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19살에 공공기관 직원 된 청년, 트롯 스타 만나 벌인 일

더 비비드 2024. 7. 8. 10:54
공공기관의 탈(脫)캠페인 콘텐츠 제작 도전기

착한 콘텐츠 불모지에 도전장을 내민 이는 다름아닌 공기업 10년 차 안전보건공단 이승우 주임(왼쪽)이다. 트롯바비 홍지윤(오른쪽)이 부르는 안전송 '함께, 안전'을 기획하고 뮤직비디오를 제작했다. /안전보건공단 제공

연예인뿐 아니라 평범한 직장인이나 학생까지 콘텐츠를 제작하고 공유하는 시대. 콘텐츠 창작자를 꿈꾸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막상 맘을 먹어도, 뭐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죠. 일반인 출신 콘텐츠 창작자로부터 노하우를 들어보는 '나도 창작자 될 수 있다'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안전보건공단 홍보사업부 이승우 주임(27)은 얼마 전 ‘오징어게임’을 패러디한 포스터를 제작해 온라인 커뮤니티 상에서 화제를 모았다.

이어 ‘안전송’을 2곡 제작해 히트를 쳤다. TV프로그램 '미스트롯' 준우승자 홍지윤, 음악 크리에이터 넵킨스가 참여한 뮤직비디오는 유튜브에서 2주 만에 16만뷰를 기록했다. 촬영 비하인드 영상까지 제작해 구색을 갖췄다. ‘조만간 음악방송에 나올 것 같다’는 댓글을 볼 때마다 어깨가 으쓱한다는 이 주임을 만났다.

◇고졸 출신 10년 차 직장인

이 주임은 2012년 7월, 19살이던 때 안전보건공단에 입사했다. /안전보건공단 제공

신입사원 시절 처음 칭찬받았던 날을 똑똑히 기억한다. “업무 협약식 행사 사진을 직접 찍고 포토샵으로 편집했는데요. 배경에 걸린 현수막에 오타가 있어 폰트와 색상을 맞춰 절묘하게 수정했습니다. 눈을 감은 사람이 눈을 뜬 것처럼, 다리가 보이지 않는 사진도 전신사진인 것처럼 만들어내기도 했죠. 모니터 앞으로 팀원들이 모여들 때마다 얼마나 신이 났는지 모릅니다.”

현장 작업을 하는 이 주임 /산업안전보건공단

홍보물 제작부터 노출되는 매체를 관리하는 것까지 이 주임의 역할이다. 현수막, 공식 홈페이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관리한다. 전국 40개소에 설치된 산업안전 전광판도 책임지고 있다. “전광판으로 올라가는 사다리 교체 등 시설 관리도 제 몫입니다.”

어느새 직장 생활 10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아침마다 빠짐없이 뉴스스크랩을 한다. “출근하면 가장 먼저 뉴스를 찾아봅니다. 안전보건, 산업재해, 추락사고 등 키워드를 검색해 새로운 이슈가 있는지, 여론은 어떤지 정리하죠. 안전과 관련한 모든 이슈에 기민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홍보물을 제작할 때 반영할 수도 있고요.”

업무에서 ‘사진 촬영’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공단 안에 사진관을 하나 차려도 되겠다 싶을 정돕니다. 며칠 전에 신규 직원이 130명 들어왔는데 사원증에 들어갈 사진을 모두 제가 찍었습니다. 중요한 손님이 공단을 방문하시는 날엔 어김없이 회의실로 달려가 ‘활짝 웃어달라’고 말하면서 셔터를 열심히 누르죠.”

◇공공기관의 탈(脫)캠페인 도전

팀원들과 회의하는 모습. 이 주임(가운데)은 캠페인스럽지 않은 캠페인을 만들고 싶었다. /안전보건공단 제공

딱딱한 안전수칙을 주제로 친근한 콘텐츠를 기획하라는 과제가 주어졌다. “영상이 대세인 건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만들지가 관건이죠. 캠페인스럽지 않은 캠페인을 만들고 싶었어요. 중독성 있는 멜로디에 입에 착 붙는 가사를 입혀 한번만 들어도 머릿속에 맴도는 노래를 만들기로 했죠. 보는 재미를 더해 줄 뮤직비디오는 필수였습니다.”

전 연령층을 아우를 수 있도록 콘셉트별 로 2곡을 제작하기로 했다. “노동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이 한번이라도 더 보셨으면 하는 생각에 미스트롯 출신 가수 홍지윤을 섭외했습니다. 현장 근로자분들의 연령대를 고려했을 때, 트롯바비가 부르는 노래에 귀 기울여주실 거라고 기대했죠.”

2020년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 사고 현황. 건설 현장에서 일어난 사고가 전체의 50%를 넘는다. /안전보건공단 제공

'여기 보고 저기 보고 모두 다 한번 더 살펴보아요'. 직관적이되 핵심적인 내용을 담아 ‘함께, 안전’의 가사를 짰다.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뮤직비디오 배경은 건설 현장으로 정했다. “작년 한 해 산업 현장에서 일어난 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람이 882명입니다. 하루에 2.4명이 사망한 꼴이죠. 그 중 건설 현장에서 일어난 사고가 50%를 넘어요. 일상 속에서 흔히 접할 수 있지만 큰 위험이 내재된 공간입니다.”

트로트계의 바비인형이라는 홍지윤의 별명에 어울리는 파스텔 톤 배경의 스튜디오 세트를 제작했다. /안전보건공단 제공

전략을 틀어 출연자에 집중했다. “고민 끝에 트로트계의 바비인형이라는 홍지윤의 별명에 어울리는 스튜디오 세트를 찌기로 결정했어요. 파스텔 톤 배경에 철골 구조물과 여러 소품을 배치했죠. 주인공을 근로자와 안전교육강사 1인 2역으로 등장 시켜 웃음 포인트까지 잡았습니다.”

가수 홍지윤을 근로자와 안전교육강사 1인 2역으로 등장 시켜 웃음 포인트까지 잡았다. /안전보건공단 제공

제작에 참여한 크리에이터 '넵킨스'는 사물 소리로 음악을 만들어 해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한국인 최초로 10억 조회수를 기록한 음악 크리에이터다. “공공기관에서 만든 콘텐츠도 힙(감각적이고 신선함)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산업 현장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를 이용해 음악을 만든다면 가사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못지않게 사람들의 호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촬영장에 도착한 넵킨스는 베이스, 드럼 등을 대체할 소리를 찾기 위해 보이는 물건은 죄다 두드리고 다녔다. /안전송 'SAFE' (힙합ver.) 뮤직비디오 캡처

시각적으론 산업 현장에 내재된 위험요소를 적극 활용했다. “꼭 활용하고 싶은 소재가 있었어요. 컨베이어벨트에 낀 물건을 빼내는 작업을 할 때, 다른 사람이 기계를 갑자기 작동시키는 바람에 발생하는 사고가 잦습니다. 여기에 착안해 컨베이어벨트 ‘작동금지’ 팻말이 걸리는 장면을 뮤직비디오 마지막 장면으로 썼습니다.”

◇홍보담당자라면 50대에도 스우파 알아야 해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오징어게임'을 패러디해 '안전모 착용'을 주제로 한 포스터를 제작했다. /안전보건공단 제공

10월 초 넷플릭스 오리지널 ‘오징어게임’을 패러디한 홍보물을 제작했다. 안전모 착용을 주제로 한 포스터 한 장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빠르게 번졌다. ‘공단 포스터치고 진짜 잘 만들었네’, ‘기훈이 형! 안전모 좀 쓰라고!’, ‘우린 인부잖아’ 등 다양한 댓글이 달렸다. ‘공기업까지 패러디했으면 오징어게임 유행은 이제 끝물’이라는 섭섭한 지적도 있었다.

“제가 공공기관에서 ‘오징어게임’ 패러디물을 제작한 첫 사례일 겁니다. 동그라미, 세모, 네모를 보자마자 ‘안전모’를 먼저 떠올렸어요. 친구들이 저더러 병맛(허술한 듯하면서 어이없게 웃김)이라더군요. 콘텐츠 기획자 입장에서 ‘병맛’은 최고의 칭찬이죠.”

50대 부장님(왼쪽에서 두 번째)이 스트리트우먼파이터(스우파)'를 보고 춤 콘텐츠 아이디어를 낸 것을 보고 존경스러웠다는 이 주임(왼쪽에서 첫 번째). 홍보 직무에 몸담고 있다면 매 순간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안전보건공단 제공

홍보 직무에 몸담고 있다면 매 순간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전 국민이 열광하던 밈(meme. 유행하는 문화의 전달 단위)이라도 하룻밤 사이 흔적 없이 사라질 수 있고, 갑자기 엉뚱한 물건이나 말이 유행할 수도 있어요. 평생 스무 살에 머무른다는 생각으로 유행을 부지런히 좇아야 합니다. 홍보사업부 회의 시간에 댄스 경연 프로그램 ‘스트리트우먼파이터(스우파)’를 보고 오신 50대 부장님께서 춤 콘텐츠 아이디어를 낸 것을 보고 존경스러웠습니다.”

점점 욕심이 난다. 더이상 ‘공공기관치고는’이라는 전제가 성에 차지 않는다. “처음엔 '공공기관에서 만든 것치고 재미있다'는 평가를 들을 때 엄청난 뿌듯함을 느꼈는데요. 이제는 공공기관에서 만들었다는 사실을 아예 모르게 하고 싶어요. 안전수칙이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스며들 수 있도록 말이죠.”

/이영지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