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해군의 아들이 항공사 사표내고 운명적으로 하게 된 일

더 비비드 2024. 7. 2. 13:34
청년 CEO의 낚싯줄 개발 이야기

많은 아이디어가 발상의 전환이나 우연에서 시작되지만, 상품으로 시장에 나오려면 부단한 노력과 시행착오가 필요합니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실행은 엄두내기 어려운데요. 나만의 아이디어로 창업을 꿈꾸는 여러분에게 견본이 될 ‘창업 노트 훔쳐보기’를 연재합니다.

이너샤8 낚싯줄을 개발한 셉트의 김남웅 대표. 이너샤8 제품을 들고 웃어보이고 있다. /더비비드

낚시 인기가 크게 오르면서 다양한 낚시용품 업체가 나타나고 있다. 낚시용품 전문 업체 ‘셉트’의 ‘이너샤8(INERTIA8)’은 민물과 바다 등 어디서나 활용할 수 있는 합사 낚싯줄이다. 합사는 여러 가닥의 섬유를 꼬아 만들었다는 뜻이다. 내구성이 뛰어나 덩치 큰 어종을 잡을 때도 잘 끊어지지 않는다. 이 회사 김남웅 대표는 이제 갓 서른이다. 그를 만나 이너샤8 개발 노트를 엿봤다.

◇해군 출신 아버지와의 추억에서 떠올린 아이디어

여러 가닥의 섬유를 꼬아 만든 합사줄은 나일론 소재의 단사 낚싯줄보다 인장강도(물체가 잡아당기는 힘에 견딜 수 있는 최대한의 응력)와 내구성이 좋다. 가닥의 개수에 따라 4합사와 8합사로 나뉘는데 셉트의 이너샤8은 여덟 가닥의 섬유를 꼬아 만든 8합사다. 공정이 복잡하고 제작 비용도 비싸 고급 제품으로 여겨진다.

여러 가닥을 꼬아 만들었지만 굵기는 0.17mm(1호)에서 0.34mm(4호)로 매우 얇다. 줄이 얇으면 물의 저항을 덜 받아 움직임이 자유롭다. 낚시꾼의 호응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셉트의 이너샤8 낚싯줄 모습. /김남웅 대표 제공

2017년 중앙대 사진학과 졸업 후 외항사의 항공운항부 경영팀에서 4년 동안 근무했다. 회사 생활에 지칠 때마다 낚시터를 찾았다. “아버지가 해군이셨어요. 항상 바다와 가까운 지역에서 살았죠.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와 낚시를 많이 다녔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다 힘들고 답답할 때면 추억을 더듬어 낚시터를 찾았어요. 힘에 부쳐 퇴사를 고민하던 시점에, 문득 ‘낚시용품 사업을 시작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죠.”

2021년 1월 퇴사 후 낚시용품 유통 업체 ‘셉트’를 설립했다. “다른 레저 활동에 비해 대중적이진 않지만, 매년 평균 4%씩 시장이 성장하고 있습니다. 시장 규모가 작으니 아직 대기업이 들어와 있지 않아요. 작게 시작해도 괜찮은 시장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김남웅 대표의 합사 낚싯줄 ‘이너샤8′ 개발 노트

1. 창업하자마자 경쟁사 제품 200개 분석 (제품 발상과 기획: 2021년 1~3월)

김남웅 대표가 초기 이너샤8 개발을 위해 구상한 아이디어 노트. /김남웅 대표 제공

회사를 대표할 첫 제품을 결정해야 했다. 눈에 띈 건 다름 아닌 낚싯줄이다. “바다낚시, 민물낚시, 선상낚시, 얼음낚시 등 낚시터나 상황에 따라 사용하는 장비가 다릅니다. 낚싯줄만큼은 범용으로 사용되죠. 소모품이다 보니 판매 주기도 짧고요. 낚시 마니아들에게 우리 브랜드를 알리기에 적합한 제품이죠.”

처음엔 좋은 낚싯줄을 찾아 유통할 생각이었다. 아무 제품이나 취급할 수는 없어 시장조사를 시작했다. “시중의 낚싯줄을 200개 정도 구매했어요. 낚싯줄은 보통 일본 낚시용품의 규격에 따라 ‘실의 굵기’로 호수를 나누는데요. 규격을 지켜 낚싯줄을 0.1~0.4mm 수준으로 가늘게 만드는 제조사가 드물더군요. 같은 호수의 제품이어도 굵기가 제각각인 게 육안으로 보였죠. 예를 들어 1호는 0.17mm여야 하는데, 0.2mm가 넘는 제품이 많았죠. 인장강도 측정기를 사서 줄을 당겨보며 각 제품의 성능을 시험했습니다. 매일같이 낚시하러 다니면서요. 지인에게도 나눠줬습니다. 그렇게 두 달 동안 사용감 좋은 제품을 30개로 추렸죠.”

제품 개발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김남웅 대표. /더비비드

사용감만으로는 정확한 규격을 알 수 없었다. 시험 전문 기관에 제품 분석을 의뢰했다. “전자식 현미경을 이용해 굵기를 측정했습니다. 이후 낚싯줄을 몇 번, 어떤 속도로 당겨볼 건지, 추의 무게는 어떻게 할지 등의 기준을 시험기관과 함께 정립했습니다. 이후 국제게임낚시연맹(IGFA)의 낚싯줄 성능 실험 방식을 차용해 각 제품의 성능을 평가했습니다.”

2. 소싱 제품 찾다가 신제품 개발 결심(제품 개발과 설계: 2021년 3~5월)

규격을 지키면서 내구성까지 좋은 낚싯줄은 5개뿐이었다. 최대한 다양한 제품을 유통하려 했는데, 성에 안 찼다. 그마저도 너무 비쌌다. “200m에 3만~4만원하는 고가의 제품만 규격을 지키는 정도였어요. 차라리 만드는 게 낫겠다 싶었어요. 기본에 충실하면서 가격경쟁력까지 갖춘 제품을 만들면 승산 있겠다 싶었죠.”

잡아 당기는 힘 '인장력'을 테스트 중인 모습. /김남웅 대표 제공

5곳의 낚싯줄 제조사에 실험 결과를 보내고, 제품 공동 개발을 제안했다. “한 낚싯줄 제조 업체에서 같이 하자는 답변이 왔어요. 우리를 위해서 금형까지 새로 만들 업체가 나올까 싶었는데 절실함이 통했나 봐요.”

규격을 지키면서 내구성도 좋은 낚싯줄을 원칙으로 삼았다.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규격보다 두껍게 하면 얼마든지 튼튼하게 만들 수 있어요. 하지만 물과 낚싯줄의 접촉면이 넓어져 물의 저항도 커져요. 민첩하게 대응할 수 없는 거죠. 또 소비자가 가는 줄을 선호하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어요. 줄이 얇으면 물속에서 티 나지 않아 물고기가 미끼 물 확률도 높고, 물고기의 입질도 예민하게 느낄 수 있거든요. 소비자가 굵기를 눈으로 확인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요령을 피우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너샤8 한 제품당 500m가 맞는지 검수하는 과정. /김남웅 대표 제공

표준 규격의 두께를 유지하면서 인장강도를 높이는 데 주안점을 뒀다. 튼튼함의 비밀은 원료에 있었다. “합사 제품에 많이 쓰이는 ‘초고분자량 폴리에틸렌(UHMWPE)’을 주원료로 선택했습니다. 현존하는 플라스틱 섬유 중 충격에 견디는 힘이 가장 강합니다. 선박의 돛에 사용될 정도죠. 가격은 비싸지만 불순물이 제일 적은 원료로 제작을 요청했어요. 끊어지는 확률이 줄고, 가는 줄로도 높은 인장강도를 유지하더군요.”

3. 제품 검수와 포장 직접 하는 유통사(시제품 분석 및 제품 생산: 2021년 6~7월)

제조사와 수십 번의 조율 끝에 2021년 5월 말, 시제품이 완성됐다. 지인들을 대상으로 사용감을 테스트했다. “생산 직전까지 고민한 부분은 낚싯줄의 길이입니다. 지인들에게 시제품을 써보게 하니 ‘수심이 깊은 곳에서도 여유롭게 사용하고 싶다’는 의견이 많았어요. 제품 당 마진 축소를 감수하고, 길이를 대폭 늘리기로 했습니다. 타사 제품은 보통 200m 단위로 판매되는데, 저희는 하나에 500m씩 포장했습니다. 비거리가 큰 원투낚시에도 사용할 수 있어요.”

낚싯줄이 들 수 있는 최대 무게치인 인장강도인 측정기기. 줄을 걸고 당겨서 측정한다. /김남웅 대표 제공

사소한 부분까지 신경썼다. “수심 파악을 위해 10m마다 1m 길이로 낚싯줄에 파란색 염료를 입혔습니다. 타제품의 염료는 바닷물에 오래 있으면 탈색되는 경우가 있어요. 낚싯대에 줄을 감을 때 손에 염료가 묻어나기도 하죠. 이너샤8은 염료 위에 코팅을 해서 염료 물 빠짐을 최소화했습니다. 2개월간 직접 담수와 해수에 줄을 담가보는 실험을 거쳤어요.”

제품을 일일이 검수해 포장한다. “매달 1000개가 넘는 낚싯줄을 직접 포장합니다. 불량 제품을 걸러내기 위해서에요. 500m 단위로 잘려 있는 낚싯줄을 모두 1m씩 풀면서 굵기가 균일한지 확인합니다. 염료도 10m마다 잘 표시됐는지 확인하고요. 확인을 완료하면 스티커를 붙이고 제품을 포장합니다. 몇몇 제품을 무작위로 골라 풀어보기도 해요. 500m가 맞는지 확인하는 거죠.”

◇일본 브랜드가 선점한 낚시 용품 시장에 쏘아올린 공

낚시줄을 들고 웃어보이는 셉트 김남웅 대표. /더비비드

2021년 7월 말 이너샤8를 출시했다. 8합사 낚싯줄로, 굵기에 따라 1호부터 4호로 구성돼 있다. 숫자가 작을수록 얇다는 뜻이다. “제품당 500m씩 들어있어 수심 걱정 없이 낚시를 즐길 수 있습니다. 타사의 저가형 8합사 낚싯줄과 달리 표기된 사이즈와 오차가 없어요. 고급형 제품의 반절도 안 되는 가격으로 고품질 제품을 이용할 수 있죠.”

입소문이 금방 났다. “제품 리뷰가 1700개 가까이 달렸는데요. 가격 대비 품질이 좋다는 후기가 많아요. 4만원 대의 일본산 제품에 뒤지지 않는다는 후기가 가장 뿌듯했습니다.”

셉트 김남웅 대표. /더비비드

낚시용품 시장을 선도하는 것이 목표다. “국내 낚시용품 시장은 일본 브랜드가 1, 2위를 차지하고 있어요. 일제는 품질은 좋지만 가격이 비싸요. 소비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가격을 지불해야 하죠. 고품질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수요를 충족시켜 시장을 선도하고 싶어요.”

돈만 추구하면 차별화된 제품이 나올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제품 개발 과정에서 원가를 절감할 수 있는 방법이 많아요. 하지만 마진을 남기기 위해 원가를 절감하는 선택만 하다 보면, 결국 소비자가 외면하는 제품으로 전락합니다. 브랜드의 기본은 신뢰라고 생각해요. 사업을 오래 펼칠 생각이라면 품질 제고를 우선순위로 삼으세요.”

/김영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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