 포항캠퍼스에서 1년 과정을 수료하면 단기간에 기능직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이었습니다. 퇴사 후 공백기가 길어지면서 떨어졌던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죠.”

◇폴리텍대에서 용접기술자 도전, 용접대회 3등 기록

코로나19 감염병의 여파로 2개월간 비대면수업이 이어졌다. 2020년 5월부터 정식으로 용접 실습 과정을 들을 수 있었다. /본인 제공

2020년 3월 한국폴리텍대학 포항캠퍼스에 입학했다. 입학하자마자 코로나19 감염병 여파가 덮쳤다.  모든 수업이 비대면으로 진행됐다. 자격증 취득이 급했던 서 씨는 필기시험부터 보기 시작했다. 2개월간 지게차운전기능사, 용접기능사, 특수용접기능사 등 3개 자격증의 필기시험에 합격했다.

“나이가 30 줄에 들어섰는데 어영부영하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자는 생각으로 자격증 수험서 3권을 샀습니다. 필기합격 6개월 후 실기시험을 쳐야 하기 때문에 비대면 수업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지체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5월 첫 등교를 했다. “학창시절 했던 공부와는 차원이 달랐어요. 용접 실력이 느는 걸 눈으로 바로바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더 신나서 열심히 하게 되더라고요. 용접된 부분에 생기는 볼록한 띠 모양인 용접비드마저 예뻐 보였죠.”

2020 전국 용접 기능경기대회에 포항캠퍼스 대표로 참가해 3등으로 입상했다. /본인 제공

실력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2020 전국 용접 기능경기대회’ 대학생 부문에 참가했다. 포항캠퍼스를 대표한다는 생각에 여름방학에도 쉬지 않고 학교를 찾았다. 거제도 삼성중공업 기술연수원에 4박 5일 일정으로 전지훈련도 다녀왔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대회를 준비하는 동생들을 보면서 자극을 많이 받았어요.”

낮에는 대회를 준비했고 저녁에는 용접산업기사 자격증 실기 연습에 매진했다. “주독야독(晝讀夜讀)했어요. 용접기능 경기대회에서 3등으로 입상했습니다. 용접산업기사 자격증까지 손에 쥐고 나니 노력의 결과를 보상받았다는 생각이 울컥하더군요.”

◇석영? 쿼츠? 그게 뭐죠

6:1의 경쟁률을 뚫고 원익반에 들어갔다. 석영을 용접하는 기술은 일반 용접과는 차원이 달랐다. /본인 제공

2학기 개강과 함께 새로운 교육 과정에 대한 소식을 접했다. “한국폴리텍대학 포항캠퍼스가 원익큐앤씨라는 중견기업과 MOU를 체결하면서 새로 생긴 과정이었습니다. ‘원익반’이라고 불렀는데요. 여기 들어가는 것 자체가 입사 지원 과정이나 매한가지였어요. 입사지원서를 쓰고 면접도 봤죠. 6:1을 경쟁률을 뚫고 원익반 정원인 15명 안에 들었습니다.”

2개월 동안 스파르타 교육이 이어졌다. 사내 생산 공정과 동일한 쿼츠 용접 실무, 열처리 작업, 용접 결함 보수 기술, 세척 연마 작업을 배웠다. 현장 경험이 있었고 용접산업기사 자격증까지 취득했건만 쿼츠용접은 또 다른 세계였다.

부산 영도다리를 모티브로 만든 상하로 움직이는 다리 모형. /본인 제공

쿼츠(quartz)는 석영(石英)을 말한다. 온도 변화에 따른 물리적 성질 변화가 적고, 고온에 강하다. 이런 특성 때문에 순도와 내구성, 내열성이 높아야 하는 반도체 제작 공정에 필수적이다. 석영을 다루는 데 쓰는 용접 접합 기술은 기계 작업이 불가능하고 수작업만 가능하다.

“불투명한 원재료에 열을 가해 투명한 유리로 가공하는 기술이 핵심이었습니다. 수소와 산소를 결합해 열을 가하는 방식이었고 쉽게 깨지는 유리의 특성 때문에 지레 겁을 먹었죠. 모르는 부분은 교수님과 원익큐앤씨 담당 기감님을 물고 늘어지면서 연습을 거듭했습니다.”

원익큐앤씨 쿼츠용접 실습. 실습과정을 영상으로 기록해 머릿속에서 이미지 트레이닝을 반복했다. /본인 제공

연습 과정을 영상으로 기록해두고 수십 번 돌려봤다. “수업이 끝나도 학교에 남아서 더 연습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어요. 쿼츠용접에 쓰이는 수소가 비싸서 사용에 제한이 있었습니다. 대신 영상을 보면서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반복했죠.”

마지막 단계는 최종면접이었다. 최종 면접을 준비하면서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은 ‘마음가짐’이었다. “면접꿀팁 영상을 수십 개는 본 것 같아요. 결론은 하나더군요. 자신감을 보여주는 겁니다. 자신감은 지금까지 제가 해 온 훈련과 연습량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어깨가 활짝 펴졌죠.”

◇두 번째 신입사원, 이제 시작

서준호 씨 증명사진. /본인 제공

원익큐앤씨 쿼츠제조본부 생산1팀에 최종합격했다. 2021년 1월 6일 첫 출근을 했다. “월급은 전 직장과 크게 차이 나지 않아요. 하지만 근무환경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정시 출퇴근이 보장되고, 쾌적한 실내 작업환경에서 일합니다. 무엇보다 내가 성장하는 만큼 회사가 성장할 것이고, 역으로 회사가 성장하는 것만큼 내가 성장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며 일할 수 있다는 점이 만족스러워요. 한국폴리텍대학 포항캠퍼스의 취업연계 기업 맞춤형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삶은 이제 시작이다. 지금까지 취업이 목적이었다면 이제는 용접 분야에서 최고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다. “저처럼 방황하고 있는 친구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그랬던 것처럼 방황하고 있는 친구들이 있다면 그 친구들에게 도움이 되는 선배가 되겠습니다. 아직 신입사원이지만 든든한 선배 노릇 해보고 싶어요.”

/이영지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