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구독 스타트업 '더트라이브'
창업 기업은 한 번 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구독, 공유 등 ‘서비스 플랫폼’이 일상화되면서, 사용자 경험을 수집하는 과정이 중요해졌다. 최고 경험 책임자(CXO, Chief Experience Officer)라는 직업이 새롭게 뜨고 있다. 각 기업의 CXO들은 소비자의 발자국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새로운 전략을 짜는 등 역할을 수행한다.
자동차 구독 서비스 스타트업 ‘더트라이브’의 최윤식(37) CXO를 만나 CXO의 업무에 대해 들었다.
◇차량 구입보다 저렴하게 자동차 구독
7월 정식 출시한 더트라이브는 원하는 차량을 구독할 수 있는 앱 기반 서비스다. 마치 넷플릭스 이용료를 결제하듯 매달 이용료를 내고 차를 구독할 수 있다. 6개월이 넘으면 위약금 없이 해지할 수 있다. 질릴만하면 다른 차로 바꿔 타는 게 가능한 것이다. 쏘나타, 그랜저 등 국산차부터 벤츠, 아우디 같은 외제차는 물론 페라리, 롤스로이스 같은 슈퍼카까지 내가 원하는 기간 동안 탈 수 있다.
그런데도 신차 리스나 할부 보다 가격이 크게 저렴하다. 보증금이나 이자도 없다. 비결은 중고차에 있다. 신차가 아닌 중고차를 구독하는 것이다. 차량 상태는 신차 못지 않다. 연식 5년 미만이고 누적 주행거리가 8만km 미만인 차량을 주로 다룬다. 최윤식 CXO는 “굳이 차를 재산으로 보유하지 않으면서, 원하는 만큼 효용을 누리게 하는 서비스”라고 표현했다.
매달 이용료는 차종과 연식 별로 다르다. 월 70만원에 이용할 수 있는 벤츠 E클래스가 있고, 월 85만원 BMW i3, 월 165만원 테슬라 모델 S도 있다. 가격은 취·등록세, 자동차세 외에 월 1회 무료 세차 등 정기점검 서비스도 포함한다. 홈페이지에서 간편하게 가입할 수 있다. 최윤식 CXO는 “반도체 수급난으로 새 차를 기다리는 데 지친 사람들이 고객으로 많이 유입된다”며 “새 아이오닉 받는 데 8개월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같은 가격에 더트라이브에서 테슬라를 이용하는 식”이라고 했다.
◇교환학생으로 갔다가 미국 유학
최윤식 CXO는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떠났다가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아예 미국 정착을 결심하고, 2009년 뉴욕주립대학교로 편입해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다. 이후 텍사스대학교 오스틴캠퍼스에서 컴퓨터 공학으로 석박사 과정을 마쳤다.
- 미국 정착을 결심한 계기가 있다면요.
“한국에서 미디어학을 전공했었어요. 2008년 가을 교환학생으로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에 가게 됐어요. 전공과 무관한 수업을 들을 수 있다길래, 미술 수업을 들었습니다. 디지털 미디어아트에 관심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미국은 이미 그 당시 미대생들도 코딩을 배우고 있더라고요. 코딩 수업을 듣는 미대생들과 친해지면서 코딩에 흥미를 갖게 됐죠.
교환학생을 마치고도 계속 미국에 남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한인회 형들이 ‘컴퓨터 공학을 배우면 미국에서도 먹고 산다’고 하더군요. 확신이 들어 편입을 준비했고, 반년 만에 합격증을 거머쥐었습니다.”
- 연고도 없고, 전공 지식도 부족해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한 번도 배운 적 없던 컴퓨터를 처음부터 공부하려니 정말 어려웠어요. 2009년 겨울에 편입하고 한 학기 수강해보니 ‘아차’싶더라고요. 그래도 포기하진 않고 살아남으려고 죽어라 공부했습니다. 첫번째 방학에는 한국에 돌아와 매일 밤낮 없이 직업학원에서 코딩을 배웠어요. 덕분에 다음 학기부터 바로 수업에서 에이스로 등극할 수 있었습니다.”
- 학부 졸업 후 뭘 했나요.
“2011년 8월 대학원에 입학해서 2019년 봄에 졸업했어요. 당시 비자 문제도 있었고, 오랜 해외 생활에 좀 지쳐있었어요. 그러다 한국 대기업에 빅데이터 관련 일자리가 많다는 말을 듣고 한국으로 돌아가자 결심했죠. 내공이 좀 쌓이면 오래 공부한 걸 이용해서 창업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자동차 스타트업에 취직한 빅데이터 박사
2019년 4월, 그리운 한국 땅을 밟았다. 입국하자마자 대학 선배들이 만든 의료 인공지능 컨설팅 스타트업의 기술 영업 팀장으로 합류했다. 연구원으로 취직하거나 교수 생활을 시작하는 동료 박사 출신들과는 다른 행보였다.
- 연구원·교수 대신 스타트업을 택한 이유는요.
“배운 걸 실전에 활용하고 싶었어요. 첫 회사는 의료 관련 AI 솔루션을 제작하는 곳이었죠. 기술을 정확하게 숙지해 그 기술이 필요한 기업들을 찾고 마케팅 전략을 세우는 업무를 맡았습니다. 일년 반 정도 근무한 후, 메타버스 관련 디자인 분야로 창업하려고 작년 10월 퇴사했습니다. 근데 너무 준비 없이 뛰어들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내가 뭘 좋아했는지, 뭘 해야할지 처음부터 생각해보기로 했어요.”
- 그렇게 내린 결론은요.
“‘차’(car)였어요. 텍사스에서 석박사 과정을 밟을 때, 학교가 너무 크고 시내랑 거리가 멀어서 자동차 없이 생활이 불가능했는데요. 다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유학생이니 주로 중고차를 몰았죠. 저는 그중에서도 일명 ‘차잘알(‘차를 잘 아는 사람’의 준말)’로 통해서, 친구들이 중고차 사러 갈 때 같이 가서 흥정해 주고 밥 얻어먹었던 기억이 많아요. 어려서부터 차를 좋아했거든요.
저 스스로는 빨간색 혼다 시빅을 시작으로 폭스바겐 골프 GTI, 닷지 챌린저, 그리고 1971년식 벤츠 280SL까지 타봤어요. 이런 경험을 살릴 일은 무엇일까 고민에 들어갔습니다.”
◇돌고 돌아 결국 좋아하는 분야로
재능을 한 번에 발휘할 수 있는 회사를 찾았다. 중고차 구독 스타트업 더트라이브였다. 그가 합류했던 지난 6월, 더트라이브는 파일럿 서비스를 운영 중이었다. 정식 출시를 한 달 앞둔 상태였는데 개발자가 3명뿐이라 업무가 과중한 상태였다.
입사하자마자 개발 책임자이자 CXO로서 앱 내 프로그램들이 잘 운영되고 있는지 점검부터 했다. CXO란 최고 경험 책임자의 준말로, 재화나 서비스를 사용한 소비자들의 경험 데이터를 수집해 분석해서 제품을 개선하는 직군이다.
- 더트라이브에선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입사 전 관리되지 않았던 유실 데이터부터 수집해서 분석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앱 내에서 소비자가 어떤 차량을 둘러본 후 실제 구독하는지 확인하고요. 고객 정보, 조회수가 많은 차량 등 모든 정보를 분석하죠. 이런 정보는 이용자 만족도를 높이는 밑거름이 돼요. 단골에게 혜택 좋은 쿠폰을 제공하거나, 인기 차량 위주로 매입해 오는 등 맞춤형 서비스를 구축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구독료를 책정할 때도 빅데이터가 활용됩니다. 구독 차량으로 중고차를 이용하기 때문에, 구독료를 정할 때 많은 양의 중고차 거래 데이터가 필요해요. 더트라이브는 매입한 중고차량을 36개월 정도 구독용으로 활용하고 다시 중고차 매매업자에게 매각하는 것을 기준으로 가격을 책정하거든요. 감가상각률을 계산해서 차량의 미래 가치를 분석해야 하죠.”
◇더트라이브 CXO의 중고차 구독 시장 분석
중고차 구매 문턱 중 하나가 ‘고장’이다. 트라이브는 이런 점에 착안해 차를 알아서 관리해주는 방식을 선택했다. 소비자는 차를 ‘타기만’하면 된다.
중고차 수요층의 가려운 데를 긁어준 덕에 단기간에 빠르게 성장했다. 정식 서비스 출범 직후보다 차량 출고량이 3배 가량 늘었다. 재무 상태도 좋아져 수집한 데이터를 차량 매입에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서비스 출범 당시 30대였던 구독 가능 차량은 100대 정도로 확대했다.
- 어떤 사람들이 차량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나요.
“초반에는 신차 리스를 하던 소비자가 넘어오는 경우가 많았어요. 신차 리스는 출고가 기준으로 가격을 매겨서 이용료가 비싸거든요. 저희는 중고차 중에서도 연식 5년 미만이고 누적 주행거리가 8만km 미만인 차량을 주로 다루는데요. 매력적인 대안이 돼 준 셈이죠.
요즘엔 새로운 수요층도 생겼어요. 신차를 구매하면 대기가 1년씩 걸리잖아요. 그 기간 동안 더트라이브 서비스를 이용하려는 수요가 발생한거죠. 이용자의 평균 연령은 삼십 대 후반입니다. 새로운 서비스에 대한 호기심과 소비력이 모두 높은 세대입니다. 차량은 벤츠, BMW, 포르쉐, 제네시스 순으로 잘 나가는데, 그 중에서도 벤츠 E클래스의 인기가 압도적으로 높아요. 출고 차량 150대 중에서 40대 이상이 벤츠일 정도죠.”
- 앞으로의 계획은요.
“최근 구독 가능 물량이 많이 늘어서 이용자가 원하는 차량을 빨리 찾을 수 있도록 앱을 고도화 하고 있습니다. 앱 차량 검색기능과 가격순 정렬 기능이 곧 추가될 예정이에요. 이용자끼리 구독 중인 차량을 바꿔 쓸 수 있는 트레이드 서비스와 유저 커뮤니티도 구축할 계획입니다. 자동차 애호가이자 개발자로서, 정보 비대칭성이 심한 중고차 시장의 신뢰도를 개선하고 싶거든요. 그 출발점이 중고차 소비자들 간의 소통을 촉진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 빅데이터를 전공한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요.
“빅데이터, 코딩 분야는 요즘엔 분야를 막론하고 진출이 쉽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코딩 하나로만 살아남기엔 힘든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관련 전공자분들은 관심 분야와 전공을 접목한 일이 뭐가 있을지 끊임없이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어떤 결정을 내리든 자신의 선택에 확신을 가지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김영리 에디터
'인터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9살에 공공기관 직원 된 청년, 트롯 스타 만나 벌인 일 (0) | 2024.07.08 |
---|---|
연대 출신이 '한 눈에 반해' 공공기관 사표 내고 선택한 뜻밖의 일68 (0) | 2024.07.08 |
미국이 '혁신적' 극찬한 맞춤형 안경에 담긴 한국 기술 (0) | 2024.07.08 |
17살 때 아이디어로 전세계 200만명 반하게 한 한국 청년 (0) | 2024.07.08 |
출시 4일 동안 80명 찾아 온 커뮤니티의 현재 모습 (0) | 2024.07.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