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네가 한다고?" 2년 전 불합격 판정 받았던 지방대생의 현재 모습

더 비비드 2024. 7. 9. 13:10
대학생들의 이동수단 통합 플랫폼 개발기

카찹의 이원재 대표. /더비비드

창업 기업은 한 번 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연일 폭염이 계속되자 차 없는 뚜벅이족들에게 ‘전동 킥보드’가 인기다. 다만 업체별로 앱 여러 개를 오가며 킥보드의 위치와 충전 상태를 비교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통합 모빌리티 플랫폼 ‘카찹’을 이용하면 뚜벅이족도 간편하게 목적지에 갈 수 있다. 전동 킥보드, 공유 자전거 등 민간 모빌리티 서비스뿐만 아니라 대중교통, 수상택시까지 하나의 플랫폼으로 통합한 덕이다. 이동수단별 요금을 비교해서 예약할 수 있다. 주차장, 주유소, 전기차충전소 등 인프라의 위치와 가격도 확인할 수 있다. 네이버, 카카오가 제공하는 길찾기 서비스에서도 내 주변 이용 가능한 이동수단을 모조리 알려주진 않는다. 가능성을 인정받아 중소벤처기업부의 기술창업투자 프로그램인 팁스(TIPS)에 최종 선정됐다.

졸업 작품으로 출발해 사업화까지 성공한 카찹의 이원재(27) 대표에게서 창업기를 들었다.

◇졸업 전시 출품작 고민하다가 탄생

사업 초창기 시절. /카찹

평면에서 다채로운 이미지, 심벌 등으로 의사소통하는 시각디자인을 을지대에서 전공했다. 다양한 대외활동을 했다. “닥치는 대로 경험을 쌓았어요. 시립미술관 기획 홍보 인턴, 아트페어 인턴, 세종문화회관 도슨트 경험이 있어요. 2018년 지방선거 때는 의원실 공보 담당자로 일했죠. 정치 PR 영역에서 디자이너가 어떤 역량을 펼칠 수 있을까 궁금했거든요. 공보물, 포스터, 현수막, 명함 디자인까지 다양한 시각 매체를 디자인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학교 수업 마치고 달려가서 새벽 3~4시까지 일했죠.”

이때만 해도 창업할 생각은 아니었다. “공동 창업자인 문식원 COO(최고운영책임자)와 학과 동기입니다. 2019년 졸업을 앞두고, 앞으로 무얼 해야 할지, 졸업 작품으로는 어떤 걸 내놓을지 함께 고민했어요. 대부분 미대 졸업생은 패키지 디자인이나 포스터나 책 같은 인쇄물을 만드는데요. 졸업 전시가 끝나면 폐기처분 해요. 안타까워서 뭔가 다른 게 없을까 고민했죠.”

사업 초창기 시절. /카찹

4차 산업혁명이 붐이었다. 애플리케이션 제작에 도전하기로 했다. ‘이동수단 플랫폼’ 아이디어는 일상 속 불편함에서 탄생했다. “문 COO가 운전하는 걸 좋아해서 공유 차량 서비스를 자주 이용했어요. 이용할 때마다 업체별 앱을 오가며 가격을 비교하며 고르더라고요. 항공기 티켓은 출발일, 도착일, 도시만 입력하면 항공사별 상품을 한 눈에 볼 수 있는데 공유 차량엔 통합 플랫폼이 없었어요. 공유 차량 브랜드별 가격 비교 플랫폼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템을 대략 정했을 때 새로운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강남역에 갔는데 공유 키보드를 쓰는 사람이 유독 많이 보였어요. 바로 문 COO에게 달려가서 공유 차량에 국한하지 말고 ‘바퀴 달린 것은 다 통합하는 서비스를 만들자’고 제안했어요. 시장조사를 해보니 해외에는 다양한 이동수단을 한 데 모은 통합 모빌리티 서비스가 존재하는데 우리나라엔 없더라고요. 그렇게 대중교통과 공유 킥보드 등 이동수단 전반을 다루기로 했습니다.”

◇창업 초보 대학생이 제휴사 설득한 비결

한 데모데이에서 최우수상 수상 당시의 모습. /카찹

교양 수업에서 만난 컴퓨터공학과 친구를 섭외해 2019년 8월 앱 개발에 들어갔다. “모두 창업 경험이 없고 학벌이 대단한 것도 아니지만 밑바닥부터 시작한다는 ’언더그라운드 정신’으로 무장했어요. 무식이 용감하다는 말처럼 무작정 킥보드 업체에 협업하자고 메일을 보내고, 만나자고 졸랐어요. 투자자들을 만날 때면 ‘배달의민족, 지그재그 같은 의식주 플랫폼은 다 나왔으니 이제는 탈것의 차례’라고 설득했죠. 이해관계자들의 반응이 좋아서 순조로울 것 같았어요.”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경기도청의 차세대 융합기술원에서 진행하는 창업팀 지원 사업에서 저희 아이디어를 채택했어요. 당시 멘토였던 분이 ‘정식으로 IR(투자자에게 기업 정보를 제공하는 홍보 활동)을 하면 투자를 유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적인 이야기를 해주셨죠. 한껏 고무돼서 밤새 개발하고 IR을 했어요. 그런데 저희에게 돌아온 건 ‘투자 부적격’ 판단이었어요. ‘과연 대학생이 이걸 통합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라는 코멘트와 함께요.”

카찹의 구성원들. /카찹

맥이 풀린 동료들 모습을 보자 오기가 생겼다. “친구들에게 3개월 안에 투자를 받아올 테니까 그때까지만 아르바이트로 버텨보자고 설득했어요. 친구들이 영상 보정, 디자인 외주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버틸 때 저는 수업도 빼먹고 투자회사와 제휴사 담당자들을 만나러 다녔어요. 세미나 후 연단에서 내려오는 제휴사 대표님을 붙잡고 그 현장에서 사업계획서를 전달한 적도 있죠. 그렇게 3~4곳의 공유 킥보드 업체를 섭외하고 카찹 앱을 만들어서 2019년 12월 졸업 전시에 제출했어요.”

◇이동수단별 가격 비교 및 빠른 경로 검색 기능 추가

발표 중인 이 대표, /카찹
카찹 구동화면. /카찹

1차 목표인 졸업 전시를 무사히 마무리한 후부터 제휴처 확장에 집중했다. “물꼬를 트니 이후 섭외가 순탄했어요. 지금까지 공유 킥보드 업체 14곳, 공유자전거 업체 4곳, 택시 업체 2곳과 제휴했습니다. 이용자 위치를 기반으로 가장 가까이 이용할 수 있는 킥보드, 자전거, 택시, 공유 차량, 주유소, 주차장, 전기차중전소, 수소차충전소, 한강수상택시 등이 지도에 표시돼요. 서비스별로 가격도 비교할 수 있어요.”

이용자 편의를 위해 ‘빠른 경로 검색하기’ 기능도 추가했다. “출발지와 도착지를 설정하면 이동수단별 최단 거리와 예상 이동 시간을 보여줍니다. 예컨대, 혜화역에서 코엑스에 간다고 가정하면 버스로는 38분, 공유 킥보드로는 32분이 소요된다고 나와요. 포털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빠른 길 찾기 서비스는 대중교통, 차량에만 국한됐지만 카찹은 민간 이동수단까지 통합해서 보여주는 거죠.”

데모데이에서 발표 중인 이 대표. /카찹
카찹을 설명 중인 이 대표. /더비비드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지난해 4월 베타 서비스를 론칭한 데 이어 퓨처플레이로부터 시드 투자를 받은 것이다. “작년 10월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이 주최한 스타트업 축제 데모데이(창업경진대회) 본선 진출 5개사로 선정됐어요. 2019년에도 같은 행사에 출전했는데 그때는 최종 5위 안에 못 들었는데요. 작년 대회에선 심사위원분이 ‘1년 사이에 서비스가 많이 고도화됐다. 빨리 성장한 모습이 인상깊은 팀이다’고 평가했을 땐 이루 말할 수 없이 뿌듯했습니다.”

아직 베타 단계지만 이용자가 7만 명을 넘어섰다. 베타 출시 초기 10%에 불과했던 리텐션(재사용률)도 40%까지 끌어올렸다. “매일 2000여명이 카찹을 이용합니다. 이용자분들이 후기도 적극적으로 남겨주세요. ‘다른 업체 킥보드의 이용 여부를 알 수 있어서, 점 찍어 둔 킥보드를 빼앗길 걱정이 없어 좋다’는 피드백이 인상 깊었어요. 기존 시장의 불편함을 우리가 해결했다는 뜻이니까요. ‘카찹을 만든 팀과 같이 일하고 싶을 만큼 훌륭한 서비스다’라는 후기를 봤을 땐 투자 받았을 때보다 행복했어요.”

◇데이터 비즈니스 사업으로 확장 목표

이 대표. /더비비드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전동 킥보드 규정이 강화되면서 관련 업체들이 많이 힘들어하세요. 탑승자와 보행자 안전을 고려하면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가까이서 보는 입장에서 안타깝기도 합니다.”

전동 킥보드에 대한 나쁜 인식을 개선하는 것도 과제다. “최근 ‘세바킥’(킥보드, 바르게 세우자)라는 캠페인을 펼쳤습니다. 보행이나 주행에 방해되는, 잘못 주차된 킥보드를 발견했을 때 이를 바로 세우는 사진을 인증하면 헬멧 등 보호장비를 증정하는 행사에요. 자신이 뛰어든 생태계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플랫폼 사업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올해 정식 버전을 출시한다. “하반기에는 10만 유저를 달성하고 재사용률을 50%까지 올리고 싶어요. 내년 1분기에는 전동 킥보드를 타는 사람을 붙잡고 어느 앱을 사용했냐 물었을 때 ‘카찹’이라는 대답이 나오도록 회사를 키울 계획입니다. 추후 이용자의 이동 데이터가 쌓이면 보험사 등 금융사를 대상으로 하는 데이터 비즈니스로 사업을 확장하고 싶어요. 사람들의 이동 생활 전반을 아우르는 서비스로 키우겠습니다.”

/진은혜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